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 사건, 조직 등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 사건, 조직과 유사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본 문서의 작성과정에서 단 한 마리의 저글링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지금은 잊힌 역사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을 담고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추억은 추억 속에 묻어두는 것이 좋을지 모릅니다. 당시 가장 어렸던 회원도 이제는 50에 가까울 것이고, 대부분은 50을 넘었을 것입니다. 이제 와서 사이트조차 사라져 왜곡된 각자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삶에 있어서 학교나 직장을 떠나 다수의 사람들과 모종의 관계를 유지했던 유일한 '사건'을 꺼내어 반추해 보는 것은 이 글이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될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이 반추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충분한 동기가 부여되기는 하지만, 동시대성을 갖는 모종의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해봅니다. 아니면 동회회 내의 권력 다툼을 다루는 왕좌의 게임 스타일의 기록이 될지도 모르죠.

모든 일의 시작 - 스타와 함께
아주 오래전, 젊은 대리시절이었습니다. 친구처럼 지내는 회사 동료가 끝내주는 게임을 찾아냈다며 소개한 것이 스타크래프트였습니다. 국민 게임이 되기 전이라 회사에서도 일부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직원은 있었지만, 최소한 회사에서는 그리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게임이었죠. 당시 문화가 그렇듯 불법으로 회사 PC에 깔아서 미션을 해보고는 오리지널과 브루드워를 구입했습니다. 주로 테란부터 시작하는 미션을 하면서, 가끔 그 동료와 IPX 게임을 하면서 즐겼죠. 그리고 한순간에 스타크래프트는 국민게임이 되어갔습니다.
이 시절 하이텔이나 천리안을 넘어 웹기반의 커뮤니티(요즘은 네이버 덕에 카페라는 명칭이 더 어울리죠)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챌이 론칭하면서 저와 그 동료는 프리챌의 잠재성에 주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 홈페이지에 관심을 갖던 시절에 제법 자유도가 있는 개인 홈페이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저는 지금 블로그인 뮤직, 아츠 & 라이프의 전신인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그 동료는 스타와 함께라는 아이돌 팬클럽 이름 같은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프리챌 구석에서 비주류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커뮤니티에 방문객이 있을 리 없었고, 오히려 스타크래프트는 당시 한창 뜨는 키워드였으나 정작 그 커뮤니티를 만든 친구는 의욕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가 마스터 지위를 유지하면서 제가 스탭이 되어 직장 내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직원들을 포섭해서 면접적으로 서로 이야기하면 될 일을 커뮤니티를 통해 소통하도록 했습니다.
회사의 직원들 10명 정도를 포섭한 뒤, 상품을 걸고 대회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1회와 2회 대회에서 제가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죠. 이런 과정에 게시판에 글도 쌓이고, 누가 와서 봐도 활성화된 동호회 느낌으로 보일 수 있게 되자 당시 하이텔의 게오동 같은 곳에 성인/직장인을 위한 스타크래프트 동호회를 표방하면서 홍보했습니다. 프리챌의 실명제를 이용한 성인/직장인이라는 제약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내서 회사 직원 외에도 가입자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비교적 회사비용 지출에 여유 있던 직장이라 대회 상품도 걸거나 모임의 비용도 저나 다른 서브 스탭이 부담할 수 있었죠.
스타리그 -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동호회로
동호회의 가장 큰 행사는 온게임넷의 스타리그를 벤치마킹한 동호회 스타리그였습니다. 리그 맵은 당연히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공식맵을 사용했는데, 이때도 저작권에 대한 치밀함 때문인지, 아니면 홍보수단을 위해서였는지, 사실 둘 다 있었지만, 공식맵을 디자인한 (당시 해설로 유명했던 만화가) 엄재경 님께 허락을 받아 사용했습니다.
