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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영화]아발론 - 두 번째 생각 (rev. 2024.10.07)

by 만술[ME] 2024. 10. 7.

 

[2024.10.07 업데이트]

최근에 20년이 지난 이글에 공감해주고 답글도 달아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다시금 원문을 읽다보니 부끄러워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최초 글을 올린 곳은 제가 활동하던 프리첼 <스타크래프트 밀레니엄> 동호회 게시판이었고, 형-동생하며 면접적으로 활동하던 동호회 회원들을 위해 별도의 준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올린 글이고, 저도 20년 젊었던 시절이다보니 비문, 틀린 맞춤법, 통신체 어투, 쓸데 없는 잰채 등 지금 읽으면 부끄러운 부분이 많더군요. 그 글을 엠파스 블로그, 이후에는 지금의 티스토리로 별다른 검수없이 옮기다보니 이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의 흔적으로) 원문은 유지하되 앞쪽에 문맥 등을 다듬은 글을 별도로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어쩔수 없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만, 제 글을 읽고 영화를 보셔도 크게 지장은 없을 듯합니다.

 

 

 

 

 

이전 글인 <아발론 -그 섬에 가고 싶다>의 말미에 말씀드린대로 영화 <아발론>에서 유출되는 질문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그 질문들을 다시 언급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왜 "Welcome to Avalon"인가?
②왜 애쉬의 애완견이 클래스 리얼의 공연 <아발론> 포스터에 등장하는가?
③왜 현실은 회색으로 표현되는가?
④왜 고스트를 통해 다음 세계로 진행하는가?
⑤왜 세 가지 언어가 등장하는가?
⑥왜 아발론에 대한 책은 비어 있는가?

저는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서 영화 자체를 보면서 어떤 의미로서든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라, 이 장면에서 고정된 롱 테이크를 이용해서 감독은 관객을 사건 속의 방관자로서 약간의 공범의식을 갖도록 만들어 버리는 수법을 구사하는 군"이라든가, "이 장면에서 딮포커스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등장인물이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암시하는군" 또는 "정말 죽이는 미장센이야, 주인공의 심리의 내면까지 모든 것이 팍팍 느껴지잖아?"라든가 "원거리에 약간 높은 앵글을 이용함으로써 정말 비극적인 분위기를 근사하리만큼 창조했는 걸..." 하는 작품의 의도에 대한 분석적인 시각은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관객입장에서는 모호하게 만든 부분이 너무 많은 <아발론>에는 다양한 <왜?>라는 질문이 가능하고 그 질문들 때문에 영화는 필요 이상으로 난해해 보이고 때로는 감독의 불성실함을 감추고자 그 모호함으로 포장한 영화란 느낌을 가질 수도 있기에 감독을 위한 변명 차원에서 다소 분석적인 내용을 다루고자 합니다.

①왜 "Welcome to Avalon"인가?

<Welcome to Avalon>은 영화의 끝에 자막으로 잠깐 나오는 문장입니다. 보기에 따라 괭장한 수수께끼 같고요. 하지만 이 문제를 풀기에 앞서 먼저질문하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왜 아발론인가?>란 질문이죠.

아발론(Avalon)은 아서(Arthur)왕 전설에 나오는 섬이름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아서왕의 전설 뒷부분(아발론과 관련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아서왕이 원정을 간 사이 그의 사생아 모더리드경은 왕권을 찬탈합니다. 아서왕은 돌아와 아들과 결전을 벌이고 결국 모더리드를 죽이지만,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죠. 죽음을 느낀 아서왕은 신검 엑스컬리버를 반납하라 지시하고는, 어느덧 세 명의 여신에 이끌려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존 부어맨의 멋진 영화 <엑스칼리버>에 그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그 떠나간 목적지가 바로 아발론 섬이죠. 이후의 전설과 신념에 의하면 아서왕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아발론 섬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언젠가 브리튼족의 재건을 위해 재림한다는 것이죠.

아서왕의 전설 자체가 역사적 사실(전설속의 아발론이 브루고뉴 지역의 아바론(Avaron)이라는 제프리 애시의 연구) 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발론은 어디까지나 전설 속의 지명이라 하겠습니다. 왜 오시이 마모루는 제목에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아발론을 택했을까요?

우선 아발론은 아서왕과 같은 영웅이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영화 중에 나오는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의 최고 영웅들이 최종적으로 가야할 곳이 있다면 그곳 또한 아발론이 아닐까요? 아마도 이런 의도에서 아발론이란 이름 - 게임의 이름이자 영화의 이름이 채택되었겠죠.

