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 예술 - 공연

[음악]R.I.P. 알프레드 브렌델 (Alfred Brendel, 1931~2025)

by 만술[ME] 2025. 6. 20.

지금도 뛰어난 감별력을 지녔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보다 더 음악과 연주에 대해 잘 모르던, 본격적인 음악감상을 처음 시작하던 무렵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끌리는 연주자들이 있었습니다. 외모가 어딘지 마이클 케인을 연상시켰던 알프레드 브렌델도 그중 하나였는데, 아마 뭔가 망설임이나 불분명한 부분이 없는 피아노 연주/소리와 함께 그 분명함을 보장하는 듯한 이지적인 외모가 큰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브렌델의 연주에는 자주 <지(知)적>이라는 꼬리표가 붙고는 했습니다) 어머님께서 (구매량을 생각하면 친해지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음반점 사장님과 친해지신 덕에 홍보용 대형 브로마이드를 가끔 얻어오셨는데, 그중 제 방에 걸린 브로마이드 중 하나가 브렌델의 것이었습니다. 
 
음악 감상을 시작하던 시절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연주자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 이제는 놀라운 일이 아닌 나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감회가 무뎌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군에서 제대하면 꼭 하고픈 일을 작성했던 위시리스트에 <알프레드 브렌델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LP 구입> 같은 목록이 있었을 정도로 뭔가 제게 특별했던 연주자의 부고를 접했을 때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죠. 묘한 것은 막상 제대하고 나니 LP 시절은 이미 확연히 저물어 결국은 아직까지 브렌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는 전집의 형태로는 가지고 있지 않아서 여전히 달성하지 못한 wish로 남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스트리밍의 시대이니 어쩌면 영원히 못 이룬 wish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조촐한 추모의 뜻으로 들을 <음반>을 골라봤습니다. 브렌델 정도 연배의 연주자를 추모하기 위해서라면 스트리밍보다는 음반이 더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첫 번째 음반은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모음집인데, 처음 이 네 장 짜리 CD를 구입했던 시절에는 이 정도면 <고가>라고 느끼던 시절이라 나름 과감한 지출을 한 것이었습니다. 요즘이야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다고 할 때 포르테피아노 같은 시대악기 연주를 우선적으로 택하겠지만, 무인도에 가서 평생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음반을 하나만 들어야 한다는 조건이라면 아마 브렌델의 음반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다른 음반들을 고른다면 브렌델이 후기에 새로 녹음한 모차르트의 소나타와 협주곡들이나 은퇴 이후 브렌델 자신이 선택한 음원을 발매했던 <아티스트의 선택>(Artist's Choice) 시리즈를 고르겠지만, 아무래도 이 여정의 마지막은 그의 고별 연주회 음반(Alfred Brendel: The Farewell Concerts)으로 마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장의 CD로 발매된 이 음반은 모차르트의 협주곡(KV 271)과 소나타(KV 533), 베토벤의 소나타 13번, 슈베르트의 D 960 소나타 등을 담아 그야말로 브렌델 레퍼토리의 정수들에 대한 그의 마지막 해석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전에 폴리니의 부고 때 <Gramophone>과의 인터뷰 번역을 올리겠다고 하고는 아직 못 올리고 있는데, 대신해서 2009년 1월호에 실렸던 브렌델의 은퇴 인터뷰를 추모의 뜻을 담아 번역해 블로그에 올립니다. 다만 개인적인 목적의 초벌번역인 관계로 오역이 있을 수 있음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영어책도 음반 내지 말고는 거의 읽지 않아서 없는 실력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Alfred Brendel: the last interview
Stephen Plaistow
 
