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동기에서 2015년 초부터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배경의 시리즈들을 읽기 시작한 이래 어느덧 10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습니다. 출판사 북스피어의 명칭에 따라 미야베 월드 2막이라 부르건 그냥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이라 부르건 편의에 따른 구분일 뿐, 관통하는 것은 에도시대 배경이라는 것과 동일 작가라는 점, 그리고 추리던 괴기던 장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에 따라 몇 가지의 시리즈로 나뉘는데, 세계관이 겹치는 것일 듯한 떡밥이 은근하거나 노골적으로 있어도 작가가 딱히 에도시대물을 엮어 하나의 시리즈라 칭하고픈 마음도 없는 듯합니다. 출판사 사장께서 오래전에 (이후 업데이트가 없어 근자에 나온 작품은 모두 빠진) 자신의 주관을 담아 읽는 순서를 정해 추천한 바도 있고 출판사에서는 (현대물에 대비되는) 미야베 월드 2막이라 칭하면서 시리즈 느낌으로 책을 내고 있는데, 시리즈의 통일감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고 책 디자인도 일본풍이 나서 제법 그럴듯합니다. 다만, 읽는 순서에 대해서는 출판사 사장님께서 에도물로 처음 출간하신 <외딴집>에 대한 애정이 너무 많아 그 작품을 끝판왕 식으로 배치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현시점에서 생각할 때 꼭 외딴집을 뒤로 미룰 이유도 없을 것 같고 시리즈 성격에 따라 취향 것 골라 읽는 것이 더 나을 듯해서 그냥 시리즈 별로 묶어 소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작가의 작품 활동 경향으로 보면 두 가지 축에 중점을 두면서 단독 작품들(장편/단편)을 가끔 출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축을 이루는 시리즈는 귀신이나 저주 같은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미시마야 시리즈와 사실에 근거한 탐정소설이라 할 수 있는 기타기타 시리즈라 할 수 있는데, 어지간한 이야기는 이 두 축에서 풀어나갈 수 있으니 중단된 기존의 시리즈가 갑자기 부활하거나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근 기타기타 시리즈의 신작인 <귀신저택>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이참에 그간 집에 한꺼번에 모아 진열해 놓지도 못한 채 이곳저곳에 쌓여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 책들을 꺼내 정리하면서 블로그에도 한 번은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이번 글을 준비했습니다.

이미 한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 없이 우선은 그간 에도시대물에 대해 블로그에 올린 글들 먼저 소개할까 합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해당 글을 읽으실 수 있는데, 시간이 되시면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 취향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물을 읽게된 그리 이해되지 않는 계기 (첫번째 글 / 두번째 글) 지금은 중단된, 그리고 앞으로 재개될 것 같지 않은 오하쓰 시리즈 소개 <벚꽃, 다시 벚꽃>이 북스피어가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게 된 뒷이야기에 대한 뒷담화 캐릭터들이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3부작으로 완결된 것이라 생각해야 할 듯한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 이야기 2016년 5월말까지의 책 읽기 진행 경과 보고 |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작품들은 등장인물이 동일하기에 시리즈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과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인 단행본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국내에 북스피어를 통해 번역 출간된 책들은 아래와 같이 묶일 수 있습니다. (년도는 국내 출간연도)
[오하쓰 시리즈]
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 2008년
미인 / 2011년