그럼 <Welcome to Avalon>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고스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이런 문구로 영화가 끝을 맺는 것일까요? <딴지일보>에서는 이것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발론>이란 게임의 이름이자 게임 제작사의 이름이란 가설이죠. 따라서 아발론社는 비숍을 이용해 자신들의 게임의 존립 의미자체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들을 포섭해서 일종의 테스트를 거쳐 결국 자사로 스카우트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마지막의 <Welcome to Avalon>은 신입사원에 대한 환영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아발론>이 갖는 기호학적 의미를 배제한 표면적이고 단순한 게이머적인 관점으로 포괄적이거나 설득력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이 해석은 <Welcome to Avalon>이라는 문장 외에 다른 질문에는 답을 해주지 못합니다.

제가 앞서 <아발론>의 의미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죽은 영웅들만 가는 곳, 그래서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는 곳, 영화에서 클래스 리얼을 넘어서야 도달하는 곳, 그곳이 아발론이라면 <Welcome to Avalon>은 오히려 이승을 넘어선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됩니다. 비현실적이고 암울한 실생활 → 치열한 전투만이 벌어지는 게임 속의 세계인 클래스 A → 너무나 현실 같지만 환상일 뿐인 클래스 리얼 또는 클래스 SA의 과정을 통해 다다르는 곳, 그곳을 다른 용어로 표현한다면 클래스 이터널(eternal, 물론 제가 만들어낸 용어입니다)이라 할 수 있는 아발론의 세계인 것이죠. 이 순차적인 상승의 과정은 주제를 담았다는 OST의 노래에서 암시되고 있습니다. 아발론은 이승 또는 현실을 넘어선 곳이죠. 그리고 이문제는 바로 다음의 질문들에서 또 다루어집니다.

②왜 애쉬의 애완견이 클래스 리얼의 아발론 포스터에 등장하는가?

아마 영화 아발론를 보신 분들이 갖게 되는 가장 큰 의문점 중의 하나는 바로 애쉬의 애완견과 관련된 내용일 것입니다. 영화초반에 애쉬 주위의 다른 게이머들 및 게임과 관련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살아있는 듯 보였던 애쉬의 애완견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왜, 어디로 그 개는 사라졌으며 클래스 리얼에서 공연 <아발론>의 포스터에 모습을 드러낸 그 의미는 무엇일까?

첫 번째 생각...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애견주의자이고 <아발론>을 만들면서 별 의미 없는 장난으로 포스터에 개 모습을 등장시켰다는 해석. 실제로 마모루 감독은 자신도 애쉬처럼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애완견에게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죠. 따라서 이런 해석에도 신빙성은 있습니다. 저라도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장난을 슬쩍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하지만 때로 영화 보기는 감독의 의도를 해석해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체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마모루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또는 상관있을지도 모르지만) 노선을 택하려 합니다.

제 생각에 애쉬의 애완견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것이 생기를 잃은 회색 빛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생동감 있는 현실의 표상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애쉬에게는 유일한 현실의 표상인 애완견이 없어지는 순간은 바로 애쉬가 현실 보다는 더 높은 이상(클래스 SA)을 쫒을 때죠. 역으로 그 현실의 표상인 애완견이 없어지자 애쉬에게 회색빛 현실은 더 이상 있어야 할 곳이 아니게 된 것이기도 하고요. 현실, 클래스 A, 클래스 SA (또는 클래스 리얼) 중 애완견이 등장하지 않은 곳은 클래스 A(게임 속)입니다. 이것은 클래스 A의 게임 속이 아무리 현실 같아도 절대로 현실의 표상이 될 수 없는 가짜 세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쉬에게는 처음부터 그곳에서의 활동이 궁극의 목표가 아닌 것이었음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반면, 클래스 SA, 즉 클래스 리얼은 제가 현실의 표상이라 부르는 애완견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등장 방식이 의미삼장합니다. 단순히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아닌 그곳에서 공연되는 오라토리오 <아발론>의 포스터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애쉬가 클래스A의 최종단계를 달성하고 도착한 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복선으로서 클래스 리얼이 아무리 아름답고 현실 같아도 그곳에서 삶의 의미는 광고 포스터(Post라는 동사의 의미를 상기하시라!)처럼 과대 포장되고, 확대되고, 왜곡되고, 박제되어 전시되는 것에 불과한 것이죠. 더구나 그 포스터가 바로 <아발론>(클래스 리얼에서는 오라토리오 풍의 음악공연)의 공연 포스터란 점에서 현실 속의 삶의 표상 또는 의미가 결국은 <아발론> 세계의 표상으로 전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즉, 그 애완견으로 대표되는 표상, 삶의 의미는 제가 이야기한 클래스 이터널(아발론)로 이끌어주는 동기이자, 그 아발론 단계의 현세적 표상입니다.

