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부어맨의 영화 <엑스칼리버>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동화로만 알던 이야기를 어른들의 이야기로 만든 줄거리도, 피로 뒤덮인 영상도, 근친상간이나 친모살해 같은 충격적인 장면도 아니었고, 영화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은 동명의 중세 시가집에 음악을 붙여 칸타타로 구성한 현대음악인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중 "오, 운명의 여신이여"라는 제목이 붙은 첫곡인데, 이 영화 이후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어 이제는 아마도 이곡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듯싶습니다.
오이겐 요훔이 이곡을 처음 녹음한 것이 1954년이고, 재킷에 버젓이 작곡가의 친필 싸인과 함께 "authorized"라는 마크를 달고 있어 지금도 이곡을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그의 두 번째 녹음(DG)이 1968년이니, 1976년 나온 안탈 도라티의 음반이 10년의 세월차를 뛰어넘어 시장에 충격을 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실제로도 이곡을 말함에 있어 지금 거의 회자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LP시절 제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안탈 도라티의 이 음반이었고, 요훔의 음반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음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기는 했어도 "오, 운명의 여신이여"를 반복 재생하면서 흥분과 감동을 느끼는 데는 안탈 도라티의 음반도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훗날 요훔의 그 유명한 음반을 막상 접한 뒤에의 느낌은 (솔로들의 노래는 한 수 위임이 분명하지만) 폭발력과 거침이라는 측면에서는 날 것 같은 야성의 느낌보다는 길들여진 세련이 느껴져 실망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라티의 음반은 그 표지 이미지 때문에 또 다른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금 누군가 이 표지를 보여준다면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또는 Jerome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이라는 제목과 함께 어느 정도는 그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읊을 수 있겠지만, 고교시절에는 그림에 관심이 없는 문외한이었기에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춘화 같은 이 표지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훗날 음반 표지에 인용된 부분은 극히 일부일 뿐 원화에는 월리를 찾아서를 뺨치게 다양한 장면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또 한 번 충격에 빠졌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로테스크 한 존재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그렸기에 이단이나 마녀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 있었지만, 남아있는 자료들에 의하면 소도시 스헤르토헨보스에서 존경받는 시민이자 신실한 기독교인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으로 알려진 것은 20여 점이며, 대부분은 세 폭 오크 패널에 그린 유채화입니다. 그의 작품은 그의 생애와 16세기까지는 인기가 있었으나 이후에는 잊혔고, 20세기 초반에 재발견되어 지금까지 인기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의 경우도 세 폭 패널화로, 브뤼셀의 귀족의 저택에 장식하기 위해 그렸다고 합니다. 세 폭 패널화는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목적의 제단화인데, 귀한 그림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3단으로 만들어 필요할 때 펼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겉에는 창세기 제3일 차인 땅, 바다, 그리고 식물의 창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림 1] 안쪽에 담긴 그림은 종교적인 내용(에덴동산-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지옥)을 그렸다고는 해도 그림에 묘사된 내용을 생각할 때 제단화로 활용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3단 중 왼쪽은 창세기의 에덴동산을 묘사하고 오른쪽은 지옥을, 그리고 가운데는 이 그림의 제목인 이승의 쾌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 2]


외쪽의 패널의 장면은 야훼가 아담에게 하와를 소개하는 장면인데 [그림 3], 그림을 보면 야훼가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모습보다 젊어 예수를 연상시키며, 이것은 아마도 야훼의 아들로서 신격을 가진 예수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울러 야훼는 왼손으로 하와의 오른손을 잡아 지금 깨어난 듯 어리바리 앉아 있는 아담에게 인도하면서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아담의 발은 야훼의 옷자락에 닿아 있고, 하와의 손은 야훼에게 잡혀 있어 이 둘이 야훼의 힘과 권능, 그리고 축복에 의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4]

재미있는 점은 아담은 하와를 주시하고 있는 반면, 하와는 눈을 내리깔고 그 시선을 피하고 있습니다. 다만, 선악과를 먹기 이전이기 때문인지 몸을 가리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아담에게 자랑스럽게 자신의 몸을 과시하는 듯합니다. 하와가 시선을 피하며 아래를 향하는 것이 남성과 여성의 지위에 대한 중세적 관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묘하게 거만한 듯 보이는 하와의 표정은 오히려 그녀의 주도에 의해 벌어지게 되는 원죄의 기나긴 굴레의 암시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이 장면을 본다면 중앙 패널에 벌어지는 이야기와 마지막 지옥의 장면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확실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아담의 뒤쪽에는 영생을 상징하는 듯 보이는 용혈수를 배치하고 하와의 뒤쪽에는 번식을 뜻하는 토끼를 배치함으로써 이런 해석은 더욱 강조됩니다.

