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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음반 표지로 본 명화 시리즈

[미술]음반 표지로 본 명화 (5) - 앙리 4세 궁정의 무도회 (루이 드 카울리)

by 만술[ME] 2026. 6. 10.

다른 글을 준비하던 중에 지난번 앤 불린을 그린 에두아르 시보의 그림 이야기에 이어 이 정도 내용이면 음반 표지로 본 명화 시리즈에 별도의 글로 올려도 될 것 같은 음반을 하나 더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음악, 그리고 프랑스 궁정의 그림

 

오늘 이야기에 다룰 음반은 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옹 20이 연주하는 엘리자베스 시대 콘소트 음악입니다. 지난 글에서 다룬 다울런드와 달리 그가 꿈꾸던 궁정에서 활동했던 작곡가들의 곡들을 묶은 음반으로, 모든 곡은 비올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음반에 대한 설명은 앞으로 올라올 역사와 음악 시리즈에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그림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합니다. 이 음반의 그림의 원본은 플랑드르의 화가 루이 드 카울리(Louis de Caullery)의 앙리 4세 궁정의 무도회로 원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루이 드 카울리, 앙리 4세 궁정의 무도회 (1610년 추정 / 렌 미술관 / 프랑스, 렌 / 판넬에 유채)

 

음반은 가로 1미터, 세로 50cm 정도 되는 큰 그림의 복잡한 장면에서 오른편에 자리 잡은 악사들을 주목하고 발췌하여 표지로 사용했습니다. 이런 방식의 미술작품 활용은 조르디 사발뿐 아니고 많은 음반들의 표지에 활용되곤 하지만, 유독 알리아-복스 음반이 극단적인 크롭을 많이 사용하기는 합니다.

 

그림이 묘사하는 것은 앙리 4세의 프랑스 궁정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시대로 따지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집권기와 상당 부분 일치하고 둘은 가톨릭 세력에 대항한다는 측면에서 정치적 동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엘리자베스 시대 콘소트 음악을 다루는 음반에 앙리 4세 궁정의 악사들의 모습을 넣는 것은 시대적인 정확성이나 역사적 의미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사발의 음반 내지에서 발견한 기묘한 불일치

 

제가 이 음반 표지 그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긴 것은 전혀 다른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조르디 사발의 음반 뒷면에는 표지 그림에 대해 아래와 같은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A Palace Interior with Ladies and Gentlemen dancing and Playing Music (oil on panel) (detail) by Louis de Caullery (c.1580-1621)
Rafael Valls Gallery, London, UK / Bridgeman Art Library, London

 

제가 주장하는 렌 미술관 소장품과 작가는 같지만 제목이 다르고, 출처도 영국 런던의 라파엘 발스 갤러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자료는 런던의 브리지먼 아트 라이브러리에서 제공받은 것으로 되어 있고요. 그런데 브리지먼 아트 라이브러리에 들어가 보면 이 그림은 아래와 같이 렌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Rennes) 소장품이라고 나옵니다. (링크)

 

  

첫째로 드는 생각은 늘 그렇듯 음반 제작 과정에서 실수로 이미지 출처를 잘못 표기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실수의 규모가 너무 큽니다. 두 번째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음반이 발매되던 시기인 90년대까지는 라파엘 발스 갤러리에 소장되었던 작품이 이후 렌 미술관에 팔렸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전에도 소개한 프랑스 문화부의 문화유산 플랫폼에서 해당작품의 페이지를 보면 이 작품은 1906년 트레갱 백작(Comte de Trégain, 1814~1906)의 유증(Legs, 사후 기증)을 통해 미술관에 들어왔고, 지금까지 렌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프랑스 박물관법 및 공공유산법에 따라, 개인이 공공 미술관에 조건 없이 유증(Legs)하여 국가나 시 자산이 된 작품은 양도 불가능(Inaliénable) 자산으로 영구 동결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1906년 이후로 단 한 번도 시중 미술 시장이나 경매에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된 바 어떠한 이유로도 런던의 라파엘 발스 갤러리가 보유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미술 시장의 비하인드: '공방 이본(Workshop Variant)'의 등장

 

