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마르크시즘을 20세기의 넘어설 수 없는 지평이라 이야기했고, 실제로 제 대학 시절에 지성인이 마르크시즘(당시 용어로는 <맑시즘>)을 모르기는 힘들었고, 모든 대화의 언어에는 지지하던 아니던, 수많은 마르크시즘의 개념이 사용되었습니다. 요즘 저도 책에서 본 것을 제외하고는 부르주아/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프롤레타리아트 같은 단어를 접하거나 사용해 본 기억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 할까요?
제 어린 시절에 대학 시절의 마르크시즘과 비슷한 지위를 가진 것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주로 셜록 홈즈로 불리기는 했지만. 아마 당시 또래 중 <아이디어 회관 SF>를 읽지 않는 아이들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셜록 홈스를 읽지 않는 아이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홈스는 필수요, 뤼팽(당시는 주로 아르세느 루팡으로 불렸죠)은 선택과목이라고나 할까요? 한 출판사에서 전권을 내지는 않았기에 이런저런 출판사를 전전하면서 많이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완역> 보다는 <편역>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이렇게 출판사를 전전하며 읽다 보면, 특히 장편의 경우에는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다른 감흥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서 나름의 장점도 있었습니다. (아마 타깃 나이층에 따라 번역의 수준이 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02년 출간된 황금가지사의 최초 완역 출간본을 보면서 이제야 제대로 된 번역판을 보겠다는 기대와 함께 혹시나 제가 못 본 이야기가 있지나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저는 이미 이런저런 경로로 모든 셜록 홈스 이야기를 읽었던 것이란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 다만 같은 황금가지 판본으로 깔맞춤을 하다 보니 뤼팽 전집도 까치가 아닌 황금가지판으로 장만을 해서 뤼팽은 나중에 성귀수 번역의 까치판본을 다시 읽어야 했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릴 때부터 영국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면서도 친숙했던 시대가 빅토리아 시대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워낙 오래 집권한지라 홈스 이야기 말고도 수많은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 드라마를 통해 묘사된 근대 유럽의 모습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거나 스팀펑크 장르의 모태가 되거나 마법과 과학기술이 공존하는 묘한 시대의 배경이 되는 등 수많은 창작물에 녹아들어 너무나 친숙한 시대지만, 실제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동감 있게 기술한 책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말끔히 해소하면서 각종 매체에 묘사된 그 시대의 삶의 모습이 어디까지가 현실적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지, 또는 그 화려한 주인공들의 삶 뒤에는 어떤 어둠이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루스 굿먼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입니다.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의 지배계급에서 하층민까지의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저녁에 집에 와 잠들 때까지 그 행적을 따라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입고, 먹고, 일하고, 배우고, 여가를 보냈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이 방식에 있어 많은 경우 그 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직접 그 시대 방식으로 체험을 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에게 그 시대상이 더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이런 특징이 이 책을 딱딱한 역사서나 빅토리아 시대 백서를 벗어나 빅토리아 시대 사람처럼 살아보기 가이드 (실제로 가이드로 쓰일 수는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긴 합니다만) 느낌을 주어 순간순간 감탄하며 빠져들어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흥미로웠던 여러 가지 내용 중에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우선 앞서 이야기의 시작에 언급한 셜록 홈스와 관련해 이야기한다면, 셜록 홈스가 마약을 사용한 것은 당시로서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진통제로 아편팅크를 사용했고, 원한다면 약국에서 헤로인, 코카인, 클로로포름 등을 아스피린처럼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홈스의 취미 중 하나인 복싱은 계층을 초월해서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맨손으로 누군가 쓰러져 못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정하지 않고 하는 게임이었으나 점차 규칙이 정해졌고, 1900년 정도에 이르면 노동계급의 남성들을 술집에서 교회로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에 복싱 경기장과 클럽을 만들곤 했다고 합니다.
여성억압의 상징과 같은 코르셋과 관련해서는 처음에는 여성의 장기 보호와 같은 건강상의 이유로 추천되었고, 의외로 많은 남성들도 날씬한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다만, 코르셋이 쉽게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덕분에 오히려 여성들이 근육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몸의 지탱을 위해서는 코르셋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을 통해 건강이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겁니다.
이외에도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으며 우리가 일반적인 역사책에서 배울 수 없는, 그 시대로 들어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독서로 체험하는 빅토리아 시대 테마공원과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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