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크, 참을 수 없는 기침의 불편함에 대하여
인터넷의 유명 음악 동호회를 보면, (저는 공연후기는 거의 읽지 않습니다만) 인기 있는 공연 후기 중에 연주회의 감동을 이야기하는 글보다 소위 관크(관객 크리, 공연 중 감상에 방해되는 관객의 행동)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 더 많아 보일 정도입니다. 저도 가능하면 조용하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연주회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올라온 글을 보면 요즘의 관객은 너무 예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관크를 이유로 연주를 중단하고 나가버리거나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내는 연주자들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건 그 연주자의 성격문제라 생각하는지라 연주 중간에 연주자를 나가라고 야유하거나, 노골적으로 전화통화를 하거나 연주회는 안 듣고 유튜브를 보고 있거나, 자리에 높은 방석을 깔고 앉아 뒷사람 시야를 가리거나 앞사람 의자에 발을 올리거나 하는 등 상식선을 넘어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많이 지적되는 기침, 악장 간의 박수, 안다 박수, 핸드폰 떨구기, 예기치 못한 벨소리 같은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너그럽게 그냥 실수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를 겪었을 때 제가 민감하지 않은 것인지, 불쾌하기보다는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여기곤 했습니다. 때로는 오늘은 아닌가 했더니 역시나구나 하는 생각에 오히려 미소를 짓는 경우도 있었죠.
경험상 작은 해프닝들은 관객의 상대적인 숫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명 공연장에서 열리는 연주자의 비싼 연주회 보다 (클래식 음악에 그리 관심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주로 지인들을 초청해서 여는 소규모 연주장의 귀국연주회 같은 곳이 더 덜 일어나는 것을 보면, 관크가 꼭 클래식 음악에 대한 소양과 연관이 있다기보다는 마음가짐에 있는 것 같기에 다들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소위 말하는 관크를 예방하기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관크에 대한 이런저런 경험담을 보면 순수하게 비매너나 감상 방해에 대한 불만보다는 내면에 묘한 심경이 들어 있는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자신이 지불한 비용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낭비되었다는 생각이죠. 다른 사람의 방해로 자신이 지불한 값비싼 연주회나 공연의 대가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또는 그것을 강탈당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보면서 제가 관크에 너그러운 것과 어떤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의 차이에는 단순한 관용도를 너머서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관크를 연주자-관객들을 아우르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공동체에 대한 해악의 정도로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이 지불한 돈에 대한 대가의 강탈의 정도로 판단한다는 것이죠. 돈과 시간을 들였다면 반드시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뽕을 뽑아야 한다'는 문화라고나 할까요?
맛집 - 점심식사를 오후 네시에 해도 옆집은 못 가지
공연장에서 발견했던 이 심리는 비단 연주회장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불한 돈과 시간만큼 반드시 최고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은, 맛집을 소비하는 우리의 방식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됩니다.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보는 맛집 열풍은 이 욕망을 넘어선 듯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여기에도 단순히 맛있고 좋은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을 넘어선 지불한 금전에 대한 정당한 대가에 대한 강박이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종 가이드북, 인터넷에는 어디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먹기 위해 가야 하는 식당의 리스트가 넘칩니다. 저도 여행을 준비할 때 이런 리스트를 참고합니다. 다만, 특정한 맛집에 가기 위해 일정을 짜지는 않고, 가고 싶은 장소와 연결이 자연스러운 경우에 한해 일정에 넣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길게 늘어선 줄을 보게 됩니다. 서울/수도권의 경우라면 예약이 가능하겠지만, 지방의 경우에 이런 맛집은 줄 서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나 저희 가족의 선택은 명확합니다. 같은 메뉴를 제공하는 옆집을 간다. 보통 이런 유명세를 치르는 맛집 인근은 유사한 식당들로 일종의 타운이 조성되어 있고, 특정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식사시간에도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줄을 설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찾아간 me2 식당의 경우 원조 맛집의 맛이 100이라 한다면 못해도 80점이거나 보통은 90점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는 원조보다 저희 가족에게는 더 취향일 때도 있었고요.
물론, 이 옆집의 선택이 꼭 비등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50점일 수도 있겠지요. 유명한 맛집을 선택하는 것이 그 옆집을 선택하는 것보다 성공과 만족의 확률을 높여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돈과 시간을 들여 실패 없는 최선의 결과만을 얻겠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계획된 경로 이탈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꽉짜인 방식은 여행의 진짜 매력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뜻밖의 맛과 친절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잊게 합니다.
