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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

[음악]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및 그 음반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by 만술[ME] 2024. 9. 27.

[슈베르트의 세 개의 연가곡에 대한 개인적 이야기]

슈베르트의 세개의 연가곡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클래식을 들으며 LP를 모으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세 연가곡을 묶음으로 구할 수 있는 음반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의 DG박스와 헤르만 프라이의 필립스 박스가 전부였는데, 당연히 누구나 추천하는 음반은 피셔-디스카우의 음반이었습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약간은 반골기질이 있었고, 오페라, 가곡을 통해 두 가수의 노래는 이미 접했던 터라 따뜻하고 친축한 프라이의 음성에 더 끌렸습니다. 남들이 다 추천하는 피셔-디스카우가 아닌 나만의 프라이를 듣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프라이의 슈베르트 유명 가곡을 모은 LP를 만족하며 들었던 것도 한몫을 했죠.

서교동에 살았기에 가장 보편적인 음반 구입처는 신촌 현대백화점 근처에 있던 <목마 레코드>였지만 저는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 가능한 다른 곳에서 음반을 구입했고, 그 중 하나가 당시의 <크리스탈 백화점>에 있던 레코드점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홍대 쪽의 레코드점의 단골이셨고, 나중에는 그곳에서만 음반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고등학생 신분에 세장짜리 박스를 구입하는 건 제법 큰 지출이었지만 용돈을 모아 의기양양하게 헤르만 프라이의 슈베르트 연가곡집을 달라고 했습니다. 헌데 주인아저씨께서는 프라이는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피셔-디스카우의 세트를 추천하셨습니다. 프라이에 비해 더 훌륭한 연주고 연가곡 세트의 바이블이라면서. 하지만 마음먹은 바도 있었고, 주인아저씨께 설득당하기도 싫었던 저는 피셔-디스카우는 이미 가지고 있어서 프라이를 찾는다고 거짓말을 했고,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이냐며 고등학생이 피셔-디스카우가 있는데도 또 다른 세트를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아무튼 그곳을 나와 신촌 인근의 레코드점을 돌며 프라이의 슈베르트 세 개의 연가곡 박스를 찾아다녔지만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방황하다 결국은 피셔-디스카우를 구입했죠. 물론 해놓은 거짓말이 있어 크리스탈 백화점의 가게에서 구입하지는 못하고 다른 곳에서 구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슈베르트 세 개의 연가곡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냥 한켠에 모셔져 있는 피셔-디스카우 / 무어의 슈베르트 연가곡 LP세트 (성음 레코드 라이센스)



[제목의 번역에 대하여]

슈베르트의 첫 연가곡인 <Die schöne Müllerin>의 번역은 흔히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로 통일되어 있습니다만, 이 제목은 사소한 오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물방아>와 <물레방아>는 전혀 다릅니다. 둘다 물의 낙차를 이용해 방아를 찧는 것은 동일하지만, 물방아는 한쪽에는 방아가 다른 한쪽에는 물통이 달려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시소처럼 작동합니다. 반면 물레방아는 수차를 이용하여 방아를 찧는 구조로 되어 있죠. 따라서 이 연가곡집에서의 방앗간은 물방앗간이 아닌 물레방앗간입니다. 서양은 방앗간에서 늘 수차방식을 사용하고 가사에도 수차에 대해 이야기하니까요.
 

물방아와 물레방아 - 달라요, 달라~!



다음은 꾸밈말의 어순인데, 아가씨가 아름다운 것이지 물레방앗간이 아름다운 건물인 것이 아니기에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가 아니라 <물레방앗간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맞습니다. 독일어 <Müllerin>은 한 단어라 깔끔한데 (이렇게 마구마구 붙여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독일어의 특징이죠) 우리말로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 보니 발생하는 이 문제는 말 꾸밈의 어순 말고도 미묘한 의미도 있습니다. 노래에서는 방앗간에서 일하는 여자 직공이 아닌 방앗간집 딸을 의미하기에 <물레방앗간집 아름다운 아가씨> 정도가 더 맞는 번역입니다. 처녀, 소녀 등의 번역도 가능하지만 주인공이 도제이고 상대는 주인집 딸이니 <아가씨>라는 번역이 적절하구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시대와 캐릭터]