뒷배경도 묘한데, 아담의 뒤편의 동물들은 코끼리, 유니콘 같은 좋은 상징을 지닌 동물이고, 평화롭고 조화롭게 물을 마시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다면, 우측 하와의 뒤편의 동물들은 좀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고, 심지어 사자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욱 노골적으로 오른편 끝에는 선악과로 보이는 열매가 있는 나무를 감싸고 있는 뱀이 보입니다. 좌에서 우로 글을 쓰는 서양문화권에서 이런 방식의 그림 배치는 에덴동산 시절에 잉태된 타락의 맹아가 자연스럽게 다음 장면인 가운데 패널의 이승에서 벌어지는 쾌락으로 이어지게 해 줍니다. [그림 4]

도라티의 <카르미나 부라나> 음반 표지는 세장의 패널 중 가장 유명한 중앙 패널[그림 5]의 그림 중 일부를 활용했는데, 이 중앙 패널의 그림은 그림의 구성이 3단으로 구성되어 각각을 수풀이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원경은 물론 상징되는 쾌락과 욕망의 근원을, 중앙부는 중앙부 연못에서 여인들이 유혹하고, 그 여인의 둘레를 남자들이 행렬을 지어 행군하는 모습이, 가장 전경에는 그 유혹의 결과인 듯 묘사된 다소 폭력적인 쾌락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음반은 이중 왼쪽 중앙부를 표지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린 곳곳에는 딸기 모양의 과일이 등장합니다. [그림 6] 딸기는 여성의 성적인 매력을 상징하는 과일로, 그림에서는 그 안에서 쏟아진 과육을 탐하거나 성기에 꽂거나 여성의 등에 이거나, 아예 남녀가 배로 이용해 욕망과 쾌락의 물결에 떠다니기까지 합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남녀는 대부분 1 대 1의 관계가 아닌 난교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짝 지워져 있으며, 둘이 짝 지워진 것으로 보이는 장면에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팔다리를 슬쩍 끼워 넣거나 심지어 동물을 끼워 넣기도 하고, 때로는 바로 위에 발췌한 그림 좌상단처럼 폭력적인 묘사가 보입니다. 이것은 이 모든 쾌락의 기원으로 보이는 상단 중앙의 푸른 건물 아래쪽에 위치한 둥근 문을 통해 볼 수 있는 남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림 7]에서 볼 수 있듯 남자는 여자의 성기를 만지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데, 그 여성의 뒤에도 남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있고, 그 여성은 심지어 팔을 뻗어 오른쪽의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누군가의 엉덩이를 만지려고 합니다.

그림에서 그나마 독립된 공간에 중세 개념에서 정상적인 남녀 관계인 1 대 1의 관계로 보이는 인물들은 좌측 하단부의 둥그런 풍선 같은 곳에 자리한 커플입니다. [그림 8] 이 커플은 따로 떨어져 둥근 풍선에 의해 주변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이 풍선은 신의 권능을 통한 보호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권능의 보호도 표면에 많은 균열로 볼 때 위태위태하게 보입니다. 이 가운데 패널에는 단순히 성적인 쾌락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유흥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 쾌락이 한계를 넘어서면 다음에 등장하는 지옥도가 펼쳐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른쪽 패널은 지옥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림 9] 화려한 두 패널과 달리 이 패널은 어두운 색조로 되어 있고, 전경은 상대적으로 밝게, 원경은 아주 어둡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원경의 어두움은 불타는 도시의 모습과 흘러나온 빛을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해 줍니다. 화가가 그린 지옥도는 기괴하면서도 장면장면이 인상적이고 설득력 있는 형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세 패널은 대칭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왼쪽 에덴동산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스카이라인은 중앙의 이승을 거쳐 오른편의 지옥까지 이어져 있고, 왼쪽의 분홍색 구조물은 오른쪽의 잘린 몸통 같은 흰 구조물과 대칭을 이룹니다. 인물들은 중앙 패널에서 보여주던 에로틱한 모습은 전혀 없이 어둡고, 고통에 찬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지옥의 중간을 차지하는 잘린 짐승의 몸통 같은 구조물에 달린 머리는 사람의 얼굴인데,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스 본인으로 추정됩니다. [그림 10] 그가 쓰고 있는 모자 형태에는 신체 장기를 연상시키는 백파이프 형태가 놓여 있는데, 남성의 성기와 고환을 연상시킵니다. 곳곳에서 인간을 벌하는 주체는 동물입니다.

그림은 다양한 쾌락으로 인한 형벌을 묘사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그림 11]에서는 폭식으로 인한 지옥에서의 형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왕좌를 연상시키는 변기에 앉은 새 비슷한 동물이 사람을 먹으면서 아래로는 그 사람들을 배설물 구덩이로 배설하고 있습니다. 그 구덩이 곁에서 어떤 이는 먹은 것을 토해내고, 다른 이는 돈을 배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한 여성은 거울 같은 엉덩이를 지닌 짐승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앉아 있고, 토끼를 닮은 검은 짐승이 그녀를 붉은 불이 타오르는 구덩이로 끌어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즐겁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음악가의 지옥이라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림 12] 류트, 하프 등의 악기가 고문도구로 사용되고, 엉덩이에 악보를 기입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승 편에서 특별히 음악과 관련된 쾌락의 장면은 없었는데, 지옥에는 묘사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에는 이외에도 곳곳에 흥미로운 장면이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고해상도 이미지를 보실 수 있으니 여러분들도 직접 흥미로운 부분을 찾아보실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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