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개정판(북하우스)으로 새 옷을 입고 출간된 뒤부터 꾸준히 읽어 오고 있습니다. 따끈하고 새로운 정보보다는 제 리듬에 맞춘 약간은 묵은지 같은 글을 써왔기에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 대한 글은 총 21권의 세트를 모두 읽은 뒤에야 블로그에 글을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11번째 이야기인 위대한 미스터리(An Excellent Mystery)를 읽은 뒤 21권의 반환점을 돈 것도 같고 책의 내용도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서 감동을 주는 부분이 많았기에 단편적인 내용이라도 소개하고 넘어가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전체 시리즈에 대한 글을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리즈는 웨일스와 접하고 있는 잉글랜드의 서쪽 끝자락인 슈롭셔(Shropshire)의 주도인 슈루즈베리(Shrewsbury), 더 한정되게는 그곳의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흔히 그냥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불리며 현재도 건재합니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대는 1100년대 중반 영국이 스티븐왕과 모드 황후의 두 개 진영으로 나뉘어 내전을 치르던 시기를 다루고 있어 이 역사적 배경도 책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역사적 배경을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지만, 전혀 몰라도 간략하나마 주석으로 중요인물 등에 대해 설명해 놓았기에 책의 재미를 느끼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사한 소설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달리 현학적이지도 않습니다. (사실 에코의 소설은 일부러 현학적으로 썼기에 그런 것이고 또 그게 읽는 재미입니다.)
젊은 시절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 돌아와 늘그막에 종교의 길로 들어선 베네딕도회 수도사 캐드펠이 주인공인 이 시리즈는 대부분 살인을 다루기는 하지만 스타일은 코지 미스터리라 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긴박한 장면이 펼쳐지기는 하지만 명예와 신앙이 굳건하던 시대답게 인면수심의 악을 다루지도, 너무 급박한 상황을 다루지도 않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수도사라는 한계가 있다 보니 수도원 밖으로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시간에 얽매이는 사건을 해결할 재간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현대와 달리 시간의 개념도 달랐죠. 그리고 수도사의 직분이 범죄를 해결하는 것과는 무관하니 그 일을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나설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수도원 밖의 다른 사람들이 주인공을 도와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이번 위대한 미스터리(An Excellent Mystery) 이전 이야기에서 제법 많은 사건들(10건)이 일어났고 그래서 이번 이야기에서도 전편 이야기들에서 등장했던 많은 사람들이 캐드펠 곁에서 이런저런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에서 다루는 사건은 기존과는 좀 다른 차원으로 우리말 제목에서 짐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미스터리를 다룹니다. 추리소설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저처럼 중간 정도 읽어 나가면 사건의 전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캐드펠 수사가 어떤 방법으로 이 엄청난 사건을 마무리할 것인가 하는 궁금함만 남습니다. 하지만 이 짐작이 이야기를 맥 빠지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중반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대사와 행동까지 더 유의미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작가가 중간 즈음에 독자들이 비밀을 알아내기를 기대하고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드펠 시리즈가 비현실적으로 짜 맞춰져 딱딱 들어맞는 스타일의 추리소설도 아니고, 때로는 추리를 하기보다는 중세 잉글랜드의 근교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재미가 더 있을 때도 있지만, 앞선 10편의 이야기들에 비해서도 이번 이야기는 추리소설로서의 기기묘묘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보다 더 등장인물들에 공감하고, 가슴 아파하고, 그 결말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시리즈 중간에 이런 글을 쓰는 것도 그 이유이기도 하고요.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아래 제목에 대한 제 해석과 감상이 훗날 책을 읽으면서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책의 원제인 An Excellent Mystery는 책을 읽고 나면 전혀 다른 함의를 지닌 제목으로 다가옵니다. 아이스크림 이름에도 붙이는 흔한 단어가 되었지만 영어단어 Excellent는 단순히 훌륭하거나 위대하다는 의미를 넘어 종교적으로는 피조물을 넘어선 신성한 초월성과 영적 품격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신성한 초월성이 Mystery와 만나 An Excellent Mystery가 되면 바로 결혼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남녀가 만나는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초월적인 하나님의 은총이 지상에서 부부의 결합이라는 형상을 통해 구현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의 지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을 뜻합니다. 그 계획이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라는 우주적이고 신성한 원형을 이 땅에서 재현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이야기가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내전으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진 분열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피어나는 이 신성한 합일의 가치는 더욱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일상적 의미의 대단한 미스터리, 신의 은총의 구현인 남녀의 합일로서의 결혼, 그리고 미천한 인간은 알 수 없는 신의 뜻의 신비로운 구현을 모두 함의하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신의 사랑을 완벽하게 투영하고 있는 거룩한 신비로서의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결말에 다다르면, 그 결말, 그리고 그 과정 모두가 An Excellent Mystery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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