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인 <쇼군>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쇼군>의 드라마화는 1980년 이후 두 번째인데, 첫 드라마도 제법 많은 인기를 얻었고, 당시에는 원작 소설도 발매되어 제법 인기가 있었습니다. <쇼군>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역사소설도 아니고 그럴듯한 대체역사도 아닌, 실제 역사적 사건과 등장인물을 다른 이름으로 각색한 뒤 작가가 원하는 대로, 다만 큰 흐름은 역사적 사실을 벗어나지 않게 서술한 묘한 소설로, 말하자면 영국 어딘가의 감옥에서 일본을 다녀왔다는 수상쩍은 죄수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자기 경험담인 양 풀어놓은 밀리터리 버전 <일본견문록>인데, 이런 뭔가 정체가 불분명하고 낡은 이야기가 다시 드라마화되고 인기를 끈다는 게 참 묘합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 <쇼군>의 인기에 편승하여 시대적 배경인 일본 센고쿠 시대와 관련된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센고쿠 시대와의 인연
제가 일본 센고쿠 시대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그야말로 일본 역사소설 모음집을 하나의 제목에 묶은 소설집인 <대망>을 통해서였습니다. 예전에는 집안에 출판사 다니는 친척이 한두명은 있었고 그 친척들은 (아마도 출판사의 강요로) 주변 지인에게 이런저런 전집을 강매(?)하곤 했는데, <대망>도 그런 이유로 저희 집 서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문학과 담을 쌓은 분이고, 어머니는 프랑스 현대 문학파셨지만 세간에 워낙 유명하던 책이어서인지 시작하셨다가 어느 날 "이름이 너무 어렵고, 그것도 수시로 바뀌어서 도저히 못 읽겠다"며 집어던지신 덕에 <대망>과 <후대망> 전권은 제가 구워 먹던 삶아 먹던 맘대로 해도 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전의 제 독서 습관은 좀 독특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은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에는 중간부터 읽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이상한 방식의 독서를 즐겼는데 그렇다 보니 <대망>과 <후대망>이 여러 작가의 역사소설 모음집이란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냥 한 작가가 쓴 센고쿠 시대(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메이지 유신(료마가 간다)을 거쳐 러일전쟁(언덕위의 구름)까지 이어지는 대하 역사소설 정도로 인식하고 읽었습니다.
아무튼 이 <대망> 덕분에 관심 있는 나라, 관심있는 역사도 아닌데, 제 또래의 남자들이 <삼국지연의> 덕에 중국 역사상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후한말의 역사를 잘 아는 것처럼 일본 센고쿠 시대와 그 등장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친숙하게 되었습니다.
<61가지 주제로 알아보는 센고쿠 전쟁 이야기>
이 책은 그야말로 책 제목 그대로입니다. 차례를 보시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바로 감이 잡히실 겁니다.
시작하며
속성으로 익히는 센고쿠 1 대표적인 센고쿠 다이묘와 전투
속성으로 익히는 센고쿠 2 센고쿠 시대의 군대 조직도
속성으로 익히는 센고쿠 3 전투 방식의 변천
1장 전투의 법도
ㆍ 센고쿠 시대의 전투에는 규칙과 순서가 있었다
ㆍ 진형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ㆍ 지휘관의 명령은 어떻게 전달될까?
ㆍ 기습 공격을 가하면 적은 병력으로도 이길 수 있다!?
ㆍ 패배한 척하고 상대방을 섬멸하는 ‘유인작전’
ㆍ 소강상태에 빠졌을 때는 상대를 도발한다
ㆍ 소금·허세·말 -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기발한 비책
ㆍ ‘에이 에이’, ‘오!’로 공격 개시
ㆍ 싸움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센고쿠 시대의 여성 무장
ㆍ 아시가루들의 필수 장비·창
ㆍ 숫자로 상대를 압도한다! 장창을 이용한 집단전법
ㆍ 장창은 빨랫줄도 되고 사다리도 된다!?
ㆍ 무사의 긍지·칼은 아시가루도 사용했다
ㆍ 사방의 적을 무찌르는 필살의 도검술!
