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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역사와 음악 시리즈

[음악]역사와 음악 (8) 루이 14세 시대의 음악 - 태양왕의 오케스트라 (L’ORCHESTRE DU ROI SOLEIL)

by 만술[ME] 2025. 10. 13.

프랑스의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함에 있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인물로는 루이 14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음악과 관련해서는 나폴레옹 1세에 비해 루이 14세가 더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음악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동력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가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근거는 부족한 "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라는 말과 함께 절대 왕정이라는 명칭과 결합하여 일종의 역사적 클리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현실은 차치하고 루이 14세가 국민들이 믿게 하고 싶었던 태양왕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나름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지난번 루이 13세에 이어 루이 14세 시대의 음악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루이 14세를 위한 륄리의 음악적 프로파간다를 모아 놓은 듯한 조르디 사발의 음반인 장-밥티스트 륄리 - 태양왕의 오케스트라 앨범은 아주 적절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음악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루이 14세와 륄리는 네이버 연관 검색어처럼 자동으로 연결되는 이름이고, 이는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영화 왕의 춤(Le Roi Danse)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 루이 14세 시대의 음악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륄리의 음악을 우선 다루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표지 그림 - 루이 14세와 왕의 가족, 장 노크레 (1670년 / 베르사유 궁전 / 프랑스, 베르사유 / 캔버스에 유채) 발췌

조르디 사발의 음반은 장 노크레가 그린 루이 14세와 왕가를 올림푸스 신들로 표현한 작품 중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하여 우측 부분을 인용해 사용했습니다. 이 그림은 왕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가 자신의 생 클루성에 걸기 위해 당시 자신의 공식화가였던 장 노크레에게 주문했다고 하며, 루이 14세는 태양왕에 걸맞게 아폴론으로, 필리프는 빛의 운반자인 헤스페로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이 14세는 헤라로 표현된 왕비 마리아 테레사, 에로스로 표현된 아들 그랑 도팽 루이, 아르테미스로 표현된 조카 마리 루이즈 등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그림은 현존하는 17세기 프랑스 최대의 초상화로 4200 x 3050 mm의 크기를 자랑하는데, 그림의 스타일은 루이 14세보다는 주문자인 필리프 1세의 취향에 맞춰져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 그림은 루이 18세 시절 베르사유로 이관이 계획되었으나 나폴레옹에 의해 취소되었고, 향후 프랑스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루이-필리프의 프로젝트로 다시 추진되어 베르사유로 이전되었고, 2022년부터 1년여 기간에 걸쳐 복원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글에서 아버지 루이 13세의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제대로 된 권력을 향유하기까지 다양한 사건이 있었음을 언급했었는데, 루이 14세도 훗날 알려진 절대 왕정의 이미지와는 달리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데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1638년 9월 루이 14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642년 말에는 리슐리외가, 6개월 뒤인 1643년 5월에는 아버지 루이 13세가 세상을 뜨게 되어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고, 어머니 안 도트리슈의 섭정과 마자랭의 치세가 시작됩니다. 스페인과의 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마자랭의 증세 정책은 고등법원에 의한 1차 프롱드, 귀족에 의한 2차 프롱드의 원인이 되었고 이 두 번의 난으로 인해 프랑스는 경제는 물론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당연히 왕권은 추락해서 루이 14세가 성인이 되어 물려받은 것은 아버지가 이룩한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2회에 걸친 프롱드가 끼친 폐해는 막대했지만 서로의 이견과 다른 이권만 확인했을 뿐 뚜렷한 개혁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고, 이것의 결과는 각자의 여전한 대립 속에 타협으로 오히려 왕권의 강화의 효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더구나 되는 집안은 되려는지, 루이 14세의 친정과 함께 2년 연속의 풍작과 곡물가격 안정으로 경제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프롱드를 통해 루이 14세는 왕권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절실하게 느꼈고, 프롱드의 결과는 큰 틀에서 왕권의 승리였기에 루이 14세는 왕권 강화에 주력하게 됩니다. 1653년에는 루브르를 개축하며 거처를 옮기고, 1654년에는 랭스에서 대관식을 하여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합니다.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랭스에서 거행되는 이유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파리가 아닌 랭스에서 거행되는 기원은 (다빈치 코드에 의하면 예수가 그 시조라는^^) 메로빙거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496년 클로비스 1세는 랭스 성당에서 주교 성 레미에게서 카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 역사적 사실과 함께 메로빙거(메로비우스) 왕조를 이은 카롤링거(카롤루스) 왕조의 피핀 3세가 751년 도유식을 받은 것을 기념하여 카페 왕조부터 왕의 대관식을 랭스에서 거행하고, 특히나 성 레미에게 비둘기가 물어 전달했다고 전해지는 성 레미 수도원의 성유병을 성당으로 봉송해 대관하는 왕의 도유식을 거행해 클로비스 1세의 메로빙거 왕조에서 피핀 3세의 카롤링거 왕조를 거쳐 이어지는 프랑스 왕위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안 왕비의 섭정을 벗어났다고 완벽한 친정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1661년 3월 마자랭이 사망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친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루이 14세는 사교와 연애에 중점을 두었지만 밖으로는 스페인과의 전쟁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전쟁이 막을 내리고 그 결과로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와 (프랑스 왕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시스/메디치의 딸인) 엘리자베트의 딸인 마리아 테레사와 혼인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 여행 후 파리에 입성한 뒤 얼마 안 돼 사실상 아버지와 같던 마자랭이 병으로 사망하기까지 하자 루이 14세는 (마자랭에 대한 깊은 애도와는 별개로) 다음날 오전 7시 "지금까지 세상을 떠난 추기경에게 통치를 맡겨왔으나 이제는 짐이 직접 통치를 할 때가 왔다"며 친정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간 리슐리외, 마자랭이 맡던 재상이 이제는 필요치 않다며 임명하지 않습니다.

