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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역사와 음악 시리즈

[음악]역사와 음악 (외전) 베아트리체 첸치와 음악

by 만술[ME] 2026. 4. 6.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아름다운 10대 후반의 귀족 소녀, 폭군인 아버지의 근친상간 성폭행 시도, 아버지의 살해 혐의로 기소, 1년여의 재판과정에서 끊임없는 협박과 고문에도 끝내 결백을 주장, 마침내 수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받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전설이 된 여인. 베아트리체 첸치에 대한 진실, 사실, 거짓, 전설은 모두 남성적 시선에 의한 제2차 가해에 가까운 흥미의 대상이자, 현대에 와서는 역으로 페미니즘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모라비아의 희곡 베아트리체 첸치(1958)의 대사처럼 "속세의 정의에 의한다면 유죄일 수 있지만, 속세의 권력이 알 수도 없으며, 하물며 관장할 수도 없는 (신의 뜻 또는 도덕적 의미의) 정의에 따르면 무죄"라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 챕터에 어울릴 듯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첸치 사건에 대한 타블로이드적인 관심과 덧붙임은 지금도 계속되어 너무 아름다워서 죽은 여자라는 말도 안 되는 명칭까지 붙어 있습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정성껏 뒤지면 알 수 있는 잘못된 사실들을 (잘못된 정보를 참고로) 나열하고, 그녀가 사형을 당한 것이 아름다움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남성은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강간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존재이고, 예쁜 딸을 둔 아버지는 그 딸에게 욕정을 품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서야, (실제로 근친상간적 강간이 있었다고 가정해도) 베아트리체 첸치가 아름다움 때문에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그래서 아버지를 죽일 수 밖에 없었고 또 사형을 당했다는 논리로 이야기가 발전하다니요! 

 

이런 부끄러운 제목과 내용은 내리는 것이 정답 아닐까 생각합니다.


 
로마서 100km 정도 떨어진 산기슭의 작은 마을 라 페트렐라 델 살토(La Petrella del Salto)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이런 시선 때문에 당대에도 세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후대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겹쳐지며 전설이 되어 많은 예술로 재탄생했습니다. 문학으로는 셸리, 스탕달, 디킨스, 아르토 등이 이 사건을 다루었고, 셸리의 작품은 현대 작곡가 해버걸 브라이언(Havergal Braian)에 의해 오페라로 탄생했고, 브라이언처럼 셀리의 작품에 기반한 충실한 각색이라기보다는 재구성에 가깝지만 베르톨트 골트슈미트(Berthold Goldschmidt) 역시 오페라 베아트리체 첸치를 통해 이 이야기를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로는 퍼시 셸리의 작품에 가장 큰 동기가 된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셀리가 1819년 5월 로마 방문 당시 콜로나 궁전에서 귀도 레니(Guido Reni)의 작품이라 알려진 이 그림과 곁에 있던 루크레치아 페트로니(베아트리체의 계모)의 그림을 보고 1년 전에 리보르노에서 들었던 첸치 일가의 사건에 대한 창작의 불꽃을 피운 것이 그의 작품 첸치 일가(The Cenci)로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셸리는 교회의 권위와 횡포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여러 번 첸치 백작의 죄를 (돈을 받고) 사해줬던 교황청이 수많은 청원에도 불구하고 백작의 살해범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황의 뒷배로 범죄를 저지르는 잔혹한 백작과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이에 저항하는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성의 대비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퍼시의 작품이 앞서 말한 오페라들의 창작의 영감이 되었고요. 그리고 많은 이들이 베아트리체 첸치의 전설에 살을 붙이는 데는 이 그림이 한몫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어깨너머 슬프고 포기한 듯하지만 눈물이 맺혀있지는 않아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듯, 오히려 바라보는 이에게 위안을 주고자 하는 듯한 눈빛을 지닌 창백한 소녀의 모습이란!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Portrait of Beatrice Cenci) / 지네브라 칸토폴리(Ginevra Cantofoli) (추정) 
국립 고미술 미술관 / 바르베리니 궁전, 로마 / 캔버스에 유채 / 75 cm × 50 cm

 
갈색 머리에 크고 빛나는 눈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를 보여주는 이 그림은 특히나 19세기 작가들에 의해 그녀의 수감 기간(1598~1599년) 중 실물을 보고 그린 것(어떤 이야기에서는 감옥에 직접 방문해서,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녀가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으로 전해졌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귀도 레니는 그녀가 처형당한 9년 뒤인 1608년 이전에는 로마에서 작업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 그림이 베아트리체 첸치와 연관된 최초의 기록은 1783년 콜론나 가문의 그림 카탈로그에 "첸치가의 소녀의 초상화로 여겨짐. 작자 미상"이라고 기록된 것인데, 이 시점은 1740년대 루도비코 안토니오 무라토리(Ludovico Antonio Muratori)가 펴낸 12권 분량의 이탈리아 연대기(Annali d'Italia)에 의해 첸치 일가 사건이 대중적인 관심을 받아 전설이 되어가던 시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뭔가 마케팅의 향취가 풍기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최근의 연구는 이 그림이 귀도 레니의 그림이 아닌 지네브라 칸토폴리의 그림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는 로마의 바르베리니 궁전에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주인공도 베아트리체 첸치가 아닌 (머리에 두른 터번으로 추정컨데) 시빌라 무녀의 그림으로 생각되고 있죠. 
 