 
우리는 보통 햄스테드에서 만나지만, 이번에는 비바람 부는 아침에 도셋에 있는 그의 시골집에서 만났는데, 그곳은 완전한 벽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차량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혼동시킬 만큼 충분히 외진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방문자들이 지역의 시골길에서 길을 잃고는 실종되어 버리곤 한다고들 합니다. 저도 길을 잃기는 했지만 끝내 그를 찾아냈고, 심상치 않아 보이는 트랙터들 근처에 주차했습니다. 이후의 대화는 격의 없고 유쾌한 분위기, 심지어 들뜬 분위기 속에서 많은 웃음과 함께 이어졌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한 주 전쯤 알프레드 브렌델의 마지막 연주회를 들었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로열 페스티벌 홀 인터미션에 엿들었던 관객들의 반응은 비록 사람의 수명이란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쓰러질 때까지는 계속 연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브렌델에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AB: '어떻게 죽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적절한 시기에'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죽을 적절한 순간을 선택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자의로 연주를 중단할 수는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괜찮은 상태일 때 멈추고 싶었습니다. 다른 동료들과의 차이점은 제가 연주회에 중독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적어도 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결코 단지 피아니스트이기만 했거나 심지어 단지 음악가이기만 했던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사실 이제 그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75세인 2년 반 전에 멈추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몇 년 더 하라고 설득했습니다. 이제는 적절한 시점이 됐다고 느끼며, 제 연주회 경력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어 기쁩니다.

제가 첫 리사이틀을 그라츠에서 한 지 60년이 되었습니다. 1년 후에는 부조니 콩쿠르에 참가하여 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게 음악 커리어는 늘 장기 계획이었습니다. 재능은 있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펼쳐나갈 수 있을지, 환경이 맞는지, 운이 따라줄지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로서 50세까지 특정한 것들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이후로도 계속하면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았죠. 제 능력이 저하되거나 관절염의 영광이 될 때까지 질질 끌 수는 없습니다. 저는 비교적 젊었을 때부터 이런 것들이 결국은 '만년 스타일'이란 것의 전부일뿐이라는 것을 것을 깨달았습니다. 최소한 기악 음악에서는 말이지요. 만년의 리스트를 생각해 보세요!

어떤 피아니스트들은 영원히 연주하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노년까지 연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이런 이들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어려움을 겪거나 무능해져서, 혹은 70이 되기 전에 죽어서 일찍 은퇴하는 피아니스트들도 그 정도의 숫자로 있을 것입니다.

SP: 연주 생활이 그리울 것 같은가요? 얼마 전에는 아직 연주회를 하는 것을 즐긴다고 말씀하셨는데요.

AB: 네, 전반적으로 저는 청중들과 충분히 멋진 경험을 했으며 그것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소중히 여길 것인데, 특히 올해 관객들에게서 많은 따뜻함과 관대함을 느꼈습니다.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리울 것은 아드레날린일 것입니다. 물론 (저는 흥분이 충분하니) 흥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의학적 이점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신경, 근육, 관절의 통증을 덜어주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지 봐야 할 것입니다.

SP: 하지만 좋아 보이시는데요.

AB: 네, 나쁘지는 않아요. 그 모든 불쾌한 기침들, 휴대폰, 보청기 소리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청중은 제 경력에서 변함없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제가 계속 활동하게 해 주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사실 청중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디에서 연주하든 큰 차이는 없습니다. 약 15년 전 왼팔에 문제가 생겨 연주회 프로그램을 다소 바꿔야 했을 때도 청중들은 충성심을 유지했습니다. 그때 청중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아봐야 했습니다. 청중은 좋아하는 것 같았고, 물론 이 작곡가들의 작품도 정말 많습니다.

SP: 특유의 겸손함으로 사람들이 여전히 당신의 연주를 듣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뻤는지 말씀하신 적이 있죠.