③왜 현실은 회색으로 표현되는가?

영화 <아발론>은 흑백의 모노톤(주인공이 살아가는 현실), 노랑의 모노톤(게임속), 총천연색(게임의 최종단계 이후)으로 각각의 세계 또는 단계를 표현합니다. 그러면 각각의 색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여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으신 분들은 조금 더 참아주시길!)

현실을 표상하는 흑백의 모노톤 또는 회색(그레이 스케일)의 특징을 살펴볼까요? 가장 큰 특징으로 <무채도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검정과 흰색으로 구성된 회색 빛 세계는 빛과 어둠만이 있는 무채색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현실이란 꿈(하늘색?), 희망(초록색?), 사랑(분홍?), 고독함(갈색?)과 같은 색의 채도가 반영 안 된 곳, 오직 참과 거짓, 삶과 죽음이라는 흑과 백만이 서로 교차하고 얽혀가는 곳이란 사실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현실은 우리의 착각과는 달리 꿈, 사랑, 그런 관념들 즉 채도가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그 채도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식 못하는 이유는 회색이 어느 색과도 잘 어울린다는 두 번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 이해가 됩니다. 현실은 허상적인 채도의 간섭에 의해 늘 왜곡될 수 있는 것이죠.

게임 속 세계인 클래스 A는 노랑으로 표현됩니다. 마모루는 노랑을 모노톤으로 처리하면서 가능한 무채성을 띄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게임이 현실의 무채도성을 닮고자 해도 게임의 세계는 오히려 무채색의 현실처럼 잔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무채색에 가깝기는 해도 약한 노랑의 채도를 지닙니다. 더구나 노랑은 질투, 시기, 빈곤, 결핍 등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게임 속 세계인 클래스 A에서 늘 게이머들이 뭔가 결핍됨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 일는지도 모르릅니다. 그들에게는 더욱 현실 같아야 할 클래스 A지만, 그곳은 희미한 채도로 인해 게임 속일 뿐이란 것을 순간순간 게이머들에게 무서우리만큼 뼈저리게 느껴지게 합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노랑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노랑의 상징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곳이 클래스 A이고요. 이 결핍을 벗어나기 위해 게이머들은 그리도 열심히 게임을 하는 것이겠지요.

총천연색으로 표현되는 클래스 SA 또는 클래스 리얼, 이곳은 무채색밖에 없는 현실에 오히려 채도를 완벽하게 준, 따라서 오히려 완벽하게 왜곡된 공간입니다. 이 왜곡된 유채색의 공간에서는 머피처럼 유채색이 주는 허위의식에 만족하여 표류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죠. 때로는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때로는 깨닫고도 저항하지 못하고. 그러나 머피가 애쉬의 총탄에 맞아 사라질 때보여지는 것처럼, 결국 이 채도의 세계가 작은 충격을 받고 산산이 부서져 버릴 때 우리는 찬란한 유채색들이 결국은 왜곡되었던 것뿐으로 진정한 실체인 빛과 어둠의 무채색으로 환원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 네번째 단계인 <아발론>의 단계 또는 <클래스 이터널>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클래스 이터널의 색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영화 마지막에 <Welcome to Avalon>의 자막과 함께 본 그 색, 암흑이죠. 현실에서 빛을 모두 빼어버린 색!  의미심장하죠?

④왜 고스트를 통해 다음 클래스로 진행하는가?

영화에는 고스트의 존재가 두번 나옵니다. 클래스 리얼로 가기 위한 단계에서, 그리고 아발론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는 <고스트>라는 약간은 생소한 용어를 오시이 마모루의 또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이죠. <공각기동대>의 고스트는 싸이버네틱한 세계 속에서 인간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공각기동대>에서는 이 고스트까지도 해킹을 당하는 무서운 현실을 보여주죠. 우리는 <공각기동대>의 영어 제목을 패러디해서 Ghost in the Class A 또는 Ghost inthe Class Real이란 용어를 쓸 수 있겠죠. 그리고 <공각기동대>의 고스트와 <아발론>의 고스트가 같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할 때, 고스트를 총으로 쏴서 파괴할 때 다음 클래스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자아실현 또는 자기 관조를 통한 무아의 경지에의 도달이랄까요? (이렇게 되면 <아발론>은 <공각기동대>를 뛰어넘는 철학을 보여줍니다^^) 이건 또 다른 질문에서 다루어집니다.

