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 사건, 조직 등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 사건, 조직과 유사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거짓 미소와 비즈니스 담화에 삶을 낭비하기는 싫어
처음 팀장을 맡고 몇 년이 지난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이런저런 분위기 속에 네트워킹이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업무상으로 건 향후의 커리어 패스를 위해서 건 네트워킹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조가 널리 퍼져 있었고, 다들 이런 네트워킹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저런 팁과 노하우를 자랑하거나 각종 책을 통해 습득하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이런 네트워킹을 위해 골프를 배워야 한다거나, 와인을 배워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나왔고요. 순전히 네트워킹을 위한 것으로 밖에는 안 보이는 최고위 과정 같은 것도 임원이면 다녀야 하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기도 했습니다. 팀장급이나 팀원도 각종 협회나, 분과모임에 나가야 했고요.
사실 팀장이 되어 가장 좋았던 점이 (제가 소집을 안 하면 되니까) 회식을 안 해도 되고, 설사 특별한 사유나 요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회식을 하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술을 안 마셔도 된다는 것이었을 정도로 모임이나 사교행사를 싫어했기에 이런 네트워크 만능시대를 보내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팀장이라는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만남이 많아지는 것도 힘들어, 과연 제가 직장생활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이런 성향으로는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많이 했죠.
나이가 먹어가고, 직위나 직책이 올라가면서 직장의 리더로서의 페르소나는 점차 축소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안정적인 직장생활에 위협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구태여 다른 페르소나로 살아가며 소진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업무상 약속은 최대한 점심으로 한정하고, 골프는 건강을 핑계로 은퇴(?)하고,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술자리에서도 술은 안 마시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아울러 가능한 거짓 미소와 비즈니스 담화가 오가는 모임은 피하고 진정으로 제가 즐거울 수 있는 자리만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제 행동이 제 커리어에 있어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있겠지만, 반대급부는 마음의 평온과 즐거움이랄까요.
그러나 이렇게 고르고 고른 모임도 한계는 있게 마련입니다.
매월 셋째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예전 직장(B사)에서 같은 부서 또는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업무상 부딪치며 친하게 지냈던 직원(선/후배/동료)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제가 그 회사를 떠나고, 일부 직원들도 떠나서 그 회사의 재직자와 퇴사자들 열명 내외가 건너뛸 때도 많았지만 한 달에 한번 모이는 것을 목표로 지냈던 모임입니다. 퇴사한 사람이건 아직 다니고 있는 사람이건 결국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지라, 정보교환 차원이나 친목이나 업무상 모임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에 대부분 저녁자리는 제가 결재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즐거워하던 그 모임은 제가 직전 직장에서 잘리고 나서 딱 한번 모이고는 2년이 다되어 가도록 더 이상 모이지 않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들 밥벌이는 하고 있고, 일부는 여전히 조직 내 리더의 위치에 있으니 원한다면 한 달에 한번 정도 누군가 밥값을 내거나 몇 명이 나누어 내는 것도 문제는 없겠지만, 아마도 그러기에는 다들 영양가가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 같고,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강남의 모 중식당 룸에서 있었던 A사 출신 선후배가 오랜만에 만난 저녁 식사자리
등장인물
- 만술, 공채는 아니고 경력이지만 만술이 동기처럼 지내던 A사 팀장 출신 2인
(1인은 자영업, 1인은 퇴직 후 티어를 낮춘 회사 임원으로 근무)
- 위 3인과 팀장-팀원으로 근무하던 후배 2인
(각각 이직한 회사의 경영지원 본부장 및 임원으로 근무 중)
분명히 찾아보면 뭔가 삶의 공통분모가 있을 텐데, 이런저런 이야기로 표류하다 결국은 지금은 아무도 다니지 않는, 제가 사업 1 팀장, 자영업이 사업 2 팀장, 그리고 나머지가 사업 3 팀장을 하던 시절의 A사 이야기로 귀결되더군요. 각자의 위치가 달랐고, 세월도 많이 지나서 기억의 편린이 간극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유독 한 가지에 대해서는 참기가 힘들더군요. 물론, 좋은 분위기 망치기 싫어 참기는 했습니다만, 또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제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듭니다. 네, 저 까칠하게 살아요.
내용인즉, 저 포함 세 명이 팀장을 하거나 팀 내 선임이던 시절 A사에 잘 나가던 임원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업부는 같았지만 파트가 달라 그 임원의 라인은 아니었고, 두 명은 그 임원의 라인이었습니다. 그 임원은 성격이 문제가 많고, 특히 언어폭력이 심한 데다 독불장군 스타일의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어 직원사이에서는 악평이 자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이라 생각하는 윗분들 덕에 승승장구했고, 사업부는 물론, 회사 내에서도 가장 강력한 라인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던 사람도 어느 순간에는 털려나가고 말았지만요. 아무튼 저녁식사를 하며 이 임원에 대한 뒷담화가 오갔는데, 자신들을 피해자로만 묘사하는 두 명이 정말 짜증 나더군요. 저는 라인은 아니었지만, 그 임원의 행동이나 스타일이 싫어 가능하면 상종하지 않았고, 그래서 일정 부분은 실세에 영합하지 않았던 이유로 좌천이 된 일도 있었습니다. 반면 두 친구는 그 밑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고생한 것은 맞지만 맞서지도 않고 순종하면서 다른 부서로 전출을 신청하지도 않으면서 경제적 이득이나 인사적 혜택을 받았고, 덕분에 그 밑의 팀원들은 더 고생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참아야 했는데, 그런 사실은 생각도 안 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어쩌면 이 저녁자리가 불편했던 것은 단지 피해자 코스프레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속내를 살펴보면 사회적으로 나름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른 다섯 명의 어른들이 모여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부동산이나 주식이야기가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결국은 수십 년 전 과거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A사 출신 선후배가 오랜만에 만난 다른 저녁 식사자리
윗 이야기와 같은 A사 출신들의 모임이고 결국은 윗 이야기의 등장인물들과 같은 사업부 출신이지만 연배는 모두 제 선배인, 당시에는 임원이었던 분들의 간헐적 모임에 막내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모임 이야기입니다. 오래전 A사 사장으로 퇴임해서 경제적 활동을 안 하는 분도 있고, 전혀 다른 업종으로 전환해서 대표를 하는 분들도 있어 어찌 보면 공통된 이야기가 더 과거로 회기 할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나온 이야기는 현재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이었습니다. 한 선배는 2년 정도 드럼을 배워 밴드활동을 하고 있고, 그래서 다른 선배가 대표로 있는 곳에서 연말에 공연을 하기로 했으며, 그 공연장을 제공하기로 한 선배는 자신의 사업장 활성화를 위해 요즘 미술전시나 공연유치를 하느라 예술에 푹 빠져 지내는 이야기를 하면서 저희 와이프가 취미로 그림을 그리니 전시회 한번 하라는 등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부동산이나 돈이나 사업 이야기가 아닌 예술과 문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지방출장 때문에 좀 늦게 참석해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훨씬 더 즐겁고 아름다운 모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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