AB: 네, 미국서 출간된 책 제목 중 하나는 'Me, of all people'(모든 이가 좋아하는 나)입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수년간 어디에서 연주하던 연주회장을 매진시키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 연주가 정말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지적인 것인 궁금해지더군요. 제가 그렇게나 지적인데도 그렇게 많은 곳에서 그 많은 청중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은퇴를 발표하지 않고 싶었지만 그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냥 멈추고 나서 이제 끝났다고 말하고 싶었죠. 전반적으로 볼 때 이 고별 연주회들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공백을 남기고 가시는군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록 공백일지라도 무언가를 남길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저는 늘 문학적인 삶도 살았습니다. 문학은 단순히 아마추어로서가 아닌 저의 두 번째 실존이었고, 이제는 훨씬 더 많이 추구할 것입니다. 축제와 대학에서 강연을 할 생각입니다. 2009년 6월부터 이미 제법 큰 일정이 있습니다. 컨퍼런스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제 시를 낭독할 것인데, 늘 해왔던 일이지만 이제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SP: 보조자료가 있는 강연(Illustrated lectures) 말인가요?

AB: 네, 피아노와의 관계는 지속할 것입니다… 이 강연 중 두 개는 이전에도 해본 적이 있지만 오랫동안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클래식 음악은 전적으로 진지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캠브리지의 다윈 강연으로 했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음악에서의 캐릭터'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해석에서의 빛과 그림자'에 관한 것이 세 번째로 준비하는 것으로, 좋은 관습과 나쁜 관습, 시대 연주자들의 관습의 일부까지 상세히 다룰 생각입니다.

물론 몇몇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돌보는 시간도 더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할 수 있을 때마다 해왔고 [그들 중에는 오스트리아의 틸 펠너와 폴 루이스가 있습니다만] 지금은 16세의 킷 암스트롱이라는 소년이 있는데, 진정한 신동입니다. 그는 매우 놀랍고, 피아노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대단해서 7살 때부터 작곡을 했습니다. 그는 또 수학 천재이고, 제가 만난 바흐 연주자 중 가장 타고났으며,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경이로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배우는 데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고서도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아주 확신에 찬 방식으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이 소년을 보면서 저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 바흐와 같은 사람들의 두뇌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어떻게 엄청난 수의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두뇌는 우리의 두뇌보다 10배 더 빠르게 작동하는 것뿐이에요. 더 빠르면서도 동시에 완벽한 집중력을 가지고요.

SP: 어떤 대답을 들을지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어둠 속에서 브렌델이 녹음 스튜디오로 몰래 돌아가서 뭔가에 대해 한두 마디 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예기치 않은 열정으로, 말하자면 힌데미트의 '루두스 토날리스'나 쇼스타코비치의 전주곡과 푸가 버전 같은 것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픈 유혹을 느낄지 궁금합니다. 물론 그는 단호하게, 그런 것은 그의 열망이 아니라고, 제가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가 늘 녹음에 관심을 갖고 성공을 이루어 냈으며, 자신의 연주를 듣고 예술가로서 발전하는 데 녹음을 활용해 온 점을 고려할 때, 남겨진 자신의 녹음들과의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AB: 아니요, 더 이상 녹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늘 바라왔던 것은 제 연주회 실황 녹음을 찾아 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티스트의 선택(Artist’s Choice)'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했지만, 데카/필립스에 큰 인사이동이 있었고, 이전에 있던 사람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이러한 변화로 인해 홍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임 사장은 오케스트라 실황 공연 모음 몇 종을 승인했지만, 새 직원들은 아직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이먼 래틀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빈에서의 슈만 협주곡, 몇 년 전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콜린 데이비스와 함께한 뮌헨에서의 브람스 D단조 협주곡이 있고, 모차르트 작품도 있는데, 제가 특별히 좋아했던 것들이라 아쉬운데, 언젠가는 나올 수 있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게 녹음과 관련된 상황입니다. 제가 고별 투어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데카/필립스는 '아티스트의 선택' 시리즈로 4장의 더블 CD 패키지를 출시했습니다. 그전에는 딜러들이 이 음반들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녹음이 무척 많기에 사람들에게 무엇을 먼저 들어야 할지 알려주고 제안하고 싶어 '아티스트의 선택' 컬렉션을 기획했습니다. 이게 완벽한 선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직접 선택한 것이며, 이제는 단종된 '위대한 피아니스트들(Great Pianists)' 시리즈와 함께 제가 성취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BBC 녹음 중 일부 실황 공연은 '아티스트의 선택'의 일부가 아니라 별도로 출시되었는데, 여기에는 제가 선호하는 런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했던 마지막 공연에서의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틀린 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런 종류의 완벽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녹음보다 더 생생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다른 몇 종의 녹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음원을 찾자면 오래전 전 BBC를 위해 연주했던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그랜드 폴로네즈' 연주가 있네요. 