오하쓰는 초기작인 <말하는 검>에서 등장하고 시리즈로 승격된 케이스인데, 성장하고, 사랑하고 늙어갈 것이라는 초기의 입장은 나중에 "오하쓰는 나이를 먹지 않지만 ―저는 나이를 먹습니다"라는 입장으로 바뀌면서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됨에 따라 두 권의 단행본으로 마무리됩니다. 비현실적인 내용이 들어가는 이야기는 주인공이 직접 겪는 것이 아닌 화자가 겪고 전달하는 미시마야 시리즈로 슬쩍 넘어감으로써 오하쓰 시리즈에서 보였던 난점에 대한 해결책도 찾았고요. 이 시리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미 블로그에서 다룬 바 있으니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동네 보안관이라 할 수 있는 오갓피기를 오빠로 둔 주인공 오하쓰는 접촉에 의해 발휘되는 영적인 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을 이용해서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
얼간이 / 2010년
하루살이 (상/하) / 2011년
진상 (상/하) / 2013년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도 아래 링크에서 이미 다루었고, 시리즈도 종료된 듯하니 간단하게만 언급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급무사인 헤이시로는 보기보다는 유능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못생기고 굼뜨고 게으른 스타일인데, 이 무사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유미노스케라는 어린 소년을 만나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 버디 탐정물입니다. 캐릭터들이 재미있고 정감이 가고 버디 탐정으로 각각 장단점이 뚜렷한 헤이시로-유미노스케를 묶어 재미를 배가 한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헤이시로-유미노스케라는 기묘한 조합이 한두 가지 사건이야 해결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지만, 무능하고 게으른 무사와 어린 소년이 더 길게 시리즈를 이어가기에는 설득력이 없어 보이고, 작가도 이 점을 잘 알고 시리즈를 중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하쓰와 헤이시로 외에도 필생의 역작이라는 미시야마 시리즈조차 중간에 주인공을 바꿔버리는 미야베 미유키를 보면 인기 있는 시리즈를 언제 끝내야 할지를 아는 현명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야베 미유키 :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 (얼간이, 하루살이, 진상)
[미시마야 시리즈]
흑백 / 2012년
안주 / 2012년
피리술사 / 2014년
삼귀 / 2018년
금빛 눈의 고양이 / 2019년
눈물점 / 2020년
영혼 통행증 / 2021년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 2023년
청과 부동명왕 / 2024년

미시마야 시리즈는 작품수로도 알 수 있지만, 작가가 필생의 과업이라고 말하며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주인공이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괴담을 수집한다는 명목하에 미시마야라는 주머니 가게에서 다양한 사람이 전해주는 괴담을 듣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주요 내용은 이 전달받는 괴담이지만 가끔은 그 괴담이 현재 발생하는 사건이나 주인공 등의 등장인물에게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구성상 주인공이 방 안에 앉아 타자가 전해주는 괴담을 듣는 내용이기 때문에 전달하는 이야기의 시공간적 한계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주인공이 직접 겪는 사건이 아니라 전달받는 이야기라는 특성상 다소간의 불합리나 비현실도 독자가 쉽게 수용이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작가는 주인공이 초현실적인 사건을 직접 겪거나 해결하는 경우에, 단발적인 작품이 아닌 시리즈로 발전하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 듯합니다. 주인공이 귀신이나 저주와 엮이는 사건을 단발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리즈 내내 계속적으로 다양한 사건을 겪기 위해서는 결국은 주인공 자체가 오하쓰처럼 비현실적 능력을 가지는 인물일 수밖에 없는데, 독자나 작가나 어떤 사건이 모종의 이유로 비현실적인 것을 용인하기는 쉽지만 히어로물이 아닌데 주인공 자체가 비현실적인 능력을 갖거나, 평범한 사람이 일상적으로 반복해서 비현실적인 사건을 겪는 것을 용인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반면 미시마야 시리즈처럼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이가 어쩌다 겪은 괴담을 듣는다는 형식은 이런 위험을 쉽게 피해 갈 수 있는 좋은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런 시공간의 자유로움(더구나 화자의 비밀 유지를 위해 시공간이 가상으로 설정되는 경우도 많습니다)과 주인공의 사건에서의 상대적 거리 두기는 이 시리즈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진행될 수 있게 합니다.
미시마야 시리즈는 중간에 주인공이 바뀌는데, 첫 주인공인 오치카가 불행했던 기억을 딛고 행복해지기를 바랐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행복이 싫지는 않지만, 괴담을 들어야 할 사연이 명확히 있던 오치카에 비해 그 일을 떠맡은 다음 주인공 도미지로는 당위성이 좀 부족한 것 같고, 그래서인지 액자 속의 이야기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액자틀의 이야기는 (앞으로 도미지로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지만) 조금은 흥미를 자극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이 사연 있는 절세미인에서 덤덤한 총각으로 바뀐 것에 대한 거부감일지는 몰라도요.^^ 다만, 작가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도미지로와 관련된 이런저런 사건과 캐릭터 구축을 위한 자잘한 에피소드에 제법 내용을 할애하면서 주변 캐릭터도 강화하는 것을 볼 때, 조금은 더 두고 볼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모시치 시리즈]
맏물 이야기 / 2015년

