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 예술 - 공연

[미술]<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의 인기에 편승한 뭉크와 관련 약간의 사담 [2024.09.11 update]

by 만술[ME] 2024. 9. 11.

[2024.09.11 update]

 

아래 원문에서 와이프의 취향 때문에 전시를 볼 것 같지 않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에드바르 뭉크 :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의 가장 인기작인 채색 판화판 <절규> - 유화판에 비해 너무 작고 <그> 느낌도 별로 안나요...

 

갑작스러운 와이프의 변심은 아마 자신이 앞으로 노르웨이에 가게 될 일은 거의 없으니 그래도 이번 기회에 가보기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의 구성은 극소수의 뭉크 미술관 소장품에 세계 각지의 컬렉션(상당수 개인 컬렉션)을 모아 140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대다수는 판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유화는 정말 극소수) 뭉크가 워낙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작업해 왔기에 <사실상> 같은 작품이 상당수입니다. 판화라 해도 채색 등의 방법으로 다양성을 추구했기에 작품에 따라서는 이런 다양성을 체감하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만,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버전들(유화)이 빠진 상태에서 판화버전들만을 비교하는 건 좀 재미가 반감되더군요. 예를들어 <마돈나>의 경우에도 아래 책표지의 유화버전은 없이 판화버전들로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느끼는 뭉크의 위력은 붓놀림과 색상의 강렬함에서 비롯하고 그렇기에 뭉크 미술관에서 몇시간을 감동하며 작품에 빠졌던 것인데, 이번 국내 전시는 유화보다는 판화중심이기에 제가 생각하는 뭉크의 맛은 느끼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점에서는 와이프는 더 실망한 전시라며 얼마 전 갔던 수원 시립미술관의 <올리비에 드브레 : 마인드 스케이프> 전이 훨씬 더 좋았다는 의견입니다. 

 

 


[기존 원문 : 2024.06.19]

 

 

"내가 19살 때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타이프라이터와 뭉크화집, 라디오에 연결해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이었다."

 

이것은 장정일의 소설 <아담이 눈뜰 때>의 도입부인데 암울한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첫째로 화자는 20대가 아닌 10대, 그것도 무르익을 대로 익은 19살이며 (이것은 단지 육체적 나이일 뿐 아니라 정신적 나이도 의미한다) 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이런 무엇인가 글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욕정은 그의 나이로 미루어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나온 것이며 이 열정으로 인해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헌데 그는 이 표현을 언어로 하지만 (미술이나 음악의 표현양식을 쓰는 것이 아닌데, 그는 결국 대중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표현된 형태는 손글씨가 아닌 타이프라이터를 이용한 활자이며, 이는 그가 현대적인 활자문명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이며 자신의 의식을 객관화하고자 하는 한계에 접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필이 나닌 활자를 이용한 사고의 표현은 표현자와 청취자를 모두 최초의 사고로부터 소외시킨다. 즉, 사고의 객관화는 표현자와 청취자를 모두 <불특정 다수>로 만들어 버린다.

 

뭉크화집 - 표현주의의 선구자이면서 북유럽에 가장 지배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다른 표현주의자들로부터 지역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격리되어 있던 키에르케고르적인 인물인 뭉크의 화집을 가지고 싶었다는 19세 소년의 의식은 그가 우울증적인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뭉크의 <절규(Scream / Cry)> 같은 예로 볼 때 이 아웃사이더는 우울함에서부터 터져나오는 객관화된 의식을 타이프라이터로 쳐(打) 내고 있다. 그는 글을, 그래서 그의 사고를 충격을 주어서 밖으로 돌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가 가지고 싶었던 마지막 물건이 턴테이블이라는 사실은 외부의 소리로부터의 단절, 사상적 고립과 독선을 의미한다. 그는 끊임없이 그의 귀에 음악이 울려퍼지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의 귀에 외부의 소리가 흘러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스스로를 현실로부터 소외시킨다.) 그리고 그가 테이프가 아니고 레코드를 듣는다는 것은 그의 귀에 들려야 할 소리는 인스턴트적이고 단순한 기계적 음향이 아니고 깊게 파인 상처를 긁어야만 울리는 <비명(Scream / Cry )>의 소리 - 영혼의 비명인 <음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아담(Adam, 그는 Bedam이 아니고 Adam이다)이 눈뜨기 위한 조건이다. 