헌데 왜 하필 spirits, soul, mind 같은 비슷한 용어들이 있는데 Ghost를 사용했을까요? 같은 정신현상을 나타내는 네 가지 말들중 고스트는 유독 <비현실성> 또는 <허구성>이 강합니다. 따라서 허구적인 세계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마모루는 유독 <고스트>란 용어를 쓴 게 아닐지? 그리고 그 허구적인 세계의 본질 (Ghost in the Class A or SA)을 깨달아 부숴버려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지?

⑤왜 세가지 언어가 등장하는가?

조금 자세히 (솔직히 자세히 안 봐도 아는데 못 보셨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서) 보신 분은 알겠지만 영화 <아발론>에는 세 가지 언어가 쓰입니다. 대화의 언어인 폴란드어, 게임과 넷(net)의 언어인 영어, 책의 제목으로 쓰인(전 <쓰여진 언어>라는 표현을 하고 싶네요^^) 일본어죠.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문화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선 대화 또는 현실의 언어인 폴란드어. 폴란드란 나라의 역사, 동과 서의 조화, 자유주의(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교차를 생각하면 희망과 공포, 기쁨과 슬픔이 상존하는, 찬란한 빛과 어둠이 함께 하는 흑백 모노톤의 세계에 정말 어울리는 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아발론에서 이야기하는 현실이니까요.

게임과 기계속의 언어인 영어. 이것은 기계문명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또는 물신주의의 언어입니다. 비현실적이고 허상일 뿐인 게임과 넷의 언어에 이보다 더 적합한 언어가 있을까요? 본질을 인식하게 하는데 늘 방해만 되는 물신주의를 상징하는 언어죠. 미국이 바로 이런 서양식 물신주의의 대표니까요.

쓰여진 언어 또는 책 속의 언어는 일어입니다. 일어는 동양 또는 그로 대변되는 정신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아발론>에 등장하는 책은 아발론(왜곡된 본질인 게임 아발론이 아닌 진정한 아발론)에 대한 책이며 따라서 책의 세계 = 아발론의 세계 = 영원한(eternal) 세계 = 정신의 세계로 이어지는 것이죠. 이러한 아발론에 대한 책으로 동양의 언어 말고 더 적합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영어가 가짜 자아인 고스트의 언어라면 일어는 고스트와는 차별되는 <주체의 언어>라고 할까요? 또한 이미 아발론에 관한 것은 쓰여진 또는 쓰여져야하는 운명을 지닌 언어죠.

⑥왜 아발론에 관한 책은 비어있는가?

위에 언급한 일어 제목을 지닌 아발론에 관한 책들은 내용이 비어 있습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이 비어있음을 관객에게 노출시킵니다. 왜일까요? 왜 책은 비어 있어야 할까요?

비트겐슈타인의 저서중 <논리철학논고>라는 철학사의 획을 긋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책 <논리철학논고>는 사다리와 같다는 표현을 합니다. 즉, 무엇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도달하고 나서는 그 사다리를 챙길 것이 아니고 다음 단계를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죠. 또한 같은 책에서 그 사다리 이후의 단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철학상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이 불교의 중도) 철학의 空에 대한 이론에도 나옵니다. 공에 대한 이론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깨달음 이후에 침묵하셨고요.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또는 불교의 선례에 따라 아발론(영웅이 최종적으로 가게되는 궁극적인 장소 또는 해탈의 경지)에 대한 <기술>, <서술> 또는 <진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책은 비어 있는 것입니다. 침묵과 같은 의미죠. 책에서는 오직 아발론에 이르는 방법과 도구만을 제공할 뿐이고 오르고 난 뒤에는 포기되어야 할 과거일 뿐이죠. 그런 의미로 이미 <쓰여진> 것이고 또 깨닫음의 경지로 <쓰여질> 것이고요. 롤랑 바르트의 용어를 끼워 맞추면 그 책은 <읽히는 책>이 아닌 <쓰여지는 책>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발론은 게임이라는 소재를 빌린 해탈에 대한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제가 던졌던 질문들에는 나름대로 답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이 해답은 저만의 해답이기 때문에 읽으시는 분은 스스로 원하시는 해답을 취하셔야 하겠죠. 읽고 재미있구나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은 한번 보시면 좋구요.

