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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음반 표지로 본 명화 시리즈

[미술]음반 표지로 본 명화 (3) -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외젠 들라크루아)

by 만술[ME] 2025. 9. 11.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관련된 음악을 다루는 글의 댓글에서 나르신수님이 파우스트와 관련해서도 글을 부탁하셨는데, 파우스트에 관련된 음악을 정리하기는 좀 벅찬 과제라 살짝 방향을 틀어 파우스트와 관련된 음반 표지 그림이야기를 하면서 몇 가지 양념을 더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늘 표지 그림을 제공할 음반은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로 솔티 지휘의 시카고 심포니 연주의 데카 음반입니다. 동향 작곡가인 구노의 <파우스트>와 달리 베를리오즈의 작품은 오페라는 아니고 오페라와 칸타타 중간에 있는 연주회용 오페라 느낌입니다. 솔티의 음반 표지에 쓰인 작품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친구 쇼팽의 초상화로, 일반인들에게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유명한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그림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입니다.

 

외젠 들라크루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캔버스에 유채, 45.5 cm × 37.7 cm, 월리스 컬렉션, 영국 런던

 

괴테의 <파우스트>는 출간 후 요즘으로 말하자면 매우 성공적인 IP(Intellectual Property)로 자리매김했는데, 프랑스에서의 열풍은 특히 대단해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무대로 옮겨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파우스트>가 프랑스에서 성공하게 된 데는 제라르 드 네르발(본명은 제라르 라브뤼니)의 번역본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책인 출간된 1827년 이전에도 알레르트 스태퍼와 루이 드 상테-오레어에 의한 번역본이 1823년에 각각 출간된 바 있습니다. 

 

그림으로는 모리츠 레취(Moritz Retzsch)의 26장의 인그레이빙 판화 작품(1816)의 성공이 주효했는데, 이 그림들은 괴테 본인도 좋아했다고 하며, 유럽전역에서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그레트헨에 중점을 두고 섬세한 묘사가 일품입니다. 앞서 말한 스테퍼의 번역본이 1828년 브뤼셀에서 재출간될 때에는 이 레취의 작품들을 삽화로 사용했습니다. 또 같은 해에 레취의 작품들을 파우스트의 줄거리 요약과 함께 수록한 책자도 발간되었습니다. 1816년에서 1825년간에는 페터 폰 코르넬리우스(Peter von Cornelius)의 12점의 작품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었는데, 뒤러와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은 자세와 표정이 느껴집니다.

 

외젠 들라크루아는 레취의 그림을 1821년 경에는 접했고 몇 개의 모사도 남겼습니다만, 그가 파우스트에 열정을 지니게 된 것은 1825년 런던의 드루리 레인 극장에서 <악마와 파우스트 박사>라는 연극을 본 뒤였습니다. 그 연극의 무대나 무대를 위한 디오라마에 영향을 받아 그린 그림 중 하나가 오늘의 소개작인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또는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입니다. 이 작품은 1827년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거절당했다가 다음 해에는 전시될 수 있었습니다. 

 

그림은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를 처음 마주하는 장면(사실은 검은 개의 형상으로 처음 마주하지만)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후에 나온 여러 점의 석판화 전에 그린 일종의 테스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파우스트의 자세는 런던 방문 시에 감명을 받았던 데이비드 윌키의 작품 <군주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녹스>에 나오는 존 녹스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림의 구도로 보면 위쪽에 파우스트가 평생을 쌓아 올린 지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문서와 물건, 실험도구로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고 잡동사니로 보이면서도 그 쌓인 모습이 불안한데, 그것은 파우스트 평생의 과업이 부질없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파우스트는 낮은 자세에서 일어서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메피스토필레스에 비해 주눅이 들어 있어, 둘의 관계는 이미 주도권이 악마에게 넘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존 녹스의 자세를 모방한 파우스트의 오른손은 악마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볼 수 있지만, 원작에 비해서는 훨씬 조금만 뻗어 있어 윌키 그림 속의 녹스가 손을 뻗어 청중에게 능동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과 반대로 수동적인 방어의 모습, 그것도 악마의 표정과 대조되는,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 예상되는 희망 없는 손짓으로 보입니다. 이후의 석판화에서는 더 두드러지는데, 메피스토펠레스는 마치 패션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자세와 옷의 색감을 통해 당당하고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듭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악마라는 것을 그림을 보는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죠.   