렌 미술관이 이 작품에 대한 이미지 권리를 라파엘 발스 갤러리에 넘기고, 라파엘 발스 갤러리는 또다시 브리지먼 이미지에 그 권리를 넘겼을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추정은 아니니 뭔가 다른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 음반의 표지 그림 출처를 왜 런던의 라파엘 발스 갤러리로 표기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17세기 플랑드르 미술의 생산 방식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루이 드 카울리는 안트베르펜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궁정의 화려한 무도회, 축제, 정원 잔치 등의 주제를 전문적으로 그렸는데 당시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이러한 그림은 인기가 매우 높아서 화가들은 하나의 성공적인 구도를 완성하면 공방(Workshop)을 동원해 거의 유사한 복제본이나 변형된 버전(이본)을 여러 점 제작하여 판매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런던의 라파엘 발스 갤러리는 올드 마스터(18세기 이전 유럽 거장들의 회화)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유서 깊은 화랑이며, 따라서 조르디 사발의 음반 제작팀은 프랑스 렌 미술관 소장품이 아니라, 런던 라파엘 발스 갤러리가 소유하고 있던(혹은 거쳐 갔던) 동일한 장면을 그린 또 다른 버전의 그림을 촬영한 이미지의 라이선스를 구매해 표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추정이 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프랑스 렌 미술관의 작품 제목인 앙리 4세 궁정의 무도회는 극히 박물관/미술관스러운 그림 제목인 반면, 사발의 음반에 표기된 제목은 궁정 내부에서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귀부인과 신사들로 소위 말하는 미술시장식 제목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옥션 관련 사이트인 아트넷을 뒤져보니 아래와 같은 경매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렌 미술관의 그림과 동일한 그림으로 보이는데, 제목은 궁전 실내에서 진행되는 무도회 준비 장면이라는 또 다른 제목이 붙어 있고 95년 12월 경매에 붙여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렌 미술관의 작품이 경매에 나왔다가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갔을 확률은 없으니, 경매에 나왔던 작품은 이본으로 보이며, 어쩌면 런던 라파엘 발스 갤러리가 소유했던 경력이 있고, 그때 브리지먼 이미지에서 음반에 사용한 이미지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여 음반 제작을 위해 제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14cm가 잘려 나간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찾아서

 

이런 추정이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브리지먼 아트 라이브러리를 좀 더 뒤졌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래와 같은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목도 음반에 표기된 궁정 내부에서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는 귀부인과 신사들과 맥이 통합니다. 고상한 인물들 = 귀부인과 신사들로 보면 되니까요. 그리고 현재 개인소장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의 이미지 크레디트가 제가 찾던 라파엘 발스 갤러리 / 브리지먼 이미지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르디 사발의 음반은 렌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이 아니라 (아마도 라파엘 발스 갤러리를 통해 판매된) 공방 복제본 개인 소장품의 이미지를 표지에 사용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렌 미술관 소장품이 세로 50cm × 가로 98cm (나무 패널에 유채)로 되어 있는 반면 개인 소장품은 세로 36cm × 가로 98cm  (나무 패널에 유채)로 가로 길이는 같지만 세로 길이가 짧고 위 이미지로 추정컨대 원작에서 윗부분이 잘려나간 구도로 되어 있습니다.    

 

잘려나간 구도에 대해서는 미술사적으로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첫째로는 17~18세기 유럽의 올드 마스터 회화 시장에서는 소장가들이 자신의 집 벽면 크기, 벽난로 윗공간, 혹은 특정한 액자 크기에 맞추기 위해 멀쩡한 나무 패널이나 캔버스의 위아래를 잘라내는 일이 매우 흔했고, 가로가 98cm로 일치한다는 점은, 이 그림이 원래 렌 미술관의 원작과 똑같은 50 ×98cm 크기의 공방 이본으로 제작되었다가, 후대의 어느 시점에 소장가의 필요나 상단부 손상(습기 등)으로 인해 윗부분만 14cm가량 물리적으로 톱질되어 잘려 나갔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처음부터 낮게 제작된 수프라포르트(Supraporte) 이본의 가능성입니다. 즉, 이 개인 소장품은 문 위 공간이나 낮은 벽면 장식용으로 주문을 받아 처음부터 위가 잘린 구도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플랑드르 공방에서는 이런 세로가 짧은 패널에 맞춰 인물 중심으로 구도를 압축한 맞춤형 이본을 그리기도 했기에 이런 추정도 가능합니다. 물론 둘 중 어떤 것이 정답일지는 현재 제가 가진 자료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개인 소장품을 직접 조사해야 나올 수 있는 결론이겠습니다만.

