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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lies, and stereotype

소위 20대의 보수화, 그리고 40/50의 자화상

by 만술[ME] 2026. 6. 5.

 

 

지난 대선에서 대학생인 아들이 기호 4번을 지지하고 찍기 전까지 소위 20대의 보수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좋은 세상에 태어나 노력은 안 하는 철없는 아이들이 쇼츠에 빠지고, 갈라치기에 선동되어 벌어지는 현상으로 교정되어야 할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교정되지 않는다면 포기해야 할 버린 세대라는 인식도 있었죠. 그리고 아마 이런 인식은 소위 민주계열을 지지하는 정치성향의 40/50이 지닌 거의 보편적인 인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똑똑한 우리나라 청년들이 쇼츠와 갈라치기에 놀아나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안일한 생각이고 책임회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령별 지지정당의 그래프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20/30은 빨강, 40/50은 파랑, 그리고 60/70은 다시 빨강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이들은 쇼츠를 보면서 생각이라는 것을 안 해서 민주/진보를 지지하지 않고, 나이 드신 분들은 독재의 추억과 극우 쇼츠에 빠져 그러는 것일까요? 이 나라는 40/50 빼고는 다 머저리만 살고 있는 나라인가요? 아니면 20/30은 머저리고, 60/70은 기득권 지키려는 탐욕의 화신이기 때문에 그럴까요? 그런데 사실 60/70이 만든 것이 40/50이고, 40/50이 만든 것이 20/30입니다. 즉, 40/50 입장에서 60/70은 부모 세대고, 20/30은 자식세대예요. 지금의 60/70이 절정기 기득권이던 시절에 40/50은 20대였고, 그 기득권에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세웠다고 착각하고, 아직도 자신들이 청춘인 줄 착각하면서 20/30이 기득권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어쩌면 소위 영 포티/피프티 현상이란 것이 자신들이 기득권이 아닌 쿨한 사람이라는 착각이 표면화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20/30 입장에서는 바로 40/50이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악질적인 기득권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20/30 직장인에게 40/50은 갑질하는 사장, 임원, 부장이고,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에게 40/50은 악질 편의점 사장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모든 것이 니들이 부족하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꼰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은 누릴 대로 누리면서 그것에 저항하는 행동은 요즘 MZ들의 요상한 행태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20/30의 저항을 희화하면서 20/30이 보수화 되어 있다고, 젊은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그들에게는 가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40/50은 과거 60/70이 가난한 나라를, 안 먹고, 안 쓰고 열심히 일해서 빈곤에서 탈출시켰다고 생각하듯,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을 자신들이 이루었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 세대의 정당에 대항하는 커다란 정치세력을 자신들이 만들고 가꾸고 세웠다고 굳건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모든 기득권의 패악은 사실 40/50에게 책임이 있음에도 엄청나게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척합니다. 지금 40/50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최상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데 왜 진보적인 이념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지 반성을 안 합니다. 사교육에 올인해서 대학입시를 지옥으로 만들고 대학을 줄 세우고 아이들을 미친듯한 경쟁에 몰아세웠던 것은 20/30의 부모들이고 그들이 40/50이 아니던가요? 누구보다 가열하게 부동산 투기를 해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린 것 역시 40/50이죠. 이런 표리부동한 기득권 세력이 만들고 지지하는 정당을 20/30이 안 뽑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소위 조국사태라는 것은 바로 이런 표리부동한 기득권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라 그들은 인식하는 것이고요.  

 

사실 저를 포함한 40/50이 이토록 표리부동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밑천은 자신들은 투쟁의 과정을 통해 민주화를 이룬 세대라는 생각에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에 참여했다""민주화를 소유한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87년 항쟁에 참여 했던 입장에서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우리가 전면에 섰던 그때의 기억조차 상당 부분 신화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6월 항쟁은 거대한 체제 혁명이 아니라, 빼앗겼던 직선제 개헌이라는 최소한의 게임의 규칙을 겨우 되돌려 받았던 지루하고 느린 과정의 첫 단추였을 뿐입니다. 실제로 그해 말 우리는 군부 정권의 연장을 막지 못했고, 이후의 민주주의는 3당 통합 같은 수많은 단계적 타협을 거쳐 겨우 지금의 단계까지 온 것일 뿐이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단 한 번의 투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이룬 듯 자위해 왔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40/50이 지니고 있는 일종의 집단적 기억 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끔찍한 사실은 이 세대적 나르시시즘이 오늘날 저를 포함한 40/50에게 평생 쓸 수 있는 도덕적 자격증이자 면죄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재와 싸웠으니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는 오만이 눈을 가린 사이, 삶의 진짜 현장인 부동산, 입시, 직장을 가장 세련되고 악질적인 기득권의 질서로 채워 넣었습니다. 20/30이 절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쥐어짜이고 있는 헬조선 시스템을 설계한 주범들이, 과거의 훈장을 가슴에 단 채 여전히 가장 정의로운 척 훈계를 늘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20/30이 보수 유튜버, 쇼츠에 빠져서 작금의 문제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은 진보 유튜브를 들으며 쾌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쪽은 부정선거, 가짜뉴스를 양산하지만 이쪽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요? k값 어쩌고 하면서 부정선거를 이야기하고, 천안함이나 세월호 음모론을 주장한 것은 어쩌다 일어난 실수겠지요?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소리를 듣는 것은 쉽고, 즐겁습니다. 그런데 20/30이나 60/70과 대화하기는 힘들지요? 달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벽을 치고 포기하면서 가망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선거에 지고는 또 그들 탓을 합니다. 자신은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극우화된 20/30/60/70의 폐해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숭고한 희생양 코스프레를 하고 있죠.   

 

진짜 나라를 바꾸고 진보의 이상을 이루고 싶다면 자기부터 희생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그 희생이란 것이 대통령은 집을 팔았는데, 어느 당 대표는 안 판다고 비웃지 말고 먼저 자기 집을 팔라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은 이런 희생이 여의치 않습니다. 40/50에도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지금 누리는 사람들도 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쌓여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사실 진짜 나라를 바꾸고 진보의 이상을 이루고 싶다면 거창한 희생을 선언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실천은, 스스로가 깨어있는 청춘이라는 자아도취에서 빠져나와 자신도 추악한 기득권의 일부임을 뼈아프게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20/30이 먼 곳에 있는 미지의 세대인 것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집 저녁 식탁에 앉아있는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 아이들이 엉뚱한 번호에 기표했다고 계도하거나 포기하려 하기 전에, 그들의 좌절과 분노에 우리 몫의 지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대화하면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는 어른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우리가 투표장 안에서 부르짖던 것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곳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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