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 예술 - 공연/역사와 음악 시리즈

[음악]역사와 음악 (5) 스페인 황금시대와 그 음악

by 만술[ME] 2025. 7. 11.

스페인의 황금시대

 

'시글로 데 오로(Siglo de Oro)', 즉 스페인의 황금시대는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에 이르는 약 200년간의 시기로, 스페인이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유럽의 주요 강국으로 부상했던 시기인데, 지금 시점 정도에서 다루기에 좋은 주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시기는 다른 글에서 다룬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의 결혼으로 잉태된 카스티야-아라곤 왕국의 통합으로 시작되어 또 다른 글에서 다룬 카를/카를로스 5세의 치세를 지나 합스부르크 왕조의 통치하에 펠리페 2세를 거쳐 필리페 4세까지 이어지는 시기를 말하는데, 이들 치세하에 스페인은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황금시대>를 구가하였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문학과 예술이 크게 꽃 피웠습니다. 물론 <황금시대>라는 호화로운 이름 뒤에는 수많은 전쟁으로 인한 국력의 낭비,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주체할 수 없는 은에 기반한 경제로 인한 풍요와 인플레이션의 공존으로 발생한 경제적 난관, 종교개혁 세력과의 갈등과 타 종교와 이민족에 대한 박해, 신대륙에 대한 착취와 노예제도 등 무수한 어둠이 있었는데, 어쩌면 진정한 문화와 예술의 황금기는 단순히 국가의 부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 시대의 어둠이 가져온 각성과 그 어둠을 이기기 위해 국민적 자부심을 고취하고 사회적 결속을 다지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화와 예술은 국가의 전략적 자산이기도 한 것이지요.

 

서양에서도 <검은 전설>(Leyenda negra - 이는 주로 스페인 제국주의의 잔혹성, 특히 신대륙에서의 행위를 비난하며 형성된 스페인 동부의 유럽 입장에서의 반(反) 스페인 적 프로파간다를 의미합니다)로 회자되는 스페인이고 우리에게는 최소한 역사나 문화예술로는 더욱 낯선 나라지만, 이 시대 활약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열거하다 보면 미겔 데 세르반테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엘 그레코 등의 낯익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스페인의 황금시대는 문화, 예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유럽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무시되는 스페인이 전면에 등장해 상당기간 활약하기에 그나마 우리에게 친숙한 시기가 이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르디 사발의 음반들

 

조르디 사발의 음반에서 황금시대의 음악이 포함된 음반을 찾는 것은 너무 광대한 일일 것입니다. 사발이 아내 몽세라 피구에라스와 처음에 La Capella Reial de Cataluya를 창설한 목적 자체가 스페인과 라틴 가수들을 이용해서 역사적 접근법을 통해 스페인의 황금시대의 음악을 연주하겠다는 목적이었으니까요. 제가 이미 소개한 이사벨 1세와 관련된 음악이나 카를 5세와 관련된 음악을 담은 음반도 대표적인 황금시대의 음악을 담은 음반입니다. 따라서 사발이 녹음한 많은 음반에서 황금시대의 음악이 들어 있는 음반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고, 이번 글에서는 음반 기획과 음반의 제목부터 황금시대의 음악만의 모음집을 표방하는 음반들만 골라보았습니다. 아울러 황금시대의 음악을 세속/종교, 성악/기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음반을 골라보았습니다. 

 

황금시대 칸시오네로 모음집(CANCIONEROS DEL SIGLO DE ORO: Colombina · Palacio · Medinaceli)

 

첫 번째는 황금시대 칸시오네로 모음집(CANCIONEROS DEL SIGLO DE ORO: Colombina · Palacio · Medinaceli)입니다. 과거 사발이 Astree 시절에 녹음했던 폐반된 음반 세 종을 하나의 패키지로 모아 자신이 설립한 Alia Vox레이블에서 SACD로 재발매 한 음반인데, 칸시오네로(노래 모음집)이라는 제목대로 각각 콜롬비나 노래 모음집, 궁정 노래 모음집, 메디나셀리 노래 모음집의 음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지그림 -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 파르나소스 (1497 /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 부분 인용