 

 

 


 
아래는 2004.03.09에 올렸던 원문입니다. 다른 내용은 없으니 생략하시면 됩니다.

 

 
어제"아발론 -그섬에 가고 싶다"에 말미에 말씀드린대로 아발론에서 유출되는 질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그 질문들을 다시 언급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왜 "Welcome to Avalon"인가?
②왜 애쉬의 애완견이 클래스 리얼의 아발론 포스터에 등장하는가?
③왜 현실은 회색으로 표현되는가?
④왜 고스트를 통해 다음 세계로 진행하는가?
⑤왜 세가지 언어가 등장하는가?
⑥왜 아발론에 대한 책은 비어 있는가?
 

전, 영화를 봄에 있어 그냥 그 자체를 보면서 어떤 의미로서든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라, 이 장면에서 고정된 롱 테이크를 이용해서 감독은 관객을 사건속의 방관자로서 약간의 공범의식을 갖도록 만들어 버리는 수법을 구사하는 군"이라든가 "이장면에서 딮포커스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등장인물이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암시하는군" 또는 "정말 죽이는 미쟝쎈이야, 주인공의 심리의 내면까지 모든 것이 팍팍 느껴지쟎아?"라든가 "원거리에 약간 높은 앵글을 이용함으로써 정말 비극적인 분위기를 근사하리만큼 창조했는 걸..."하는 다소 분석적인 시각은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죠. 허나, "아발론"에는 너무나 많은 "왜?"라는 질문이 가능하고 그 질문들 때문에 때로는 난해해 보이고 때로는 감독의 불성실함을 감추고자 만들어낸 엉성하게 짜여진 영화란 느낌을 갖을 수도 있기 땜에 이번에는 다소 분석적인 내용을 다룰까 합니다.
 

이글을 쓰면서 저는요즘은 없어진 코너지만"출발 비됴여행"의 명코너 "왜?"의 형식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출발 비됴여행"서 "아발론"을 "왜?"의 소재로 다룬 바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제 넘은 제 글을 "출발 비디오 여행"팀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①왜 "Welcome to Avalon"인가?
 

"Welcome to Avalon"은 영화의 끝에 자막으로 잠깐 나오는 대사(?)입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 괭장한 수수께끼 같고요. 헌데 이 문제를 풀기에 앞서 먼저질문하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왜 아발론인가?"란 질문이죠.
 

아발론(Avalon)은 아더(Arthur)왕 전설에 나오는 섬이름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아더왕의 전설 뒷부분(아발론과 관련있는 부분)을 이야기 하자면, 아더왕이 원정을 간 사이 그의 사생아 모더리드경은 왕권을 찬탈합니다. 아더왕은 돌아와 아들과 결전을 벌이고 결국 모더리드를 죽이지만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죠. 죽음을 느낀 아더왕은 신검 엑스컬리버를 반납하라 지시하고,반납 하는 사이 아더왕은 어느덧 세명의 여신에 이끌려어디론가 떠나갑니다. (존 부어맨의 멋진 영화 "엑스칼리버"에 그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그 떠나간 목적지가 바로 아발론 섬이죠. 이후의 전설과 신념에 의하면 아더왕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아발론 섬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언젠가 브리튼족의 재건을 위해 재림한다는 것이죠.
 

아더왕의 전설 자체가역사적 사실(특히 이부분에 대해서는 아더왕 전설에 관한한 최고라 할 수 있는 제프리 애시의 연구가 최고죠)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제프리 애시의 주장대로 전설 속의 아발론(Avalon)이 브류고뉴 지방의 아바론(Avaron)이 아니라면(섬은 아니지만 이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아발론은 어디까지나 전설속의 지명입니다. [여기서 잠깐 : 아발론이 글래스코우란 설도 있지만 이것은 일종의 역사적 사기라고 할 수 있으므로논외로 하죠.] 왜 마모루는 허구 많은 제목중에 아더왕의 전설에 나오는 아발론을 택했을까요?
 

아발론은 영웅이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뭐, 아더왕이 죽은 것인지 안죽은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헌데전투시뮬레이션 게임의 최고 영웅들이 최종적으로 가야할 곳이 있다면 그곳 또한 아발론이 아닐까요? 아마도 이런 의도에서 아발론이란 이름...게임의 이름, 영화의 이름이 지어졌겠죠.

