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을 준비하던 중에 음반 표지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이 정도 내용이면 음반 표지로 본 명화 시리즈에 별도의 글로 올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다룰 그림을 표지로 한 음반은 아래 음반입니다.

오늘의 표지 그림을 제공할 음반은 존 다울런드의 기악 앙상블 작품집 라크리메, 일곱 눈물 음반으로 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옹 20의 알리아 복스 음반입니다. 이 블로그를 애독하시는 분이라면 조르디 사발의 음반이라는 것을 듣는 순간 역사와 음악 시리즈를 연상하실 터인데, 짐작이 맞습니다. 조르디 사발의 이 음반은 Lachrimæ, or seaven Teares figured in seaven passionate pauans, with diuers other Pauans, galliards and Almands, set forth for the Lute, Viols, or Violons, in fiue partes라는 제목의 다울런드의 작품집을 수록하고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라크리메(눈물), 또는 일곱 개의 열정적인 파반느로 형상화한 일곱 눈물 — 그 밖에 여러 파반느, 갈리아르드, 알망드를 포함한 류트와 비올, 또는 바이올 계열 악기를 위한 5 성부 작품집 정도가 될 것입니다.
다울런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위 시에는 왕실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유럽을 전전하다가 제임스 1세 시대가 되어 궁정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지만,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류트 연주자였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처럼 튜더 시대를 눈물과 연관 지으면서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직접적인 접점을 찾고자 한다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앤 불린 보다 더 좋은 대상은 없을 듯합니다. 이 음반의 표지로 사용된 작품은 앤 불린이 런던탑에 수감된 직후의 모습을 묘사한 에두아르 시보의 그림으로 체포 직후 런던탑의 앤 불린이란 제목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본다면 일반적으로 중심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무릎을 꿇은 여성이 주인공인 앤 불린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뒤편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여인은 시녀라고 짐작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먼저 두 여인의 머리 스타일을 보면, 앞의 여성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 장식적으로 땋은 머리가 코이프(Coif)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헨리 8세 치하의 영국 궁정에서 결혼한 여성은 머리를 드러내지 않은 반면, 이처럼 머리를 길게 풀고 있는 것은 결혼하지 않은 처녀임을 나타내는 표식입니다. 반면 뒤편의 여성은 머리카락이 전형적인 영국식 게이블 후드(Gable hood) 안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당대 결혼한 기혼 여성이 지켜야 했던 복식 규정으로 기혼자이자 왕비였던 앤 블린은 이 머리 스타일을 고려할 때 뒤편의 여성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흔히 앤 불린은 어두운 색 머리에 어두운 색 눈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이야기되는데, 앞의 여성은 갈색 또는 붉은 머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뒤편의 여인은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는데,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검은색 복장은 앤 불린의 시그니처 색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앞의 여성은 라벤더 색상의 옷을 입고 있고, 목걸이의 경우도 뒤의 여성이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반면, 앞의 여성은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고 진주는 순결을 상징하는 보석인 바 처녀에 어울린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뒤의 여성은 의자에 앉아 있는 반면, 앞의 여성은 그녀의 무릎에 기대어 아래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 뒤쪽 여성인 더 높은 지위라는 것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일부 의견은 처형 이후 헨리 8세 치하에서 앤 불린의 생전의 기록과 초상화가 파괴되었기에 오늘날 남아있는 그녀의 초상화는 모두 사후에 기억을 더듬어 복사된 것들뿐이며, 진짜 생전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역사적 수수께끼로 남아있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죄로 지목되었던 간통과 근친상간에 대해서는 헨리 8세와 토마스 크롬웰 등의 음모였다는 시각이 많으니 화가 시보가 이러한 비극적 미스터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인공의 얼굴을 손수건과 어둠 속에 숨겨 관람객이 그 슬픔과 가려진 진실을 상상하도록 유도한 것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여인 중 누가 앤 불린인가, 이런저런 근거로 뒤편의 여인이 앤 불린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은 영어권에서 주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가 작품을 그리고, 출품하고, 지금 전시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둘 중 누가 앤 불린인가 하는 의문이나 뒤편의 여인이 왕비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자체가 없습니다. 프랑스 문화부의 문화유산 플랫폼 해당 작품의 페이지를 보면 프랑스 국립박물관 연합의 학예사들이 이 그림의 도상학적 분석을 위해 등록해 둔 핵심 인물/배경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Boleyn Anne(앤 불린)과 agenouillé (무릎을 꿇은)인데, 이는 그림의 주인공이 시녀나 다른 여성이 아닌 앤 불린이며, 그 대상이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중심은 누가 봐도 가운데 여성으로 보이는데, 만약 그 여성이 왕비가 아니라면 최소한 그림의 주제로 시녀, 또는 젊은 여인 정도는 표시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프랑스 국립박물관의 공식 입장은 무릎을 꿇은 앞의 여성이 앤 불린이라는 것이라 생각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림을 바라보면 몇 가지가 더 명확해집니다. 우선 화가가 활동하던 시대부터 살펴보면 시보가 활동하던 1830년대 프랑스 화단은 낭만주의 역사화의 시대로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1833) 같은 영국 튜더 왕조의 비극적인 여왕들을 주제로 한 낭만주의 역사화가 큰 유행을 타고 역사적 주인공이 겪는 비극적 감정을 관객에게 극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그림을 보면 빛은 정면에서 들어와 앞쪽에 무릎을 꿇은 여인의 창백한 얼굴, 절망적인 표정, 그리고 가녀린 목선을 비추고 있는데, 이것은 그림의 주인공이 앞의 여인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앤 불린이 사실은 뒤편의 여성이라는 주장은 19세기 아카데미 역사화 작법상,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어둠과 손수건 속에 완전히 숨겨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을 무시한 의견입니다.
