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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lies, and stereotype

에티켓, 매너 그리고 우아함

by 만술[ME] 2025. 7. 7.

3년여 전에 어떤 대통령 후보가 열차에서 앞자리에 구둣발을 올리고 앉아 있는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는데, 구두를 신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공공장소인 기차 안에서라면 신발을 벗었더라도 문제라 할 수 있었고, 이후의 언행은 이 사건이 하나의 실수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그간 삶을 살아본 결론에 의하면 이런 일이 한 번의 실수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냥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게 제 경험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신발은 벗지 않았던가!

 

 

아무튼 공교롭게도 윤석열의 임기와 상당기간이 겹치는 직전 직장에서는 지방을 다닐 일이 거의 없었고, 지방을 가더라도 차량으로 이동하는 게 편한 곳 중심으로 다녔던지라 열차를 탈 기회도 별로 없었는데, 이번 직장은 지방으로 다녀야 할 일이 가끔 있고 또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한 곳이 많아 한 달에 몇 번은 SRT나 KTX를 타게 됩니다. 묘한 것은 3년여 전이나 지금이나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열차의 편성 등이 달라질 일은 없었을 것인데, 열차 안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저는 집에서 바로 출발하는 경우에는 SRT가 편하기에 SRT를 선호하지만, 갑작스러운 출장이거나 가야 할 곳의 차량편성을 고려할 때 KTX를 타야 할 경우가 제법 많아 KTX를 더 많이 타게 되는데, 둘 다 분위기는 변했지만 KTX가 더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열차가 역에서 출발하면 늘 안내방송으로 차량 내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조목조목 방송합니다. 그런데 일반실, 특실을 불문하고 그 일들이 주야장천 일어나고 있더군요. 평일에 출장목적으로 탑승하다 보니 승객들도 상당수가 직장인으로 보이는데, 제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왜 출장을 가며, 회사에 어떤 불만이 있는지를 알게 되거나, 본사와 통화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 미수금이 얼마 쌓여있고, 미청구된 금액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되는 경우가 너무 흔합니다. 날이 더워지고 나서는 승객들의 구두 깔창의 색이며, 양말의 무늬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3년여 전에도 이런 일들이 가끔은 있었지만 이렇게 비일비재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매너와 에티켓을 모르고 우아함이라고는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대통령을 3년간 보아왔기 때문에 국민들의 수준이 추락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안내방송을 하니 몰라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겠고, 그냥 매너나 에티켓은 자신이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겠죠. 더구나 평일 특실 승객이면 회사들의 여비규정을 고려 시 간부급 임직원일 텐데 그들이 더 심하면 심했지 (공간적인 여유 때문인지 자기 좌석이 자기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더 늘어난 듯합니다) 덜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이건 사회적 계층의 문제도 아닙니다. 

 


 

제가 선망하고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은 <우아함>이 넘치는 사회인데, 이건 앞서 이야기한 에티켓이나 매너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간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아하기 위해서는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이것은 에티켓과 매너가 몸에 배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우아함은 격식에 맞춰진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까지도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왜냐하면 늘 긴장해야 하는, 생각하고 의식해서 나오는 매너와 에티켓과 달리 몸에 배어든 매너와 에티켓이 만들어 내는 우아함은 여유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그 여유로움은 보는 사람, 배려받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점점 우아함은커녕, 경솔하고 경박하고 무례한 것이 격의 없고 진솔하고 속 시원한 것으로 포장되는 시대에 살다 보니 부자연스럽고 딱딱하고 어색한 매너와 에티켓조차 귀한 덕목이 되어가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우아함의 기원인 카리스 세 여신 (보티첼리, <프리마베라>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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