그럼 "Welcome to Avalon"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왜 마지막에 고스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이런 문구로 영화가 끝을 맺는 것일까요? "딴지일보"에서는 이것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발론"이란 게임의 이름이자 게임 제작사의 이름이란 가설이죠. 따라서 아발론社는 비숍을 이용해 자신들의 게임의 존립 의미자체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들을포섭, 일종의 테스트를 거쳐 결국 자사로 스카웃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마지막의 "Welcome to Avalon"은 신입사원에 대한 환영사라고 할까요?^^ 허나 제게는 이런 해석은 "아발론"이 갖는 기호학적 의미를 배제한 표면적이고 단순한 게이머적인 관점으로 포괄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앞서 "아발론"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죽은 영웅들만 가는 곳, 그래서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는 곳,클래스 리얼을 넘어서야 도달하는 곳, 그곳이 아발론 이라면"Welcome to Avalon"은 오히려 이승을 넘어선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됩니다. 비현실적이고 암울한 실생활 -> 치열한 전투만이 벌어지는 게임속의 세계인 클래스 A->너무나 현실 같지만 환상일 뿐인 클래스 리얼 또는 클래스 SA의 과정을 통해 다다르는 곳 그곳을 다른 용어로 표현한다면 클래스 이터널(eternal, 물론 제가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또는 아발론의 세계인 것이죠. 이 과정은 이미 주제를 담았다는 노래에서 암시되고 있습니다. 아바론은 이승을 넘어선 곳이죠. 그리고 이문제는 바로 다음의 질문들에서또 다루어집니다.
 

②왜 애쉬의 애완견이 클래스 리얼의 아발론 포스터에 등장하는가?
 

아마 영화 아발론를 보신 분들이 갖게 되는 가장 큰 의문점중의 하나는 바로 애쉬의 애완견과 관련된 내용일 것입니다.영화초반에 애쉬 주위의 다른 게이머들 및게임과 관련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살아있는 듯 보였던 애쉬의 애완견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왜, 어디로 그 개는 사라졌으며 클래스 리얼에서 포스터에 모습을 드러낸 그 의미는 무엇일까?
 

첫번째 생각...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애견주의자 이고 "아발론"을 만들면서 별 의미 없는 장난으로 포스터에 개모습을 등장시켰다는 해석. 실제로 마모루 감독은 자신도 애쉬처럼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애완견에게 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 한 바 있죠. 따라서 이런 해석에도 신빙성은 있습니다. 저라도 이런 장난을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허나...진정한 영화보기는 감독의 의도를 해석해 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체하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마모루의 의도와는 상관 없는 (또는 상관 있을지도 모르지만) 노선을 택하려 합니다.
 

애쉬의 애완견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것이 생기를 잃은회색빛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생동감 있는 현실의 표상이라는 것입니다.애쉬에게는 유일한 현실의 표상인 애완견이 없어지는 순간은 바로 애쉬가 더이상 현실 보다는 더 높은 이상(클래스 SA)을 쫒을 때죠.역으로 그 현실의 표상이 없어지자 애쉬에게 회색빛 현실은 더이상 있어야 할 곳이 아니게 된 것이구요.현실, 클래스 A, 클래스 SA (또는 클래스 리얼) 중 애완견이 등장 안한 곳은 클래스 A(게임속) 입니다. 이것은 클래스 A의 게임속이 아무리 현실 같아도 그것은 현실의 표상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당초부터 애쉬에게는 그곳이 궁극의 목표도 아닌 것이었음을 의미하구요.
 

반면, 클래스 SA, 즉 클래스 리얼은 제가 현실의 표상이라 부르는 애완견이 등장합니다. 헌데 그 등장 방식이 이미 이야기 한대로 의미심장하게도 포스터로 등장합니다. 이것은 클래스 리얼이 아무리 아름답고 현실같아도 그곳에서 삶의 의미는광고 포스터(Post라는 동사의 의미를 상기하시라!) 처럼 과대포장되고, 확대되고, 왜곡되고, 박제되어 전시되는 것이죠. 더구나 그 포스터가 바로 "아발론"(클래스 리얼에서는 오라토리오 풍의 음악공연)의 공연 포스터란 점에서 현실속의 삶의 표상 또는 의미가 결국은 "아발론"세계의 표상으로 전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즉, 그 표상, 삶의 의미는 제가 이야기한 클래스 이터널(아발론)로 이끌어주는 동기이자 그 아발론의 현세적 표상입니다.
 

