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에서 셰익스피어 읽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댓글에 내용을 궁금해하는 분이 있기에 간략하게 설명을 할까 합니다.
계기와 목적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우연이었는데, 2013년 당시만 해도 도서정가제 시행 전이라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가끔 책을 싼값에 쟁여놓을 기회를 갖고는 했습니다. 이렇게 구입한 책 중에 문학동네 판본의 셰익스피어 템페스트가 있었고, 읽다 보니 뭔가 성에 차지 않는 점이 있어, 원문으로 몇 구절 낭송을 해보니 입에 착착 달라붙는지라 역시 운문기반의 셰익스피어는 원문으로 읽어야 맛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영문 고전 문학들은 상당수가 옥스퍼드 클래식스(Oxford World Classics) 시리즈인지라 셰익스피어도 당연히 옥스퍼드의 시리즈로 몇 권 가지고 있어 일 년에 많이는 아니고 한두 권은 이 판본으로 읽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진행했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유로 잠시 중단되었던 셰익스피어 읽기는 또 다른 우연한 기회에 의해 부활했고, 단순한 책 읽기를 넘어 프로젝트의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다시 시작한 계기가 조르디 사발의 음반이었고, 조르디 사발의 음반은 이 블로그에서 느리지만 꾸준히 다루고 있는 역사와 음악 시리즈의 핵심인 바, 자연스럽게 셰익스피어 읽기도 역사와 문화, 비평의 범주로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단순히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읽기보다는 참고 서적을 읽어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게 했습니다.
진행방식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원전으로 직행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도 앞단에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적으로 이미 언급한 스티븐 그린블랫의 명저인 세계를 향한 의지 -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Will in the World: How Shakespeare Became Shakespeare)를 재독 했습니다. 이어서 계기가 된 한여름밤의 꿈으로 시작은 하지만, 이후 순서는 에마 스미스의 This is Shakespeare: How to Read the World’s Greatest Playwright의 순서를 따라 20개의 희곡을 읽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다만, 에마 스미스의 책은 읽은 후의 참고로 활용하기보다는 읽기 전의 가이드로 활용해, 원작을 읽을 때 어떤 점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을지 참고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원작의 텍스트는 과거에 구비해 둔 책이 몇 권 있는 옥스퍼드 셰익스피어(구판)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나 국내서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신판인 The New Oxford Shakespeare의 단행본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각권의 원전 텍스트를 읽은 뒤에, 각 단행본의 앞부분에 있는 해설(Introduction)을 읽는 순서로 정했는데, 과거에 해설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 본 경험에 의하면, 시작부터 방대한 해설을 먼저 읽으면 오히려 본문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더군요. 그래서 에마 스미스의 책으로 간략한 감을 잡은 뒤에는 본문부터 읽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옥스퍼드 구판을 저본으로 읽어 나간다고 해도 필요시에는 옥스퍼드 신판과 비교가 어렵지는 않은데,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3,400쪽짜리 한 권으로 묶은 The New Oxford Shakespeare: Modern Critical Edition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신판 단행본 (아직 출간이 진행 중입니다) 보다는 부족하지만, 각 작품별로 간단한 주석도 있어 옥스퍼드 신판의 편집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데, 옥스퍼드의 구판이 문학과 텍스트에 비중이 있다면, 신판은 연극과 연출에 비중이 높기에 원작 텍스트 외에도 관점의 보완이 가능합니다.

The New Oxford Shakespeare: Modern Critical Edition은 이름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담은 현대철자본입니다. 장점이라면 모든 작품을 한 권으로 소장하고 볼 수 있으며, 단행본 보다야 적지만 적절한 주석을 페이지 하단에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엄청난 부피와 무게로 제 평소 독서 습관처럼 리클라이너에 앉아 손으로는 들고 보는 방식으로 읽을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최대한 부피를 줄이면서 원가도 절감해야 했던 바, 종이질은 사전을 연상하시면 될 정도로 얇고, 뒷면의 글씨가 비쳐 보입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 페이지를 넘긴다기보다는 한 꺼풀 벗겨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죠. 아울러 작품마다 앞에 상세한 해설이 붙은 단행본들과는 달리 짧은 해설도 없이, 마치 신간 홍보문구처럼 해당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사람들의 간략한 평가들의 모음만 붙어 있습니다. 텍스트 자체를 비교한다면 옥스퍼드 구판 보다 현대독자들에게는 좀 더 수월하게 읽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편, 편집에 있어서는 작품에 따라 기존의 막(幕, Act) - 장(場, Scene) 구분을 파괴하고 장으로만 구분했다던가 하는 경우가 있어 (비록 실제 공연에서 이 막/장을 완벽히 따르지는 않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 구판본에서 햄릿의 유명한 "To be, or not to be..." 구절을 일반적인 방식대로 3막 1장으로 표기한 반면, 신판본은 (각 장이 시작하는 부분에는 3.1 스타일로 작게 막/장을 구분해 놓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8장으로 표기되어 있어 다른 판본을 읽거나 옛 판본에 친숙한 사람들과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있어 막(幕, Act) - 장(場, Scene)에 대하여
당연한 일이지만 뉴 옥스퍼드 셰익스피어(NOS)의 편집진이 일부작품에서 막(幕, Act) - 장(場, Scene)의 구분을 장으로만 표기한 것이 근거가 없는 방침은 아닙니다. 앞의 본문에서 NOS와 구버전(OS)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옥스퍼드의 구판이 문학과 텍스트에 비중이 있다면, 신판은 연극과 연출에 비중이 높다고 말한 바 있는데, NOS는 셰익스피어 당대의 공연 관행을 복원하자는 취지에서 이런 편집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우선 당대에는 요즘 우리가 익숙한 인터미션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이 진행되었기에 막(幕, Act) - 장(場, Scene)의 구분은 인위적으로 이 흐름을 끊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실제 역사와도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막(幕) 구분이란 것이 셰익스피어의 의도라기보다는 훗날 편집자들의 삽입일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4 절판(Quarto)에 비해 사후에 나온 2 절판(Folio)에 막구분으로 된 작품이 많고 그나마도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는 사례입니다.