주인공은 방앗간 도제입니다. 당시 도제 시스템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얻어먹으며 기술을 배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공부조차도 이렇게 이 교수 저 교수에게 이것저것을 배우며 대학을 전전하다 학위를 받는 전통이 있죠. 주인공도 첫곡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과감하게 지금의 방앗간에 작별을 고하고 길을 나섭니다. 방앗간 직인이니 당연히 물길을 따라가면 새로운 방앗간을 만날 것이고 또 그렇게 됩니다만, 문제는 이번에 취업한 방앗간집에는 어여쁜 딸이 있었던 거죠. 더구나 주인마님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일과 후 행사에 딸도 참석하는 것을 볼 때, 이 딸은 죽은 안주인을 대신해 직인들을 챙기기도 하는 안주인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주인공은 이렇게 생활력 강하고 어린 나이에 세상물정을 터득했을 방앗간집 딸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삶은 방앗간을 떠돌며 기술을 익혀 독립하거나 조건 좋은 방앗간에 정착해야 할 운명입니다. 자기 밥벌이도 힘겨워 가정을 꾸미기는 언감생심이죠. 더구나 주인공은 노동자보다는 시인에 가까운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주인집 딸에 대한 사랑도 현실적이기보다는 낭만적이고 몽상적 입니다. 연가곡 전체를 통틀어 단둘이 있게되는 것은 단 한번 뿐인데, 이 경우에도 주인공은 혼자 흥에 겨워 그녀와 나란이 물가에 앉아 흐르는 냇물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에요. 더구나 이 베르테르적인 친구는 어느 순간 물속에 비친 아가씨의 모습과 주변 풍광에 빠져버리고 결국은 그 물 자체의 매력에 빠져 곁에 있는 아가씨를 잊어버릴 뿐 아니고 자기 감정에 빠져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아가씨는 비를 핑계로 집으로 가버립니다. 이런 상황에도 주인공은 자기흥에 겨워 아가씨는 자기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전형적으로 실체가 아닌 자기가 상상하는 <아가씨> 이미지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들뜬 풋내기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청년은 <알론사>가 아닌 <둘시네아>를 사랑한 겁니다. 이런 풋내기 도제와 주인집 딸, 특히 어머니 대신 안주인 역할도 해내고 있는 그녀가 어울릴리가 없습니다. 결국 그녀는 제대로 밥벌이하는 생활인 사냥꾼을 사랑하게 되죠. 이 와중에도 작품 전체를 통털어 주인공은 방앗간집 딸에게 단 한마디 직접 말로 전달하지 않고, 시냇물 등과 같은 자연에게 전달을 부탁하는 극히 낭만적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구애를 합니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주인공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방앗간집 딸입니다.

이 연가곡을 부름에 있어 성악가는 객관적 위치에서 내레이터가 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젊은 청년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의 캐릭터도 감정에 휘둘리는 여리여리한 청년에서 그래도 방앗간 몇 곳에서 경력을 쌓은 낭만적이지만 견실한 직업인까지 다양하게 묘사할 수 있죠. 다만 과거에 비해 현대적 해석은 점점 <극적>인 해석으로 변하고 있는 추이인 듯합니다.

[몇몇 음반들에 대한 소감]
 
오랜만에 집에 있는 방앗간의 아가씨 음반들을 다시 들어보았습니다. 여러 음반을 며칠에 걸쳐 들으면, 들으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느끼게 되고, 이게 다음 음반을 듣는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제가 먼저 들었던 음반을 지금 다시 들었을 때도 같은 평가를 내리게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아래의 소개는 참고로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제가 언급하지 않은 음반들이 많지만, 타이달 음원까지 다 들어가며 비교 청취를 하기에는 시간도 열정도 좀 부족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피셔-디스카우 / 제랄드 무어 (DG)
슈베르트의 가곡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첫 추천에 오를 음반입니다. 처음 음악을 듣던 시절에는 어떻게든 피하려 했던 피셔-디스카우지만 결국 저는 LP는 물론, CD시대에 와서는 슈베르트의 남성가곡을 21장으로 정리한 세트도 구매하였습니다. 이 음반은 독일 가곡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음반으로, 유일한 단점이라면 제 경우처럼 너무 유명하기에 들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조차 식상하게 느낀다는 점일 겁니다.

헤르만 프라이 / 카를 엥겔 (필립스)
건실하지만 그래도 놀 줄은 아는 방아꾼을 잘 표현한 음반이며, 따듯한 바리톤 음색은 지금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피셔-디스카우와 비교하자면 치밀하기보다는 술렁술렁 넘어가는 부분이 많습니다만, 이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인 음반입니다.

페터 슈라이어 / 언드라시 쉬프 (데카)
곡의 특성상 물레방앗간 아가씨는 바리톤보다는 테너가 더 어울리는데, 테너 음반 중 가장 모범적인 음반이 슈라이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친구가 아닌, 섬세함과 견실함이 적절히 조화된 방앗꾼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절가곡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각절의 미묘한 뉘앙스가 잘 살아 있습니다. 특히 쉬프의 다소 묵직한 베젠도르퍼 피아노와의 조화는 정말 오묘합니다.
 
