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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게임 - 취미생활

[게임]마르코 폴로의 발자취 (보드게임)

by 만술[ME] 2025. 9. 24.

큰 욕심 없이 시작한 인기(?) 연재 시리즈인 역사와 음악 시리즈가 음반을 소개하는 김에 유난히 글밥이 많은 조르디 사발 음반의 내지도 다시 읽고, 가능한 대로 관련 서적도 읽고 하다 보니 점점 이 되어가는 분위기인데, 언제 블로그의 글로 정리될지는 모르지만 시리즈와 관련해서 공부하고 있는 이야기 중에 베네치아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조르디 사발의 음반인 베네치아 1000년의 기록과 관련한 것인데, 대충 하자면 출장이나 가족여행 때 베네치아에서 찍은 사진들 몇 장 올리고 음반 소개하면 되겠지만,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핑계김에 베네치아의 역사 등에 대한 책이나 논문을 뒤지고 있어 그 일부라도 담은 글이 올라오기까지는 제법 시일이 소요될 듯합니다. 
 
글을 올리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은 베네치아와 공화국이 지중해의 강자로 군림하던 시절에 가있는지라, 이제 유럽은 가기 싫다는 와이프를 설득해서 그래도 돈벌이가 있을 때 베네치아나 피렌체에 한번 더 가자고 꼬셔볼까 하는 상상과 함께 베네치아에 대해 뭐라도 살짝 토해내야 할 것 같아 생각해 보니 엉뚱하게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라는 보드게임이 생각났습니다. 마르코 폴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이라면 지중해 해상제국 시절의 베네치아 이야기와 그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발자취(The Voyages of Marco Polo)라는 보드게임은 2탄도 나왔는데, 저는 2탄은 가지고 있지도 않고 해보지도 못해서 오늘의 이야기는 1탄에 한정합니다. 
 

 
 
10년 전인 2015년에 출시된 이 게임은 제목처럼 플레이어가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RPG라면 사기적 능력이 있는 영웅) 캐릭터를 활용해서 베네치아에서 베이징까지 이동하면서 돈도 벌고, 물건도 사고, 교역소도 세우며, 거래를 성사시켜 점수를 쌓아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해 승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게임의 구성은 아름다운 중세지도를 모티브로 한 게임보드와 금괴, 후추, 비단, 낙타 등의 거래 물품 마커, 플레이를 위한 다양한 타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임은 4인까지 지원하는데 해보니 4인 플레이가 가장 좋습니다. 
 
게임의 기본은 주사위 굴리기 + 일꾼 놓기라는 두 가지 스타일의 보드게임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데, 플레이어가 각자 굴리는 다섯 개의 주사위가 일꾼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독특한 기능을 발휘합니다. 여기에 가장 큰 특징이자 이 게임의 호불호를 가르는 존재인 8명의 캐릭터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이 여덟의 캐릭터 중 하나를 가지고 게임을 진행하는 데, 이 캐릭터가 가진 각각 다른 고유능력은 게임의 밸런스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라시드 앗 딘 시난 캐릭터는 주사위를 굴리지 않고 플레이어가 자기 마음대로 주사위 눈을 세팅할 수 있고, 마르코 폴로의 숙부인 마테오 폴로 캐릭터는 자기 주사위 5개 외에 추가로 주사위 하나를 매라운드 가져와 굴릴 수 있으며,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메르카토르 엑스 타브리즈 캐릭터는 다른 플레이어가 시장에서 물건을 얻을 때마다 그 아이템을 자신도 공짜로 취할 수 있습니다. 이 능력들은 그 플레이어가 게임을 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사기적 능력이지만 플레이어들은 이런 능력을 지닌 캐릭터를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기에 묘하게 게임의 밸런스가 잘 맞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이 캐릭터의 능력을 잘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다음 게임에서는 그 캐릭터를 플레이하고픈 마음이 들면서 반복 플레이의 묘미를 안겨줍니다. 게임의 모티브인 마르코 폴로 캐릭터는 놀랍게도 아버지인 니콜로 폴로와 묶여 베네치아에서 시작할 때 플레이어 마커를 두 개 가지고 시작하면서 서로 다른 경로를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게임을 막상 해보면 마커 하나 이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내하기도 쉽지 않은 판에 마커가 두 개인 게 사실상 효용이 거의 없기에 거의 버려지는 캐릭터라는 것입니다.
 
만약 치밀하게 게임을 즐기기보다는 좀 편하게 게임을 하려 한다면 메르카토르 엑스 타브리즈(Mercator ex Tabriz) 캐릭터가 최고입니다. 8명의 캐릭터 중 유일하게 창작 캐릭터인 이 캐릭터는 타브리즈의 상인이라는 의미인데, 상상력을 좀 발휘하면 12세기의 실존 인물인 대시인(Archpoet)처럼 실명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마르코 폴로가 활동하던 시기에 활약했던 유명한 타브리즈 출신의 大상인이 있었다 정도로 생각하면 더 그럴듯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딸아이가 가장 선호하는 이 캐릭터는 (딸은 다른 사람의 시장 활동이 일어날 때마다 "금 좀~ 주시요~!" "후추 좀~ 주시요~!" 하면서 물품을 챙기는 터라 가족 사이에서는 딸의 이 대사가 일종의 밈이 되어 있는데) 특별한 활동이 필요 없이 거래물품과 낙타가 생기기에 상대적으로 쪼들리지 않고 자신의 전략을 펼칠 수 있습니다.
 

메르카토르 엑스 타브리즈, 전설의 大상인 (4인용 버전)

 
수년간 이 게임을 가족과 함께 하면서 즐겨본 바로는,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주사위 운과 서로 다른 캐릭터의 사기적 능력이 작용하기에 실력만으로 진검승부를 하는 느낌은 아니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즉, 게임에 지더라도 뭔가 자신이 실력으로 하수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나 불쾌감이 별로 없습니다. 엄청난 가격의 보드게임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제법 좋은 구성과 품질임에도 비교적 높은 가격은 아니라는 장점도 있습니다. 게임상 설명서 외에는 한글이 필요치 않기에 그만큼 각종 아이콘 등이 직관적이고 이것은 오랜만에 플레이하는 경우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단점이라면,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맞지 않는 캐릭터가 선택된 경우에는 게임 진행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캐릭터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어떤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매우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빛을 발하고, 또 그렇기에 전략이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메르카토르 엑스 타브리즈 같은 일부 캐릭터는 플레이어 스타일이나 전략에 상관없이 빛을 발휘합니다. 아울러 여행하고 거래를 체결하는 게 게임의 커다란 방향인데, 초반에는 여행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고, 다른 일을 더 신경 쓰게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초심자도 상대적으로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고, 규칙이 복잡하지는 않아서 에러 플레이가 날 확률이 낮고, 에러 플레이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주사위 싸움에서 밀리거나 해서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못하는 경우에도 주사위 눈을 수정하는 방법이 존재하고, 그 와중에 할 수 없이 주사위를 써야 하는 경우에도 주사위를 버린다는 느낌보다는 그래도 이 정도는 건졌다는 느낌이 드는 플레이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 게임의 엄청난 실력자가 존재하기도 하겠지만, 최소한 가족 간의 게임이라면 이 게임에 누군가가 늘 이겨서 다른 사람들은 하기 싫어하거나 하는 일은 생길 것 같지 않은 스타일의 게임이라, 하나 정도 장만하고 가끔 플레이한다면 오래오래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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