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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역사와 음악 시리즈

[음악]역사와 음악 (6) 알폰소 5세 시대의 음악 - 몬테카시노 노래 모음집

by 만술[ME] 2025. 7. 25.

이번에 소개할 조르디 사발의 음반은 위대한 알폰소 5세 - 몬테카시노 노래 모음집 : 종교음악과 세속음악 (ALFONS V EL MAGNÀNIM - El Cancionero de Montecassino)입니다. 트라스타라마 왕조 출신으로 아라곤과 시칠리아, 나폴리의 왕이었던 알폰소/알리폰소 5세의 역사적인 위치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트라스타라마 왕조의 가계도를 보시는 것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카스티야-레온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통합과정이라 할 수 있는 트라스타마라 계보도

 
이사벨 1세를 다룬 이전 글에서 1350년 지브롤터의 무슬림을 포위하고 있던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11세가 흑사병으로 사망함에 따라 적자인 페드로와 사생아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후임으로 유망 시 되던 트라스타마라의 엔리케 사이에 오랜 내전에서 엔리케가 승리함으로써 카스티야에 트라스타마라 왕조(엔리케 2세)가 성립되게 되었고, 1410년 아라곤의 마르틴 1세가 후계자 없이 죽은 뒤, 선출위원회는 엔리케 2세의 손자이자, 카스티야의 왕인 엔리케 3세와 형제지간인 페르난도를 왕으로 선출(페르난도 1세)하게 되어, 트라스타마라의 혈통이 카스티아와 아라곤의 왕가에 양쪽에 흐르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알폰소 5세는 이 페르난도 1세의 아들로 아라곤의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이후 알폰소 5세가 아라곤 왕국은 동생 후안 2세에게, 나폴리는 서자에게 물려주게 되는데, 아라곤을 물려받은 후안 2세로부터 이사벨 1세와 결혼하게 되는 페르난도 2세가 태어나 아라곤의 왕위를 이어받게 되고, 이 결혼으로 인해 통합의 단초가 마련된 카스티야-아라곤 왕권은 훗날 1차적으로는 두 부부의 딸인 후아나 1세에 카스티야 왕권이 세습되고, 페르난도 2세의 사후에는 결국 후아나 1세와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미남공 필리프와의 결혼으로 태어난 아들인 카를 5세에 의해 두 왕국의 왕권이 통합되어 합스부르크 왕조가 스페인에 성립된 과정은 카를로스/카를 5세에 대한 글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알폰소 5세(아라곤 언어로는 알리폰소 5세)가 1416년 아라곤의 왕위를 승계했을 때 그의 나이는 20세였고, 그의 아버지가 공석인 아라곤의 왕위를 2년간의 이런저런 논란 끝에 차지한 것이 1412년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의 부친과 알폰소 5세는 집권초기 국내의 혼란과 대외적인 영향력의 강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코르시카, 샤르데냐, 시칠리아에 이르는 지중해 제국에 대한 권리회복과 강화에 힘을 쏟았고, "위대한 알폰소 5세"라는 별칭을 획득한 알폰소 5세는 10년간의 전쟁 끝에 1442년 나폴리에 입성하여 나폴리의 왕이 됩니다. 그가 꿈꾸던 지중해 제국의 야망에 따라 아라곤의 알폰소 5세이자 나폴리의 알폰소 1세는 나폴리를 자신의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제국의 기틀로서 문화/예술에 대한 강화정책을 수행합니다.      
 
경제, 문화 강국으로 제국을 건설하려는 알폰소 5세의 꿈을 위해 그는 도서관을 건립하고, 다국적인 궁정문화를 이룩합니다. 알폰소 5세는 나폴리 정복 이전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아 궁정 악단을 다양한 행사와 전쟁에 동원했는데, 나폴리에 터를 잡은 이후에는 이 궁정 악단의 규모는 더 커지고 유럽 각지로부터 음악가들을 받아들여 제국이 표방하는 이상향을 따라 다국적 색채를 강하게 띄게 됩니다. 이에 따라 궁정의 음악도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음악이라는 나폴리 궁정의 특색을 지녀, 알폰소 5세의 궁정 악단은 다문화의 용광로로 자리매김합니다.   
 

