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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The Complete Wilhelm Furtwangler on Record (워너)

by 만술[ME] 2025. 4. 15.

과거 음반을 많이 구입하던 시절에는 음반 관련 각종 행사 시에 제법 많은 양의 음반을 구입했고, 그것에 대해서는 블로그에도 몇 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예시 1 / 예시 2 / 아래 사진 참고)하지만 늘어가는 음반을 쌓아놓을 곳도 부족해지고 음악감상의 상당 부분을 스트리밍 서비스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음반을 구입하는 양도 현격하게 줄었고, 높은 환율로 해외 구매도 뜸하게 되어 이런저런 할인 행사에도 무신경하게 지내곤 했는데, 웹 서핑 중에 우연히 알라딘의 수입음반 연례 할인전이 마침 지금인 것을 알게 되어 눈요기나 할 겸 뒤지다가 오랜만에 할인행사에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개의 탑 - 잡동사니 탑과 유니버셜 뮤직 탑, 과거 음반을 구입하던 시절의 흔한 일상

  
이번에 구입한 음반은 국내명으로 <푸르트벵글러 전집 [오리지널 커버 55CD] - 2021 리마스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원제로는 <The Complete Wilhelm Furtwangler on Record>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애호가들 입장에서도 제 입장에서도 지겹고도 지겨운 또 하나의 푸르트뱅글러 박스이고, 또 하나의 <complete>라는 이름이 붙은 전혀 <완전> 하지 않은 박스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진부한 <리마스터>에 보너스로 <오리지널 커버>까지 붙어 있으니 그야말로 재발매 박스반의 정석 중에 정석으로 아직도 이런 음반을 내고 또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박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80년대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고 음반을 사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그야말로 푸르트뱅글러의 <빠>였습니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그가 지휘하는 <발퀴레의 기행>을 듣고 충격을 먹은 뒤, DG의 차이콥스키 6번 음반을 구입하게 되었고, 이때의 감동과 충격은 구할 수 있는 그의 음반은 모두 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LP시절이야 푸르트뱅글러의 음반을 구할 수 있는 데도 한계가 있었던지라 별 부담도 없었지만, CD시대가 되고 Tahra에서 충격적으로 음질이 향상되고 가족으로부터 허가를 득했다는 딱지를 붙인 그의 실황들을 발매하면서부터 같은 곡 같은 실황의 겹치고 겹치고 겹치는 개미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개미지옥은 가디너의 베토벤 전집 발매 즈음에서부터 서서히 약해져서 베렌라이터 판본을 도입한 현대적인 연주들의 경향에 제 취향이 기울고, 더불어 이런 연주 경향을 더 맛깔나게 해주는 SACD 등의 고음질 음원에 점점 빠지면서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푸르트뱅글러의 음반을 듣기는 하지만 1년에 집어드는 그의 음반은 10장 내외가 아닐까 할 정도로 엄청나게 줄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새삼스럽게 푸르트뱅글러의 박스, 그것도 나온 지 몇 년 된 미지근한 박스를 주문한 것은 얕은 상술임을 뻔히 알면서도 앞서 이야기한 <완전>, <리마스터>, <오리지널 커버>라는 유혹에 혹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그 상술을 파해쳐 보겠습니다.  
 
[전집 또는 완전(complete)]
 
우리말 제목인 <푸르트벵글러 전집>이나 원제인 <The Complete Wilhelm Furtwangler on Record>는 오해의 소지가 많은 명칭입니다. 그나마 우리말 제목보다는 영어 원제가 사실에 가깝습니다. 다큐멘터리 1장을 포함해 55장의 음반으로 푸르트뱅글러의 <전집>을 구성하는 것은 그의 녹음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미 EMI(현 워너)에서 발매했던 <Wilhelm Furtwangler: The Great EMI Recordings>(21 CD) + 알파의 구성 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EMI의 전집에 들어 있던 베토벤 교향곡 전곡이나 브람스 교향곡 전곡이 이번 구성에는 일부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전집>이나 <complete>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on record>에 있습니다. 이번 박스는 푸르트뱅글러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해서 LP로 발매되었던 음원과 라이브라 해도 음반화를 목적으로 했던 연주를 모은 것입니다. 이 박스는 이 기준에서 EMI 외의 다른 레이블의 음원도 라이선스를 통해 담고 있어 DG나 Decca의 음원도 일부 들어 있습니다. 
 
이런 묘한 취지의 구성 덕분에 Decca 레이블로 재발매되어 나올 때 커플링 되었던 슈만 교향곡 1번과 프랑크 교향곡 중에 프랑크 교향곡 음원만 담겨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많은 베토벤 교향곡, 브람스 교향곡 음원이 빠진 거죠. 물론 혹시나 단편일지라도 빠진 음원은 없는지를 논하기로 한다면 많은 푸르트뱅글러 전문가들은 이 <완전>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고, 아마도 워너조차도 이 박스를 만들면서 알면서도 슬쩍 눈감아버린 부분도 있을 것이지만, 여기서 자세히 논할 사항은 아니고, 그냥 워너가 말한 <전집>이나 <완전>의 의미는 푸르트뱅글러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거나 실황 중 음반 발매를 허락했던 순전히 (애호가가 아닌) 푸르트뱅글러 기준에서의 <전집>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오리지널 커버]
 
