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 다룰 조르디 사발의 음반 발칸, 꿀과 피(BAL·KAN - Miel et Sang)의 내지 해설은 발칸이라는 지역의 명칭이 오스만 튀르키예어 Bal=꿀과 Kan=피의 조합이며, 이는 오스만 제국이 발칸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꿀은 풍요를 상징하며, 피는 그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겪었던 지역민들의 저항을 상징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꿀과 피라는 상징은 오스만 제국 시절은 물론, 이후에 펼쳐져 지금까지 이어지는 발칸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는 많은 민족들의 역사와 맞물려 그럴듯한 음반 제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음반이 견지하는 발칸이라는 명칭에 대한 이런 해석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후대에 만들어진 민간전승에 가깝습니다. 아직 확고하게 자리 잡은 설명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발칸이라는 명칭은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에 걸친 산맥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명칭이 남산이라는 고유명사가 되듯 발칸이라는 단어 자체는 튀르키예어로 단순히 산맥이나 산악지대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가 되고, 19세기부터 서유럽의 지리학자들 및 방문자들에 의해 그 산맥과 너머의 지역을 칭하는 말로 확대되어 사용되었습니다. 다만, 현재 발칸 반도의 많은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역사에서 비롯한 발칸이라는 이름을 선호하지 않아 동남유럽(Southeastern Europe)이라는 중립적인 명칭을 선호합니다.
발칸이라는 명칭에 대한 음반의 해석이 학술적인 정확함 보다는 기획취지에 대한 수사적 표현임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Balkan이라는 명칭이 Bal + Kan 보다는 Balk + an의 조합임이 더 사실에 부합하지만 조금 완곡하게 바라보면 발칸이라는 명칭이 꿀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튀르키예어 bal이 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며, bal에 ~과 유사하다라는 뜻의 어미 ~k가 붙은 balk는 bal 같은, bal스러운의 뜻이 되고, bal이 단지 꿀만이 아니라 원래는 찐득한 것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기에 balk는 진흙이나 그로 이루어졌을 담(wall), 마을(town)의 의미로도 확장되어 사용되어, 이로부터 발칸이라는 명칭이 의미했던 바는 습지가 있는 숲/산맥 정도의 의미에서 비롯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발칸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위와 같다고 해도 앞서 말한 대로 발칸이 지금의 지역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 것은 19세기부터이고, 오스만 제국이 정복한 땅은 루멜리아(Rumelia)라고 불렸고 (바잔티움 제국은 로마였으니) 옛 로마인의 땅이란 뜻이었습니다. 주민들도 스스로를 로마인이나 기독교인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이 루멜리아에 사는 사람들은 인종으로 구분되기보다는 종교에 따라 기독교인 또는 정교인 정도로 구분되었습니다. 이것은 서방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그리스인, 슬라브인 등으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발칸이라는 지명이 일상어로 자리매김한 것은 오스만 제국의 유럽지배를 끝낸 1912년의 제1차 발칸 전쟁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오스만 제국의 쇠퇴로 소위 동방문제가 발생하고 있었기에 발칸이라는 명칭은 이미 단순한 지리적 의미를 넘어 폭력, 야만, 원시성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표지그림 - 기욤 카우르생(Guillaume Caoursin), Gestorum Rhodiae obsidionis commentarii (로도스 공방전 행적에 대한 주해서) 삽화 중 로도스 공성전을 지휘하는 메시흐 파샤 / 삽화 : 부르봉 추기경의 거장 (Master of Cardinal de Bourbon) / (1483년 / 프랑스 국립도서관 / 프랑스, 파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한 오스만 제국에게 있어 동지중해의 중요 해상 거점인 로도스섬에 주둔하고 활동하고 있던 구호기사단은 오스만 제국의 확장에 있어 불편한 존재였기에 1480년 오스만 제국은 로도스섬을 공략하게 됩니다. 이 공성전에 참여했던 기욤 카우르생은 이때의 경험을 Obsidionis Rhodiae urbis descriptio (로도스 도시 공방전 기록)이라는 제목으로로 남기는데, 라틴어로 된 이 책은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성 요한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인 피에르 도뷔송(Pierre d'Aubusson)은 이 책의 초호화 채색 필사본을 주문했는데, 여기에는 흔히 부르봉 추기경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익명 채색화가의 51장의 아름다운 미니어처와 함께 관련된 다른 기록이 부록으로 포함되었으며, Gestorum Rhodiae obsidionis commentarii (로도스 공방전 행적에 대한 주해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음반 표지로 사용된 장면은 당시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이끌었던 