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 운동 시점에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당시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중학생에다 서울에 살았기에 군사정권에 의해 언론이 강력히 통제되던 시절에 제대로 된 내용을 접할 수도 없었고 서울에만 기반을 둔 부모님을 비롯한 제 주위의 어른들도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으며 아마 알지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시절의 기억은 오히려 전두환에 대한 <인상>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마음속에 깊게 가지고 있던 (아마도 사춘기의 특성이 짙게 뭍은 약간은 치기 어린)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의 단호한 모습은 마음 한구석에서 카리스마에 대한 동경을 자아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왜 히틀러나 전두환 같은 자들에게 국민의 마음이 때로는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하는지 처절히 깨달은 계기였죠. 그리고 몇 년 전 국민들이 똑같은 잘못을 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나마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실을 어느정도나마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주모자인 전두환이 여전히 대통령인 시절이라 5월이 되면 학교 내에서 다양한 전시회, 백서 발간, 시위가 있었고 교정은 최루탄과 동료, 선후배의 부상, 입건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최루탄이 수업 중에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터진다거나, 학교까지 백골단이 들어와 학생들을 구타하며 연행해 가는 일도 종종 있었죠. 그렇기에 광주 민주화 운동은 기억의 DNA로 자리 잡았고, 직접 겪거나 목격하지는 못했어도 경험으로 체화되어 가슴속에도 늘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광주사태가 광주 민주화 운동이 되고, 여전히 가해자들과 그들을 추종하고 뿌리를 같이하는 자들이 활개치고 있음에도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제가 6월 항쟁 이후의 동향을 <우리는 스스로 그 타협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격상했다>고 비판했음에도 결국은 그 흐름에 녹아져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던 것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였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제가 이미 머릿속과 가슴으로 알고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단지 세월의 흐름에 따른 희미해짐이 아닌, 착각이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사진들, 읽었던 사실들, 들었던 이야기들은 머릿속에 새겨지고 가슴에 맺힌 게 아니란 것 - 그래서 한강의 글을 한 구절 읽을 때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은 하나도 없음에도 그 문장, 단어들이 심장에 직접 말하고 그 단어와 문장을 심장에 직접 새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작가의 위대함, 문학의 위대함, 예술의 위대함을 절감했습니다.
지금 온-오프라인 서점은 한강 열기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구할 수도 없고 예약을 걸어 놓아야한다고 합니다. 최근의 텍스트-힙 유행과 함께하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강의 책을 읽고 또 <소년이 온다>도 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발 느끼고, 깨닫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지난번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이어 하필이면 한강 같은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현실이 내심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 그래서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잘됬다는 듯, 68년생으로 저와 비슷한 연배이면서도 정신 못 차리는 듣보잡 작가가 SNS에 쓴 글을 퍼다 나르면서 어떻게든 <논란>으로 포장하려는 언론이 있고,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그런 사람들에게 지난 세월 투표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제발 깨닫고 이제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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