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오프라인 활동을 하거나, 온라인에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정보를 취하는 것 외에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지만 (제가 취미생활과 연관해 뭔가를 창작하는 공간은 이 블로그가 유일합니다) 그래도 가끔 들어가는 온라인 동호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동호회에는 일종의 인퓰러언서들이 존재하고, 일반적으로 이들은 고가의 장비를 보유하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인퓰러언서의 뜻처럼 일반 동호인의 지향점에 있어 이들의 영향이 지대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지향점이란 것이 결국은 급나누기, 고가의 제품 선호, 같은 종류의 제품 중복 구매인 경우가 많고, 일반적인 동호인이 소비하기 힘든 금액에서 취미생활의 최저점이 그어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오디오로 생각한다면 A제품에 비해 훨씬 고가인 B제품이 한수 위고, B와 비슷한 가격인 C는 성향이 달라 장르에 따라 둘 다 구비해야 하며, 오디오를 듣는다고 한다면 앰프는 최소한 D 정도 가격의 제품은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취미생활인척 하기가 아닌 취미생활을 한다면 위와 같은 이야기는 무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그간 이런저런 취미를 갖고 지내면서 실수하기도 했고, 저도 지키지 못할 때도 종종 있지만, 피하려고 노력하는 함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취미건 다른 취미건 양상은 비슷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1. 취미 생활은 도달해야 하는 최종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꿈이 무엇인지를 말하도록 강요받고, 목표가 없는 인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 속에 일간/주간/월간/분기/연간 목표를 관리하고 달성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에 취미의 영역도 도달해야 하는 목표나 최종 목적지가 있는 듯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만, 취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W를 하면서 들었던 가장 이해되지 않는 말이 "WOW는 만렙부터"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즐겁고 재미있는 레벨업과정과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흥미진진한 퀘스트들이 한낱 부수적인 과정으로 치부되는 것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저는 제 캐릭터의 레벨이 올라 경험치를 별로 안주는 지역의 퀘스트도 가능한 열심히 했고, 만렙이 되어서도 재미 삼아 낮은 레벨지역의 퀘스트도 하면서 보냈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 과정이 제 WOW 생활에 있어 가장 소중한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관련글 1 / 관련글 2)
어떤 최종 목표가 있는 게임에도 과정이 중요하고 핵심요소인데, 취미생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동호회에서는 "한방에 가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취미생활은 그 한방이 목표도 아니고 꼭 도달해야 할 정점도 아닙니다. 오히려 목적지 없는 산책이나 방랑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과정이 더 소중하고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2번 항목과 연결됩니다.
2. 취향은 변하고 그 변화는 경험이 만들어 줍니다.
시간은 취향을 변하게 하고 여건도 변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과 그 시간의 경과에 함께하는 경험이 취향을 만들어 줍니다. 저는 바로크 시대와 그 이전의 음악에 대해서는 시대연주를 선호하고, 거의 시대연주만 듣습니다만, 이것은 제가 카를 리히터의 바흐나, 때로는 카라얀의 바로크도 들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카를 뵘의 모차르트 교향곡을 즐겨 들었고, 그뤼미오나 셰링이 연주하는 바흐를 듣곤 했습니다. 취향이 이런 전통적인 연주에서 시대연주로 선회한 데는 80~90년대를 거쳐 몰아친 시대연주에 대한 시대의 흐름과 대세가 가장 중요했고, 그에 따라 시대연주에 대한 이런저런 책과 글을 읽고 또 좋은 시대연주 음반을 접했던 것, 고음질 음반과 음원의 등장, 더불어 사용하는 오디오의 변화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디오파일 연대기 1편 / 2편 참조) 오디오가 현대적이고 고성능 지향으로 변화하면서 시대연주의 지향점과 장점을 더 잘 표현하고 기존 방식의 연주와의 차별점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이죠. 만약 제 오디오 취향이 지금과 달리 빈티지 성향이었다면 지금 듣고 있는 음악도 전혀 다른 음악이었을 겁니다. 인켈+AR스피커 시절 주야창천 듣던 푸르트뱅글러, 토스카니니로 대변되는 1940~50년대 음반을 지금은 SP 복각 음반에 비해서도 잘 안 듣는 것도 이런 오디오의 변화가 주요 원인일 것입니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음반들에 대한 비교의 글에서 나열한, 그리고 나열하지는 않았던 많은 음반들을 지난 세월 들어오지 않았다면 제가 선택한 조르디 사발, 사이먼 래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음반들의 가치를 지금만큼 느끼고 있을까요? 들어왔다고 해도 제 취향이 이 세 음반으로 모아지는 것이 필연적이었을까요? 또는 이 세 음반의 가치를 알고 느낀다는 것이 음악 감상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저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취미의 영역에서는 지금 자신의 여건이나 경험에 맞춰 적절한 취향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어떤 오피니언 리더나 다수 대중의 취향에 맞추거나 따라가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000만 영화라도 자기 취향이 아니면 안 보면 되고, 골든이 대세여도 플레이 리스트에 끼워 넣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취미의 영역은 늘 과정이 중요하고, 그 과정이 취향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취향을 즐기세요.
