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슈 게이브리얼과 데이비드 페리의 2024년 원작을 번역한 맹세를 깬 자들 - 프랑크 제국과 중세의 운명을 바꾼 형제들의 전쟁(최파일 옮김 / 까치)은 올해 초 번역본이 출간되자마자 읽었는데, 서양 중세사와 비잔티움 역사 공부의 간주곡으로 6개월 정도만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프랑크 제국의 성립과 부-자 / 형-제 간의 대립에 의한 분리에 대해서는 이미 공부한 바 있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기 전인 연초와 비교해서 뭔가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내심 했지만, 책의 내용이나 해당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책의 성격부터 명확히 하면, 두 저자가 전문적인 역사학자이기는 하지만,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전작 빛의 시대, 중세와 마찬가지로 이번 책도 전문적인 학술서적은 아니고,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 자체도 정치사에 한정되어 있어 카롤링거 르네상스 같은 문화적 이야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수많은 카롤루스, 피피누스, 루도비쿠스가 등장하는 카롤루스 왕조 성립부터 베르됭 조약까지의 다양한 사건을 당대와 후대가 말하는 진실의 빈틈(그들이 말한 이야기 /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 /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까지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이 책의 장점은 앞서 말한 진실의 세 층위를 다루면서 저자들이 결코 심한 비약을 하거나 흥미를 위한 과격한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사서로서의 모범을 지키며 철저히 사료에 기반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역사의 진행 속에 묻힌 이야기는 그 공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층위를 넘나드는 기술(記述)에도 산만하거나 빈틈이 보이지도 않고 물 흐르듯 복잡한 역사를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책의 단점은 이 책을 읽는 것 만으로는 카롤루스 왕조 시기의 시대상을 알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민중의 삶은 물론 책의 주인공들의 삶조차 묘사되지 않습니다. 역사 소설이 아니기에 철저하게 캐릭터는 배제되고 그 점이 독자에 따라서는 이 흥미진진한 역사적 과정이 지루한 배신의 반복으로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카롤링거 르네상스는 물론, 프랑크 왕국 밖의 이야기도 언급되지 않아 책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세계사의 한 장면으로 바라보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점들은 애초에 저자들이 책을 기획하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며, 책의 목적도 아니기에 이런 불평을 하기보다는 다른 책에서 아쉬운 점을 채우고, 이 책에서는 앞서 제가 언급한 장점을 최대한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두 저자는 그 일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기도 합니다.
과거 제가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우던 시절에는 카롤루스 마르텔루스 - 피피누스 3세 - 카롤루스 대제 - 베르됭 조약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서양 중세사의 중요한 한 장면으로 '시험에 나오는' 단락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리 친숙한 이야기는 아니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책의 원제인 중세 유럽을 만든(Made Medieval Europe) 이야기를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그 사건들이 향후 사양 역사의 상당부분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제법 영양가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용도 출판사 홍보대로 현실판 왕좌의 게임이라 할 수 있게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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