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물건을 많이 사지도 않지만, 중고로 팔지 않고 어지간하면 버리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 들어온 물건은 분실하거나 고장 나기 전까지는 유행한다고 새 제품을 사거나, 기분 전환을 위해 바꾸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른 글에서 다룬 스타벅스 시애틀 1호점 머그처럼 오랜 기간 곁에 두고 사용하는 물건이 대부분입니다. 오늘 소개할, 제가 사용 중인 책갈피도 2000년 하와이에 여행 갔을 때 나눠줄 기념품(그때는 해외여행이 지금 보다는 흔하지 않아서 다들 기념품을 사다가 나눠주는 게 보통이었습니다)으로 구입한 것 중에 제 곁에 남겨진 것으로 진주만 공습 때 침몰해 아직도 바다에 남아 기념관으로 활용되는 USS 애리조나 기념관 기념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은 타계하신 외숙부께서 하와이에 이민 가서 거주 중이라 여행기간 중에 며칠은 안내도 해주시고, 픽업도 해주시고 하셨는데, 수십 년 하와이에서 거주하며 사업을 하신 입장에서 USS 애리조나 기념관은 볼 것 하나 없으니 갈 것 없다 하셔서 근처만 갔다 다른 곳을 갔던 지라 이 책갈피는 그냥 숙소가 있던 와이키키의 기념품점이나 공항 기념품점 정도에서 구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알로하 컴패니라는 하와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업체가 제작한 것으로 나오는데, 제조국은 타이완입니다.^^ 그나마 20여 년 전이니 기념품을 구입한 것이지 여행에서 기념품을 사지 않은지도 꽤 되었습니다.
기능면으로 보자면 많이들 사용하고 때로 (종이 재질로 된 것은) 대형 서점에서 무료로 제공하기도 하는 평판형 책갈피에 비해 장점은 거의 없고, 단점은 뚜렷합니다. 장점은 금속에 조금 두꺼워서 어지간하면 구부리거나 부술 수 없으니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대를 물려 쓸 정도로 내구성이 좋고,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그림이 변색되거나 지워지지 않으니 그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반면, 그 두꺼움 때문에 평판형 책갈피에 비해 한 곳에 오래 끼워 놓으면 미세하나마 책에 변형이 오기에 책을 읽은 뒤 최상품으로 되팔려는 용도로는 부적합하고, 동시에 책갈피의 용도로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생각보다 잘 빠져서 책갈피의 용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첫 번째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하는데, 미세한 변형을 추적하면 어디까지 읽었는지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죠.
책갈피로서 중요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집에 있는 평판형 책갈피들은 생각보다 분실이 잘되어 없어졌거나 편의성 때문에 다른 가족들이 먼저 사용하거나 해서, 집안에 늘 남아 있는 책갈피가 이것이고 형태상 의외로 분실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디 떨구어도 상대적으로 무거운 덕에 평판형과 달리 떨구었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할 수 있어 분실의 위험도 더 적습니다. 폐지나 다른 물건들 사이에 끼어 의도치 않게 버릴 염려도 더 적고요. 실제로 몇 번 집안 어디에선가 잃어버렸지만 언젠가는 다시 찾게 되더군요. 이런 식으로 곁에 계속 머무른다면 아마 남은 여생 동안 제가 읽는 책들에 미세한 흔적을 남기며 함께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책 - 게임 - 취미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게임]마르코 폴로의 발자취 (보드게임) (4) | 2025.09.24 |
|---|---|
| RIP 헐크 호건, 1953-2025 (2) | 2025.07.28 |
| [독서]미야베 미유키 에도시대 시리즈들 중간 정산 (6) | 2025.07.09 |
| [독서]겐자키 히루코 시리즈 (시인장의 살인 / 마안갑의 살인 / 흉인저의 살인) (4) | 2025.07.01 |
| [독서]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3부작 - <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과 제국>, <제2파운데이션> (2) | 2025.06.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