음반의 표지의 그림은 만토바의 궁에 걸기위해 이사벨라 데스테의 주문으로 만테냐가 그린 그림의 일부분인데, 전체 그림은 상단에 비너스와 마르스로 표상된 이사벨라와 프란체스코 곤자가가 위치하고 있으며, 그림은 이 둘의 결혼을 축하하는 잔치의 장면을 그린 것으로 음반에 부분 인용된 장면은 아폴로의 리라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9명의 뮤즈들을 묘사한 장면(음반표지에는 7명만 등장)입니다. <황금시대 칸시오네로 모음집> 표지에 이 그림이 표지로 사용된 의미는 그림의 시기가 스페인 황금시대의 시작시점과 일치한다는 점, 그리고 뮤즈의 춤이 상징하는 바가 아홉 뮤즈가 표상하는 역사, 음악, 춤, 문학 등의 조화로서 어찌보면 향후에 이루어질 스페인의 황금시대의 이상향과 일치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콜롬비나 노래 모음집(Colombina Songbook)은 세트에 포함된 세 노래 모음집 중에 가장 오래된 노래들을 담고 있고, 그 기원도 가장 오래된 1460년대에서 1480년대로 추정됩니다. 이 선집의 이름은 선집이 보관된 세비야 대성당의 콜롬비나 도서관의 이름을 따왔는데, 이 도서관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둘째 아들 페르디난드(페르난도)가 모은 많은 장서들을 보관하고 있고, 콜롬비나 선집은 그가 1534년 구입했다고 전해집니다. 1534년 구입한 모음집에 수록된 음악이 유사한 시기에 편집되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또 하나의 모음집인 (이 세트에 두 번째 음반으로 수록된) 궁정노래 모음집 보다 더 앞선 시기의 음악이라는 추청은 몇 가지 근거에서 비롯하는데, 첫째로 궁정노래 모음집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특정시대를 풍미했던 후안 델 엔시나(Juan del Enzina)가 콜롬비나 모음집에서는 작곡가로서 건 작사가로서 건 포함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모음집이 엔시나가 유명세를 누리기 전에 모아진 노래집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두 모음집에 모두 수록된 노래의 성부 구성에서 그 노래가 궁정노래 모음집은 4 성부로 되어 있지만 콜롬비나 모음집은 3 성부로 되어 있는 점 등에서 콜롬비나 노래 모음집이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콜롬비나 노래 모음집은 원래는 107개의 2 절판(folio)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17개가 분실되어 현재는 95 작품이 담겨 있습니다. 주로 비얀시코/빌란시코(villancico)로 구성된 수록곡은 궁정연가, 전원곡 풍의 연가, 성모에 대한 찬가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95곡 중에 53곡은 작곡가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나머지 곡은 모음집에 기록된 것이나 같은 곡을 다른 모음집에서 작곡가를 언급한 것으로 추청 할 때 트리아나, 코르나고, 엔리크 등 여러 작곡가들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모음집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460년대에서 1480년대까지의 20여 년의 기간은 위대한 스페인 제국을 향한 여정의 산통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이사벨 1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언급했던 엔리케 4세 사후의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위 계승전쟁과 이사벨 1세의 카스티야-레온 왕위 계승(1474), 그녀의 남편 페르난도 2세의 아라곤과 카탈로냐 왕위 계승(1479)이 이 시기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지난 이사벨 1세 여왕과 그 음악에 대한 글이 그녀의 삶에 대한 OST로서의 음악을 소개했다면, 콜롬비나 노래 모음집 음반은 이 격동의 시대에 궁정 등의 장소에서 실제로 불려진 노래를 소개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음반의 구성은 성악 중심으로 기악곡을 적절히 안배해서 듣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잘 배려했습니다.

 