프리츠 분더리히 / 헤르베르트 기센 (DG)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들을 때 가장 듣기 좋은 음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충분히 싱싱하고, 충분히 견실하고, 충분히 낭만적이면서 음성도 아름답습니다. 이런 수준의 음반을 들으면 노래의 매력에 빠져 테크닉, 소소한 뉘앙스가 다소 아쉽다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단점이라면 피아노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인데, 자기를 내세우지 않아도 요소요소를 채워주며 분위기를 몰아가는 (보스트리지 음반에서의) 그레이엄 존슨의 <중용>과는 다른 평범함이 아쉽습니다.  

이언 보스트리지 / 그레이엄 존슨 (하이퍼리언) + 이후의 음반 2종
첫 발매 시 보스트리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기념비적인 음반이죠. 지금 들어도 여리여리하고 낭만적인 방앗꾼의 섬세한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한 음반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에 과장되지 않고 모범적인 그레이엄 존슨의 피아노가 청년의 비극을 담담히 몰고 가는 매력이 있습니다. 보스트리지는 2005년에 우치다와 2020년에는 지오르지니와의 실황 음반을 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스트리지의 목소리도 성숙하고 표현은 더 극적으로 변했는데, 저는 테크닉의 섬세함과 지적이지만 과시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지닌 하이퍼리언 음반을 가장 선호합니다. 참고로 이 음반에는 뮬러의 시에서 슈베르트가 작곡하지 않은 작품들이 피셔-디스카우의 낭송으로 담겨있는데, 피셔-디스카우는 하이퍼리언의 슈베르트 가곡 시리즈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녹음장소인 베를린의 지멘스-빌라의 수해, 이어진 은퇴로 가수로서는 참여치 못한 아쉬움을 낭송자로서 달래줍니다. 
 
크리스티안 게르하허 / 게롤트 후버 (소니)
뮬러의 시중에서 작곡되지 않은 시들도 낭송으로 넣은 음반으로는 보스트리지의 하이퍼리언 음반이 유명하지만, 게르하허의 두번째 음반에도 게르하허 본인의 목소리로 낭송이 들어있습니다. 게르하허는 바리톤이지만 가볍고 밝고 맑은 목소리라 테너와 바리톤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피아노의 견실한 협연 위에 극적 표현보다는 낭송자의 포지션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낭송 속의 다채로운 변화와 리듬으로 기가 막힌 구연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극적이고자 하지 않아도 이 리듬감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전달자는 후세의 전달자 느낌이 아니라 방앗꾼과 함께 일하면서 직접 그 사건을 목격했던 동시대 사람이라 생각될 정도입니다. 잘 만들어진 오디오북과 같은 음반!  

요나스 카우프만 / 헬무트 도이치 (데카)
아마 호불호가 가장 큰 음반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방앗꾼의 이야기를 거의 이탈리아 오페라 수준으로 감정을 끌어올려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 듯한 가창을 들려줍니다. 곳곳에 레치타티보 같은 구절이 있음을 생각하면 카우프만의 해석이 아예 근본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카우프만의 방앗꾼은 극히 낭만적이고 혼자 사랑의 열병에 들뜨지만, 보스트리지처럼 내성적이지 않고 오페라 주인공처럼 처연하게 사랑과 비극을 노래합니다. 헬무트 도이치의 피아노는 이 극적 감정을 더 고양하려는 듯 감정의 진폭이 큰 연주로 시종일관 카우프만과 조화를 이룹니다.

마티아스 괴르네 /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아르모니아 문디)
하이퍼리언 슈베르트 가곡 시리즈(겨울 나그네)로 탄생한 또 한 명의 스타 괴르네의 물레방앗간 아가씨는 극단의 템포와 절대미를 자랑하는 레가토가 가장 눈에 띕니다. 특히 느린 곡에서는 한 없이 늘어진 템포로 노래하는데, 유절 가곡에서는 이게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유절 가곡의 특성상 미묘한 뉘앙스의 조절로 지루함을 덜어야 하는데, 괴르네의 노래는 너무 처져서 아름답지만 좀 지루하게 들립니다. 다행인 건 에센바흐의 피아노가 감정의 기복을 잘 표현해 준다는 것인데, 그의 피아노는 시종일관 가수를 리드하면서 방앗꾼을 죽음에 이르는 흑막으로 기능합니다.
 