③왜 현실은 회색으로 표현되는가?
 

아래의 글에서 이야기 한 대로 "아발론"은 흑백의 모노톤, 노랑의 모노톤, 총천연색으로 각각의 세계 또는 단계를 표현합니다. 그러면 각각의 색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아마 여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으신분들은 "이넘이 드뎌 미쳤구나"하시겠죠? )
 

현실을 표상하는 흑백의 모노톤 또는 회색(그레이 스케일)의 특징을 살펴볼까요?가장 큰 특징으로 "무채도성"을 생각할 수 있죠. 즉, 검정과 흰색으로 구성된회색 빛 세계는 무채색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현실이란 꿈(하늘색?), 희망(초록색?), 사랑(핑크?), 고독함(갈색?)과 같은 채도가 반영 안된 곳, 오직 참과 거짓, 삶과 죽음이란 흑과 백만이 서로 교차하고 얽혀가는 곳이란 사실을 의미합니다. 현실엔 꿈, 사랑, 그런 관념들 또는 채도란 없는 것이죠.헌데...우리가 그것을 인식 못하는이유는 회색이 어느 색과도 잘 어울린다는 두번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 이해가됩니다. 현실은 허상적인 채도의 간섭에 의해 늘 왜곡될 수 있는 것이죠.
 

클래스 A는 노랑으로 표현됩니다. 물론, 마모루는 이 또한 모노톤으로 처리하면서 가능한 무채성을 띄게 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나 게임의 세계속은 무채색의 현실처럼 잔인 할 수는 없죠. 그래서 무채성이 강한 노랑의 채도를 지닙니다. 또한 놀랍게도 노랑은 질투, 시기, 빈곤, 결핍 등을 상징하는 색이죠. 바로 클래스 A에서 게이머 들이 뭔가 결핍됨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 일런지도 모르고요. 그들에겐 더욱 현실 같아야 할 클래스 A지만, 그곳은 게임속일 뿐이란 것을 순간순간 게이머들에게 무서우리만큼 뼈져리게 느껴지게 합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노랑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노랑의 상징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곳이 클래스 A이고요.
 

총천연색으로 표현되는 클래스 SA 또는 클래스 리얼, 이곳은 무채색밖에 없는 현실에 채도를 완벽하게 준, 따라서 오히려 완벽하게 왜곡되어진 공간입니다. 이 왜곡된 유채색의 공간에선 머피처럼 유채색이 주는 허위의식에 만족하여 표류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죠. 때로는 그것을 못 깨닫고때로는 깨닫고도 저항하지 못하고... 그러나 머피가 애쉬의 총탄에 맞아 사라질 때보여지는 것 처럼, 결국 이 채도의 세계가 작은 충격을 받고 산산히 부서져 버릴 때 우리는 찬란한 유채색들이 결국은왜곡되었던 것 뿐으로 실체인 빛과 어둠의 무채색으로 환원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 네번째 단계인 "아발론"의 단계 또는 "클래스 이터널"이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럼 클래스 이터널의 색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영화 마지막에 "Welcome to Avalon"의 자막과 함께 본 그 색, 암흑이죠. 현실에서 빛을 모두 빼어버린 색... 의미심장하죠?
 

④왜 고스트를 통해 다음 클래스로 진행하는가?
 

영화에선 고스트의 존재가 두번 나옵니다. 클래스 리얼로 가기위한 단계에서, 그리고 아발론으로 가기 위한 단계에서...헌데 우리는 "고스트"라는 약간은 생소한 용어를 오시이 마모루의 또다른 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이죠. "공각기동대"의 고스트는싸비버네틱한 세계속에서 인간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공각기동대서는 이 고스트까지도 해킹을 당하는 무서운 현실을 보여주죠. 암튼, 우리는 공각기동대의 영어 제목을 패러디해서 Ghost in the Class A 또는 Ghost inthe Class Real이란 용어를 쓸 수 있죠.그리고 공각기동대의 고스트와 아발론의 고스트가 같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할때 고스트를 쏘아 파괴할 때 다음 클래스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자아실현 또는 자기관조를 통한 무아의 경지에의 도달이랄까요? (이렇게 되면 아발론은 공각기동대를 뛰어 넘는 철학을 보여줍니다^^) 이건 또다른 질문에서 다루어집니다.
 