궁정노래 모음집(Palacio Songbook)이라는 명칭은 마드리드 궁정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기에 붙은 이름인데, 번호가 붙지 않은 2 절판(folio) 10개와 1에서 304까지 번호가 붙은 2 절판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방대한 노래집입니다. 물론 번호 붙은 모든 2 절판들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라 일부가 유실되었고, 구성을 볼 때 일부는 질이 다른 종이로 구성되어 있는 등 콜롬비나 노래집과는 달리 한 번에 편찬되어 모음집으로 구성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궁정 노래집은 앞서 이야기한 콜롬비나 노래집을 포함한 이 시대의 이런저런 노래 모음집 대비 막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색인으로 추정하자면 무려 548개의 작품이 이 모음집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458 작품으로 콜롬비나 모음집 등의 여타 모음집에 포함된 곡들을 다 모은 것보다 두 배가량 더 많은 곡을 담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궁정노래 모음집은 중심이 되는 첫 번째 판본에 시기에 따라 열 번에 걸쳐 원고가 추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 판본의 시기는 이사벨 1세의 사후 1년 경인 1505년 정도로 생각되는데, 부군인 페르난도 왕이 궁정 악단을 재편성하면서 재편성된 악단의 레퍼토리를 위해 편집을 지시했을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이후 1505년부터 페르난도 2세의 사후인 1520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추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콜롬비나 모음집이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의 탄생기의 노래모음집이라면, 궁정노래 모음집은 이사벨-페르난도 두 부부왕의 본격적인 집권기 음악을 모아 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이 노래집 역시 주요 수록곡은 궁정사랑을 다룬 빌란시코이며, 작사 및 작곡가로는 당대 최고의 작사/작곡가인 후안 델 엔시나의 곡이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음반도 콜롬비나 노래 모음집 음반처럼 성악 중심에 기악을 편성하면서 세속과 종교음악을 넘나들며 당대 노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칸시오네로 모음집 마지막 음반은 메디나셀리 노래 모음집입니다. 메디나셀리 노래 모음집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메디나셀리 공작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에서 비롯하는데, 이 필사본에 남아 있는 문구를 분석한 결과 카스티야의 수도원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노래 모음집에 수록된 곡들은 궁전노래 모음집 보다 후대인 펠리페 2세 시기의 곡들이며, 첫 번째 악보에는 1569년이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16세기 중반 안달루시아, 특히 세비야 귀족들의 가호아래 편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메디나셀리 노래 모음집에는 177곡이 담겨있는데, 그중 100곡이 세속적인 곡으로 구성되어 작곡가로는 크리스토발 데 모랄레스 (Cristóbal de Morales), 히네스 데 모라타 (Ginés de Morata), 후안 나바로 (Juan Navarro), 프란시스코 게레로 (Francisco Guerrero) 등의 곡들이 포함되어 있고, 장르로는 마드리갈을 주축으로 빌란시코, 로망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황금시대 노래의 종류들

 

황금시대의 노래를 다루는 김에 다양한 장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곁들일까 합니다. 다만 장르의 명칭은 중세 음유시인의 노래를 뜻하던 발라드라는 말이 한국 가요의 서정적인 노래까지 전이되듯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기에 스페인 황금시대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빌란시코 (villancico):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스페인에서 확립된 시가인데, 주로 궁정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으로 보자면 완벽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구애자에게는 무관심한 귀부인/숙녀와 그로 인해 가눌 길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전원풍의 주제를 다루는 경우에도 배경과 등장인물만 전원에 양치기와 소녀로 바뀌지 그 캐릭터와 사건의 속성은 궁정사랑과 동일합니다. 형식으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도입부가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먼저 후렴구(estribillo)로 시작하고, 그다음에는 절(copla)이 번갈아 나오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절(copla) 부분은 다시 두 부분, 무단사(mudanza)와 부엘타(vuelta)로 나뉘고 이 중 부엘타는 무단사의 마지막 행과 운율이 일치하지만, 그 멜로디는 후렴구(estribillo)의 선율을 따르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렇게 시적 구조와 음악적 형식이 겹치는 특징이 빌란시코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참고로 villancico를 카스티야/스페인 발음으로 읽어 우리말로 적는다면 비얀시코가 가장 적절하겠지만, 이미 국내에는 빌란시코로 표기하는 것이 정착된듯하여 이 글에서는 이를 따릅니다.

 

세라닐라 (serranilla): 프랑스의 파스투렐(pastourelle)을 기원으로 하는 노래답게 전원 풍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파스투렐과 달리 목동소녀가 아닌 산골처녀가 그 사랑의 대상입니다. 또한 궁정사랑 노래인 발란시코와는 달리 좀 더 직설적인 표현, 간결한 서사, 언어유희를 특징으로 합니다. 표기와 관련해서는 세라니야가 더 적합한 표기겠지만, 비얀시코를 빌란시코라 표기한 마당에 국내에 정착되지 않았다고 표기를 달리할 필요는 없을 듯하여 세라닐라로 표기합니다.