첸치가 사건
 
사건은 1598년 9월 9일 새벽 아브루초 산맥 기슭의 마을인 라 페트렐라 델 살토(La Petrella del Salto)에서 발생했습니다. 라 로카(La Rocca)라고 불리던 첸치가의 성에서 하녀로 일하던 플라우틸라 칼베티(Plautilla Calvetti)는 마을 사람들의 성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는 호출에 급히 성으로 달려갑니다. 성안에서는 백작부인 루크레치아가 비명을 지르고 있고, 창가에는 딸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작은 나무 난간의 한쪽이 부서져 추락한 듯 쓰레기 처리장에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연못가로 끌어올려진 백작의 시체는 연못의 물로 시신을 닦아 내자마자 단순한 추락사가 아니란 것이 명백했습니다. 머리 옆면에서 세 개의 상처가 발견되었는데 두 개는 오른쪽 관자놀이에 있었고, 큰 것은 손가락 하나 길이로 오른쪽 눈 근처였는데, 이 상처로 오른쪽 눈은 이미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당시 참관했던 사제들에 의하면 이 상처들은 쇠막대기나 꼬챙이로 찌른 것이 확실해 보여 단순한 사고가 아닌 살인임이 명백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후의 조사는 자백 강요, 고문, 재판의 압박, 잔혹한 판결, 등에 의해 살이 붙고 전설이 되어 무엇이 진실이고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첸치 백작이 실제로 끔찍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명백했습니다. 조서에 의하면 백작부인 루크레치아가 준비한 수면제에 취해 잠든 사이에 성의 관리인이자 하녀 플라우틸라의 남편인 올림피오 칼베티와 고용된 공범 마르치오 카탈라노가 침실로 들어왔고, 백작이 수면제 기운에도 깨어나자 한 명이 그를 짓누른 상태에서 다른 한 명이 그의 머리에 쇠못을 대고 망치로 박아 넣어 살해한 뒤,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시체를 난간 너머로 던져 놓은 뒤, 나무 난간의 일부를 끊어 놓고 달아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은 살해를 실행한 자들일뿐 이 살인의 계획을 주도한 것이 백작의 가족들이었단 점이었습니다. 백작의 폭행에 고통받던 아내 루크레치아와 딸 베아트리체, 그리고 당시 로마에 있던 장남 자코모가 배후로 지목되었습니다. 이 중 백작의 살해 계획에 가장 강경했던 것은 딸 베아트리체로 다른 이들이 망설일 때도 단호하게 살인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관리인 칼베티는 베아트리체와 연인 관계였습니다. 
 
재판 절차는 무려 1년 정도 진행되었는데, 그동안 실제 백작을 살해했던 두 명은 모두 사망했습니다. 칼베티는 현상금 사냥꾼에 의해, 카탈라노는 고문으로 숨졌습니다. 가장 방대한 자백을 한 것은 아들 자코모였는데, 반면에 베어트리체는 고문에도 자백을 거부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루크레치아는 1599년 9월 11일 처형되었는데, 가장 잔혹했던 것은 자코모의 처형으로 거리를 끌고다니다 사지를 절단했다고 합니다. 이 끔찍한 처형의 과정에서도 선정적인 이야기가 유포되었는데, 루크레치아의 가슴이 너무 커서 처형대 위에 자세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당시 어렸던 아들 베르나르도는 가담자로 몰리지는 않았지만 처형대에 서서 가족의 처형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으며 그의 재산은 (묘하게도) 교황의 가문에 압수된 채 갤리선에 노예로 보내지는 형벌을 당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1년 후에 풀려났지만 말이죠.
 
사실 이 사건은 실제 벌어진 일과 교황 클레멘스 8세의 탐욕이 합을 맞춘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첸치 가문은 당시 손꼽히는 부유한 가문이었는데, 수장인 첸치 백작의 죽음, 그리고 그 살해의 과정을 이용해 일가를 연좌제로 묶어 상속권을 박탈하고 교황청에서 모든 재산을 몰 수 한 뒤, 교황의 가문에 싸게 매각하는 절차를 거쳤습니다. 더구나 당시 여론은 첸치 백작의 널리 알려진 악행 때문에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자비와 사면해야 한다 요구하는 청원이 많았음에도 교황청은 사면을 거부했고, 이로 인한 민심이 흉흉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치검찰의 일가족 털기는 당시에도 횡횡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후대에 밝혀진 사실들과 추정
 