여행 - 패키지 보다 더 촘촘한 일정
예전에 일부만이 즐기던 자유여행이 이제는 각종 정보의 풍요와 간단한 온라인 예약 시스템 덕에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자유여행객의 모습을 보면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은 여행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패키지여행이 여행사의 선택에 끌려가는 일정이었다면, 자유여행 중에도 평점이나 후기에 끌려가는 듯한 일정도 많아 보입니다. 반드시 가야 할 곳, 먹어야 할 것, 사야 할 것, 해야 할 것으로 넘치는 일정 말입니다. 그리고 체크포인트를 찍듯 그 반드시를 달성하기 위해 때로는 패키지여행 보다 더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기도 합니다.
전에 제가 생각하는 자유여행의 장점에 대한 글을 올린 바 있는데, 체크포인트형 자유여행은 이 장점들의 많은 부분을 놓치게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여행객이 이런 자유여행의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지불한 금전이나 시간에 대한 대가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 작용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지불한 금전의 대가에 대한 강박에서 놓치고 있는 것
누구나 자신이 지불한 비용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더 나아가서 그를 상회하는 대가가 주어지기를 희구합니다. 저라고 예외는 아니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차원의 대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예상치 못한 의외의 사건이 주는 매력과 행복이 있습니다. 사람은 기대하지 못했던 대가에 더 만족을 느끼기 마련인데, 자신이 생각한 대가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강박은 이런 기대치 않은 대가의 기회를 소거합니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면 예기치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수없이 보아온 로맨틱 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은 일생의 단짝을 만나려는 강박적인 계획에 의해 발생하지 않고 여행지에서의 작은 실수나 사건, 하다못해 가벼운 충돌이 아니었던가요?
딸아이가 초등학생 시절에 가족과 함께한 파리 루브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모나리자가 아니고 아침부터 몸이 안 좋던 딸아이가 니케상 앞에서 토하고, 그걸 다행히 준비해 간 비닐에 받고 있는 모습을 옆에 루브르 직원이 (아이 걱정보다는) 한 방울이라도 바닥에 흘릴까 지켜보고 있던 장면입니다. 그날부터 저희 가족은 딸아이를 루브르 3대 걸작 중 하나인 니케상을 파괴하려 한 테러 미수범이라 놀리곤 했죠. 돌이켜 보면 그날 딸아이 컨디션을 생각해서 보고픈 작품을 다 못 보고 루브르를 나온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비닐봉지가 없었고, 와이프가 재빠르지 않았다면 잘하면 SNS에는 "니케상 테러범"으로 우리 딸이 스타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부언하면 니케상은 전시 위치와 전시 방법상 어린아이(어른도)가 쭈그려 토하는 방식으로는 (별도 설치한 기단부라면 몰라도) 테러하기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의외의 사건은 누구나 경험하는 사건 보다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깊이 각인됩니다. 루브르 니케상 테러 미수 사건과 같은 여행에서 오르세를 갔을 때, 딸아이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은 쇠라의 서커스였습니다. 딸아이는 제법 장시간을 서커스를 우선적으로 찾아다니려 했고, 저희 가족은 르누아르, 세잔, 마네 등의 그림은 대충 지나쳐가야 했죠. 그리고 딸은 서커스 앞에서 긴 시간을 체류하며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그림을 보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르세는 같은 여행 기간에 한번 더 방문해야 했죠. 하지만 오르세는 다른 어떤 유명 작품 보다 제게는 쇠라의 서커스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와 오르세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은 다들 이야기하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만종, 올랭피아 같은 작품을 이야기할 때, 쇠라와 서커스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아울러 의외의 사건과 나만의 이야기에 주목할 때 비로소 여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적당한 관크는 하나의 이벤트로 넘기고, 맛집 옆집에서 만족할 만한 메뉴를 찾는 것은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고 또 역으로 우리에게 여유를 선사합니다. 관크 때문에 시종일관 불쾌해하고 있으면, 천상의 연주도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며 줄 서는 대신 옆집의 메뉴로 만족하면 좋은 풍광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시간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체크포인트를 무시하면 여행지에서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박제된 기념사진과는 다른 가족과의 색다른 추억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지불한 비용에 대해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그 와중에 눈치채지 못한 즐거움이나 기회가 왔는데,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는지 살짝 곁눈질을 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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