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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셰익스피어 400+10

by 만술[ME] 2026. 2. 23.

10여 년 전 셰익스피어 탄생 450년을 기념하면서 햄릿을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옥스퍼드 버전(The Oxford Shakespeare)을 읽자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이 세 번 바뀔 정도로 나름 격동적인 개인사를 겪으면서 몇 권 못 읽고 중단되었는데, 며칠 전(2/20) 존 다울랜드 타계 4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런저런 음반을 들으며 음반장 한쪽에 조르디 사발 프로젝트를 위해 모아놓은 음반들을 바라보다 사발이 녹음한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 음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울랜드가 활약하던 시기와 멘델스존 곡의 원작자인 셰익스피어의 활동시기가 겹친다는 생각,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을 기왕이면 셰익스피어 원작을 읽고 다시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기약 없이 중단되었던 옥스퍼드 버전 셰익스피어 읽기를 한여름밤의 꿈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올해는 셰익스피어 타계 400년으로부터 딱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여 년의 세월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는데, 옥스퍼드 셰익스피어도 새 버전이 The New Oxford Shakespeare라는 이름으로 발매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의 셰익스피어는 기존 버전도 아르덴(Arden) 버전 같은 것보다 훨씬 급진적인 경향이 있었는데, 신 버전은 기존에 단독작품이라 이야기되던 작품을 다중적 협업에 의한 공동작품으로 표기하는 등 그 급진성이 더해졌고, 이는 더 많은 비판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또한 책의 분량이 맥베스의 예를 들면 기존이 272쪽이던 것에 비해 신 버전은 160쪽으로 상대적으로 해설이나 주석이 줄었습니다. 표지도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이용하던 기존과 달리 현대적이고 예쁘기까지 한 일러스트로 변경되어 이래저래 가볍게 셰익스피어를 접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기존 버전(좌)과 신 버전(우) - 기존은 레이디 맥베스가 흑막이지만 신 버전은 세 마녀가 흑막?

 

 

한편으로 공부하기 좋은 상황도 마련되었는데, 스티븐 그린블랫의 명저인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Will in the World: How Shakespeare Became Shakespeare)가 번역되어 2016년 초판을 냈고, 2024년에는 2판으로 개정되어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 번역본 제목은 원제의 중의적 표현을 잘 살리지 못해 셰익스피어가 세계정복을 꿈꾸었거나 세계적 문호가 되기를 열망한 것처럼 보이는데, Will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애칭으로 원제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현시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를 탐구하는 책의 내용을 중의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10년 전에 옥스퍼드 신 버전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 권에 담은 The New Oxford Shakespeare: Modern Critical Edition이 단행본들에 앞서 나와 있고, 다음 해에는 엄청난 분량의 참고서인 The New Oxford Shakespeare: Authorship Companion이 출간되어 가격과 부피를 감내한다면 셰익스피어가 참고하거나 인용한 출처까지 낱낱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2020년에는 에마 스미스의 This is Shakespeare: How to Read the World’s Greatest Playwright가 출간되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리어왕 등 대표작 20편에 대한 뛰어난 해석과 비평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고수는 자신의 계획을 온/오프라인에서 떠들지 않고 달성한 뒤에 그 결과만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예를 들어 이탈리아어를 조용히 배운 뒤, 친구들과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마치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어에 능숙했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 또는 다이어트한다고 떠들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뒤 다음번 모임에 날씬한 몸으로 등장하는 것 등) 비공개로 시작했던 옥스퍼드 셰익스피어 프로젝트는 의지(Will)의 부족으로 한번 중단된 바 있으니 아무도 안 보는 블로그에 살짝 맛보기 계획을 올리며 다시 시작해, 마음을 다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원래 계획대로 1년에 한 작품씩 공부해 나가면 제 삶이 다할 때까지 모든 작품을 다 섭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마지막 잎새를 그려 넣는 마음으로 희곡만이 아니라 소네트로 확장하지는 않을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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