첸치가의 이야기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뒤늦게 좀 더 객관적인 조사들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안토니오 베르톨레티(Antonio Bertoletti)의 조사인데, 그가 발견한 첸치 백작의 기록에 의하면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베아트리체가 처형당할 당시의 나이는 16~17세가 아니라 22세였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유언장은 카타리나 데 산티스라는 과부에게 거액을 맡기며 한 가련한 소년을 부양하도록 했고, 그 소년이 성년이 되면 그 재산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베르톨레티는 이 소년이 베아트리체와 올림피오 칼베티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고,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녀를 자신의 성에 감금했다는 이야기의 진실은 유부남 관리인과의 불륜으로 임신한 혼전의 딸을 세인들로부터 감추기 위한 것 아니었냐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첸치 백작이 폭력적인 성향이었던 점, 그래서 실제로 채찍으로 딸을 폭행한 적도 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당시는 남성의 용기와 폭력성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이고, 자식, 특히나 딸은 아버지의 재산이었습니다. 증언에 의하면 가려움 증을 앓던 백작이 딸에게 성기를 포함한 온몸을 긁게 시키거나 자신이 소변을 보는 동안 소변통을 들고 있게 하는 등의 악행을 저지른 것은 맞지만, 그가 실제로 근친상간을 범했거나 시도했다는 증거나 기록은 없습니다. 사실 재판의 과정 중 거의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베아트리체는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할 동기가 전혀 없으니 무죄라고 주장했고, 근친상간의 문제는 그녀의 변호사 프로스페로 파리나치(Prospero Farinacci)에 의해 재판 후반, 형을 감경받기 위해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제기한 방어 논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근친상간의 증언은 베아트리체의 지인의 요청으로, 하녀로 일했던 칼리도니아 로렌치니(Calidonia Lorenzini)라는 여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설이 기억하는 천사 같은 아름다운 소녀가 폭력적인 아버지의 강간을 피하고, 학대당하는 계모를 비롯한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마의 현신 같은 아버지를 살해 한 뒤, 신 앞에 떳떳함을 주장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것과 달리, 실제 벌어진 일은 오히려 더 복잡 미묘한 막장 가족 드라마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베아트리체 첸치를 노래하는 음악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사건은 많은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중 대표작인 셸리의 작품은 두 명의 현대 작곡가에 의해 오페라로 탄생합니다. 
 

Havergal Brian: The Cenci / Millennium Sinfonia, James Kelleher (Toccata Classics, 2024)

 
 
첫 작품은 영국의 작곡가 해버걸 브라이언(Havergal Braian)이 셸리의 동명의 작품에 기반하여 작곡한 오페라 첸치 일가(The Cenci)입니다. 브라이언이 말년에 작곡한 5장으로 구성된 오페라는 작곡가의 생전에는 연주되지 못했고, 작곡가 사망 25주년을 기리며 1997년 12월 12일 해버걸 브라이언 협회의 주최로 이루어진 런던의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이루어진 콘서트 공연이 초연입니다. 다행히 이 초연의 실황은 녹음이 되어 보관되다 2024년 음반과 음원으로 발매되었습니다. 음반화할 생각보다는 기록을 위한 실황 녹음인 관계로 음질이 훌륭하지는 않고, 가수들이나 악단도 최상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Goldschmidt: Beatrice Cenci / 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 Lothar Zagrosek (Sony Classical, 1995)

 
브라이언의 오페라가 셸리의 작품을 활용한 오페라라면 그것에 영감을 받았지만, 새로 리브레토(Libretto)를 쓰고 셸리의 다른 시를 첨가해서 오페라로 만든 것이 베르톨트 골트슈미트(Berthold Goldschmidt)의 오페라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입니다. 저는 이 오페라를 위에 보이는 소니 레이블의 (세계 최초 녹음) 음반의 발매시기인 95년 즈음에 이 음반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음악에 대한 관심보다는 첸치 일가 사건에 대한 관심과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오스트리아의 미술가 고트프리트 헬른바인의 극사실적 수채화(사진이 아닙니다!) 작품을 활용한 표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음반은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현대 작곡가의 오페라 음반이란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게도) 당시 압구정에 있던 신나라 레코드의 재고 떨이 할인행사 품목이었던 점, 그때만 해도 도전적인 음반구입도 마다치 않았던 시절이었다는 것도 이 낯선 현대 작곡가의 오페라 음반을 덜컥 구입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두 음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후자를 선택할 것인데, 관현악적으로 더 매혹적인 음향을 전달해주고 있고, 가수들도 더 훌륭합니다. 여기에 훗날 하이퍼리언에서 아름다운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음반으로 일약 스터덤에 오르게 되는 이언 보스트리지의 단역 시절의 노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음악보다는 첸치 일가 사건 자체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브라이언 음반의 내지 해설이 보다 더 충실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편인 역사와 음악 시리즈는 조르디 사발의 음반에서 다루는 역사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작 했기에, 그에 한정해서 진행하고, 음악과 관련된 다른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외전(外傳)이라는 형식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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