SP: 저는 언급된 쇼팽 녹음을 포함하여 몇몇 다른 쇼팽 폴로네즈와 많은 다른 녹음들을 프로듀싱한 바 있습니다. 약 45년 전, 우리의 첫 만남은 브렌델의 이 나라[영국]에서의 첫 실황 방송이었던 디아벨리 변주곡이었습니다. 우리는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했고, 저는 독자들이 우리를 공원 벤치에 앉아 노닥거리는 노인네들로 연상케 하지 않으려면 인터뷰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이제 지휘자와 모차르트 이야기입니다. 브렌델은 항상 훌륭한 협주곡 연주자였는데, 실력이 그에 필적하는 모든 피아니스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가 불가사의 중 하나라 언급하기를 좋아하는 초기 E플랫 장조 K271과 C단조 K491 두 개의 모차르트 협주곡으로 연주 경력을 마칩니다. 저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매커라스와 함께 연주한 페스티벌 홀에서의 K271을 얼마나 즐겁게 들었는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제가 지난여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C단조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며, '그 연주는 우리가 함께 이 곡을 함께 했던 것 중 최고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한번은 K271 리허설 중에 있었는데, 독주자, 지휘자, 오케스트라가 얼마나 긴밀하게 협력하는지 목격했습니다. 브렌델은 피아노 파트뿐만 아니라 진행되는 연주의 모든 세부 사항에 관여했는데, 일부 지휘자는 환영하지 않을 정도로 세부까지 관여했습니다.

AB: 네, 맞아요. 찰스(매커라스)와는 그런 방식으로 일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회를 했는데, 아주 좋았습니다. 불행히도 지금에 와서야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그는 떠오르는 위대한 지휘자 중 한 명이고, 그 오케스트라는 정말 훌륭하며, 둘 사이의 관계는 특별합니다. 그 뒤 데이비드 진만과 톤할레 오케스트라에 갔는데, 진만은 톤할레에서 놀라운 일을 해내서 이제 톤할레는 훌륭한 상태이며 정말 일류 오케스트라가 되었는데, 그는 제가 선호했던 오랜 파트너 중 한 명입니다. 진만은 취리히에서 14년 동안 함께했으며, 그들은 그를 너무 좋아해서 그가 무대에 등장할 때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그런 것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아리아를 불러주거나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말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고 오히려 과묵한 편이지만, 그들은 그를 숭배합니다.

