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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TV 이야기

[영화]페일 블루 아이 (The Pale Blue Eye)

by 만술[ME] 2026. 6. 16.

스콧 쿠퍼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이 영화가 넷플릭스 영화로 공개된 것이 2023년 초이고 올라온 즉시 찜해두기는 했지만, 얼마 전에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도 루이스 베이어드의 원작 소설도 읽고 하워드 쇼어의 OST도 듣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지라 영화가 올라온 지 3년이 넘어 감상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한줄평이 아닌 적절한 길이의 영화평을 하면서 스포일러를 제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종종 스포일러를 만나실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결말을 알고 보면 더 많이 보이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름의 표기에 관해

Edgar Allan Poe의 우리말 표기에 대해서는 에드거 앨런 포로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Augustus Landor는 영화에서는 랜도르로 소설 번역본은 랜더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랜도르 보다는 랜도어 정도가 요즘 우리말 표기 스타일에 더 어울렸을 텐데 영화 자막에서 랜도르로 표기하는 바 이 블로그에서는 랜도르를 기준으로 사용합니다.
Lea Marquis는 영화에서는 리아 마르퀴스, 소설은 리 마퀴스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Leonore리어노어로 표기하기에 리-리로 운율이 맞고, 영화는 레노어로 표기하기에 리아와 운율이 안 맞기는 합니다만, 리 마퀴스, 리어노어가 가장 표준적인 표기라 할 수 있기는 합니다. 블로그에서는 영화 표기를 따르되, 편의에 따라 병기하기로 합니다.

 
 
영화는 (원작 소설 이야기도 종종 등장하겠지만 영화를 기준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짧았던 웨스트포인트 시절의 사건을 다루고 있어 이른바 에드거 앨런 포 비긴즈(Begins) 같은 장르적 수식어를 붙여볼 법한 서사입니다. 사실 영화는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인물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 다양한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블로그나 언론의 영화평에도 언급은 안 하지만 제목인 페일 블루 아이(The Pale Blue Eye)부터가 포의 단편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것입니다. 포의 유명한 단편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에 등장하는 사건의 주요 모티브입니다. 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아우구스투스 랜도르 역시 포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물론 구체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아른하임의 영토의 2부인 랜도르의 오두막(Landor's cottage)의 주인으로서죠. 포가 묘사한 이야기에서 이름만으로 등장하는 산속 오두막의 주인 랜도르는 어떤 사람일까, 포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 사람일까에서 출발한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It is not the purpose of this paper to do more than give, in detail, a picture of Mr. Landor’s residence — as I found it. How he made it what it was — and why, with some particulars of Mr. Landor himself — may, possibly form the subject of another article.
 
이 글은 내가 직접 보았던 그대로의 랜도르 씨의 거처를 상세히 묘사하는 것을 넘은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가 어떻게 그곳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랜도르 씨 자신에 관한 몇 가지 일화는 아마도 다른 글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에드거 앨런 포, 랜도르의 오두막 / 마지막 구절 (블로그 주인장 번역)

 
영화는 바로 포가 끝내 쓰지 않았던 오두막 주인 랜도르 자신에 관한 몇 가지 일화를 상상한 원작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죠. 다만 루이스 베이어드의 원작 소설은 이 이야기를 포가 하는 것이 아닌 랜도르의 기록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영화에는 에드거 앨런 포를 비롯해 교장 세이어, 히치콕 대위 등 실존인물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 조금이라도 영화에 영감을 준 사건이 있지는 않았겠냐고 희망하신다면 원작자 베이어드는 감사의 글을 통해 해당 기간 동안 웨스트포인트에서는 살해는 물론 중상을 당한 생도도 없었다고 못 박고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옅은 파란색 눈(The Pale Blue Eye)
 
The sweet Lenore hath “gone before,” with Hope, that flew beside,
Leaving thee wild for the dear child that should have been thy bride—
For her, the fair and debonair, that now so lowly lies,
The life upon her yellow hair but not within her eyes—
The life still there, upon her hair—the death upon her eyes.
 
사랑스러운 레노어는 곁을 날던 희망과 함께 "먼저 가버렸고",
그대의 신부가 되었어야 할 그 소중한 아이 때문에 그대만 미쳐가게 남겨두었소.
이제는 저토록 낮게 누워있는 그 아름답고 상냥한 여인을 위하여,
생명은 그녀의 금발 머리칼에 머물러 있으나, 그녀의 눈동자에는 없으니.
생명은 여전히 그녀의 머리칼에 있으나, 죽음이 그녀의 두 눈에 내렸으니.