 

1991. 12월 만술이 후배 S에게 보면 편지에서 발췌

 


 

<한가람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이 제법 인기가 있나 봅니다. 저는 와이프가 자기가 관심 있는 전시를 골라 얼리버드 등으로 티켓팅을 하면 따라가곤 하는데, 뭉크는 와이프가 좋아하지도 않고, 더구나 이번 전시의 주력이 판화인지라 갈 생각이 없는 것 같더군요. 따라서 <절규> 너머 무엇이 있는지를 알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목이 <절규 너머>이기 때문인지 정작 <절규>는 (당연하지만) 판화 작품만 왔더군요.

 

다만, 이런 인기 있는 전시회의 관람 방식에 대해 언급을 하자면, 우리 관람객들은 너무나 질서 정연한 나머지 줄 서서 보는 전시가 아닌 경우에도 일렬로 줄 서서 관람하는 분위기인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일렬로 보는 데다, 다들 앞쪽 전시작품을 볼 때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진행속도도 늦어서 막상 뒤편의 전시들은 한가한데, 앞쪽만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관심 없는 작품을 건너뛰어 뒤쪽의 작품을 보려고 하면 마치 줄 안 서고 새치기하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전시회 진행요원이 줄 서서 보지 말고 편하게 보라 해도 다들 줄기차게 줄을 서는 것을 보면 습관인 것 같기는 합니다만, <시체관람>을 종용하는 각종 공연도 그렇고 좀 편하게 예술을 대하는 분위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오래전이기는 합니다만, 뭉크의 작품을 한가하고 편한 분위기에서 본 경험이 있습니다.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서 한나절을 보낼 수 있었고, 평일 오전이었기 때문인지 관람객도 없고 한산했고, 미술관이 크지도 않고 뭉크의 작품만 걸려 있던지라 한 바퀴 돌고 좋았던 작품은 다시 한번 돌면서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뭉크의 몇몇 유명작만 (사실상 <절규>하나 달랑?) 알고 있던지라 <절규>만 보고 딴짓할 생각에 갔는데, 의외로 다른 작품들에도 푹 빠져서 도록까지 구매했습니다. (참고로 제가 갔던 때와 달리 <뭉크 미술관>은 2021년 새로 지은 건물로 이전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에도 들어가는 뭉크의 대표작 <절규(Scream)>은 몇 가지 버전이 있는데,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유화 버전도 각각 1893년과 1910년 두 버전이 있습니다. 이중 1893년 버전은 <노르웨이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뭉크 미술관>은 1910년 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 버전들이 전시하는 입장에서도 헛갈리는지, 위 도록에는 1893년 버전으로 표기되어 있고, 이런 부정확함을 용서 못하는 와이프는 도록에 줄을 긋고 1910년 버전이라 고쳐 놓았습니다. 비록 와이프가 예의를 갖춰 1910 뒤에 <?>를 달아 놨지만, 도록에 나와 있는 <절규>도 1910년 버전이 맞고(버전마다 약간씩 다릅니다), 뭉크 미술관에 있는 버전은 1910년 버전이 맞습니다.   

 

오류 따위 인정 못하는 까칠한 만술처

 

우리가 흔히 아는 유화 버전 말고도, 두개의 파스텔 버전과 석판화버전들이 있습니다. 파스텔 버전 중 하나는 <뭉크 미술관>에 있고, 하나는 소더비에서 2012년 당시 최고가로 개인에게 판매되었습니다. 아무튼 국내에 온 <절규>는 이 네 가지 버전 중 하나는 아니고 석판화 버전으로 석판화 버전은 예전에도 한가람에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뭉크 미술관>을 관람 한 뒤부터는 <뱀파이어(사랑과 고통)>, <불안>, <키스>, <소녀와 죽음> 같은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언젠가 다시 오슬로에서 뭉크의 작품을 본 뒤, 피오르드를 관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