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이 하도 안 좋아 볼 생각이 없었지만, 몇 주째 차트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해서 본 영화 대홍수에 대한 몇 가지 소소한 생각입니다.

아래글에는 영화에 대한 다양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류가 재난을 극복하는 수백만 가지의 방법 중 마지막 하나
우리는 인류가 소행성 충돌로 멸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영화를 통해 보아 왔습니다. 유전 굴착 기술자를 우주비행사로 훈련시켜 소행성을 폭파시키거나 지하 벙커에 선택된 사람들만 대피하거나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대량으로 띄우거나 우주선으로 엘리트만 탈출하거나 등이죠. 하지만 대홍수 버전의 인류는 AI가 탑재된 신인류를 생산해 멸망한 문명을 재창조하기로 합니다. 감독은 다른 영화에서 인류 파멸의 순간에 모든 악을 물리치고 혼자 살아남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한 전력이 있는데, 이번에는 인류 문명의 재창조에 필요한 것은 현대적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모성애라는 극히 인문학적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모성애 습득을 위한 끝없는 반복 재생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아이만을 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어려운 이(엘리베이터에 갇힌 아이, 도둑에게 내몰린 노인 부부, 출산이 임박한 임신부)와 함께하는 인류애의 습득으로 보입니다. 인류애라는 것이 반복적인 실패와 죽음을 겪어야만 터득되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아니 그런다고 터득될지, 현생 인류가 환경파괴로 백만 번 고쳐 멸망해 보면 지구 환경과 공존에 눈을 뜰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결국 대홍수는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한 사고실험적인 SF입니다.
다만 인류애 부족이라는 내재적 요인에 의한 멸종이 아닌 소행성 충돌이라는 외재적 사건에 의한 멸망을 내재적 요인의 해결을 통해 극복하려는 전략은 이해하기 힘들기는 합니다.
마감 날짜에 시달리는 인류의 운명은 종말의 날까지 지속된다
합리적인 세계 속의 인류라면 치명적 소행성의 접근을 알고 있을 때 지구에 단 두 명만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과 그 대안의 인물(주인공)을 최소한 하루 전에라도 확보할 텐데 마감 날짜까지 일을 미루는 인류의 습성은 멸종의 위기 속에서도 여전해서 당일 날 물이 3층 높이까지 차오를 때까지 손 놓고 있습니다. 아울러 빡빡한 예산에 의존해야 하는 공무원답게 마지막 날까지 인건비 절감을 위해 2명을 구출하는데, 단 한 명의 요원만 파견하는 실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대상을 확보치 못했다면 헛수고가 될 테니 헬기를 미리 보내 놓거나 하는 일 없이 확보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헬기를 보내는 예산낭비 없는 작전을 추진합니다. 동네 시장에서 구입한 운동복을 입은 듯한 구조 요원(박해수)의 복장이나 장비를 보면 이런 예산절감의 상황은 눈물겨울 지경입니다. 더구나 홍수로 물이 급격히 불어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구조 요원은 인증샷을 보내야 하는 관료주의가 판을 칩니다.
한국영화의 복도식 아파트 사랑
신규로 건설되는 경우는 없지만 아직도 전국의 20%, 서울의 30% 아파트가 복도식인데 유독 영화에서는 복도식 아파트가 사랑받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중요한 무대인 영화는 대부분 복도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이웃 간의 갈등과 협력을 표현하기에 계단식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막상 우리가 꿈꾸는 주거환경이란 것은 극도의 개인주의적 환경에 우리를 몰아넣는 계단식 아파트 같은 닫힌 공간이 아니고 이웃 간에 지나치다 마주하고, 원하지 않아도 서로 간의 삶의 명암을 보게 되는 그런 열린 공간이라는 마음 한 구석의 기대가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인류 절멸의 유일한 희망일 주인공의 연봉이 넉넉했다면 영화와 달리 여유로운 계단으로 애 업고 대피하면 그만이었을 겁니다. 물론 우리 박해수 요원도 목표를 찾기 쉬웠겠죠. 현관 비밀번호를 몰라 익사했으려나요?
모성애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체력과 정신력
수많은 반복 수행을 통해 모성애를 터득하는 딥러닝의 과정에서 절실하게 요구되고 또 습득되는 것은 주인공의 체력과 정신력입니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도 자인이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를 키우려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체력과 정신력(특히 참을성)이니 모성애를 위해서는 체력과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그럴듯하면서도 묘한 현실성이 있습니다. 자인이는 소위 말하는 발암 캐릭터인데, 영화와 같은 특수상황에서도 자인이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보편적 일지는 의문이지만, 일상적인 상황이라면 영화의 묘사는 별스럽지도 않기는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자인이의 모델 프로토콜을 어디서 입수해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순진한 아이에게 인간성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아이를 키우는 처녀가 모성애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인류 멸망의 서사가 수천번 반복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그럴듯해 보입니다.
스펙터클과 철학사이, 그리고 호평과 혹평사이
돈 룩 업을 블록버스터를 기대하고 보는 경우는 없기에 블록버스터가 아니라는 이유로 실망하지는 않는 것처럼 대홍수도 재난영화=블록버스터 영화라는 등식을 생각하지 않고 본다면 그렇게 실망만을 하지는 않을 듯합니다만, 넷플릭스의 예고편은 많은 예고편이 그렇듯 스펙터클한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 제법 있습니다. 반면 예고편에 나오는 대사들 몇몇 만으로도 이 영화가 단순 재난 영화는 아니고 좀 다른 가닥을 가진 영화라는 것을 짐작케 하고 저는 예고편 만으로 아이의 정체라던가 진행 방향 같은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예고편이 노골적인 스포일러죠. 다만, 제가 짐작/기대한 탈출구는 사실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스티브 연이 출연한 러브 미 같은 것이었는데, 이미 파괴된 지구로 복귀하는 내용이라 식상했습니다.
그런데 스펙터클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만들었는데 하나도 스펙터클 하지 않은 영화와 스펙터클한 영화를 기대하고 보았는데 전혀 스펙터클 하지 않은 영화를 접했을 때의 반응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 번째 경우는 영화를 잘 못 만든 것이지만, 두 번째는 영화의 장르가 다른 것이고 그 영화의 의도가 성공했는지 아닌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니까요. 대홍수에 대한 혹평의 상당수는 첫 번째 경우인 듯하고 이 경우에는 감독보다는 예고편을 만든 넷플릭스를 비난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꾸준히 순위에 있는 이유, 그리고 누군가는 호평하는 이유는 누군가는 이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반부 탈출과정에서 사족 같고 껄끄러웠던 부분들(노부부, 엘리베이터 소녀 등)은 후반부를 위한 복선이었기에 결국은 어느 정도 용서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부분이 사족이나 작위적이고 껄끄럽게 느껴지지 않게 도입되고 정리되었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었겠지만 말이죠. 전지적 독자시점이나 대홍수나 감독의 성향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이런저런 영화적인 매끄러움과 당위성, 핍진성 등을 포기하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점이 이 두 영화를 좋게 볼 수는 있어도 명작이라 할 수는 없는 이유가 되겠지요. 감독은 영화적 긴장감을 위해 아이의 정체를 숨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초반부에 누구나 아이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조용히 돌려 말하지만 가슴 서늘한 경고를 날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만 마음에 하나도 와닿지 않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대홍수는 자꾸 영화가 감독의 프로파간다로 보이는 점이 가장 큰 단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재미도, 감동도 희생되죠. 김병우 감독이 관객의 수준과 인지력을 믿고, 말하고픈 이야기를 돌려서 조용히 말하는 법을 터득한다면 좀 더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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