- 에드거 앨런 포, 레노어(Lenore)

 
 
영화의 제목인 옅은 파란색 눈의 의미에 대해 많은 리뷰들은 루시 보인턴이 연기하는 리아 마르퀴스(원작 소설 번역판에서는 리 마퀴스)를 의미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포의 시에서 옅은 파란색 눈으로 시(詩) 속의 여인인 리어노어(Leonore)를 묘사하고 있고, 실제 포의 시(레노어(Lenore) / 갈까마귀(The Raven))에서 요절한 여인으로 묘사되는 레노어 = 리/리아 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영화/소설의 한 가지 모티브이니 옅은 파란색 눈은 리아를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소설에서는 포가 직접 "리...어노어(Lea...nore)"로 발음하며 자신의 영감의 원천이 실존하는 리아/리라고 확신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더불어 소설에서는 리아/리를 옅은 파란색 눈의 여인으로 지칭하는 경우도 몇 번 나옵니다. 따라서 영화/소설의 제목은 1차적으로 (작가가 레노어라는 시에 등장하는 이름에서 착안한) 포가 평생의 뮤즈로 가슴에 묻어야 했던 비극적인 첫사랑의 눈을 의미합니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원작 소설은 포의 시에 등장하는 레노어(Lenore)를 일부러 리어노어(Leonore)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 속 에드거 앨런 포의 공식적인 문헌들을 살펴보면, 그가 자신의 시에 Leonore(리어노어)라는 철자를 쓴 기록은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바 대로 포의 시에 등장하는 이름은 항상 Lenore(레노어)였습니다. (1843년 발표된 시의 제목도, 1845년 갈까마귀에 등장하는 이름도 모두 Lenore입니다.) 실제 포가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어드가 소설 속 포의 자작시에 굳이 Leonore라는 철자를 등장시킨 이유는 가상의 인물인 리(Lea)와 실제 포의 시 속 인물인 레노어(Lenore)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한 징검다리라 생각합니다. Lea(리아/리)라는 이름에 사랑스러운 접미사처럼 -nore를 붙여 부르면 Lea-nore(리어노어), 즉 Leonore와 매우 흡사한 형태와 발음이 됩니다. 독자는 이 철자를 보는 순간 포가 리아/리를 향한 짝사랑의 마음을 담아 은밀하게 리어노어(Leonore)라는 애칭을 만들어 불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 상상력 한 숟가락을 더하면, 청년 시절의 포는 짝사랑했던 리아(Lea)를 기리며 Leonore라는 애틋한 이름으로 시를 지었지만, 그 시의 아크로스틱(세로 드립)에 숨겨져 있던 끔찍한 진실(매티의 죽음과 살인 사건의 전말)을 깨닫게 된 후, 그 이름은 포에게 사랑이 아닌 끔찍한 트라우마와 배신감의 상징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훗날 그가 이 시를 세상에 정식으로 출판할 때(그리고 갈까마귀를 쓸 때), 그는 의도적으로 가슴 아픈 Lea의 흔적을 지워내기 위해 철자에서 o를 빼버리고 Lenore(레노어)로 변경하여 과거를 숨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흥미롭게도 에드거 앨런 포를 연기한 배우 해리 멜링(Harry Melling) 특유의 크고 돌출된 옅은 푸른 눈이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하게 부각됩니다. 영화 내내 랜도르(크리스천 베일)의 어두운 눈빛과 포의 투명할 정도로 창백한 푸른 눈빛이 대비를 이룹니다. 그런데 앞서 저는 옅은 파란색 눈의 모티브는 포의 단편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에서 따온 것이라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그 소설에서 화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의 옅은 파란색 눈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견디지 못하고 그 노인을 살해합니다. 단편에서 옅은 파란색 눈은 살인자의 숨겨진 악의와 죄책감을 응시하는 감시자를 상징합니다. 이 상징을 영화 속 포의 옅은 파란색 눈에 도입을 하면, 영화의 제목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 제목은 살인자(랜도르)의 완벽한 거짓말을 끝내 꿰뚫어 보고 마는 관찰자 포의 서늘한 눈으로 완벽하게 치환됩니다. 흥미롭게도 실제로 포와 교류했던 지인들이나 약혼녀였던 세라 헬렌 휘트먼의 묘사에 따르면, 그의 눈은 둥글고 매우 컸으며 빛에 따라 푸른빛이 도는 회색이나 옅은 갈색(Hazel)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심장(Heart)
 