이 단편집의 주인공 모시치가 다른 이야기에도 등장하고, 진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노점 주인도 결국은 다른 이야기에 등장하기에 시리즈로 묶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시리즈가 될지는 의문입니다. 더구나 <맏물 이야기>가 일본에서 나온 것은 20년도 훨씬 더 전이니 시리즈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다만, 요리와 사건을 엮는다는 단행본 하나 정도로 내기 좋은 아이디어가 <맏물 이야기 2>라는 표제를 달고 20여 년이 지나 하나쯤 더 나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맏물 이야기>는 당분간은 단행복 카테고리에 묶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듯하기는 합니다만, 시리즈화를 바라는 마음에 시리즈로 분류했습니다. 책의 내용은 요리와 사건을 묶어서 요리를 통해 주인공이 힌트를 얻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이 주를 이루는데, 요리에 대한 묘사와 상황이 제법 맛깔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드라마/영화 <심야식당>을 볼 때처럼) 이야기에 나오는 요리가 아니어도 근처 이자카야나 돈부리집이라도 찾아 들어가 간단하게 일본 음식을 먹고픈 기분이 생깁니다.
[기타기타 시리즈]
기타기타 사건부 / 2021년
아기를 부르는 그림 / 2022년
귀신 저택 / 2025년

미시마야 시리즈로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다룬다면, 기타기타 시리즈는 알고 보면 이성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사건들을 다루는 일종의 탐정물 시리즈입니다. 다만, 작가가 성장해 있는 주인공의 캐릭터적 성장보다는 미성숙한 주인공의 성장을 더 좋아하는지, 미시마야 시리즈처럼 기타기타 시리즈의 주인공도 완성형 주인공이 아니라 미숙한 주인공 + 문제 많은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기타기타 시리즈의 유래는 모시던 오갓피기 대장의 급사로 문고 사업을 시작하는 소년 기타이치와 비밀스러운 사연을 지닌 기타지가 주인공이 되어 펼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인데, 등장인물들이 약간 사기캐인 장점을 지니고 있는 스타일은 여전해서 개인적으로는 사건이나 내용은 흥미롭지만 캐릭터에 공감하며 읽게 되지는 않더군요. 물론 두 주인공의 캐릭터 발전 방향에 따라 명작 시리즈가 될 수도 있겠지요.
[단행본]
외딴집 (상/하) / 2007년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단편집) / 2008년
괴이 (단편집) / 2008년
메롱 / 2009년
말하는 검 (오하쓰가 처음 등장하는 단편이 포함된 단편집) / 2011년
그림자 밟기 (헤이시로-유미노스케 시리즈 등장인물 일부가 등장하는 단편이 포함된 단편집) / 2013년
괴수전 / 2015년
신이 없는 달 (단편집) / 2017년
인내상자 / 2022년

작품의 깊이나 흥미로움에 있어서는 장편을 추천합니다만, 맛깔나는 단편들도 취향에 따라서는 더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분량이나 스케일이 장대하고 에도시대라는 시대정신을 잘 나타내는 책은 <외딴집>이라 할 수 있는데, 특수한 시대정신에 공감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결말이 먹먹하기 보다는 막막할 수도 있어 취향을 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도시대 괴담/추리물을 읽으실 분이 에도시대라는 독특한 시대정신을 생각지 않는다면 사실 이곳에 소개한 모든 책들 중에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그 시대정신의 압박이 <외딴집>이 가장 심하고 다른 작품들은 그냥 시대정신이 아닌 시대배경 정도인 것도 있으니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보기나 책소개를 보시고 취향 것 고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참고자료]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2013년 -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의 배경을 돌아보는 기행문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집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와 짝을 이어 보면 좋고, 다른 이야기에도 많이 등장하는 혼조 후카가와 쪽의 에도시대 지리에 대한 감을 잡기에 많은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이던 94년, 자신의 작품을 출간하던 출판사 신초샤에서 발행하는 잡지 <소설 신초>의 시대 소설 특집에 연재된 기획에서 비롯된 책으로 작가 특유의 입담이 기행문에서도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작가의 에도물을 읽지 않더라도 일본 에도시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읽다 보면 이 책을 바탕으로 도쿄여행을 한번 짜보고 싶은 유혹이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이상으로 (이 블로그에 그렇지 않은 게 있겠냐만) 내돈내산 리뷰였습니다. 북스피어 사장님은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 글을 보신다면 굿즈라도 하나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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