저는 푸르트뱅글러를 80년대에 LP로 접하기 시작했기에 제게 친숙한 LP 재킷은 재발매 재킷입니다. 그래서 60~90년대 발매된 LP 재킷과 달리 푸르트뱅글러의 오리지널 재킷은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어쩌면 아래 사진에 올린 재발매 재킷으로 나왔다면 더 큰 감흥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만, 이번 오리지널 재킷은 최초 발매 시의 재킷이라 대부분은 제가 모르거나 선망할 기회도 없었던 재킷이라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수 없이 리마스터 되고 재발매된 바이로이트 베토벤 9번 LP

 

방송국 음원을 이용해 열심히 찍어내던 시절의 DG 역사적 연주 시리즈 (52년 티타니아 궁 실황)

 

드믄 데카 발매 푸르트뱅글러 - 53년 프랑크와 51년 슈만 커플링

 
[리마스터링]
 
푸르트뱅글러의 음원에 대해 리마스터링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홍보에 사용될 문구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음원을 보유한 EMI나 DG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푸르트뱅글러의 음반을 새로운 리마스터링이라는 명목으로 재발매해왔고, 이런저런 재발매 전문 레이블들도 획기적인 리마스터링을 이유로 푸르트뱅글러의 유명한 음원을 자신들의 레이블로 발매하곤 했고, 푸르트뱅글러를 유독 신격화하는 일본 역시 독자적으로 다양한 리마스터링 버전을 내놓고는 했습니다. 이번 박스는 Art & Son에 의해 192kHz/24bit로 마스터링 했고, 푸르트뱅글러의 스튜디오 음원을 압도적으로 많이 보유한 워너답게 대부분을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로부터 리마스터링을 했다고 합니다. 이 오리지널리티와 스펙이 음질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지만,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창고에 보관된 40~50년대의 마스터 테이프의 보관상태나 세월의 흐름에 따른 열화는 마스터 테이프로부터의 리마스터링 보다 상태 좋은 LP나 SP로부터 리마스터링 하는 경우가 더 생생한 음질을 들려줄 수 있는 경우도 많게 하며, 마스터링의 스펙도 중요하지만 마스터링시 스튜디오의 철학(잡음을 얼마나 제거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가공을 할 것인가 등)이나 장인정신과 기술이 음질에 더 큰 영향을 줍니다. 이번 리마스터링의 음질을 이야기하자면 제가 가지고 있는 기존 음원에 비해 장점이 많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박스 내의 모든 음원을 일관되게 훌륭한 품질로 리마스터링 한 경우도 흔하지 않기에 이 점만으로도 음질적 측면에서 이 박스를 소장할 이유는 있어 보입니다. 
 
 
[왜 또 푸르트뱅글러 박스인가?]
 
꾸준히 푸르트뱅글러의 음원들을 탐구해 왔던지라 어지간한 음원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같은 연주를 리마스터링을 새롭게 했다는 이유로 여러 장 가지고 있기도 하고, 연주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감추어져 있던 음원을 구태여 찾아내 음반화 한 경우에도 퍼즐 조작을 채워 넣는 심정으로 구입한 경우도 많습니다. 90년대 초 르네 트레민이 타라 레이블을 설립 후 한정판으로 내놓은 책자인 푸르트뱅글러의 디스코그래피와 연주회 목록집을 구입한 이래 이 책자들을 뒤져가며 (요즘은 인터넷에 최신 업데이트가 된 정보들이 있습니다) 푸르트뱅글러 음반 퍼즐 끼워 맞추기를 해왔습니다. 때로는 맞춘 퍼즐조각을 최신의 퍼즐 조각으로 바꿔 끼우기도 하고, 잘못된 퍼즐조각은 제 위치로 옮기기도 하면서 (때로는 음반의 정보가 틀린 경우도 있거나 나중에 밝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푸르트뱅글러의 음악을 즐겼죠.    
 
제가 푸르트뱅글러의 새로운 박스를 구입한다면 그것은 그의 모든 실황 녹음을 포함한 모든 음원을 새롭게 리마스터링 해서 하나의 박스에 담은 기획물이 나올 때 아니겠냐는 현실화되기 힘든 생각을 해왔습니다만, 이 번 할인 행사에 이 박스를 구하게 된 데는 약간의 변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푸르트뱅글러의 음원은 실황연주가 스튜디오 녹음보다 훨씬 뛰어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그간 푸르트뱅글러의 음반에 대한 제 탐사의 여정은 주로 실황연주에 치중되어 있기에 상대적으로 스튜디오 녹음에 대해서는 두텁지 않았고, 이번 박스가 한방에 스튜디오 녹음을 정리하고 행여 푸르트뱅글러에 대한 추가적인 여정을 계속한다면 실황에만 매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정도 스펙의 마스터링이라면 아마 고음질 음원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 녹음들에 대해 변별력 있는 새로운 박스가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실황과 달리 과거 EMI의 창고의 마스터 테이프를 활용해야 하는 스튜디오녹음이라면 다른 복각전문 레이블에서 유사한 박스를 내기도 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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