 

이전 루이 13세 이야기에서 베르사유 궁전은 사냥 용도로 사용되던 궁전이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1664년 건축장관에 임명된 (물론 재정을 담당하던 입장에서의 저항은 있었지만) 콜베르와 루이 14세에게 왕의 권위와 영광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표상함에 있어 기존 궁전의 개축보다 베르사유의 증축이 더 적절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루이 14세 입장에서 사냥을 좋아했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던 베르사유는 이미 1663년부터는 각종 축연이 거행되는 장소로 사용되다 1668년에는 1차 증축이 완료되어 향후 정부기능을 이전 (정식 이전은 1682년) 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오늘 소개하는 조르디 사발의 장-밥티스트 륄리 - 태양왕의 오케스트라 음반은 바로 이 직후인 1670년부터 1674년에 작곡되고 연주된 곡들을 담고 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수많은 미술품, 정원, 건물 자체가 루이 14세가 표상하고자 했던 왕권과 그 영광에 대한 표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가 음악과 춤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특히 이 시절 그의 영광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선호하는 매체가 이 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애정과 서양 음악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아낌없는 후원에 힘입어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가가 장-밥티스트 륄리입니다. 1661년 왕실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이 된 이래 1687년 사망할 때까지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며 당대 프랑스 음악 그 자체였던 륄리는 루이 14세가 직접 춤을 추던 1670년 까지는 다양한 춤곡으로, 이후에는 코미디-발레를 거쳐 오페라로 장르를 전환하면서 왕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륄리가 왕의 사랑을 받았던 데에는 그가 이탈리아 출신이면서 비교적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와 두 문화적 유산의 교집합일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왕이 직접 공연에서 춤을 선보이는 것은 단지 루이 14세 만의 기행이 아닌, 중요한 사교 의례라는 이야기를 루이 13세에 대한 글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 궁정 발레는 이 시절에는 이미 100년 이상 지속된 음악 형식이었고, 이런 프랑스의 전통에 익숙하면서도 이탈리아 기질을 태생적으로 가진 륄리는 이 낡은 음악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또 이런 그의 음악은 루이 14세가 음악과 춤으로 표상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대와 잘 조응하는 것이었죠. 적절한 시대, 적절한 지배자,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음악가에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더해졌으니 바로 몰리에르입니다. 이들의 만남은 처음에는 코미디-발레로 새로운 무용과 음악 예술의 지평을 열었고, 훗날에는 륄리에 의해 코미디-발레에서 발전된 프랑스 오페라로 결실을 보게 됩니다.