ㆍ 침입·도청·도강- 닌자도구의 폭넓은 용도
ㆍ 400m의 비거리를 자랑하는 활
ㆍ 철포는 아마추어를 어엿한 병사로 만들어준다
ㆍ 철포·활·장창으로 구성된 무적의 부대
ㆍ 신무기와 구식무기를 상황에 맞게 사용해 원거리전을 제압
ㆍ 센고쿠 최강의 전투병기·대포
ㆍ 칼에 맞아 죽은 병사보다 돌에 맞아 죽은 병사가 더 많았다!?
ㆍ 화약을 사용한 최신식 무기
ㆍ 투구는 방어 성능뿐만 아니라 멋도 중요했다
ㆍ 방어성을 추구함에 따라 얼굴은 점점 가려졌다
ㆍ 갑옷은 2000년에 걸쳐 실전성을 손에 넣었다
ㆍ 방패로 활과 철포를 막을 수 있을까?
ㆍ 적을 해치울 때 노려야 할 급소
ㆍ 완전무장한 상대를 격파하기 위한 전법
ㆍ 기마무사는 돈이 많아야만 될 수 있었다
ㆍ 기마무사와 보병의 차이, 마상격투법
ㆍ 군마는 사람 못지않게 중무장을 하고 싸웠다
ㆍ 대장의 위치를 알려면 ‘우마지루시’와 ‘하타지루시’를 찾아라!
ㆍ 전장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필수품
ㆍ 아군을 공격하지 않기 위한 방법! 피아를 구별하기 위한 표식
ㆍ 벌판·강·성 - 전장으로 선택되기 쉬운 장소
ㆍ 배를 파괴해서 적을 바다에 빠뜨려라!
ㆍ 호화로운 덴슈카쿠를 자랑하는 성은 센고쿠 중기부터 등장
ㆍ 불태우고 침수시켜라 -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가능
ㆍ 성을 지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
ㆍ 칼럼 1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낙성’은 좀처럼 보기 드물었다!?
2장 출진·진군의 법도
ㆍ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종소리나 고함소리가 빗발친다
ㆍ 출진 전에는 점괘를 보는 것이 센고쿠 시대의 풍습이었다
ㆍ 숨은 주역인 ‘군사’가 전투의 길흉을 점쳤다
ㆍ 센고쿠 시대의 행군은 총대장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ㆍ 병사의 물자를 운반하는 센고쿠 시대의 명품 조연
ㆍ 의외로 종군 중에는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ㆍ 먹을 것보다 마실 것을 확보하기가 더 힘들었다
ㆍ 벗지 않고도 볼일을 볼 수 있는 센고쿠 시대의 속옷
ㆍ 종군 중의 병사들은 어떻게 잠을 잤을까
ㆍ 센고쿠 시대의 과격한 치료법
ㆍ 아시가루들의 무기나 방어구는 렌탈 혹은 각자 부담이었다
ㆍ 도박에 돈을 잃고 의복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었다!?
ㆍ 칼럼 2 베인 상처에는 온천이 최고! 다케다 신겐이 사랑한 비밀 온천
3장 비밀공작·전후처리의 법도
ㆍ 센고쿠 시대의 외교 전략은 지독하리만치 잔혹했다
ㆍ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라 - 센고쿠 시대의 첩보 활동
ㆍ 적을 기만하고 나락에 떨어뜨리는 센고쿠 시대의 정치공작
ㆍ 재래식이지만 의외로 빠르다! - 마음을 전하는 봉화 릴레이
ㆍ 시체 따윈 아무데나 버려라!? 무척 난잡했던 시체 처리
ㆍ 패배의 대가는 영지 몰수에서 그치지 않았다
ㆍ 패배한 센고쿠 무장을 기다리는 할복이란 이름의 서글픈 운명
ㆍ 공을 세운 병사들의 전공은 어떻게 확인했을까
ㆍ 용감한 자가 칭송받았던 전투 이후의 시상식
ㆍ 전승국의 병사들은 약탈행위가 용인되었다
ㆍ 칼럼 3 적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찬사를 보낸 기무라 시게나리의 아름다운 죽음
센고쿠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과 생활상
센고쿠 시대 연표
참고문헌
61가지 각 항목의 제목 하나하나, 내용 하나하나가 어린 시절 보던 <소년중앙> 같은 월간지 한 꼭지로 다루면 딱 좋을 내용과 분량입니다. 대부분의 각 항목당 두쪽을 배당하고 왼쪽은 간략한 해설이, 오른쪽은 그 해설을 간결한 그림과 도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내용은 해당 항목과 관련된 사례를 들 때 빼고는 없지만, 센고쿠 시대의 전쟁에 대한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 개념을 잡는 데는 아주 좋은 책이고, 솔직히 여기서 다루어진 내용 보다 더 상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그건 밀덕의 세계로 입문하는 것이니 다른 곳을 찾아보셔야 하겠죠^^. 각종 무기와 장비 같은 것이 간략한 삽화로만 표현되어 있으니 태블릿을 곁에 두고 실물 사진을 검색해서 보시면 더 좋습니다.