크리스토프 프레가디엔 / 마이클 기스 (메디치 아츠) + 음반 2종
프레가디엔은 음반도 있지만, 제 추천은 DVD입니다. 프레가디엔은 90년대 스타이어의 포르테피아노 협연(DHM)으로, 이 DVD실황이 녹화되기 직전에 마이클 기스와 스타인웨이(챌린지 클래식스)로 녹음한 바 있습니다. 세 녹음 다 제법 빠른 빠르기와 프레가디엔의 늙지 않는 목소리로 젊은 방앗꾼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스와의 두 녹음은 꾸밈음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 데, 지나치거나 과시적이지 않으면서 음악에 생기를 더 해주고 있습니다. 두 종의 음반도 좋지만 메디치의 DVD는 실황/영상이라는 특수성 덕인지 방앗꾼의 <간증>이 되어 직접적으로 청자에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습니다. 게르하허의 음반이 동시대 동료의 찰진 증언이라 한다면 프레가디엔의 공연은 방앗꾼이 연옥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마크 패드모어 / 폴 루이스 (아르모니아 문디)
저는 항상 패드모어의 음색을 좋아했습니다. 이번 음반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때로는 부드럽고 여리게, 때로는 충분히 열정적이고 강하게 감정의 진폭이 큰 노래를 만족스럽게 들려줍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실린 디테일과 뉘앙스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 더 눈에 띄는 것은 폴 루이스의 피아노입니다. 그의 피아노는 슈베르트의 독주곡을 듣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연주입니다. 수없이 많이 들은 이 음악의 피아노 파트에서 새로운 뉘앙스와 재미를 발견하게 해 줍니다. 시종일관 피아노가 리드하는 연주인데, 때때로 가곡이 아니라 노래가 딸린 피아노곡을 듣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조금은 과한 부분이 있고, 이점이 이 음반이 지닌 아쉬움입니다.

콘스탄틴 크리멜 / 다니엘 하이데 (알파)
신세대 물레방앗간 음반으로서 매우 만족도 높은 음반입니다. 프라이나 게르하허와는 결이 다르지만 여전히 따뜻한 바리톤 음색으로, 하지만 첫곡부터 충분히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는 노래들 들려줍니다. 어둡지만 기괴하지 않고 암울하지도 않은, 살짝살짝의 꾸밈과 변칙까지 절묘합니다. 하지만 희망과 즐거움 속에서도 죽음으로 이어지는 귀결이 살금살금 보이는 듯한 노래. 보스트리지처럼 여린 감성이 절절하거나 카우프만처럼 과격한 감정을 토로하지 않아도 충분히 현대적일 수 있으며, 조용하고 견실하게 사랑과 고통과 죽음을 그릴 수 있음을 보여준 음반입니다. 겉으로는 건실하고 명랑하지만 가슴속에는 시대의 아픔이 맹아를 틀고 있어 언제건 무모한 선택(자살)을 할 수 있는 비더마이어 시대(어쩌면 지금의) 젊은이의 초상을 기막히게 그려냈다고나 할까요?
[2024.10.03 추가 - 이 음반이 어제 2024년 그래모폰상 시상식에서 가곡부분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네요.]


보너스 1 - 이스틴 데이비스 / 조세프 미들턴 (세인트 존스 캠브리지)
카운터 테너에 의해 녹음된 역사상 두 번째 음반입니다. <그래모폰>과의 인터뷰에 의하면 코로나 록다운 기간 동안 데이비스는 시장과 관객의 요구에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픈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는 생각이 들어 물레방앗간 작업을 시작했는데, 마침 낮은 음역대를 위한 베렌라이터의 새 판본이 출간됨에 따라 프로젝트가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데이비스는 알토 음역대입니다) 이 음반은 물레방앗간 전곡을 듣기 위한 음반으로는 추천할 수는 없지만, 그냥 무시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음반입니다. 느리고 서정적인 노래에서의 데이비스의 음성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연가곡으로서가 아닌 그냥 한곡 한곡을 듣는다면 이 몇 곡의 트랙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기 힘듭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포르테피아노와 합을 맞췄다면 좀 더 섬세한 연주가 빛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보너스 2- 줄리언 프레가디엔 / 디아만트 앙상블렛 (T&F 뮤직)
 

CD발매를 위한 북클릿 표지

 
이미 다른 포스팅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실황녹음 불법복제 전문 레이블 T & F Music에서 발매한 볼프강 렌츠가 슈베르트의 원곡을 앙상블을 위해 편곡한 버전의 음반입니다. 아들 프레가디엔이 노래했는데, 노래도 아버지만 못하고 편곡도 슈베르트의 원곡이 낫습니다. 물론 이렇게 편곡 버전으로 듣다 보면 원곡을 들으면서 간과했던 것을 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냥 뭔가 새로운 맛을 느끼기 위해 한두 번 들으면 좋을 음반입니다. 참고로 최근 줄리언 프레가디엔은 크리스티안 베주이노하우트의 포르테피아노 협연으로 물레방앗간 신보를 냈습니다. 수년전 줄리언 프레가디엔의 피아노 협연 실황을 괜찮게 들었던지라 기대가 되는 음반으로 혹시 들어보게 되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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