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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게임 - 취미생활

[게임]밀동(a.k.a. 스타크래프트 밀레니엄) 연대기 (3) 에피소드 열전(列傳)

by 만술[ME] 2026. 8. 24.
"이 포스팅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 사건, 조직 등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 사건, 조직과 유사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본 문서의 작성과정에서 단 한 마리의 저글링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지금은 잊힌 역사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을 담고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지난 이야기

밀동 연대기 (1) - 시작, 밀레니엄을 향해

밀동 연대기 (2) - 빛과 그리고 그림자

 

 

 

무한맵, 유한맵, 이상한 맵

 

방송 등을 통해 다양한 맵에서의 경기가 유저들 사이에 보여지기 전까지, 그리고 이후에도 상당기간 가장 사랑받았던 맵은 헌터스 무한맵, 헌터스, 로스트 템플 정도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국민맵들이었죠. 저는 우선적으로 헌터스는 정말 싫어했습니다. 평지에 지형지물이 없는 초기 물량 싸움 외에 특별한 전략/전술이 펼쳐지지 않는 뻔한 맵이었기 때문이죠. 8인 맵이 특별히 없으니 다수가 팀전을 할 때나 가끔 할만한 맵이라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무한 헌터스는 제가 싫어하는 헌터스의 단점을 극대화한 버전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자원이 무한이니 더 전략 없이 물량 승부만 하는 맵이었던 것이죠. 그나마 로스트 템플은 잃어버렸다는 사원의 유적이 맵 가운데 엄청나게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원자체가 흥미로움을 자아내지 못한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했기에 스타리그 공식맵이 나오기 전까지 제법 플레이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많이들 이용하는 맵이라 다들 익히아는 방식의 플레이만을 펼쳤기에 늘 다른 대체제를 희구하기도 했죠.

 

스타리그 공식맵 이전에는 게임에서 기본으로 주어진 다양한 맵을 이용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맵을 이용 해서 배틀넷에 방을 만들면 시작하자마자 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결국은 동호회 회원들끼리만 즐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배틀넷 유저들에게는 다이어스트레이츠 같은 기본맵은 물론이고, 온게임넷 스타리그 공식맵도 '이상한 맵'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블레이즈, 전승신화의 공간

 

초기 온게임넷 스타리그 공식맵 중에 소위 테란맵으로 불리던 블레이즈가 있습니다. 밀동에서도 이 맵을 (스타리그 공식맵의 지위를 유지 하는 동안은) 공식 대회맵으로 사용했습니다. 맵이 멀티를 뛰기도 힘들고, 이동도 제법 시간이 소요되는지라 사실 많은 회원들이 싫어하던 맵이기도 했죠. 다만, 저와 방장(마스터)이던 일명 변태 테란 까목스님은 무척이나 좋아하던 맵이었고요.  

 

 

블레이즈가 처음 공개되자마자 저와 까목스님이 주목한 것은 이 맵은 무조건 건물 띄우기로 언덕 탱크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손놀림 실력은 별로였어도 나름 맵분석력과 아이디어는 좋은 스타일이어서 실제 프로게이머들의 플레이에 앞서 팩토리 띄우기나 초반 투 커맨드센터 띄우기를 먼저 시전 했던 것이 저와 까목스님이었습니다. 물론, 프로게이머들처럼 오랜 수련과정에서 나온 정교한 빌드나 전략은 아니었으니 언덕에 팩토리를 올리거나 하는 일이 오히려 패배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죠.

 

블레이즈에서의 가장 전설적인 게임은 저와 난나고스(Nannagos)님의 제2회 동호회 리그 최종결승전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그는 난나고스라는 아이디부터 "나는 고수(高手)"라는 나르시시스트적 아이디를 사용하는 당시 회사/동호회 자칭 최고수였고, 거의 매일밤 밤새도록 배틀넷을 전전하는 친구였습니다. 7전 4선승제로 치러지던 결승에서 저와 난나고스님은 3:3의 전적으로 마지막 7차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 맵이 블레이즈였습니다. 

 

늘 프로토스를 하는 난나고스님은 당연히 프로토스를 선택했고, 저는 정찰이 쉽지만은 않은 맵의 특성을 이용하고자 과감하게 랜덤을 선택했고, 저그가 걸렸습니다. 기억에 저는 7시, 난나고스님은 5시였던 것 같습니다. 저그나 프로토스나 멀티가 쉽지 않은 맵이라 초반에 결론을 보겠다는 전략으로 둘 다 기본 유닛에 투자를 했고, 당연히 중간에 교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상대 병력수에 밀릴 것 같다는 생각에 저는 교전을 피하면서 저글링과 히드라를 상대 질럿을 회피해 상대 본진으로 보냈고, 상대도 제 움직임에 대응해서 본진 방어보다는 제 본진을 털기로 결심한 듯 본진으로 이동했습니다. 결국 승패는 이 판단에서 이루어졌는데, 질럿이 저그 건물을 부수기보다는 히드라와 저글링이 프로토스 건물 부수는 것이 조금 더 유리하기에 붉게 변한 제 스포닝풀 하나 남긴 상태에서 프로토스의 마지막 남은 게이트웨이를 제가 파괴함으로써 승부를 결정짓게 되었죠. 그리고 동호회 리그 2 연속 우승을 하게 됩니다.