메시흐 파샤가 공성전을 지휘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음반의 표지 설명에는 기욤 카우르생이 삽화를 그런 것처럼 표현되어 있고, 부르봉 추기경의 거장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만약 Gestorum Rhodiae obsidionis commentarii (로도스 공방전 행적에 대한 주해서)를 보고 싶으시면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해당 표지그림은 50v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발칸지역에는 여전히 무엇이라 부르건 유럽인/기독교인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오스만의 지배는 서방 유럽인의 관점에서 그 지역의 역사를, 지역민의 입장에서는 부당하게 유럽의 역사에서 400년간 배제하게 만들었고, 오스만 제국의 쇠퇴로 발생한 공백과 서방에서 들어온 민족주의는 이 400년을 되돌려 그 이전, 중세나 더 멀리는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유럽의 역사에 재편입되기 위한 자신들의 뿌리를 찾거나 창조해 내려는 갈망, 그리고 그 명분과 함께하는 그 뿌리의 근원인 영토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았을 때 누군가는 그 기원을 조선으로 책정하고, 또 누군가를 발해로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신라로, 그것도 한쪽은 통일신라로, 다른 쪽은 3국 시대의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 정체성을 주장하고 각자의 전성기 시절의 영토를 주장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해 보면 끔찍한 혼돈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일이 발칸에서는 실제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 역사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떤 세력을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강대국의 영향 또한 발칸에서도 발생했기에 이 혼란은 더 큰 문제로 고착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발칸을 민족, 종교적 갈등으로 인종청소까지 벌어지는 일이 뿌리 깊은 근원을 지닌 듯 알고 있지만, 사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발칸 지역의 몇몇 일화를 보면 민족성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었고, 종교 역시 배타적이거나 광신적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은 누구지?' 이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자유민이요.' '자유민이 누군데?' '우리 할아버지들이요.' '할아버지인 건 알아. 내 말은 그들이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그리스인, 투르크인 중 누구냐는 거야.' '투르크인들은 아니고요. 기독교인들이에요.' 이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수준인 듯했다. (브레일스포드, 1905년)
수도의 시민들은 투르크어, 그리스어, 헤브루어, 아르메니아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스클라보니아어, 왈라키아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헝가리어로 말을 했다. 그보다 더 불편했던 것은 우리 식구들 간에도 이 수십 개의 언어를 썼다는 것이다. (메리 워틀리 몬터규의 편지)
기독교도와 무슬림사이에 끼어 살며 논쟁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종교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간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주 신중하게 두 종교를 함께 믿으면서 금요일에는 모스크에 가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닌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는 질문에 마케도니아의 농부들은 성호를 그으며 "우리는 성모마리아를 믿는 무슬림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메리 워틀리 몬터규의 편지)
- 마크 마조워, 발칸의 역사 (을유 문화사) 재인용
조르디 사발의 음반에 대한 아이디어는 사발의 아내 몽세라 피구에라스가 기획하고 2010년 5월 바르셀로나와 2011년 폰트프로이드 축제에서 진행된 삶의 순환(Cycles of Life)라는 공연에서 비롯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공연이 진행된 후 몽세라 피구에라스는 2011년 11월 세상을 떠났고, 이 음반은 조르디 사발이 아내의 기획 의도를 완성하고 그녀에게 바치는 숭고한 헌사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 공연의 기획에 따라 음반은 다음의 여섯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1. 창조 : 우주, 만남과 욕망
2. 봄 : 탄생, 꿈과 기념
3. 여름 : 만남, 사랑과 결혼
4. 가을 : 추억, 성숙과 여정
5. 겨울 : 영성, 희생, 추방과 죽음
6. 화해
이 음반을 위해 기존 합창과 악단 외에 다양한 종교적 뿌리를 지닌 40명의 음악가가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키프로스, 헝가리, 세르비아 등 14개국에서 참여했고, 이들은 단순히 노래와 연주만이 아니라 프로그램 및 선곡에 관여해서 이 음반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대와 지역, 문화를 아우르기 위해 연주에 참여한 악기도 다양해서 바이올린이나 기타 같은 친숙한 악기는 물론 카발, 구둘카, 탐부라, 그리스 리라, 오드 등 다양한 민속악기가 참여했습니다.