<센고쿠 시대 무장의 명암 - 세키가하라 전투의 배신과 음모>
저자인 혼고 가즈토가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교수라는 사실이 이 책을 말해줍니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센고쿠 시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자세히 다루거나, 그 전투의 양상을 상세히 다루거나, 사무라이의 명암과 관련된 굵직한 이야기를 다루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사료편찬소 교수답게 각종 소소한 사료들을 가지고 잘알려진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을 가합니다. 그런데, 이 해석이란 것이 본격적인 논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센고쿠, 특히 세키가하라 전투 즈음의 역사에 대한 덕후들에 제공할 떡밥 정도의 이야기들입니다. 따라서 독자는 최소한 이 즈음의 역사와 등장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친숙해야 이 이야기들이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즉, 세키가하라 전투에 대한 입문서는 아니란 이야기죠. 다행인 점은 이름의 표기에 있어 언급하는 사건 당시의 이름으로 표기했지만, 많은 경우 알려진 이름을 같이 언급해 줍니다.
<60가지 주제로 알아보는 센고쿠 닌자 이야기>
책 제목과 표지만 보면 어떤 책인지 아실 겁니다. <61가지 주제로 알아보는 센고쿠 전쟁 이야기>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입니다. (사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달랑 이 두권입니다.) 일본 센고쿠 시대와 관련해서 닌자만큼 각종 클리셰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주제는 없을 것인데 이 책은 이 전설적인 직업인 닌자에 대해 그 탄생배경부터 이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익혀야 했던 기술은 무엇인지 각종 영화 등을 통해 클리셰 범벅이 된 닌자의 진짜 모습을 재미있고 쉽게 보여줍니다. 그 재미는 아래 인용된 문장 몇 개를 보시면 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적의 눈을 속이고 몸을 감추는 기술을 ‘은형술’이라고 부른다. 그중 하나가 ‘메추라기 은신’이다. 적에게 엉덩이를 향한 채 팔다리와 머리를 움츠려 웅크리는 것이다. 참고로 얼굴을 가려서 시야를 차단하는 데에는 공포심을 억누르는 효과도 있었다. ‘관음 은신’은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벽이나 나무 뒤에 몸을 붙이고 서는 기술이다. 얼굴을 가린 것 외에는 그저 서 있을 뿐이지만 의외로 잘 들키지 않았다. ‘너구리 은신’이라 하여 나무 위로 숨는 기술도 있다. 이는 위쪽으로는 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심리를 노린 기술이다.
‘천둔십법’은 날씨를 이용한 기술이다. 해를 등져서 적이 시력을 잃었을 때 도망치는 ‘일둔’, 달이 구름에 가려져서 주변이 어두컴컴해진 틈에 도망치는 ‘월둔’, 돌풍에 일어난 모래먼지에 몸을 숨기는 ‘풍둔’, 비나 번개를 이용하는 ‘우둔’과 ‘뇌둔’ 등 자연현상에 편승에 도주하는 방식이다. 우연히 일어나는 자연현상에 의지하다니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닌자들은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 해도 냉정하게 주변을 관찰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즐거운 독서 생활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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