3. 당신의 취향이나 장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있어도 잠깐일 뿐입니다.
취미에도 목표가 있고, 등급이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현 상태나 취향을 부끄러워하거나, 그것을 감추기 위해 타인의 취향을 취미에 반영하고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기본적인 장비로 만족할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 업그레이드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장비보다 못하거나 저렴한 장비를 쓰는 사람을 하수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장비나 취향을 남들이 봐주고, 자신을 고수라고 생각해 주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예전 사진 동회회 활동을 하던 시절, 모임에 (당시 가격으로도 1000만 원이 훨씬 넘어가고 지금은 2000만 원이 넘을) 캐논의 초고가 거대 망원렌즈 두 점을 들고 온 회원 곁에서 자신의 카메라에 그 렌즈 한번 마운트 해보는 성은을 입겠다고 줄을 서던 회원들과 그 몰려들 회원들 중심에서 주지육림에 빠진 임금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던 그 회원을 보았던 기억(더구나 당시 성은을 입겠다고 몰려들었던 회원들 상당수는 개업의, 회계사 등 나름 경제적으로 여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이나 오디오나 다른 취미활동에서 보았던, 고가 장비 = 고수로 포장되는 사례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도 되지만, 오래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그 주지육림도 순간이요,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자신이 진짜 필요할 때, 자신이 쓸 수 있는 정도만 취미에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투자하고,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십만 원짜리 베를린 필의 내한공연이나 선착순으로 초대권을 뿌리는 자신이 사는 지역 시립 교향악단의 공연이나 모두 비슷한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음반으로만 듣던 친숙한 곡을 연주회장에서 듣는 것이 더 큰 감동을 줄 수도 있습니다.
취미생활에 플렉스 하지 마세요. 차라리 ETF에 투자하는 게 인생에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족에게 그 돈을 쓰던지, 사랑하는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위해, 또는 여행에 쓰는 것이 더 길고 큰 만족을 줄 수 있습니다. 잠시 잠깐의 도파민을 위해 쓰기에는 취미활동에 단순히 플렉스를 위해 비용을 지출하기는 아깝습니다. 플렉스로 얻어지는 잠깐의 도파민이 필요하면 그냥 값싸게 포르노를 보는 게 낫습니다.
4. 취미 생활에 등급을 매길 수는 없습니다.
인류는 계급을 타파하기 위해 지난한 세월 싸우고 피 흘리고 있건만, 여전히 급을 나누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차감이라는 이상한 용어로 어떤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다른 차에서 내리는 사람보다 우월한 계급에 속한 듯 생각되고, 자동차와 전혀 상관없는 커피숍 테이블에 자동차키를 올려놓아 계급을 표시하고, 온갖 제품에 대해 계급도가 난무하면서 그 계급이 현존하는 듯, 그리고 그 제품을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것이 소유자나 소비자의 급과 연결되는 듯 이야기합니다.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듣는 사람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곡을 듣는 사람에 비해 높은 취향을 갖는 고수 음악애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듯 여겨지죠. 롤렉스를 차고 세이코를 비웃던 사람도 바쉐론 콘스탄틴을 찬 사람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본인이 롤렉스 찾다고 세이코 찬사람을 비웃었기 때문입니다. S클래스 AMG가 끼어들면 E클래스 정도는 비켜줘야 합니다. 하지만 대형 트럭이 밀고 들어오면 비켜주겠지요. 그 폭력에 굴복하고 또 폭력을 행사합니다. 취미 영역에도 너무 많은 것이 폭력적입니다.
하지만 이 폭력으로 상실되는 것은 즐거움이고, 그렇게 스스로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곳, 남에 폭력을 가하는 즐거움이 넘치는 곳은 더 이상 취미의 영역이 아닐 것입니다. 폭력을 위해 진정한 즐거움을 희생하지 마십시오.
5. 지름과 돈이 취미생활의 전부는 아닙니다.
취미 활동에는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이 시간이고, 노력이며, 그다음이 돈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앞의 둘 보다 돈을 들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음반을 듣고 그 음반의 가치를 발견하기 전에 누군가 추천하거나 리뷰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또 다른 음반을 사고, 어떤 장비에 친숙해지기도 전에 다른 장비에 눈을 돌리고, 소비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 지름의 횟수와 정도가 마치 취미 생활인 듯, 그리고 많이 지를수록 취미 생활을 잘하고 있는 듯 주변과 동호인들이 부축입니다. 동호인뿐 아니고 일반인도 이런 경향이 강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가 쓰는 장비와 그 가격을 들을 때에야 제 취미를 인정합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저는 얼마짜리 오디오로 음악을 들어요라고 하는 것이 더 쉽게 저를 음악 애호가로 만들어주는 세상이란 것이 참 서글픕니다. 저와 대화하면서 느낄 수 있는 교양보다 제게 배송되는 교보문고의 택배 숫자와 빈도가 저를 교양인으로 만들어주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디올, 샤넬, 반클리프가 영부인을 만들어준 것일지도 모르죠.
아마 제가 위에 언급한 다섯 가지를 명심하고, 늘 지킬 수는 없어도 지키려 한다면 훨씬 더 즐거운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꼭 단체생활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취미가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동호회는 피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즐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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