 

데이비드 윌키, 군주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녹스, 판넬에 유채, 49.7 cm x 62.5 cm, 내셔널 트러스트, 영국 페트워스

 

들라크루아는 이후 파우스트에 대한 17점의 석판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1828년 스테퍼 번역본의 재출간에 삽화로 사용되었는데, 따라서 1828년에 스테퍼의 번역본은 들라크루아의 삽화를 넣은 파리 버전과 레취의 삽화를 넣은 브뤼셀 버전이 모두 출간됩니다. 아래의 유화 판본과 같은 장면을 묘사한 석판화 버전으로 알 수 있듯, 석판화 버전은 세부묘사가 더 살아 있으면서도 역동감이 더 풍부해졌습니다. 아울러 흑백 판화의 특성인 명암의 대비가 더 두드러져, 메피스토펠레스의 뒤편에는 어둠이, 파우스트의 뒤편에는 밝음이 자리 잡고 있음이 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괴테는 들라크루아의 석판화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막상 파리의 애호가들은 그림에 나타난 과장된 포즈나 표정, 어두운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젠 들라크루아,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 석판화

 

아래 그레트헨을 유혹하는 (회춘한) 파우스트의 모습은 흥미롭게도 메피스토펠레스와 흡사합니다. 완전히 악마의 지배에 들어가 악마가 유혹하는 삶을 살게 된 파우스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죠. 옆에 선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자는 묘하게 뿔을 연상시키고, 살짝 사선으로 엉덩이쪽으로 뻗어 나온 칼은 악마의 꼬리를 연상시킵니다. 이런 모습은 뿔이 좀 작고 꼬리가 망토에 감추어져 있지만 파우스트도 마찬가지라 그가 악마화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레트헨의 표정과 자세는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파우스트에 수동적으로 끌려가 맞게 되는 비극을 미리 알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젠 들라크루아, 그레트헨을 유혹하는 파우스트, 석판화

 

아래의 석판화에서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쉬고 있는 그레트헨은 왼쪽에서 서서히 어둠이 짓누르며 다가오는 듯하지만, 아직 밝은 배경에 기대어 있습니다. 발옆에는 그녀를 상징하는 물레가 있는데, 그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멈추어 있고, 그레트헨의 표정은 그 운명에 복종하고 저항을 포기한 채 심판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유명한 그레트헨의 노래를 연상케 합니다. 

외젠 들라크루아, 그레트헨, 석판화

 

나의 평화 사라졌네, 

내 가슴 무겁네.
평화를 못 찾겠네 

다시, 다시는.

 

그이 없는 곳은

내게는 무덤

온 세상이 내게는 쓰디쓰네.

 

내 가엾은 머리

돌아버렸네,

내 가엾은 생각

갈갈이 끊겼네.

 

나의 평화 사라졌네, 

내 가슴 무겁네.
평화를 못 찾겠네 

다시, 다시는.

 

오직 그이 오시나 보네
창밖을 내다보네,

오직 그이 오시나 가보네
집 밖으로 나가보네.

 

그이의 드높은 걸음 

그이의 고귀한 자태 

그이 입가의 미소 

그이 두 눈의 힘

또 그이 말의

마술 같은 강물

그이가 잡아주시는 손

아, 그이의 입맞춤!

나의 평화 사라졌네, 

내 가슴 무겁네.
평화를 못 찾겠네 

다시, 다시는.

 

내 가슴 솟구치네 

그이를 향해.
아 그이를 잡아 

붙잡고 있을 수 있다면!

 

입 맞출 수 있다면
내 마음껏, 

그이와 입 맞추다 

죽었으면!

 

- 괴테, 파우스트 1권, (슈베르트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가곡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그레트헨의 노래 / 전영애 번역본 

 


 

제가 처음 접한 파우스트는 완역본인지는 모르겠고, 출판사도 알 수 없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께서 던져주신 백과사전 두께의 하드커버로 된 1, 2권 합본 세로쓰기 버전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이런저런 경로로 얻으신 것이고, 제가 책을 좋아하니 어디 버릴 곳도 없어 던져주신 책인데, 그 시절 제가 완독 할 능력은 없었지만 당시 독서 취향대로 책 이곳저곳을 생각나는 대로 읽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2권에 헬레네가 등장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최고의 미녀로 10년의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제 추앙의 대상이던 헬레네가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등장한다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제대로 완역본으로 읽은 것은 수십 년이 흐른 2019년 전영애 교수 번역본을 통해서입니다. 원문의 운문체를 잘 살린 번역으로 앞부분에는 역자의 훌륭한 해설도 곁들여 있습니다. 아울러 왼쪽은 독일어 원문이, 오른쪽에 국역이 있어서 독일어를 약간이라도 읽을 수 있으면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특히 이 번역본에는 역자 강연에 무거운 책을 들고 가서 서명을 받아온 와이프의 정성도 들어 있어 더 각별합니다. (1권에는 와이프 이름이, 2권은 제 이름이 각각 서명에 들어 있습니다.)

 

2023년 6월 강연에서 받은 역자 전영애 선생 서명 (출판사 <길>을 강조하신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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