직장인들이 스타크래프트에 미쳐서 살았던 시절이었던 덕분에 살인적인 리그전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자가 많은 경우에는 리그를 나누고, 그 리그 내에서 공식맵(주로 5개)을 모든 리그 선수들이 소화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만약 한 리그에 8명이 속해있다면 5*7=35번의 게임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인터리그 룰도 만들어 5개의 맵 중 하나는 다른 리그 선수와 하는 방식으로 너무 치중된 게임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한 회원은 우리가 프로게이머 보다 더 많은 게임을 소화한다고 웃으며 투정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 리그전의 우승의 장점은 시드배정에 있을 뿐이어서 리그 꼴찌라도 3판 2선 승제의 게임을 바로 윗순위의 회원과 해서 이긴다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해서 같은 방식을 반복하면 리그 최종 우승자로 리그별 우승자 간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2개 리그로 운영되는 경우에는 우승과 준우승자가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4강을 결정해 토너먼트를 진행하거나 리그별 4강까지를 뽑아 8인 토너먼트를 했습니다. A리그 우승자는 B리그 준우승자와 준결승전을 하는 방식이죠. 참가자 숫자에 따라 대회룰은 약간씩 수정되고, 의외의 다크호스를 만들기 위해 리그 우승/준우승자를 가르는 라운드는 하위순위에서는 단판으로 결정하기도 해서 때로는 4/5드론이나 3 게이트 질럿러시 같은 모 아니면 도 전술로 기적적인 결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강남역의 성지 - 넷츠고 PC방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결승 토너먼트는 오프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장소는 지금은 프리챌만큼 잊힌 온라인 서비스인 넷츠고에서 만든 일종의 플래그쉽 스토어형 PC방인 강남역 NET였습니다. SKT의 야심 찬 서비스(나중에는 네이트로 병합)에서 만든 PC방답게 장비나 인테리어, 서비스가 좋았습니다. 기억에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지상 1층은 서비스 데스크와 체험존으로 누구나 데스크에서 임시 카드를 발급받아 30분 정도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었고, 2~3층은 전형적인 PC방이었습니다. 최고의 장소는 지하였는데, 대규모~중소규모까지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저희는 지하를 대여해서 오프모임을 하고, 결승 토너먼트를 진행했습니다. 승패에 지장이 없도록 옵저버를 별도로 접속하게 해서 게임을 구경하는 공간은 다른 곳에 두기도 했죠.
오프 모임에서는 급조된 대회를 하거나 이벤트성 게임을 하기도 했고, 여유 있던 회사 덕에 이런저런 상품을 나누어주고, 저녁도 함께 했습니다. 이벤트성 게임은 주로 남-녀 2:2 또는 free-for-all , 초보를 깍두기처럼 끼운 3:2 같은 노골적인 핸디캡 경기 등 배틀넷에서 잘 즐길 수 없는 종류의 게임이었습니다. 남-녀 2:2의 경우나 3:3의 경우에도 일반적인 룰 보다 제가 발명한 공주와 기사 방식으로 했는데, 각 팀별로 여성 플레이어 또는 초보를 한 명 끼워 넣은 뒤, 게임의 승패는 그 플레이어가 엘리 당하면 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즉, 기사들은 자신들의 본진이 털려도 공주의 보호가 최우선인 게임 룰이죠.
NET는 정말 강남역 일대 직장인들에게는 성지였습니다. 이곳에서 온라인에서 알게 된 타 동회회 회원분들과 오프라인으로 알게 되었고, 스타크래프트의 살아 있는 전설이던 기욤 패트리를 현역시절에 소개받아 얘기하고 게임도 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밀레니엄 - 이렇게 무성의한 개명이라니!
이번 회차를 마무리하면서 동호회 이름이 왜 스타크래프트 밀레니엄, 줄여서 밀동이 되었는지는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00년은 동호회 회원도 많아졌고, 제가 수석 스탭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섭정(攝政)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메로베우스 왕조 후기의 카롤루스 마르텔루스를 생각하면 될 듯하고, 정치적 영향력은 이광요 수상의 전성기 정도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동호회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제가 답을 했고, 그것으로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죠.
당시 동호회에는 재미 삼아 시작한 MansurFox라는 제 배틀넷 아이디에서 파생된 소위 폭스파 / 폭스가문이라는 사조직(?)이 있었습니다. 어떤 여성(!) 회원들로 인해 시작된 아이디에 SexyFox, NippenFox 같이 Fox를 붙이는 유행이었는데, 동호회 게시판에서만 재미로 방장의 권한을 찬탈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집단이라는 '기믹'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 회사 PC의 OS문제로 전산실에서 설치한 OS가 신제품인 윈도우 밀레니엄 에디션(Window Me)이었고, 이 사실을 재미 삼아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면서 이제 저 자신도 밀레니엄 시대에 맞춰 업그레이드해서 앞으로는 MansurFox[ME]로 부르겠다고 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소위 폭스파들이 덩달아 아이디에 [ME]를 붙이고, 폭스 가문 밖의 사람들도 유행처럼 [ME]를 붙이기 시작했고, 이 기회에 '스타와 함께라면'이라는 요상한 동호회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도 생기더니 결국은 투표를 통해 '스타크래프트 밀레니엄'으로 동호회 이름을 바꾸고, 배틀넷 아이디도 동호회를 표시하는 [ME]를 붙이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 블로그 옛글을 보면 MF[ME]라고 서명한 글들이 보이는 이유입니다.)
정식 명칭이야 스타크래프트 밀레니엄이지만, 부르기에는 너무 길기에 다들 밀레니엄 동호회로 부르다가 결국은 줄여서 밀동으로 불러 외부에는 밀동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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