 

사발의 음반은 루이 14세가 춤을 중단한 1670년에 몰리에르와의 협업으로 작곡한 코미디-발레 음악 모음곡 'Le Bourgeois Gentilhomme' (부르주아 젠틀맨), 1664년에서 1670년까지 왕궁의 행사음악 모음곡 'Le Divertissement Royal' (왕궁의 유흥음악), 프랑스 오페라를 맛볼 수 있는 1674년 오페라 'Alceste' (알체스테) 모음곡을 담고 있습니다. 이중 4번째 트랙에 담긴 "투르크 행사를 위한 행진곡"은 제법 오랫동안 오디오 테스트용 트랙으로 사용했고, 덕분에 같은 취미를 공유하던 동료들도 모두 구입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의 하이브리드 SACD임에도 제법 판매고를 올려줬던 바 있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뛰어난 음질과 빼어난 연주는 나무랄 바가 없습니다.

 

이 시절 이후 루이 14세의 프랑스는 더 화려해지고, 그의 영광과 승리에 대한 그림은 베르사유와 각종 궁전의 벽과 천장을 장식하지만, 그림과 각종 예술로 미화된 것과 상반되게 그 끊임없는 전쟁과 그 승리와 영광은 실속보다는 일종의 자기만족적 프로파간다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절대 왕정이란 말과 루이 14세를 자연스럽게 연결 짓고, 누구나 찬탄할 수밖에 없는 베르사유 궁전을 보면서 절대 왕정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루이 14세의 이미지 정치는 한편으로는 성공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영광의 진정한 정점은, 최소한 그 영광에 대한 욕망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되었던, 그리고 그것이 진실과 부합했던 시대의 정점은, 바로 이 음반이 담고 있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보너스 1 - 영화 왕의 춤(Le Roi Danse) OST]     

 

만약 루이 14세와 륄리의 음악을 한 장의 음반으로 축약한다고 한다면 영화 왕의 춤의 OST 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듯합니다.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끄는 뮤지카 안티콰 쾰른의 연주로 구성된 음반으로 조르디 사발의 음반처럼 시대연주입니다. 다만, 시대연주임에도 날렵함과 가벼움 보다는 영화의 분위기에 맞춰 조금 더 웅장하고 장엄하게 표현하려 한 느낌이 강해 이 부분이 호불호를 가를 수는 있겠습니다. 아마 영화를 본 분들이나 극적 분위기를 선호한다면, 두 음반에 동일하게 들어 있는 "투르크 행사를 위한 행진곡"을 비교해 보면 사발의 접근 보다 괴벨의 연주를 선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음반은 사발의 음반과 달리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시대적으로도 긴 기간에 걸친 륄리의 음악을 담고 있어 특정 시대에 치중한 사발의 음반 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음반은 하이브리드 SACD와 일반 CD 두 종으로 나왔는데, 재미있는 점은 하이브리드 SACD는 두장에, 일반 CD는 한 장에 모든 곡을 담았다는 것입니다. 하이브리드 SACD임에도 제가 CD 레이어로는 이 음반을 감상한 기억은 없지만, SACD기준으로 연주는 물론 음질 또한 나무랄 바 없기에 CD 음질도 훌륭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보너스 2 - 베르사유 음악의 200년 세트]     

 

당연하지만 기존에 루이 13세의 시대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다루었던 베르사유 음악의 200년 세트 음반에도 루이 14세 시대의 음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오래 재위에 있었던 루이 14세인 만큼 총 6장의 음반을 그의 시대 음악이 차지하고 있는데, 음반의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프랑스 오페라의 아버지 륄리

2. 륄리와 왕립음악원의 후계자들

3. 왕을 위한 교향곡과 연주곡

4. 바로크 음악에서의 종교적 표현의 승리

5. 루이 14세 시기의 궁정 악단

6. 교회를 위한 미사와 모테트

 

 

여전히 륄리가 중요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1 / 2, 5 일부) 샤르팡티에, 쿠프랭, 아들 륄리, 뒤몽, 데마레 등 륄리 외의 다양한 작곡가들의 다양한 장르의 곡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곡이 루이 14세를 위해 작곡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넓은 범위에서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 음악을 논한다고 할 때, 이 음반들은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주단체는 크리스티 지휘의 레자르 플로레상, 크리스토프 코인 지휘의 앙상블 바로크 드 리모주, 에르베 니케 지휘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 등으로 상당수가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실황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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