아울러 셰익스피어의 극단이 실내극장인 블랙프라이어스(Blackfriars)로 옮긴 뒤와 그 이전에 야외극장인 글로브(Globe) 시대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야외에서는 햇빛에 의존해 공연을 했기에 공연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실내로 옮겨 촛불 조명에 의존하게 되면서 조명의 교체 및 심지 다듬기를 위한 막이 필요해졌고, 그렇기에 블랙프라이어스로 옮긴 1609년을 기점으로 작품의 막/장 구분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셰익스피어를 읽기 위한 작품(기존의 관점)으로 볼 것인가 공연되기 위한 작품(NOS)으로 볼 것인가의 관점의 차이라 하겠습니다.
지평 넓히기
다양한 출판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판본들이 현대 철자로 구현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어투, 단어의 용법 등에 있어 현대 영어만 습득한 저 같은 외국인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일반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책은 엄청난 양의 주석을 포함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주석이란 것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아르덴 판본이 이렇습니다)까지는 가지 말아야 하기에 편집자의 주관에 따라 적절한 수준까지만 담길 수밖에 없고 조금 더 문학/어학적 지평을 넓히려 한다면 부자지간인 데이비드와 벤 크리스털의 Shakespeare's Words: A Glossary and Language Companion이 최고의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사전과 같은 방식으로 편집된 이 책은 각각의 낱말을 셰익스피어가 어떠한 의도로 사용했고, 다른 작품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용법이 평범한 단어도 어떻게 다르게 읽어야 하는지를 예를 들면, 현대에 주로 기초, 아래층, 기지 등으로 쓰이는 base의 경우 셰익스피어 작품에서는 불명예스러운, 가치 없는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물론, base에 낮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 문맥으로 불명예나 무가치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실제 일상에서 그런 의미로 base를 쓰는 경우는 없으니 영어권 독자라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office는 목적, 의무를 의미하고 several은 분리된, 다른, 구분되는의 뜻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는 작품의 이해에 있어 오히려 (전문 번역가가 뜻을 살려 번역한) 번역본을 읽는 해외의 독자들이 유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책은 방금 소개한 셰익스피어가 특별히 자주 쓰는 말들을 우선적으로 한 곳에 모아놓고 설명한 뒤, 뒤에서는 모든 단어를 A~Z 순서로 나열하여 사전식으로 뜻과 활용을 설명합니다. 단어마다 어떤 작품에서 해당 낱말이 등장하는지 예문도 보여주어 크로스체크를 할 수 있습니다. 책에는 단어 해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의 인물관계를 설명하고 도식화해서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색인도 마련되어 있어, 이름으로 해당 인물이 어느 작품에 등장하는지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대 노섬벌랜드 백작(헨리 퍼시)은 리처드 2세, 헨리 4세 1, 2부에 등장합니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물론 외국인의 우리말 공부에 여름 = 열매, 즘게 = 나무 같은 것보다는 현대 시사어나 10대 은어를 아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반문에 딱히 답할 말은 없습니다만, 셰익스피어를 원어로 읽음에 있어 이 650쪽짜리 책은 거의 필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편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단순한 역사가 아닌 시대상을 알기에 좋은 책으로는 이언 모티머의 The Time Traveler's Guide to Elizabethan England가 있습니다. 전에 소개한 바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생활상에 관한 책의 엘리자베스 시대 버전이라 할 수도 있을 이 책은 당시의 풍광에서 시작해서 종교, 복장, 식생활, 주거, 위생 등에 대해 당대를 포함한 각종 문건을 기반으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제공합니다. (물론,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루스 굿먼의 책은 저자가 직접 몸으로 시험까지 해본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예를 들어 중세부터 종교는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했지만, 특히나 엘리자베스 시대는 아버지 헨리 8세의 국교 독립 이후의 파란만장한 종교갈등으로 매우 예민한 주제였습니다. 모티머는 책에서 당대 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녁 식사 전, 저녁 잠들기 전에 꼭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려야 하며, 매주 교회에 나가야 하고, 미래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예견하는 듯한 발언을 삼가고, 특히 이웃과의 대화는 조심해야 하며, 하인들에 대해서도 (우리 주인은 종종 잠자리 기도를 생략한다는 고발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마녀행위나 일반적인 종교에 대한 불충, 가톨릭 신자라는 점은 고문이나 교수형을 당할 수 있지만 화형까지는 당하지 않지만, 재세례파(Anabaptist) 같이 이단으로 지목된 경우에는 화형을 당했으니 그쪽으로는 특히나 의심받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셰익스피어를 전공하는 학도의 수준으로 변모하는 바, 적절한 취미로는 딱 이 정도가 좋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지옥불도 얼어붙는 세상에서 사람의 일이란 것이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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