발칸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과정을 따라, 그 사건과 관련한 음악을 배치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진 장소가 발칸이라 하더라도 상당수의 사건들은 발칸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와 연관된 세력들이 진행하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발생한 사건들이었고, 발칸이라는 정체성으로 묶기에는 너무나 많은 다양성을 지닌 곳이 발칸이며, 그 역사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음반은 발칸의 역사 속에 펼쳐진 다양한 음악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에 전념하면서 각각의 개성과 서로 간에 주고받은 영향을 씨실과 날실로 직조해내고 있습니다. 세장의 SACD에 담긴 다양한 시대, 다양한 민족의 음악은 위에 적은 여섯 단계의 삶의 여정을 따라 인간 세상의 다양함과 그 속의 공통됨을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합주로 보여줍니다. 각각의 곡에는 그 곡의 편성에 맞춰 다양한 음악가들이 참여했기에 조르디 사발은 이 음반에 있어 지휘자나 연주자보다는 (물론 여러 곡에 참여했습니다) 기획자나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이 더 강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음반에 수록된 곡의 다양성은 아래 이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음반의 음원은 2013년 6월 20일 프랑스 파리 시테 드 라 뮤직에서 있었던 공연 실황과 그 전후(같은 해 1월과 9월)에 카탈로니아에서 행한 녹음을 섞어 활용했습니다.

20세기말, 사람들은 발칸이 마치 예전부터 죽 존재해 온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발칸은 200년 전만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스만제국이 지배한 것은 발칸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플 정복으로 얻은 구 '로마인(Roman)'의 땅, 그러니까 '루멜리아(Rumeli) 였다. 술탄에게 봉사한 정교회 지식인들도 자신을 스스로 '로마인(Romans)'(로마이오이 Romaoi) 혹은 '기독교인(christians)'이라 불렀다. 이런 사정은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케도니아, 에피루스, 다키아, 모이시아 등과 같은 고대 명칭은 친근하게 여겼어도 '발간'이라는 용어는 낯설어했다.
- 마크 마조워, 같은 책
인용된 글을 보고 관련된 문건들을 볼 때, 한반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손쉽게 발칸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의문입니다만, 그 지역에서 벌어진 연대기는 작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는 그 긴 연대기 중 일부입니다.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건립되고 비잔티움 제국이 시작되었으며, 이를 기화로 보스니아인, 불가리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같은 슬라브족들이 발칸반도로 들어옵니다.
680년 첫 불가리아 왕국이 성립됩니다.
1018년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리오스 2세에 의해 불가리아 왕국이 정복되고, 해당 지역이 비잔티움 제국에 편입됩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약탈이 이루어집니다.
1396년 오스만 제국이 불가리아의 두 번째 왕국을 정복합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메흐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에 의해 함락됩니다.
1456년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를 정복합니다.
1526년 오스만 제국은 헝가리를 격파하고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인을 포위합니다.