추가적으로 이 작품이 19세기 프랑스 화가의 작품이라는 점은 화가가 튜더 시대의 복장의 고증을 하려는 의도보다는 앞쪽 여인이 입고 있는 라벤더 빛의 드레스를 통해 영국의 왕비이자 프랑스 궁정 문화의 정수를 체화했던 앤 불린을 보다 돋보이고 고귀한 신분으로 보이게 시각화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뒤쪽의 검은 의상은 슬픔을 극대화하는 극적 장치이자 주인공을 받쳐주는 배경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뒤편 여인이 머리에 두른 것은 영국식 게이블 후드인데, 이는 앤 불린 보다는 오히려 당대 일반적인 왕실 여성이나 헨리 8세의 첫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의 복장으로 친숙합니다. 앤 불린은 오히려 그녀가 프랑스 파리에서 가져와 영국 궁정에 유행시킨 프랑스식 후드를 쓴 모습으로 묘사되고는 합니다. 다만, 앞쪽의 여성이 머리에 하고 있는 것은 프랑스식 후드로 보이지는 않고 조금 화려한 코이프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비극의 순간에 각 잡히고 보석이 치장된 프랑스식 후드를 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보다는 좀 더 비극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주 목걸이는 앞의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강조라기보다는 앤 불린의 결백과 정절을 상징하기 위한 화가의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뒤편의 여인이 헨리 8세의 첫 왕비인 캐서린을 상징할 수 있는 게이블 후드를 한 채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음은 앤 불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전통적인 영국 궁정의 그림자(또는 구세력의 흔적)가 시녀의 모습을 한 흑막으로 그녀의 등 뒤에 머물고 있다는 시각적 대비를 준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해석이 이 작품을 그린 시대의 화풍에 대한 도상학적 해석에는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뒤쪽의 여성은 의자에 앉고, 앞쪽의 여성은 아래쪽에 꿇어앉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순간에 왕비의 지위에서 근친상간, 간통, 반역의 혐의로 런던탑에 수감되었다면 그림 속 뒤편의 여인처럼 의자에 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있을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려 바닥에 쓰러져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 아닐까요? 앞의 여인의 자세, 그리고 반쯤 감겨 초점을 잃은 듯한 눈은 앤 불린의 이런 상황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클리셰는 이런 상황에서 통곡하는 것은 비극을 맞은 주인공의 주변인이었습니다. 바로 이 그림에서 뒤편 의자에 앉은 여인처럼 말이죠.
앤 불린의 머리카락이 어두운 색이라는 것도 확실한 사실은 아닙니다. 앤 불린의 머리색을 검다고 단정한 유일한 동시대 기록이 당대의 반(反)불린 성향의 성직자 니컬러스 샌더(Nicholas Sander)의 것이라는 점은 현대 연구에서 중요하게 지적되는 사항입니다. 그의 기록은 앤 불린을 검은 머리, 황달에 걸린 것처럼 누르스름한 피부, 윗입술 아래로 툭 튀어나온 이빨, 여섯 개의 오른손 손가락, 목 아래에는 큰 혹으로 외모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밝히던 헨리 8세가 매혹되었던 앤 불린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악의에 넘친 묘사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샌더가 태어난 해는 1530년경이고 앤 불린이 처형당한 해는 1536년으로 그가 앤 불린의 생전에 그녀를 직접 보았을 확률도 거의 없습니다. 샌더가 완고한 가톨릭 성직자이자 프로파간다 저술가로 활동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앤 불린의 악마화는 결국 그녀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의 정당성을 깎아내리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검은 머리는 앤 불린의 악마화와 연결될 뿐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또한 엘리자베스 1세는 붉은 머리로 유명했고, 아버지 헨리 8세도 붉은 머리였으니 붉은 머리가 열성 유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앤 불린은 최소한 붉은 머리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녀가 단순 보인자였다면 그녀의 머리 색은 흔히 이야기되는 것처럼 검은색 또는 어두운 색이었을 것입니다만, 일부 기록에서 빛을 받아 붉게 빛났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앤 불린의 머리 색은 역사적으로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물론 화가 시보가 유전법칙을 고려해서 앤 불린의 머리 색이 붉은색이었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앞의 여인의 머리를 붉은빛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오히려 앞의 여인의 머리 색이 (화가가 앤 불린의 머리 색에 대한 고민을 했을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붉은빛 또는 갈색을 띠게 된 이유는 미술적인 시각에서 찾아야 합니다. 어두운 런던탑 내부를 배경으로 앞쪽 여인에게 빛이 집중되는 명암 대비를 위해서는 앞의 여인의 머리 색이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이 아닌 좀 더 밝은 색이어야 극렬한 대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극적인 슬픔의 표정이나 가녀린 목선의 시각적 강조를 위해서도 검은 머리 색보다는 갈색 머리가 더 어울립니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역사적 고증이 아니었고,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적 연출이었습니다. 앞쪽 여인의 창백한 피부와 대비되며 빛을 받아 빛나는 흐트러진 갈색 머리칼은 비극적 상황과 극적인 대비를 보여줌과 동시에 주인공의 유약함, 자신의 처지에 대한 수용과 포기를 표현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하겠습니다.
에두아르 시보의 이 그림을 보면서 다울런드의 라크리메를 들으면, 비록 그림과 음악이 역사적으로는 연관을 지니지 않았음을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음에도 마음속으로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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