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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알프레드 브렌델 - 필립스 레코딩 전집 (Alfred Brendel - Complete Philips Recordings)

by 만술[ME] 2025. 9. 18.

10년 전 이 박스 발매시 늘어가는 음반 박스를 보면서 나중에 브렌델 사후에 추모한다는 명목으로 오리지널 재킷으로 다시 나오면 그때 구입을 검토하자는 생각에 넘겼고, 절판이 되어 핑계김에 잘 되었다 생각하며 지난 세월을 보냈는데, 얼마 전 브렌델이 진짜로 세상을 떠났고 그를 추모하겠다는 뜻으로 (라기 보다는 이 기회에 한몫 잡자는 뜻이겠지만) 기존의 박스가 재발매되었습니다. 한몫을 잡으려니 시간도 돈도 많이 드는 오리지널 재킷을 할 생각은 없고, 아마 이 카드는 몇 년 더 묵혔다가 2031년에 탄생 100주년 기념을 핑계로 시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브렌델 경력 말년에는 우산이 되어주지도 못한 필립스/데카를 희화하는 우산에 원수진 듯한 박스 기획

 

제가 뒤늦게 이 박스를 손에 넣은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지난번 추모글을 쓰다 보니 제 젊은 시절 위시리스트에 브렌델의 베토벤 소나타 박스(물론 당시는 LP) 구입이 있었음에도 쉽게 이룰 수 있는 경제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도 아직 못 이루고 잊고 지냈다는 점, 둘째는 언젠가 분명히 오리지널 재킷 박스가 나오겠지만 나와 봤자 오리지널 재킷이란 것이 추억과 향수의 용도일 뿐 음악을 듣는 데는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단점도 많기에 꼭 고집할 이유도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브렌델이라는 연주자를 듣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재킷의 구성이 연주자의 앨범 편집의도도 함께 들을 수 있어 장점이 많지만 어떤 곡에 대한 브렌델의 해석을 찾아 듣거나 브렌델의 베토벤 소나타 같은 특정 주제의 감상에는 지금의 박스 같은 작곡가별 분류에 의한 박스 구성이 더 좋은 점이 많습니다.

 

이 박스는 브렌델이 필립스(향후에는 데카) 레이블에서 녹음한 음반 중 이 박스 제작 후에 발매된 비인에서의 실황 녹음 두 종을 담은 1장짜리 음반(Alfred Brendel - Live in Vienna)을 제외한 모든 음원이 들어 있습니다. 제작사가 조금만 센스가 있었다면 이 하나 빠진 음반을 이번 재발매 시에는 살짝 보너스로 끼워 넣었겠지만 요즘 클래식 음반사에는 이런 열정이나 센스가 있는 경영진이나 직원이 없는 듯합니다.

 

아무튼 이 박스는 커다란 박스에 네 개의 트레이로 구분하여 종이 슬리브에 담긴 CD를 담는 카라얀 60/70/80년대 스타일의 전형적인 박스인데, 첫 트레이는 모차르트, 바흐, 하이든의 음악을, 두 번째는 베토벤의 음악을, 세 번째는 낭만주의 음악을, 그리고 마지막은 실황과 실내악, 가곡을 담았습니다. 특히 실황 음반을 분해해서 여기저기 작곡가 트레이로 분산배치하지 않은 점은 높이 살만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러기가 귀찮은 담당자의 해결책일지는 몰라도요. 

 

요즘 같은 시대에 음반 박스를 집에 들이는 저를 보면서 와이프는 또 하나의 예쁜 쓰레기 시리즈(이글 참조)의 영감을 얻었다면서 불만을 제기했지만, 제 입장에서 브렌델 정도의 음악가라면 이 정도 부피의 박스 정도는 끌어안고 있는 것이 그가 제게 주었던 즐거움에 대한 제 나름의 보답 또는 위안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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