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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카메라 - IT/밀동 연대기 시리즈

[게임]밀동(a.k.a. 스타크래프트 밀레니엄) 연대기 (7) 잊힌 서비스, 장소, 그리고 사람들

by 만술[ME] 2026. 10. 6.
"이 포스팅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 사건, 조직 등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 사건, 조직과 유사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본 문서의 작성과정에서 단 한 마리의 저글링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지금은 잊힌 역사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을 담고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지난 이야기

밀동 연대기 (1) - 시작, 밀레니엄을 향해

밀동 연대기 (2) - 빛과 그리고 그림자

밀동 연대기 (3) - 에피소드 열전(列傳)

밀동 연대기 (4) - 프리챌 4대 문파가 되기까지

밀동 연대기 (5) - 인물 열전(列傳)

밀동 연대기 (6) - 피와 명예, 권력의 이양(移讓)에 대하여

 

 

 

동호회의 고고학

 

동호회, 특히 온라인 동호회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저는 밀동을 서비스, 장소, 그리고 사람으로 기억합니다만, 어떠한 기록이나 흔적 없이 연대기를 씀에 있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기억뿐이고, 20년도 더 지난 기억인지라 이 밀동 연대기 시리즈는 일종의 기억의 고고학을 통해 재구성했기에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찬란했던 밀동의 역사에서 일부의 모습 밖에 보여주지 못합니다.

 

서비스 ― 프리챌 이야기

 

프리챌은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시작해서 갑자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전문가가 만든 듯한 동호회 웹사이트를 간편하게 만들 수 있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도 수월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현재의 네이버 카페보다 디자인이나 구성이 더 깔끔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일단 색상이나 디자인이 현행 네이버 대비 눈이 피곤하지 않았죠. 

 

실명제를 지향했기에 지금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홍길동(robinhood)' 스타일의 회원 실명 표기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밀동 같은 경우에는 이 방식이 오프라인의 활성화 분위기에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만나기 전부터 이름과 성별을 알고 만나는 것은 '준비'에 있어 다르니까요. 더구나 밀동의 사진 게시판에는 다들 자기 사진을 올리기도 했고, 당시만 해도 사진과 실물이 크게 차이 나지는 않던 시절이니 처음 오프라인에서 '강남미녀'를 아이디로 쓰는 회원을 만났는데 만나보니 거구의 남성이라도 충격은 적었습니다. 이미 사진 게시판이나 실명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실명과 사진도 공개되는 분위기니 오히려 '강남미녀'라는 아이디를 자신 있게 사용하려면 용기도 필요했기에 오프라인 첫 만남의 충격 자체가 예방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오프에서 만나보면 메텔님은 진짜 메텔이었고, 섹시여우님은 섹시한 여우였고, (직장명에서 따왔지만) 민트님은 민트향이 나는 상쾌한 여성분이었고, 해피저그님은 행복한 저그 플레이어였습니다. 까목스님이 스님이 아닌 건 의외였지만...^^

 

밀동에게 있어 프리챌의 부분 유료화는 전혀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초기부터 용량이나 동호회 꾸미기 아이템은 마스터, 스탭 또는 기탁자의 지원으로 유료 기능을 사용했습니다. 그냥 "이번 용량 증설에 A님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도의 공지만 올리면 다들 인사 댓글을 달고, 다음번에 비용이 필요할 때면 누군가가 기부를 하고 그랬죠. 사실 직장인 입장에서 비용이 큰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회원들이 아바타 꾸미기 같은 개인 아이템도 유료로 사용하는 분위기라 동호회를 위해 돈이 들어가는 건 크게 부담되는 일도 아니었죠. 사실 오히려 유료 기능으로 뭔가 더 좋아지는 것을 선호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밀동을 좋아하고, 이런 동호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회원들도 많았고 이런 회원들은 온라인/오프라인의 비용을 내는 것에 서슴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동호회가 밀동 같지는 않았고 프리챌의 급격한, 그리고 제대로 준비하고 홍보하지 못한 부분 유료화는 프리챌 자체의 운명을 바꾸어 놓습니다. 프리챌이라는 플랫폼이 더 이상 핫하거나 쿨하지 않게 된 것, 아마도 그 또한 밀동 쇠락의 한 원인이었을 겁니다. 

 

장소 ― 아름다운 PC방, NET

 

모든 회원들에게 편한 위치는 아니었겠지만, 동호회를 처음 구성하던 저와 동료들의 직장이 있고, 제법 많은 회원들의 직장도 근접한 강남역 테헤란로의 NET는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모임의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넷 기반의 통신서비스를 표방하던 넷츠고에서 운영하는,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팝업/플래그십 스토어라 할 수 있던 NET는 규모, 서비스, 시설 등에서 일반 PC방을 압도했습니다. 대형 법무법인이나 그룹사 로비를 연상케 하는, 아리따운 여성분들이 유니폼 입고 안내하는 부스가 1층에 자리했다는 것부터 다른 PC방들이 따라올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죠. 지하의 별도 동호회 모임을 위한 공간은 오프라인 모임/대회를 위한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강남역 인근은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저녁 모임을 하기에 괜찮은 식당들도 주변에 많던 시절이라 모임 뒤풀이를 생각할 때도 NET는 괜찮은 장소였습니다.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일반 PC방 대비 살짝 비싼 가격을 제외하면 NET는 밀동에게 있어 성지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들 ― 잊힌 이름과 기억나지 않는 아이디들

 

어떤 회원은 이름으로 기억나고, 어떤 회원은 부르던 아이디로만 기억나며, 또 누군가는 얼굴로만 기억나기도 합니다. 내가 A라고 부르던 회원이 제가 얼굴로 기억하는 그 사람이 맞는지도 의문인 경우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회원이 A로도 또는 B로도 불렸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B라는 다른 회원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열전이나 에피소드로 다루고 싶은 회원이 더 있지만, 아이디나 호칭이 기억나지 않아 다룰 수 없기도 합니다. 한편 아이디나 호칭이 뚜렷하게 기억나고 얼굴도 기억하지만, 그리고 함께 한 몇몇 장면도 떠오르지만 연대기에 올릴만한 특이한 추억이 없어 언급하지 못한 회원도 있습니다. 물론 제 마음은 그분들과 함께 동호회 활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추억이기는 합니다.  

 


 

이상으로 밀동 연대기를 마칩니다. 밀동 회원이었던 분들 중에 이 연대기를 읽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수정하거나 추가했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면 밀동 연대기 속록(續錄)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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