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마니아는 아니지만, 대학 때 서양의 사회과학을 전공함에 있어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사학을 부전공한 이래, 이런저런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해왔던지라 일반인에 비해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아 왔지만,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른 주요국의 역사와의 연관해서만 곁가지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스페인 역사책을 몇 권 보고 있습니다. 다른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는 영화나 드라마, 다큐 등의 풍부한 보조자료도 있지만, 스페인에 대해서는 언어적 한계 때문인지 이런 보조자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서양사에서도 주변적인 역할로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더구나 스페인의 경우, 바르셀로나에 잠시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여행으로도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기에 방문 시에 받았던 깊은 인상에 비해 경험도 별로 없습니다. 수많은 자료와 문헌에서 스페인을 가리켜 이베리아, 히스파니아, 알-안달루스 등으로 이야기하지만, 동일한 개념도 아닙니다.
이사벨 1세에 대해서도 콜럼버스에게 눈팅이 당했지만, 의외의 대박으로 결론 난 행운녀 정도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고 스페인 왕국의 통일이라는 위업을 이루었고, 가톨릭 단일 신앙에 힘입은 종교국가로서의 종주국의 지위로서의 스페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했기에 일부에서는 악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요.
오늘 소개하는 <이사벨 1세, 카스티야의 여왕>은 이사벨 1세의 삶에 대한 OST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을 담은 음반으로 영화나 다큐를 만든다고 할 때, 수록된 음악을 주요 장면에 그대로 사용해도 좋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사벨 여왕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녀의 삶의 주요 순간들인 투르크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 경쟁자인 발트라네하의 후아나의 탄생, 아라곤의 페르난도와의 결혼, 카스티야 여왕 즉위, 그라나다 정복, 개종을 거부한 무슬림의 추방 등, 사건을 직접 다루거나 관련된 음악을 담고 있는데, 장르도 다양해서 어떤 곡은 로망스이기도 하고, 어떤 곡은 기악곡이기도 합니다.
수록된 음악들은 아래와 같은 이사벨 1세와 관련한 주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Ⅰ
1451 Birth of Isabella of Trastamara
1453 Constantinople is taken by the Turks
1454 Henry IV, crowned King of Castile
Ⅱ
1462 Birth of Joanna of Castile (la Beltraneja)
1469 Marriage of Ferdinand of Aragon with Isabella of Castile (19 October)
1470 Civil war in Catalonia against John II of Aragorn (1458-1479)
1474 Isabella I, crowned Queen of Castile
1478 The Inquisition is established
III
1479 Ferdinand Ⅱ, crowned King of Catalonia and Aragon
1480 "Las Cortes" (Parliament) of Toledo
1482 Alhama is occupied by the Castilians
1492 The conquest of Granada
IV
1492 The unconverted Jews are expelled from Spain (2 January)
1492 The discovery of the New World by Columbus (12 October)
1493 Treaty of Barcelona (France returns Roussillon and Cerdagne to Spain)
V
1496 Pope Alexander VI bestows on Ferdinand and Isabella the title of Los Reyes Católicos
- The Catholic Monarchs (19 December)
1497 Death of the Catholic Monarchs' heir, Prince John (4 October)
1502 The unconverted Moslems are expelled from Spain
1504 Death of Isabella I of Castile (26 November)
이 주요 사건들에 대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에 대해서는 투르크 행진곡을 배치하고, 알함마 함락에 대해서는 나바에즈의 알함마 함락에 대한 로망스인 "Paseabse el Rey moro" (무어왕이 행차할 때) 같은 곡을 배치하는 식입니다. 사건에 따라 어떤 곡은 장중한 성가곡이고, 어떤 곡은 궁정의 의례에 사용된 춤곡이며, 또 어떤 때는 풍자적인 가사를 지닌 노래로 편성되어 다양한 음악의 스펙트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툼한 책자와 함께 디지팩 형태로 하이브리드 SACD에 담긴 이 음반은 스트리밍에 대비한 물리매체의 장점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음악은 그냥 단순히 감상하는 음악이 아닌 일종의 공부하는 음악으로, 내지 해설과 역사적 배경지식이 필수인 음악이라 할 수 있고, 그 점에서 북클릿 제공이 안 되는 타이달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2004년 발매 시에 사둔 물리매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음반의 경우에는 다른 서비스를 이용해도 PDF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듯합니다.) 지금도 가끔은 음반을 구입하는데, 이 음반처럼 낯설고 해설과 배경설명 없이는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 없는 종류의 음반이거나 늘 듣던 음악의 새로운 음반이라 할지라도 몇 년 전 나온 사발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처럼 한 시대의 지평을 새롭게 연 연주자의 목소리를 음악과 더불어 글로서 접할 수 있는 음반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유명 연주자의 유명한 레퍼토리의 새로운 연주의 경우에는 스트리밍으로 만족합니다.
조르디 사발의 음반 중에는 이 음반처럼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 특정 시대의 OST로 사용할 수 있으면서 역사공부의 깊이를 더해주는 음반들이 제법 있는데, 이사벨 1세의 손자인 카를로스/카를 5세에 대한 음반이나 아라곤의 알폰소/알리폰소 5세에 대한 음반이 이 음반과 같은 방식의 구성이고, 펠릭스 로페 드 베가의 극장과 연관된 음악을 담은 음반이나 <돈 키호테>와 관련된 음악을 담은 음반 같은 특정한 주제를 담은 음반이 있습니다. 참고로 <돈 키호테> 음반은 아예 책자 형태로 되어 정보전달의 중요성이 더 강조된 음반인데, 사발은 매년 한 종류씩 이런 형태의 음반을 발매하고 있어 새로운 주제와 음악의 연결점을 공부하면서, 추가적으로 관련 분야의 책을 통해 앎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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