 

로망스 (romance): 로망스라는 용어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했는데, 산문이나 운문에 모두 사용되던 이 용어는 운문에 있어서는 악기 반주에 맞춰 불리던 서정적인 서사시로, 종종 합창 무용이나 모임에서 연주되었습니다. 16세기 후반까지 스페인 세속 음악의 주요 장르로 남아 있었으며 나중에는 빌란시코와의 구분도 모호해집니다.


엔살라다 (Ensalada): 어원으로 짐작할 수 있듯, 하나의 음악에 다양한 요소를 샐러드처럼 버무려 놓은 음악입니다. 마드리갈, 민요, 빌란시코, 로망스, 무곡, 전례음악 등 다양한 양식이 등장하며, 사용되는 언어로는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가스콘어, 비스카야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등이 혼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엔살라다는 르네상스 시대, 특히 16세기에 이베리아 반도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궁정의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작되어 왕궁의 축제 등에서 높은 명성을 얻었는데, 일상생활을 재치 있고 재미있게 반영해서 풍자, 대중음악의 단편, 거리 노래, 극적인 대화, 성경 및 고전 작가의 인용구 등으로 가득했습니다.


마드리갈 (Madrigals): 이탈리아에서 비롯한 마드리갈은 사랑이나 자연, 철학적 주제를 다루는 다성음악으로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는데, 스페인으로 넘어오면서 스페인어 시에 노래를 붙인 독자적 양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황금시대의 막간음악 - 로페 데 베가와 그의 시대(ENTREMESES DEL SIGLO DE ORO - Lope de Vega y su tiempo)

 

황금시대와 관련해서 칸시오네로 모음집에 이어 들어 볼만한 조르디 사발의 음반으로는 황금시대의 막간음악 - 로페 데 베가와 그의 시대(ENTREMESES DEL SIGLO DE ORO - Lope de Vega y su tiempo)를 추천할 수 있습니다. 이 음반은 2005년 사발과 에스페리옹 21이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을 때, 공연 후에 사인을 받았던 음반이라 다른 글에서도 (표지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의 서문에서 (실명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비꼰 대상이기도 한 그의 경쟁자 로페 데 베가(1562년 ~ 1635년)는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세르반테스 외에 이 시대 문학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에게는 낯설 수 있는 이름이지만, 동시대나 후대에까지 많은 영향을 준 작가입니다. (세르반테스는 서문에서 로페 데 베가가 El Peregrino에서 자신의 작품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155명의 작가를 인용 목록으로 알파벳 순으로 나열한 것을 조롱한 데 이어, 제18장에서는 La Arcadia 3권의 구절을 패러디 한 뒤에 "아이구 맙소사! 얼마나 많은 지방, 얼마나 많은 나라 사람을 언급했는가. 놀라운 정확성으로 하나하나 묘사하고, 각 고장의 특성을 일일이 짚어가며, 그동안 읽은 거짓말투성이 책들의 세계에 정신없이 홀랑 빠진 채로..."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표지그림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 성 히에로니무스의 유혹 (1639 / 산타 마리아 데 과달루페 왕립수도원, 스페인 과달루페) 부분 인용

