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시작한 역사적 인물, 사건들과 음악을 연계한 조르디 사발의 음반들의 소개를 이어가고 있는데, 나온지도, 구입한지도 오래된 음반들이지만, 스페인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잘 알게 된 것이 (이미 들었던 음악이지만) 듣는 관점을 많이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이사벨 1세의 시대와 음악, 그 손자인 카를 5세의 시대와 음악을 알아보았으니, 그 둘의 시대 사이에 걸쳐 있으면서 별도의 이야기로 풀어도 좋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신대륙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와 음악을 이번에도 사발의 음반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풀어볼까 합니다. 더불어 기왕 시작한 거,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시리즈로 번호를 붙여가며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사발은 소중한 음악 유산의 재현을 목적으로 책과 음반을 엮은 시리즈를 1년에 하나 꼴로 발매하고 있는데, 그 첫 음반은 이사벨 1세 이야기에서 잠깐 이야기했던 <돈 키호테>였고, 그 두 번째가 오늘 소개드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잃어버린 낙원> (CHRISTOPHORUS COLUMBUS: Paraísos Perdidos) 입니다. 번역을 <실낙원>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 명칭은 한자에 친숙하지 않은 세대가 많아진 요즘에 와서는 밀턴의 서사시에 붙은 고유명사 같은 느낌이라 <잃어버린 낙원(들)>이라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유럽 입장에서는 신대륙을 발견한 뭔가 장대한 모험과 활기로 가득 찰 콜럼버스의 이야기에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우울한 부제가 붙은 데는 그 시대를 바라보는 사발의 관점이 녹아있습니다. 일부에게는 왕권이 강화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희망에 부푼 시대였고 또 많은 역사가 그렇게 기술하고 있는 콜럼버스의 시대지만, 그 빛과 영광에는 전혀 다른 어둠이 있습니다. 이사벨 1세 이야기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그 시대는 종교적 박해가 상존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신념과 종교를 버리지 않으면 쫓겨나야 했고, 개종을 한 경우라도 늘 감시와 의심의 눈길 속에서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던 유대인이나 무슬림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전의 이베리아를 생각하면 오히려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낙원이 구현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될 수도 있었지만, 그 낙원은 잃어버린 꿈이 되었죠. 한편 지구 반대편에서도 신대륙의 발견과 그 정복과정을 통해서 또 하나의 낙원이 무력에 의해 무너집니다. 그렇기에 사발은 이 시대를 잃어버린 낙원들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 음반을 단순한 원대한 모험이야기가 아니라, 그와 함께 사라진 낙원들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가며, 다양한 민족이나 부족의 음악을 담고 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익히 알고 있는 현대에 와서, 그가 직접 행하지 않은 역사적 동향이라는 커다란 흐름을 차치하고라도,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한 이래 그와 그의 선원들에 의해 그 섬의 원주민들의 운명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고 있는 지금, 단순히 그의 <업적>을 기념하는 음반은 아마도 시대착오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잃어버린 낙원>을 이야기 함에 있어 콜럼버스만큼 좋은 주제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단순한 새로운 기회의 땅의 발견이나 정복의 과정만은 아니었고, 찰스 만의 책 <1493 -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에서 이야기한 대로 생태학적인 차원에서도 경계를 무너뜨린 사건이었고, 그 이후 우리 세계는 사실상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으로 바꾸게 됩니다. (기회가 되면 이 책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또한 콜럼버스의 신비에 싸인 기원 자체가 어쩌면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생생한 기록일지도 모릅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방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항해 중 해적과의 격전으로 세인트 빈센트 곶에서 침몰 후 표류한 뒤 포르투갈에 정착하여 결혼하고, 자신의 서쪽항로 계획이 포르투갈에서 허락되지 않자 스페인으로 가서 결국은 이사벨-페르난도 부부의 허락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이라는 것이 학계에서 가장 지지를 받고 있는 이론이고, 콜럼버스의 글이나 지인의 증언 또한 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만, 과거의 개인사나 역사적 기록이 늘 그렇듯 목적에 따라 왜곡되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은 상존하며, 일부에서는 이 기록들이 뭔가 느슨하고 빠진 부분들이 있음에 주목하고 다른 가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노바의 평범한 선원이 난파하여 포르투갈에 정착한 뒤, 귀족 집안의 딸과 결혼하고, 포르투갈의 왕을 알현해 자신의 계획을 밝히고, 나아가서 스페인으로 건너간 뒤에는 서슬 퍼런 카스티야-아라곤 공동왕 부부를 찾아가 결국은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키고, 그 관철에 더해 <제독>이자 <총독>의 지위까지 확보하는 등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당시는 물론, 현대와 같은 능력주의 시대에 조차도 납득하기 힘든 성과를 거둔 것이 진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카탈루나(아라곤)의 유력가문 출신이라거나 개종한 유대가문 출신으로서 역시 개종한 유대인들의 금전적, 정치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등의 전혀 다른 기원설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풍부한 가설이 (그 목적이 제독이자 총독의 지위에 올라 왕권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아라곤 상류층 출신의 인물에 대한 견제이건, 가톨릭이 아닌 유대 기원의 인물에 대한 기록말살이건) 특정한 목적의 충족을 위해 가톨릭 왕국의 기틀아래 하나로 명문화되어 공식화되는 것이 어쩌면 이베리아의 잃어버린 낙원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음반의 구성은 이미 소개했던 사발의 음반들(이사벨 1세 / 카를 5세) 처럼 콜럼버스의 기원과 생애를 따라가며 적절한 음악을 배치하고 있습니다만, 이번 음반은 더 나아가 음악의 나열을 넘어 일종의 오디오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음악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콜럼버스나 동시대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고 음악을 배경으로 낭독하는 트랙들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콜럼버스가 자신의 책자에 인용해 놓은 세네카의 <메데이아>의 구절 "Tethysque novos detegat orbes"(테티스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것이다)을 통해 신대륙의 발견에 대한 고대의 예언에서 시작해 이슬람 왕국과 그 몰락, 콜럼버스의 탄생, 과학적 발견들, 알폰소 5세의 나폴리왕 등극,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그라나다 정복으로 이어지며 유대인들과 무슬림의 추방 등 신대륙 발견 이전의 배경을 음악과 내레이션으로 들려줍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에는 원주민의 음악, 그리고 이사벨 1세의 죽음, 콜럼버스의 죽음까지 그 음악적 드라마가 이어지는데, 음반 요소요소에 각각의 사건과 연관되는 문건에 대한 낭독, 그 관련된 민족의 음악들과 사건과 연관된 음악이 삽입됩니다.