헌데 왜 하필 spirits, soul, mind 같은 비슷한 용어들이 있는데 Ghost를 사용했을까?같은 정신현상을 나타내는 네가지 말들중 고스트는 유독 "비현실성" 또는 "허구성"이 강합니다. 따라서 허구적인 세계의 본질을 표현하기위해 마모루는 유독 "고스트"란 용어를 쓴 게 아닐지? 그리고 그 허구적인 세계의 본질 (Ghost in the Class A or SA)을 깨달아 부셔버려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지?
 

⑤왜 세가지 언어가 등장하는가?
 

좀 자세히 (솔직히 자세히 안봐도 아는데 못보셨다구 하는 분들도 있어서...) 보신분은 알겠지만아발론에는 세가지 언어가 쓰입니다. 대화의 언어인 폴랜드어, 게임과 넷(net)의 언어인 영어, 책의 제목으로 쓰인(전 "쓰여진 언어"라는 표현을 하고싶네요^^) 일본어죠. 이 세가지는 각각 다른 문화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선 대화 또는 현실의 언어인 폴랜드어... 폴랜드란 나라의 역사, 동과 서의 조화, 자유주의(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교차를 생각하면 희망과 공포, 기쁨과 슬픔이 상존하는 즉, 찬란한 빛과 어둠이 함께 하는 흑백 모노톤의 세계에 정말 어울리는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아발론에서 이야기 하는 현실이니까...
 

기계속의 언어인 영어...이것은 기계문명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또는 물신주의의 언어입니다. 비현실적 이고 허상일 뿐인 게임과 넷의 언어에 이보다 더 적합한 언어가 있을까요? 본질을 인식하게 하는데 늘 방해만 되는 물신주의를 상징하는 언어죠. 미국이 바로 이런 물신주의의 대표니까..
 

쓰여진 언어 또는 책속의 언어는 일어입니다.일어는 동양 또는 정신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아발론에 등장하는 책은 아발론(왜곡된 본질인 게임 아발론이 아닌 진정한 아발론)에 대한 책이며 따라서 책의 세계 = 아발론의 세계 = 영원한(eternal) 세계 = 정신의 세계로 이어지는 것이죠. 이러한 아발론에 대한 책으로 동양의 언어 말고 더 적합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영어가 고스트의 언어라면 일어는 고스트와는 차별되는 "주체의 언어"라고 할까요? 또한 이미 아발론에 관한 것은 쓰여진 또는 쓰여져야하는 운명을 지닌 언어죠.
 

⑥왜 아발론에 관한 책은 비어있는가?
 

위에 언급한 일어제목을 지닌 아발론에 관한 책들은 비어 있습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이 비어있음을 관객에게 노출시킵니다. 왜일까요? 왜 책은 비어 있어야 할까요?
 

혹시 비트겐슈타인이란 철학자를 아시나요? (철학과 출신인 신해철이 같은 이름의 그룹을 만들었죠.) 비트겐슈타인의 저서중 "트락타투스"(TractatusLogico Philosophicus)또는 "논리철학논고"라는 철학사의 획을 긋는 책이 있습니다. 이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책 "트락타투스"는 사다리와 같다는 표현을 합니다. 즉, 무엇엔가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도달하고 나서는 그 사다리를 버려야 하는 것이죠. 또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철학상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이야기를 합니다. 헌데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이 불교의 마디야마카(중도란 뜻)철학의 "쑤냐타"(空에 대한 이론)에도 나옵니다. 쑤냐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부처는 깨닫음 이후에 침묵하셨구요.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또는 쑤냐타의 선례에 따라 아발론(영웅이 최종적으로 가게되는 궁극적인 장소 또는 해탈의 경지)에 대한 "기술","서술" 또는 "진술"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책은 비어 있는 것입니다. 침묵과 같은 의미죠. 책에선 오직 아발론에 이르는 방법과 도구만을 제공할 뿐이고오르고 난 뒤에는 포기되어야 할 과거일 뿐이죠. 즉, 그런 의미로 이미 "쓰여진" 것이고 또 깨닫음의 경지로 "쓰여질" 것이고요. 롤랑 바르트의 용어를 끼워 맞추어 버리면 그 책은 "읽히는 책"이 아닌 "쓰여지는 책"이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발론은 게임이란소재를 빌린 해탈에 대한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제가 던졌던 질문들에는 나름대로 답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이 해답은 저만의 해답이기 때문에 읽으시는 분은 그냥 스스로 원하시는 해답을 취하셔야 하겠죠. 그냥읽고 재미있구나 해주셨음 좋겠네요.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은 함 보시면 좋구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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