표지 그림 - 성 조르디와 공주, 작가 미상 (1459~1460년 /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 스페인, 바르셀로나) 부분 인용

하우메 우게트(Jaume Huguet)의 그림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성 조르디와 공주의 대가라는 별명으로만 불리는 미상의 작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제단화는, 양면에 그림이 있는 전형적인 3단 패널화로 제작되었으나, 분리되어 판매되었고, 다른 두개의 패널은 2차 대전 중 폭격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무장을 한 채 서 있는 성 조르디/조르디의 모습이 앞면에 그려진 중앙 패널만 남아있습니다.

남아 있는 중앙 패널의 뒷면에는 이 제단화를 의뢰한 것으로 추정되는 카브레라(Cabrera) 가문의 문장이 그려져 있는데, 카브레라 가문은 아라곤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알폰소 5세에게 충성한 대표적인 카탈루냐 귀족 가문입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성 조르디는 아라곤 연합왕국과 카탈루냐의 왕조 수호성인으로, 그림의 장면은 성 조르디가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한 전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알폰소 5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 심취했고, 왕국 내에서도 기사도와 영웅성을 이상화하는 흐름을 장려했던 것을 고려할 때, 이 그림의 도상학적 특징은 알폰소 5세가 자신을 기사도적 군주로 표현하고자 한 정치적 담론과 일치합니다. 또한 아라곤, 시칠리아, 나폴리의 군주로서 그의 궁정에서는 다양한 언어와 음악적 형식을 구현한 예술이 향유되었고 이런 점은 알폰소 5세의 예술적 취향과 정책에도 적용되었던 점을 생각할 때, 다양한 언어로된 다양한 형식의 알폰소 5세 시기의 음악을 모아놓은 몬테카시노 노래 모음집의 표지로 성 조르디와 공주를 사용하는 것은 이 음반에 담긴 내용을 상징함과 더불어 군주 알폰소 5세의 이상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용광로였던 알폰소 5세 시기의 음악을 담은 위대한 알폰소 5세 - 몬테카시노 노래 모음집 :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은 제목에 나온 대로 몬테카시노 노래 모음집의 음악들을 CD 두장에 담은 음반으로, 앞서 이야기한 알폰소 5세의 지중해 통합 제국의 야망과 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노래집의 이름은 현재 보관된 장소인 몬테카시노 수도원의 이름에서 비롯했습니다. 로마와 나폴리의 중간쯤에 위치한 수도원에 보관된 노래집은 100개의 2 절판(folio)으로 된 436쪽의 원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집은 몬테카시노 수도원으로 옮겨지기 전, 가에타의 대천사 성 미카엘 수도원에서 그 수도원의 수도사가 편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차례에 걸쳐 이런저런 추가적인 삽입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노래집은 다양한 잉크와 서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명의 카피스트가 작성한 것으로는 매우 독특한 사례입니다.     
 
이미 황금시대 노래 모음집에 대한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시대의 노래 모음집은 다양한 작곡가의 다양한 용도의 음악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몬테카시오 노래 모음집도 마찬가지로 141개의 수록곡 중 64곡은 종교음악이며, 77곡은 세속음악입니다. 조르디 사발의 음반은 첫 음반에는 종교음악을, 두 번째 음반에는 세속음악을 담아 이 시대 음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앞서 말한 알폰소 5세 시대 궁정 음악의 특징을 반영한 듯 언어적 다양성과 장르적 다양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사발은 이런 다양성에 더해 일부 곡은 기악곡으로 바꾸어 음반에 수록했습니다. 당대 연주 관행을 생각하면 이 또한 전혀 근거 없는 방식이 아니며, 오히려 청자에게 음악적 경험을 더 풍부하게 선사합니다. 이 음반은 여타의 많은 Alia-Vox 레이블의 음반들과는 달리 CD로만 발매되었는데, 그럼에도 충분히 뛰어난 음질을 들려줍니다.
 
이 음반을 통해 우리는 알폰소 5세 시기의 나폴리 카탈루냐-아라곤 궁정의 모습을 간접 체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알폰소 5세가 꿈꾸었지만, 결코 이룩하지는 못했던 르네상스적인 다문화 지중해 제국의 이상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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