음악과 내레이션의 진행은 아래와 같습니다.
I. ANCIENT PROPHECIES AND EVOCATIONS
Medea. (Tragedy, Act II) - Seneca (1 st. Century a.C.)
1408 Reign of the Nasrid emir Yusuf III
II. CONQUESTS AND THE BIRTH OF COLUMBUS
1410 (September) Prince Ferdinand's army conquers Antequera
1443 (February) Alfonso V the Magnanimous enters Naples
1451 (october) Christopher Columbus is born
III. NEW ROUTES AND GRAND PROJECTS
1474 (25 June) Letter from the Florentine physician Toscanelli to Prince Juan
1480 Shipwreck off Cape St Vincent
1485 Columbus is married during his time in Portugal
1486 Columbus presents his project to the Catholic Monarchs Ferdinand and Isabella
IV. THE WANING OF AL-ANDALUS
1492 (2 January) The Conquest of Granada
V. THE SEPHARDIC DIASPORA
1492 (31 March) Expulsion of the unconverted Jews
VI. OF DISCOVERIES AND WRONGS
1492 (3 October) First Voyage of Columbus
1492 (12 October) The New World is sighted from the caravel the Pinta
1502 Forced conversion of all the Moors in the kingdoms of Castile
1502 Moctezuma II is proclaimed emperor of the Aztecs
VII. THE LAST WILL AND TESTAMENT OF ISABELLA AND THE DEATH OF COLUMBUS
1504 The last will and testament of Queen Isabella I of Castile
1506 (20 May) Christopher Columbus dies in Valladolid
Epitaph
Fragment of a letter from the Admiral
각 제목만 보아도 아실 수 있는 것처럼 이 음반과 책자는 단순히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다룬다기보다는 그의 시대가 가능했던 역사적 배경, 그리고 그의 업적으로 인한 영향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고, 그 속에서 탄생한 문화와 사라진 문화를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사발은 이러한 서사를 음악의 극적인 배치로 더욱 생생하게 구현합니다. 예를 들어, 4부 <알-안달루스의 쇠퇴>에서 그라나다 정복을 축하하는 이탈리아풍의 화려한 팡파르가 울려 퍼진 직후, 5부 <세파르딕 디아스포라>에서는 고향을 잃고 떠나는 유대인의 비통한 심정을 담은 세파르딕 비가(悲歌) <Nani, Nani>가 이어지는데, 이 극명한 대비를 통해 사발은 한쪽의 영광이 어떻게 다른 한쪽의 비극과 맞닿아 있는지를 청각적으로 보여줍니다. 6부 <발견과 과오>에서는 쿠바 원주민 시보네이족의 노래를 복원한 트랙을 삽입함으로써, 유럽의 정제된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질감의 소리를 통해 유럽인들이 마주하고 파괴했던 <또 다른 낙원>의 존재를 음악으로 각인시킵니다. 또한 마지막 7부에서는 이사벨 여왕의 유언 중 "원주민들을 부당하게 대하지 말고 선하게 대하라"는 구절이 낭독되는데, 우리는 이미 역사에서 그 유언이 지켜지지 않은 채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기에, 이 낭독은 가슴속에 커다란 역설적인 울림을 자아냅니다. 사발은 이처럼 낭독을 통해 역사적 인물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줌으로써, 기록된 이상과 잔혹한 현실 사이의 거대한 괴리를 청각적으로 체험하게 해 줍니다.
두장의 음반이 콜럼버스와 그의 시대를 모두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조르디 사발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잃어버린 낙원>은 단순히 한 시대의 음악을 재현하는 음반을 넘어서 공식 역사에서 소외된 목소리들 — 추방당한 유대인, 정복당한 무슬림, 학살된 원주민 — 을 복원하는 <음악적 고고학자>이자, 승자의 기록에 가려진 이면을 드러내는 <대항 서사의 전달자> 역할을 멋지게 수행합니다. 따라서 이 두 장의 음반에 몸을 맡기는 것은 피상적으로 알던 시대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을 넘어, 콜럼버스로 대변되는 영광의 시대가 사실은 수많은 <낙원>을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였음을 체감하는 깊은 울림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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