음반의 표지의 그림은 수르바란의 성 히에로니무스(또는 제롬)의 유혹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성 히에로니무스가 아닌 그를 유혹하는 인물들을 발췌하여 사용했습니다. 수르바란의 그림은 성 히에로니무스가 사막에서 고행하던 것에 대해 쓴 편지에서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서… 내 머릿속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화려한 축제들이 떠올라… 무희들이 춤추는 무도회를 상상하기도 했으며, 밤낮으로 사악한 욕망이 나를 괴롭혔다… 결국, 그 거대한 유혹 앞에 무력함을 느끼고는 무릎을 꿇고 예수의 십자가상 앞에서 눈물로 호소했다"라고 기록한 내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에는 반라의 성인이 오른쪽의 유혹을 등지면서 멀리하려 하는 모습이 있고, 오른편에는 그 유혹의 구체적인 실체로 음반에서 인용한 부분이 그려져 있는데, 소녀들이 기타, 하프, 류트를 연주하며 화려한 궁정생활에 대한 유혹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황금시대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시인인 로페 데 베가와 그 시대에 대한 음악집에 제법 어울리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궁정 발레가 오히려 우리가 아는 지금의 발레보다 더 종합예술에 가까웠던 것처럼 황금시대 스페인의 연극도 복합적인 장르여서 음악과 함께하는 공연예술이었습니다. 궁정(patio)에서 펼쳐진 공연은 쿠아트로 데 엠페사르(cuatro de empezar)라는 콘티뉴오를 곁들인 4 성부 중창으로 시작했습니다. 극 중에서는 지금의 음향/음악 효과처럼 북소리, 팡파르 등으로 특정장면이나 천둥소리 등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극이 끝나면 요즘의 엔드 크레디트 음악처럼 핀 데 피에스타(fin de fiesta)가 울려 퍼졌고, 막간에는 엔트레메스(entremés)라 불리는 음악을 편성했는데, 이 음반의 표제 황금시대의 막간음악 - 로페 데 베가와 그의 시대(ENTREMESES DEL SIGLO DE ORO - Lope de Vega y su tiempo)에서 말하는 막간음악(entremés )이 바로 그것입니다. 엔트레메스(entremés)는 우리에게 친숙한 에피타이저에 상응하는 단어로 다음 막에서 펼쳐질 사건에 대한 예고편 정도의 성격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이 음반은 원래 78년과 87년에 발매된 음반을 한 장의 CD로 묶어 발매한 것인데, 로페 데 베가의 시에 음악을 붙인 곡 이외에도 당시 유통되던 노래집에서 차용한 동시대 작곡가들의 곡들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적절한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극본 자체에 어떤 곡이라 명기된 경우라도 요즘 우리가 접하는 우르텍스트(Urtext)와는 달리, 실상에서는 극장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임시방편이 통용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서 배우나 악단의 사정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준용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로페 데 베가의 극본자체에도 어떤 특정한 곡을 명기하기보다는 "이 부분에서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함" 같은 류의 지시가 상당수여서 공연 시에는 이 음반처럼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되고 불려졌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여기서 음악이 연주됨" 같은 지시도 있기에 이 음반은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노래가 없는 기악곡도 포함해서 다채로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녹음임에도 예전 Astree 시절 음반을 SACD로 복각한 여타의 Alia-Vox 음반들처럼 방금 전 녹음된 음반처럼 뛰어난 음질을 자랑합니다.     

 

왕실 악사들 - 황금시대의 기악음악(MINISTRILES REALES - Musica Instrumental del Siglo de Oro)

 

두장으로 구성된 왕실 악사들 - 황금시대의 기악음악(MINISTRILES REALES - Musica Instrumental del Siglo de Oro)은 엎서 소개한 음반들에 포함되었던 기악곡 트랙들을 포함해서 기발매된 13종의 황금시대 음악을 다룬 음반들에 삽입된 기악곡들을 모아놓은 음반입니다. 표제에 나오는 <ministriles>는 라틴어 <ministerium>에서 비롯한 말로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서 왕궁에서 일하는 기악연주자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음반이 다루는 1450-1690년은 기악음악에 있어서도 황금시대가 시작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음악은 주로 성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이 시대에는 기악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부흥하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성악의 반주역할을 하다, 점차 그 성악의 노래 부분까지 악기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기악만으로 구성된 연주를 하거나 별도 기악만을 위한 곡들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왕실에 근무한다는 것은 다양한 왕실 행사나 전쟁에 동원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행사의 장엄함을 위해서는 주로 트럼펫, 드럼 같은 악기가 주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왕들이 악사들을 행사나 전투가 없다고 놀릴리는 없었으니 이들 왕실 악사들이 왕의 식사나 연회에 동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이런 장소나 상황에서 연주하기 위해서는 트럼펫이나 드럼 외에도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도 필요했는데, 이런 상대적으로 작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는 플루트나 비후엘라 데 아르코 같은 찰현악기나 비후엘라 데 마노, 하프, 류트 같은 발현악기, 하프시코드 같은 악기가 있었습니다. 이중 비후엘라 데 아르코는 이탈리아에 도입된 뒤 비올라 다 감바라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콜롬비나, 궁정, 메디나첼리 노래 모음집들의 음반의 구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페인 황금시대의 기악은 각종 노래의 반주로서, 때로는 그 노래들의 선율을 노래 없이 연주하거나 독자적인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왕들의 권위에 대한 욕망만큼 궁정 악단의 규모도 점차 커지면서 바로크 시대로 접어들어서는 본격적인 기악 연주의 시대가 되어 우리가 아는 바흐나 핸델의 음악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표지그림 - 가우덴치오 페라리(Gaudenzio Ferrari), 천사들의 연주회 (1536 / 산투아리오 델라 마돈나 데이 미라콜리, 이탈리아 사론노) 부분 인용