SP: 저는 K271과 또 다른 E플랫 장조 협주곡 K449를 포함하여 이 솔리스티 디 자그레브와 안토니오 자니그로와 함께한 그의 초기 모차르트 협주곡 녹음으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기억에 1950년대 중반이었는데 저는 아직 학교에 다녔고, 쇼스타코비치 협주곡이 담긴 저의 첫 브렌델 LP를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AB: 그들은 아주 훌륭한 단체였습니다. 저는 최근에 그 녹음을 다시 들었는데, 그들은 아름답게 연주하더군요. 지휘는 자니그로가 했는데, 그는 훌륭한 첼리스트였지만, 아마도 정치적, 개인적인 이유로 마땅히 누려야 할 할 경력을 쌓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그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이었고, 그곳을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십 대 때 모차르트를 연주하기 시작했지만, 그의 피아노 음악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18세 때 스위스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의 클래스에서 A단조 소나타를 연주했고, 참가자들의 마지막 연주회에서 다시 연주해야 했는데 그 일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20대 초반에 제가 연주했던 첫 협주곡 중 하나는 C장조 K503이었고, 그 후 복스/턴어바웃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녹음이 여럿 있었습니다. 저는 빈에서 수년 동안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했고, 당시 잘츠부르크에서도 베른하르트 파움가르트너와 함께 마티네 연주회에서 연주했습니다. 그것이 제 초기 모차르트 시대였는데, 그 후 1970년대와 80년대에 필립스는 제가 네빌 매리너와 함께 협주곡 전곡 녹음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후  12~15년 전부터 또 다른 모차르트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는 소나타에도 도전했고, 이전에 연주했던 것보다 더 많은 소나타에 도전했습니다. 슈나벨이 소나타에 대해  '아이들에게는 너무 쉽고, 예술가들에게는 너무 어렵다.'라고한 것은 여전히 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간결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알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제 독주회 프로그램에는 F장조 소나타 K533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은 론도 K494의 후기 버전입니다. 이것은 가장 훌륭하고 까다로운 소나타 중 하나인데, 다이내믹 표시가 거의 없어서 피아니스트가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저는 마지막 독주회까지 이 곡을 연습할 것입니다! 그리고 초기 F장조 소나타 K332가 '아티스트의 선택' 시리즈에 있고, A단조 론도 K511도 있는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주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모차르트가 전반적으로 우아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발터 기제킹의 모차르트 소나타 전집을 싫어했는데] 네, 정말 매우 높은 수준의 초견 연주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카라얀이나 다른 지휘자들과 함께 몇몇 협주곡도 연주했는데, 어떤 이들은 이상적인 모차르트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에드빈 피셔, 브루노 발터, 슈나벨처럼 다른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음악이 악마적일 때는 음악에 악마가 깃드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1960년대에 저는 우아하고 차분한 진영 쪽에 좀 더 가까웠고, 나중에 가서야 전방위적인 스타일의 모차르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시대 연주처럼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버리는' 일 없이 말이죠. 한 번은 바이올리니스트 샨도르 베그와 함께 한 몇 번의 연주 후에 우리는 어떤 것이 좋은 모차르트 연주를 구성하는지 자문한 적이 있는데, 저는 노래와 말하기의 조합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베그는 젊었을 때 오페라 가수인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과 함께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가 솔로를 연주하는 동안 샬리아핀은 휴식을 취하면서 스테이크와 버건디 와인 반 병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샬리아핀이 자신의 연주를 듣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베그가 그의 의견을 묻자 샬리아핀은 '당신은 아주 잘 연주하지만, 충분히 말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일부 동료들처럼 선율의 성악적 특징이 사라질 정도로 '클랑레데(Klangrede)'의 극단으로 치닫은 적은 없었습니다. '말하기'는 일부이긴 하지만, 좋은 건반 연주의 기본 중 하나는 바흐의 3성 인벤션 서문을 읽으면 알 수 있듯, 노래, 칸타빌레여야 합니다. 

SP: 이 모든 논의는 저로 하여금 9번 협주곡, '쥬놈(Jeunehomme)'의 느린 악장의 때때로 선언적인 수사법을 떠올리게 합니다.

