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옥스퍼드 버전 읽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책의 원제는 Will in the World: How Shakespeare Became Shakespeare인데, 위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Will은 단순하게 의지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애칭으로서 (아무런 뒷배경도 없이 세상에 던져져 연극인이자 작가의 삶을 개척한) 세상 속의 셰익스피어, (당대에도 인정받고 이제는 세계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셰익스피어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생애에 있어서는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사실 일기와 같은 개인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생애와 관련되지 않은 자료는 제법 있고, 남아 있는 그의 작품도 당시로서는 굉장히 잘 보존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가상인물설까지 제기된 상황이니 700쪽에 달하는 책을 그에 대한 평전으로 채우는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앤 해서웨이와 처음 만남의 시점에는 (혼전에 아이가 생겼음을 고려하면) 둘이 사랑했거나 최소한 깊은 호감을 가졌음은 분명하지만, 그 사랑이 지속되었는지, 아닌지는 짐작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린블랫은 이런 추정을 제시함에 있어 각종 자료, 당대의 풍습, 관계는 물론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석구석을 뒤져 그럴듯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은 상당수가 "~했을 수도 있다"로 끝납니다.
문학을 텍스트 안에 가두지 않고 당시의 사회·역사적 맥락과 연결하는 저자의 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 비평 철학은 이 책에서 명백한 장단점으로 드러납니다. 누군가는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길게 사변을 늘어놓아 700쪽이라는 불필요한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내어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당대에 대한 알찬 정보들을 제공받는 동시에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석구석의 대사들이 지닌 속뜻을 상상하게 하고 작품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재미를 안겨줍니다. 저 같은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지라, 그린블랫의 책은 읽는 내내 가벼운 쾌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취향이라 해도 그린블랫이 꼬리에 꼬리, 상상에 상상을 곁들여 너무 멀리 나가는 경향까지 좋아하게 될지는 미지수이기는 합니다. 예를 들자면 셰익스피어가 A와 만나 영향을 받았는지 불확실하지만 각자의 동선이 겹칠 수 있어 A에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 영향이 이런저런 작품에 이렇게 표현되었다고 상상하는 것까지는 다들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그린블랫은 여기서 더 나아가 A의 삶에 대해서도 상상과 추정을 곁들여 B와의 관계를 추정하는 등 다소 과하게 곁가지로 빠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가 목격했던 사건들을 복원해 내는 이 방식이야말로, 박제된 고전이 아닌 살아있는 셰익스피어를 만나게 하는 가장 지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기에 저는 이런 곁가지가 너무 좋았습니다.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추천하는 것은 (실제로 제가 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셰익스피어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한번 통독을 하고, 에마 스미스의 This is Shakespeare: How to Read the World’s Greatest Playwright를 가이드 삼아 연대기적으로 주요 작품을 한 작품씩 읽은 뒤, 해당 작품과 연관된 부분을 찾아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당 작품과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그린블랫의 상상력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참고로 국역본은 2016년 초판이 나왔다가 2024년에 위 이미지와 같은 양장본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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