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즐기는 예술이나 취미에 대해 후기나 감상평을 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연주회 후기는 특히 그렇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연주회를 누군가에게 추천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제게도 이미 지나간 좋았던 경험일 뿐, 다시 반복재생 하면서 뭔가 더 깊이 있는 반추를 해내기도 힘들고, 해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맞는지 확인할 길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모든 감상이 그렇지만 특히나 연주회는 저의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상태가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고, 여기에 시공간적 상황이 또 큰 역할을 하기에 오롯이 연주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위험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술도 섣부른 평가를 내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반복 감상이나 다른 기회를 통해 그 판단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반면, 연주회는 그럴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연주회는 제 삶의 한 순간으로 남을 뿐, 기록으로 남을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뭔가 남기고픈 유혹을 일으키는 연주회들이 종종 있게 마련이고, 이 글이 완성되고 [완료] 버튼까지 누르게 된다면 세온 피아노 듀오 시리즈 I 도 이런 특별한 연주회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연주회 앙코르 전에 연주자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세온(Seon)이라는 듀오의 이름은 두 연주자(최의종 / 이세란)의 예원학교-서울예고-서울대-인디애나 음대로 이어지는 오랜 인연을 선(線)으로 표현하고 이것의 영어 스펠링인 Seon을 다시 세온으로 읽어 탄생한 이름이라 합니다.

이 세온 듀오의 연주회가 특별했던 것은, 우선 보기 드문 피아노 듀오의 연주회였다는 점, 그리고 그 레퍼토리가 흔한 피아노 듀오의 레퍼토리가 아닌, 현대 미국의 작곡가들의 곡들이었다는 점, 더구나 연주회를 채운 네 곡 중 제가 들어본 곡이 없었던 것은 물론, (제 콘서트 고어 생활 중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경우인데) 모든 곡이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곡들로 연주회가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난해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진진한 영화를 스포일러 없이 처음 볼 때와 같은 흥분이 시종일관 감돌며 새로운 곡을 알아가며 한음 한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좋은 곡과 좋은 연주로 채워진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연주회의 전반부는 미국 현대 음악가 에이미 비치(Amy Beach)의 곡인 1대의 피아노와 네 손을 위한 곡인 <여름날의 꿈>과 <아일랜드 멜로디에 기반한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이, 후반부에는 역시 미국 작곡가인 윌리엄 볼컴(William Bolcom)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에덴동산>과 <추억 -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라틴-아메리카 전통 춤곡>을 연주했습니다. 에이미 비치의 곡에서는 프로젝터로 여름날의 꿈에 연관된 시구를 띄워 놓는 등, 생소한 곡에 대한 이해를 돋우려는 연주자들의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여름날 꿈이 애피타이저였다면 이어진 세곡은 본격적인 음의 향연이 펼쳐졌는데, 우선 에이미 비치의 두 번째 곡은 현대적인 화성 속에 화려하지 않음에도 은근히 기교를 요구하는 곡이었는데, 두대의 피아노가 같은 관점에서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는 느낌보다는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면서 거대한 테피스트리를 완성해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두 연주자의 호흡도 이런 곡의 특성을 잘 부각했습니다. 볼컴의 곡들은 두 연주자가 둘 사이에 과하지 않은 적절한 긴장감 속에서 주도권을 주고받아가면서, 각자의 목소리가 분명히 드러나지만 그러면서도 그 주도권의 전환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워 전반적으로는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돋보였는데, 이들이 듀오의 이름처럼 정말 하나의 궁극적인 선(線)을 이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연주회는 듀오 시리즈 I이라 되어 있으니, 2탄, 또는 3탄도 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세온 듀오의 다음 연주회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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