음반의 표지의 그림은 가우덴치오 페라리가 사론노에 있는 기적의 성모 성당 돔에 프레스코로 그린 천사들의 연주회라는 천정화의 극히 일부를 표지 그림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원작은 중심에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모습의 하느님이 있고 작은 원으로 아기 천사들이, 그리고 그 외부에 큰 원으로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이 원형으로 포진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인용된 그림은 하느님의 머리가 12시 방향을 향한다고 했을 때 8시 정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악기를 연주하는 다양한 천사들의 모습은 황금 시대 왕실의 기악 음악을 담은 음반의 표지에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이 음반은 컴파일레이션 음반의 특성상 저처럼 기존에 사발이 녹음한 이런저런 음반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이 겹치는 곡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만, 이 곡들이 들어 있던 원래의 음반들이 성악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기악곡들을 일종의 간주곡으로 다루면서 음악을 듣는 맛을 더해주는 일종의 양념 같은 용도로 활용했다면, 이 음반은 성악을 제외하고 기악만을 모아 놓음으로써 황금시대를 기악음악이 스스로의 위상을 찾아가는 시기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같은 음악을 들어도 느껴지는 효과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녹음 시기가 1979년에서 2004년까지의 사반세기에 이르는 기간으로 차이가 나지만 연주의 질이나 녹음의 질 모두 최신 녹음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하며, 일관된 균형과 품질을 유지하기에 컴파일레이션 음반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습니다. 

 

 

황금시대의 거장들 - 모랄레스, 게레로, 빅토리아

(MAESTROS DEL SIGLO DE ORO - Cristóbal de Morales, Francisco Guerrero, Tomás Luis de Victoria)

 

황금시대 거장들의 종교음악을 세장의 CD에 모아 담은 황금시대의 거장들 - 모랄레스, 게레로, 빅토리아 종교음악 모음집은 특별히 이 시대의 종교음악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그렇다고 황금시대를 다룬 다른 음반들이 엄청나게 대중적인 매력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쉽게 추천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저부터 바흐의 교회 칸타타나 고전주의 이후 일부 작곡가들의 곡을 제외하고는 종교음악을 그리 선호하지 않기에 이 음반을 자주 찾아 듣지도 않으며, 이 시대 종교음악의 특성상 듣기에 따라서는 세 장의 그게 그것 같은 음악을 연달아 듣기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가톨릭 군주국을 표방하던 이 시대의 스페인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예술 형식인 종교음악을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듣지 않는 것은 예술감상에 있어 커다란 축을 빼놓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표지그림 - 엘 그레코(El Greco), 수태고지 (1570 /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 부분 인용

음반의 표지의 그림은 본명 보다 스페인 르네상스의 화가 엘 그레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리스 출신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의 수태고지 중 중심부를 인용한 것으로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앞에 나타나 그녀가 예수를 잉태하였음을 알려주는 <수태고지>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수태고지 장면은 많은 예술작품에서 다양하게 묘사된 단골 소재이고, 주요한 종교 행사로 그 행사를 위한 음악(대표적으로 바흐의 종교 칸타타 BWV 1)이 작곡되고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전체가 종교음악이 수록된 음반이지만, 일부는 죽은 자를 위한 곡들도 있으니, 수록된 곡 중에서는 빅토리아의 <복되신 동정녀의 찬가>와 같은 저녁기도 음악에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엘 그레코 자체가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이니 이 보다 적절한 표지 그림은 없을 듯합니다. 

 

음악에 대한 선호와는 별개로 황금시대의 거장들이라는 음반 제목은 매우 적절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를 꼽으라 한다면 누구나 이 세명의 거장은 포함할 것이기 때문이죠. 세 음반 중에 하나를 골라 들어야 한다면 저는 빅토리아의 <복되신 동정녀의 찬가>가 들어 있는 세 번째 음반을 택하겠습니다. 이 음반도 기존에 Astree 시절에 낱장으로 발매되었던 음반을 묶어 세 장으로 발매한 것으로 이런 식으로 재발매된 사발의 다른 음반들처럼 재발매될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연주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