AB: 제 생각에 이 느린 악장은 글룩이 작곡했어야 할 것입니다! 네, 위대한 비극적 표현이고, 제가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가장 위대한 카덴차 중 하나도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조성 중 하나인 C단조는 모차르트에게도 베토벤만큼이나 중요했습니다. C단조 소나타와 환상곡, 당연히 C단조 협주곡(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아마 가장 훌륭한 곡일 것입니다), C단조 미사,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푸가를 생각해 보세요. 아시다시피, 저는 베토벤이 C단조 조성을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 모차르트를 살해하는 내용의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9번 협주곡은, 모든 것, 말하자면 모든 음표, 모든 도입부와 장식 등이 악보에 쓰인 협주곡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후의 작품들은 그 곡들의 인쇄고가 완성되지는 못했기에 이런 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음악학자들 덕분에 우리는 이른바 '쥬놈(Jeunehomme)' 협주곡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모차르트가 그 이름을 철자법에 맞게 쓸 수 없었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는 편지에서는 올바르게 썼고, 사실 그녀는 유명한 무용수의 딸인 제노미(Jenomy) 또는 제노메(Jenomé)였습니다. 저는 초상화를 본 적이 없고 초상화가 있다는 기록도 없지만, 그녀가 이 경이로운 작품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줄 만큼 아주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의 이전 협주곡들은 마치 다른 작곡가가 쓴 것처럼 느껴지는 반면, 갑자기 이곡에는 섬세함과 풍부함을 갖추고, 구조와 가장 놀라운 아이디어, 형식에 대한 아이디어, 즉 우리가 고전적 피아노 협주곡이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비전이 있습니다. 이곡은 처음시도 했지만 동시에 성공을 이루어낸 작품 특유의 신선함 때문에 제게는 완벽한 작품입니다. 모차르트의 작품을 살펴보면 사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왔습니다. 때때로 천재들에게는 나중에 일어날 일의 전조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첫 걸작이며, 사실 이 수준을 다시 달성하고 이후 작품들까지 수준을 유지하는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신포니아 콘체르탄테까지는 이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그가 이전에 작곡한 것을 보면, 멘델스존만큼, 또는 슈베르트의 4번 교향곡을 정말 좋은 연주로 들을 때 느낄 수 있는 것만큼은 조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세 이전의 모차르트는 그 정도의 수준은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며 그의 레퍼토리와 수년에 걸친 재해석, 그의 작업 방식, 지성과 본능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AB: 확실히, 특히 캐릭터 문제에 있어서는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작품을 분석한 다음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슈나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작품을 잘 알고 싶고, 작품이 저에게 무엇에 관한 것인지, 무엇이 특별한지 말해주기를 원합니다. 구조는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 말은 거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특히 독일에서는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글을 추종하여, 구조를 파악하면 캐릭터가 저절로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캐릭터에 관해서는 저는 배우들에게서 영감을 받아야 한다고 항상 느낍니다. 무대에서 그들은 캐릭터로 변해야 하고, 실제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합니다. 저는 그들이 제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음악가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종종 정확히 무슨 뜻인지 묻습니다. 글쎄요, 그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 아마도 월광 소나타를 미소 지으며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얻고 싶은 것은 작품의 메시지인데, 그건 제가 제 자아의 개입을 차단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브렌델은 가장 겸손한 사람이라는 단순화가 항상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아니요, 저는 하늘에서 계시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SP: 저는 그에게 제가 듣기에는 그의 소리는 항상 브렌델 같다고 말했고, 그는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음악학자들은 더 넓은 독자층에 관심이 없고 자기들끼리만 글을 쓰며, 저명한 연주자들이 음악에 대해 쓴 좋은 글은 안타깝게도 너무 소수기에 대중들은 그런 글에 목말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B: 음, 네, 하지만 여기[영국]보다는 중부 유럽과 미국에서 더 그럴 겁니다. 불필요하게 학술적인 것이나,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 양쪽 모두 위험이 있습니다. 신문 두 가지를 구독하는데, 매일 신문을 읽을 때마다 볼 수 있는 지나친 단순화를 혐오합니다. 그리고 제가 인용될 때, 사람들이 제가 이미 요약한 것을 다시 요약하려 애쓰면서 제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말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렇기는 해도 언어를 다루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도전을 사랑합니다. 처음에는 독일어로, 다음에는 영어로 항상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생각건대 항상 약간의 위트만 있다면 터무니없는 소리 없이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악에 대해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저도 많은 즐거움을 누렸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결코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저는 습관적인 비관주의자이지만 기분 좋은 놀람을 좋아하며,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말의 우울함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웃을 수 있을 만큼 재미있는 불합리함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SP: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분야에서 알프레드 브렌델이 아르투르 슈나벨 이후 처음으로 완벽한 권위를 누리는 예술가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지만, 이제 우리는 그 주장을 과거형으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얼마나 큰 영감을 주었는지요. 이 훌륭한 예술가가 새로운 노력에 그의 재능을 돌린다고 해도 그가 선사한 영감은 퇴색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의 숭배자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들을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