1571년 신성동맹의 함대가 레판토에서 오스만 제국 함대에 승리하고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서진이 멈추게 됩니다.
1676-1699년 1, 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이후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은 지난한 전쟁을 반복합니다.
1699년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의 결과로 발칸 지역과 헝가리에 대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1829년 그리스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발생한 제10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은 참패하고 이때 체결된 아드리아노폴리스 조약에 의거 러시아는 몰다비아 공국과 왈라키아 공국에 대한 보호권을 획득했으며, 오스만 제국은 세르비아와 그리스의 자치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1848년 혁명의 여파는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의 혁명으로 전파되고 나중에는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는 루마니아 공국으로 이어집니다.
1875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전쟁, 불가리아 봉기 등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이 곳곳에서 발생합니다.
1876년 오스만 제국은 최초의 헌법을 제정합니다.
1878년 산 스페파노 조약에 의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가 독립하고,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는 자치권을 획득했으며, 불가리아도 자치정부를 수립합니다. 이 조약은 곧바로 베를린 회의에서 대폭 수정되어 대불가리아가 해체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리를 받게 됩니다.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를 점령합니다.
1912년 세르비아,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발칸 전쟁을 일으킵니다.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의 종결로 알바니아가 독립합니다.
1914년 발칸에서 비롯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분할됩니다.
1920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튀르키예 공화국을 천명합니다.
1939년 제3제국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1943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를 아우르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성립됩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으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몰락하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의 대통령이 되고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간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연방의 공화국들은 독립합니다. 같은 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합니다.
1992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가 독립을 선언합니다. 세르비아는 보스니아에서 소위 말하는 인종청소를 시행합니다. 크로아티아는 보스니아인들을 영토에서 추방합니다.
1995년 데이턴 협정으로 보스니아 전쟁이 종결되고 NATO군이 주둔을 시작합니다.
1997년 알바니아 정권의 붕괴에 따른 혼란으로 세르비아군이 개입하여 코소보 전쟁이 발발하고 알바니아인들이 살해당하고 강제 이주를 당합니다.
1999년 NTO와 러시아군이 코소보에 진입해 재건을 시작합니다.
2001년 마케도니아의 분쟁으로 15만 명 이상의 난민이 코소보로 이주합니다.
2006년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합니다.
2008년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 선언을 합니다. 세르비아, 러시아, 중국은 이 독립을 인정하고 있지 않아 여전히 지역 분쟁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보너스 음반 추천]
오늘 소개하는 발칸, 꿀과 피(BAL·KAN - Miel et Sang)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음반으로 발칸의 영혼(ESPRIT DES BALKANS)이 있습니다. 발칸, 꿀과 피가 녹음되고 공연이 펼쳐진 2013년 발매된 이 음반은 발칸지역의 다양한 민족, 종교의 음악을 소개하는 소개 음반이라 할 수 있는데, 발칸음악을 듣기 위해서 두터운 책자로 구성된 호화로운 세 장짜리 앨범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발칸, 꿀과 피 음반이 노래와 기악곡이 반반씩 편성된 반면, 음반 전체가 기악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에 인용한 책에서 발칸사의 권위자인 마크 마조워는 책의 프롤로그를 명칭들이라는 제목하에 발칸이라는 이름과 또 각종 민족, 지역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서 에필로그로 (발칸의 역사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폭력에 관해라는 제목으로 책을 끝맺음합니다. 생각해보면 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제목이 현대사회가 생각하는 발칸 문제의 시작과 끝일지도 모르고, 또 이것의 해명과 해결, 그리고 진실을 바라보는 것이 그 해법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제가 앞에 적은 연대기는 사건 위주로 적다 보니 갈등과 피로 얼룩진 모양새지만, 조르디 사발의 발칸, 꿀과 피 음반을 들어보면 피로 상징되는 이 갈등과 폭력을 무색하게 하는 꿀 ― 좋은 시절과 사랑과 평화와 우정 ― 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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