 

이후 한동안 블레이즈는 만술맵이었습니다. 리그에서 전승가도를 달렸거든요. 일부는 그 이유를 제가 멀티를 뛸 시점을 잘 못 잡거나 멀티 관리 능력이 부족한 점, 자원 쥐어짜기에 능한 점이 오히려 멀티와 그 관리가 어려운 블레이즈에서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뿐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냥 특이 지형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감각이 뛰어났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스님이세요? ― 아이디에 얽힌 드렁칡 이야기

 

당시 인터넷은 아이디를 "~님"으로 부르는 것은 물론이고 유행가 가사에나 나올 법한 "님아~"라는 호칭의 적절성 논쟁도 제법 벌어지곤 했습니다. 밀동은 초창기부터 경어사용은 물론, "님아" 같은 표현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동호회 1대 마스터의 아이디는 프리챌에 커뮤니티를 개설한 까목스(Kamox)였는데, 당연히 까목스님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신입회원 중 하나가 이 호칭을 보고 이 동호회의 마스터는 스님이구나 생각했었다고 해서 동호회가 뒤집어진 적이 있습니다. 다들 "까목스님"이라 마스터를 호칭하니 까목이라는 스님이 스타크래프트 동호회를 운영하는 신기한 곳이라 생각했다는 것이죠. 아마 마스터가 스님이시니 나서지 않고 만술이 스탭으로서 실무를 맡는 것도 이해가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배틀넷 아이디야 새로 생성하면 그만이지만, 프리챌 아이디는 실명제 때문에 수정하거나 새로 만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이로 인해 제법 많은 우여곡절이 발생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가입 시의 '오타' 문제였죠. 시저(Caesar)를 Ceser로 적거나 샤프나이프를 Shapknife로 적거나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저야 그러려니 하는데, ShapKnife의 경우는 다들 '삽'(Shovel)나이프로 놀려댈 여지가 있었죠. 사실 메텔님의 경우도 Metel이라는 아이디를 썼고, 다들 메텔로 불렀지만, 원래는 Maetel이 맞는 표기였죠. 남자이면서도 구태어 칼라프가 아니라 투란도트(Turandot)를 아이디로 쓰던 친구도 있었고요. 그리고 이 친구는 유명한 전설적인 음반사인 Turandot & Fox Music의 창업주 중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 한 게임 콜? ― 하나와 콜

 

커플로 동호회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최고의 커플은 하나님(婦)과 콜님(夫) 부부였습니다. 훤칠한 미남미녀 커플에 스타 실력도 좋은 분들이라 다들 스타인의 귀감이라 생각하는 커플이었죠. 오프 모임에도 몇 번 참석해서 많은 회원들에게 부러움을 선사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다들 부부가 스타를 좋아하니, 특히나 유부남 입장에서는 정말 부러운 일이라 말하는 와중에 약간 시니컬하게 답하시던 하나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얘기인 즉, 부부가 모두 스타를 좋아하는 것이 꼭 장점만은 아니다 둘 다 게임을 하고 싶은데, 집에 PC는 한 대이니 누가 게임을 할 건지 가지고 다툴 때도 많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0여 년 전 오프라인에서 부부를 보며 느꼈던 극히 개인적인 인상은 부부가 무례한 적도 없었고, 함께 웃거나 대화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미묘하게 동호회에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뭐랄까, 그냥 게임 동호회 모임이 아니라 주말 호텔 브런치 카페의 단출한 모임에서 함께 했다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든 거리 ― 오프라인의 온도


반면에 첫 만남에서부터 늘 보던 후배처럼 저나 다른 회원을 대하던 분도 있었습니다. 여성 회원이었는데, 오프 모임에서 저나 까목스님을 정말 거리감 없이 대하더군요. 사람 간의 정보의 비대칭이 친밀감과 관계의 비대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은 계기였습니다. 담배 사러 편의점에 들른 유명 교수에게 알바생이 "교수님 아직도 담배 피우세요?"라고 물어서 심리학자임에도 불편했다는 이야기와 유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 낮던 시절이라 그럴 수도 있었지만 손을 잡거나하는 의도치 않은 신체적 접촉을 아무렇지 않게 자주 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보다 훨씬 성숙지 못한 30대였기에 그랬겠지만, 손을 잡거나 하는 행동이 조금 불편했고, 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미세한 벽을 치며 차단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상 동호회의 최고 운영자였기에 이 회원을 좀 더 책임감을 지니고 잘 보듬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매우 밝고,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던 좋은 성향의 한 인격이 나중에는 동호회의 이런저런 사건 속에서 상처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안 뒤에, 이 초기의 만남에서 제가 조금 더 성숙하게 감싸 안고, 함께 대화하고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갔다면, 매 순간 어려움이나 사건 사고를 막아주거나 함께 헤쳐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듭니다.  

 

까목스와 만술 ― 최악의 파트너

 

동호회의 마스터이던 까목스님과 저는 친한 것과는 반비례로 게임에서는 상성이 맞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팀플레이를 하는 경우에 서로 타이밍을 맞춰 공격하거나 상대방을 도와주거나 하는 데 늘 엇박자를 보였고, 게임에 지고 나면 늘 상대 탓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이벤트로 팀플레이 대항전도 하곤 했는데, 저와 까목스님의 성향을 잘 아는 회원들이 저희가 파트너로 게임에 참여를 하면 저희 둘에게 농담으로 조언을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팀플레이를 할 때 시작과 동시에 같은 편은 서로 동맹을 맺고, 비전(시야)을 공유하곤 했는데, '동맹'은 유닛들이 서로를 같은 편으로 인식해서 공격을 안 하는 기능이었고, '비전'은 상대방이 보는 내용을 팀원도 볼 수 있게 공유하는 기능이었습니다. 까목스님과 저에게 주던 조언은 이 두 가지 중 '동맹'은 맺되, '비전'은 공유치 말라는 것이었죠. 둘은 워낙 손발이 안 맞으니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면서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플레이하는 것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농담이었습니다. 

 


 

밀동에는 개성 넘치는 회원들이 많았기에 열전(列傳) 한 편으로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모이면 2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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