시선(눈)이 이 끔찍한 비극의 관찰자를 상징한다면, 이야기의 중심부에서 고동치는 또 다른 핵심 모티프는 바로 심장(Heart)입니다. 영화에서 심장은 표면적으로는 중요한 범죄의 동기입니다. 벌어진 범죄를 더욱 끔찍한 범죄로 만들고, 흑마술을 위한 도구이며, 결말을 보면 랜도르가 하는 수사가 단순히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닌 심장 강탈자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명분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장(heart)은 (조사병단도 아님에도) 포가 리아에게 바치고자 하는 것 ― 사랑과 마음과 진짜 심장 ― 을 중의적으로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도 리아를 사랑했으니 어떤 점에서는 마음/심장을 리아에게 바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심장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화의 제목인 옅은 파란색 눈이 등장하는 단편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입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인간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 그 금기 때문에 파멸을 향해 몸을 던지고자 하는 기이한 충동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며 이를 The Imp of the Perverse라고 불렀습니다. The Imp of the Perverse는 직역하면 비틀린 마음의 요정이지만, 요정을 좋은 존재로만 생각하는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고, 뜻하고자 하는 인간이 가진 자멸적인 본능을 생각하면 이는 역행 충동의 악령이라 부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개념으로 의역하자면 인간 마음속에 둥지를 튼 청개구리 악령인 셈입니다. 이 역행 충동의 악령 또는 청개구리 악령과 관련해서 고자질하는 심장의 화자가 굳이 경찰들을 시체가 있는 마루 위로 안내한 것이나, 영화에서 랜도르가 증거가 될 수 있는 시체에서 나온 종이 조각을 굳이 가장 예리한 관찰자인 포에게 쥐여준 것은 완벽히 같은 심리적 기전입니다. 즉, 랜도르는 고자질하는 심장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는 완전 범죄를 꿈꿨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누군가(가장 똑똑한 포)가 자신의 범죄를 알아채고 지옥 같은 죄책감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심장(heart)은 양심이기도 한 것이죠.

이 관점을 확장하면 에드거 앨런 포라는 캐릭터의 상징성이 더욱 커집니다. 단편 속에서 살인자를 옥죄어 오던 환청인 마루 밑의 심장 소리가, 영화 속 랜도르에게는 바로 자기 곁에 숨 쉬고 있는 포의 존재 자체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포가 진실에 다가갈수록 랜도르의 내적 고통은 커지고 위기의식은 증가했지만, 동시에 그는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그 심장 소리(포)를 결코 자기 곁에서 떼어내지 못했던 것이죠. 이렇게 보자면 포는 랜도르의 조수인 동시에 랜도르의 양심이 만들어낸 실체 있는 심장 소리였던 셈입니다. 랜도르가 마지막에 포에게 총을 건네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 장면은, 단편의 화자가 더 이상 이 고통을 견딜 수 없다며 바닥을 뜯어내라고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며 무너져 내리는 결말과 완벽한 대칭을 이룹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타인이나 외부의 힘에 의해 굴복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짓눌린 죄의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양심에 의한 자백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랜도르는 자신을 바보처럼 여겼다는 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나는 내 자백을 들어줄 상대로 처음부터 자네를 점찍었다네. 자네를 본 순간 한눈에 알 수 있었거든. 그리고 보시다시피 이렇게 됐고." (영화 자막보다 소설의 번역이 좋아 소설 쪽을 택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소설 속에서) 지은 시의 의미
 

Mid the groves of Circassian splendor, 
     In a brook darkly dappled with sky,
     In a moon-shattered brook raked with sky,
Athene's lissome maidens did render
     Obeisances lisping and shy.
There I found Leonore, lorn and tender
     In the clutch of a cloud-rending cry.
Harrowed hard, I could aught but surrender
     To the maid with the pale blue eye
     To the ghoul with the pale blue eye.


In the shades of that dream-shadowed weir,
     I trembled neath Night's loathsome stole.
"Leonore, tell me how cam'st thou here
     To this bleak unaccountable shoal
     To this dank undesirable shoal."
"Dare I speak?" cried she, cracking with fear.
     "Dare I whisper Hell's terrible toll?
Each new dawn brings the memory drear
     Of the devils who ravished my soul
     Of the demons who ravaged my soul?"


Down ― down ― down came the hot thrashing flurry
     Of wings too obscure to descry.
Ill at heart, I beseeched her to hurry...
     "Leonore! "— she forbore to reply.
Endless Night caught her then in its slurry ―
     Shrouding all but her pale blue eye.
Darkest Night, black with hell-charneled fury,
     Leaving only that deathly blue eye.
웅장한 시르카시아 숲 한복판에서
     하늘로 검게 얼룩진 개울 안에서
     하늘에 할퀴어 달빛이 산산이 부서진 개울 안에서
아테나의 나긋나긋한 처녀들은
     살랑거리며 순종을 표하고
그곳에서 나는 외롭고 다정한 리어노어를 만났노니
     구름을 찢어발기는 울부짖음의 손아귀 안에서
처절하게 괴로워하며 나는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도다.
     옅은 파란색 눈을 한 처녀에게
     옅은 파란색 눈을 한 악귀에게.