 


 

아래 댓글의 베리알님의 흥미로운 의견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 - 조르디 사발 음반 표지의 이미지 상태에 대해

 

개인 소장자의 복제품은 그림을 촬영할 때 여건이 그랬었나... 하기에는 원본 이미지하고 많이 다른 느낌이긴 하군요. 설마 디지털 풍화 쪽의 사정이지 원래 복제본이 좀 차이가 있는 건지...

 

제 생각에 이 문제와 관련해서 몇 가지 원인을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 소장품의 보존 상태 문제 

 

렌 미술관 소장품은 1906년 박물관에 유증된 후에는 일정한 온도·습도가 유지되는 수장고에서 관리되고 정기적으로 표면의 묵은 바니시(Varnish)를 제거하는 복원 작업을 받았습니다. 반면, 개인 소장품(특히 추정대로 제작 의도 자체가 장식용 수프라포르트 패널이라면)은 수백 년간 난방, 담배 연기, 먼지 등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문간에 걸린 작품의 복원작업을 개인이 수행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화 표면의 보호막인 바니시가 산화돼서 누렇게 변하고 그림이 어둡고 탁해집니다. 또한 나무 패널이 수축·이완을 거듭하며 생긴 미세한 균열 사이에 먼지가 끼면, 사진으로 촬영했을 때 입자가 거칠고 지저분해 보일 수 있습니다. 즉, 사진 촬영 시 작품의 보존 상태가 음반표지에 반영되었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90년대 디지털 이미지 제작 및 크롭의 한계


90년대 매킨토시의 보급으로 DTP가 성행했지만 디지털 이미지 작업은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아날로그 카메라를 활용한 방식이었습니다. 중판이나 35mm 카메라를 이용해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뒤, 드럼 스캔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로 만드는 방식을 사용하고, 이 파일을 매킨토시에서 포토샵 등을 이용해 자르고 늘리는(크롭 및 인포메이션) 작업을 거쳐야 했습니다. 당시 고성능 드럼 스캔 장비는 이론적으로는 8,000~11,000 dpi까지 스캔이 가능했습니다만 브리지먼 같은 이미지 아카이브에서 출판·인쇄용으로 제공하던 고해상도(Hi-Res) 표준 규격은 대략 A4 사이즈 인쇄 기준(300 dpi), 파일 용량으로는 25MB~50MB 내외(약 2,400 × 3,500 픽셀)였습니다. 당시 컴퓨터 장비의 하드디스크 용량과 메모리 한계 때문에 그 이상의 초대형 파일을 다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가로 98cm짜리 전체 그림 중에서 우측 끝 악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로 기준으로 약 15% 내외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3,500 픽셀짜리 전체 스캔 파일에서 15% 영역만 잘라냈다면, 악사들 부분의 실제 해상도는 가로 500~600 픽셀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이 작은 이미지를 CD 표지 크기(약 12cm × 12cm, 300 dpi 기준 약 1,400 픽셀 필요)로 맞추려면 오히려 이미지를 강제로 키워야 하고 당연히 키워진 이미지는 보간법 적용에 따라 뭉개지고 초점이 흐려지는 소프트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조르디 사발 음반의 표지를 살펴보면 이러한 기술적 흔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림 자체의 붓 터치라기보다는 해상도가 부족한 이미지를 인쇄용 크기로 확대했을 때 나타나는 특유의 흐릿함이 보이는데 악기 줄이나 옷의 경계선이 선명하지 않고 뭉개져 있습니다. 또한 필름 그레인과 디지털 노이즈의 흔적도 보입니다. 

노출 및 촬영 조명의 한계

 

미술관 소장품은 전문 스튜디오 급의 환경에서 편광 조명을 사용해 표면 반사를 완벽히 제어하고 촬영합니다. 반면, 90년대 이전에 촬영된 개인 소장품의 슬라이드 필름은 촬영을 위해 길이 1미터에 달하는 나무판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테니 화랑의 열악한 조명 아래서 촬영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 촬영본의 화질 자체도 미술관 작품에 대비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위 요인 중 하나만이 원인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원인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음반 표지의 상태를 결정지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입니다. 자칫 '화질 저하'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90년대 디지털 작업의 한계와 올드 마스터의 보존사를 동시에 살펴볼 수 있었던 흥미로운 탐구였습니다. 질문을 던져주신 베리알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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