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OTT로 영화와 TV시리즈를 보고 있음에도 블로그에는 거의 올리지 않고 있는 것 같아 근래에 OTT를 통해 본 영화/시리즈 몇 편에 대한 간략한 소감을 정리할까 합니다. 선별의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아마존 활명수> 같은 딱히 올릴 필요가 없을 듯한 작품을 제외하고 생각나는 대로 몇 편을 골라본 것뿐입니다. 짧은 글이라 뭉뚱그려 표현되어 있지만 제법 많은 양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홈랜드]
007이나 제이슨 본으로 대표되는 몸빵형 스파이와는 전혀 다른, 안전하게 사무실에 앉아 정보분석을 주 업무로 하는 스파이에 대한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신문이나 이메일이나 뒤지고, 댓글 공작만 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없으니 주인공은 끊임없이 다양한 육체적/정신적/도덕적 위험에 처합니다. 타고난 정신질환 덕분에 천재적인 인사이트를 갖게 된 약간 사기 캐릭터인 것은 다소 불만입니다만, 주인공이 CIA에서 근무하는 평범인 공무원이라면 8개의 시즌을 이어갈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겠죠. 드라마 진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자신의 영감에 따라 자신이 진정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주인공에게 모든 것이 주어지지는 않는 결말이라는 겁니다. 이런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이 늘 그렇듯, 주변인물들이 수도 없이 희생당하고 죽어나갑니다만, 주인공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누구보다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직장도 잃고, 딸의 양육권도 포기해야 하며, 멘토를 배신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결국은 충성을 다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지키려 한 조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반역자로 낙인까지 찍히죠. 주변에 온갖 민폐를 끼치고도 혼자 승승장구하면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좋습니다. 단 하나의 단점은 <로미오+줄리엣> 시절의 클레어 데인스만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보시는데 힘들 수 있다는 겁니다.

[라스트 킹덤 / 세븐 킹스 머스트 다이]
영국의 고대사를 그럴듯한 팩션으로 엮어내는 버나드 콘웰의 <색슨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영화입니다. 이 드라마는 9세기 바이킹의 영국에 대한 대규모 침공과 그에 맞서 통일된 색슨 왕국을 완성하려는 알프레드 대왕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그의 곁에서 함께한 가상의 인물 우트레드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구성은 <아서왕 연대기> 3부작에서 아서, 멀린, 랜슬롯 등 각종 전승의 등장인물들을 실존인물처럼 처리하면서도 주인공을 아서왕이 아닌 전승에 나오지 않는 창작 캐릭터인 데르벨로 설정하여 중요 사건에서 활약하게 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이 드라마의 최고 장점은 전투묘사나 각종 시설, 복장 등의 묘사가 매우 현실적이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주인공 보정이 있지만, 군대의 규모나 전투양상 등이 중세의 낭만과는 전혀 상관없고 가차 없습니다.
참고로 콘웰의 소설은 <스톤 헨지>와 <아서왕 연대기> 3부작만 번역되어 있는데, 아서왕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비록 절판되었지만 도서관을 이용해서라도 <아서왕 연대기>는 꼭 읽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책은 아서왕 이야기가 전승으로만 기록되어 전해진 색슨족 침공 당시의 실제 역사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아서왕 이야기에 대한 전승을 많이 알고 있을수록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초반 몇 회까지는 연기, 캐릭터 설정, 미장센, 촬영기법, 플롯까지 모든 부분에 정말 감탄을 하며 보았지만, 중반으로 진행되며 끊임없는 (실속 없는) 떡밥과 뻔한 반전들에 식상해서 두 달 여를 중단했다가 그래도 끝은 보자는 생각에 다시 시작해서 전반적으로 잘 마무리된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내리게 된 애증의 작품입니다. 한석규의 연기야 말할 것 없고, 채원빈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를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입니다. 요즘 같은 불통의 시대에 그냥 부정선거가 있었는지, 왜 자꾸만 탄핵을 해대는지, 어떤 예산을 왜 삭감했는지 물어만 봤어도 계엄을 하는 허튼짓은 안 했을 것이라는, 소통과 대화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드라마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제는 식상해진 멀티버스 영화지만, 독특한 B급 톤 앤 매너와 흔하지 않은 주인공에 대한 설정, 깔끔한 결말이 그 식상함을 참신함으로 뒤바꾼 영화입니다. 더구나 그 결론이 결국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니! 모든 것(everything)이 모든 곳(everywhere)에서 한번(all at once)에 내 삶에 달려들 때,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를 던져주는 영화지만, 그 정신없고, 오마주와 패러디가 넘치는 B급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싫어한다면 불호일 확률도 높습니다.

[바람의 검심 실사영화 시리즈]
만화를 보지 않고, 애니메이션도 거의 보지 않는지라 <바람의 검심>은 스쳐 지나가듯 이름만 들어본 작품이었는데 드라마 <쇼군>을 본 뒤 사무라이 관련 영화를 찾아보다가 보게 되었는데, 캐릭터와 어울리는 주인공의 모습과 뛰어난 검술 액션에 반해 시리즈를 완주하게 되었습니다. 보는 중간중간 일본 만화원작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엉뚱한 개그 코드나 악당들의 과장된 감정 연기가 있지만, 이런 부분은 일본 영화의 종특이라 생각하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역날검을 사용하는지라 베어 넘기는 숫자에 비해 생각보다 유혈이 낭자하지도 않은 점도 마음에 들더군요. 메이지 유신과 이후 군국화 되어가는 과정의 실제 역사와의 접목이나 나름의 비판 정신도 좋았고 주인공들의 모습이나 캐릭터가 역사에 실존할 것 같지는 않지만, <바람의 검심>의 세계관에서는 실존할 것 같은 현실성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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