그 꿈의 그늘이 진 강둑의 그림자 안에서
     나는 밤의 염증 나는 숄 아래에서 떨었도다.
"리어노어, 어찌하여 그대가 이곳에 왔는가.
     이 황량하고 영문 모를 여울에
     이 눅눅하고 마땅치 않은 여울에?"
"제가 감히 대답하리이까?" 그녀는 두려움으로 떨며 외쳤도다.
     "제가 감히 지옥의 끔찍한 대가를 속삭이리이까?
     새날이 밝을 때마다 그 기억은 더 음울해져
     내 영혼을 능욕한 악마들의 기억
     내 영혼을 유린한 악령들의 기억."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뜨겁게 퍼덕이는
     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한 날갯짓.
쓰라린 심장을 달래며 나는 재촉하지만...
     "리어노어!" 그녀는 대답을 않는도다.
끝없는 밤이 그녀를 데려가 
     곤죽으로 감싸고 그 옅은 파란색 눈만 남아
검고 검은 밤, 지옥에 안치된 분노로 어두운 밤은
     그 죽음 같은 파란색 눈만 남겼도다.

 
 
이 가상의 시는 영화에서도 부분적으로 인용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말미에 전편이 인용되고 포가 매티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됩니다. 영문시에서 앞으로 나온 부분의 첫 글자를 아래로 읽으면 "Mathilde died"(매틸드는 죽었다)가 됩니다. 포가 리아의 운명을 예견하는 시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랜도르의 딸 매티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시였던 것이죠. 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연에서 옅은 파란색 눈을 한 처녀옅은 파란색 눈을 한 악귀(Ghoul)가 동시에 등장하고 그 존재에게 작가인 포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은 리아의 이중성을 묘사하는 핵심적인 복선입니다. 구울(ghoul)은 단순히 사악한 악귀가 아니라,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도려내고 인육을 먹는 존재이고 이는 리아가 낮에는 가냘프고 순결한 파란 눈의 처녀지만 밤이 되면 남동생과 함께 생도들의 무덤을 더럽히고 심장을 도려내는 엽기적인 파란 눈의 악귀(구울)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마지막 연의 "그 죽음 같은 파란색 눈만 남겼다"는 구절은, 병마와 광기에 찌들어 시체의 심장을 탐하는 리아의 광기 어린 눈빛을 묘사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를 해석함에 있어 아크로스틱을 통해 랜도르의 딸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드러나게 할 의도를 지녔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다른 해석을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를 매티의 무의식적 고해로 볼 수 있지 않는가라는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특히 중간연의 "내 영혼을 능욕한 악마들의 기억 / 내 영혼을 유린한 악령들의 기억."을 보면 이런 표현은 명백히 강간과 성적 침탈의 기억을 강렬하게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뜨겁게 퍼덕이는 / 볼 수 없을 만큼 희미한 날갯짓"은 세 남자의 무력 앞에서 무너지는 매티의 불가항력적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죽음 같은 파란 눈은 그날의 진실을 감추던 "지옥에 안치된 분노로 어두운 밤" 속에서 홀로 밝게 빛나며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눈 ― 단편 고자질하는 심장에서 진실을 꿰뚫어 보던 눈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는 포가 매티의 억울한 원혼이 흘리는 눈물과 분노를 자기도 모르게 감응(접신)하여 뱉어낸 결과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원작 소설의 매티는 옅은 파란색 눈을 지녔습니다.
 
아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은밀한 지적 쾌감

영화 페일 블루 아이는 결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자극적이고 속도감 있는 스릴러는 아닙니다. 오히려 웨스트포인트의 축축하고 차가운 겨울 안개처럼, 다소 느리고 진중하게 흘러가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라는 위대한 작가의 기구한 삶과 그의 문학적 세계를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스쳐 지나가는 대사 한 마디와 서늘한 장면 하나하나가 소름 끼치도록 다채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해 모르고 보아도 흥미로운 미스터리극이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사람들에게만 은밀한 지적 쾌감을 허락하는, 숨겨진 결이 많은 매력적인 영화로 단순한 범죄의 해결을 넘어, 비록 상상 속에서 나마 상처 입은 인간의 심연과 위대한 문학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도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느릿한 진혼곡은 즐거움과 함께 깊은 생각거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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