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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예술 - 공연/최근에 즐겨 들은 음반들

[음악]최근에 즐겨 들은 음반들 (2026.04)

by 만술[ME] 2026. 4. 29.

 
근래 DG(를 포함한 여러 음반사의) 음반들에서 종종 보이는 흥미롭지 못한 음반표지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네제-세갱의 셔츠 색깔이 흥미롭기는 합니다만) 내용은 식상한 또 하나의 브람스 교향곡 전곡 음반이 아닌, 신선하고 때로는 위험해서 아찔하기도 한 야닉 네제-세갱과 유럽 체임버의 브람스 교향곡 전곡 녹음은 듣는 내내 즐거웠고, 반복해 들으면서도 결코 그 흥미와 즐거움이 반감되지 않았습니다. 과거 어떤 국내 오디오 제조사의 사장께서 오디오 제작자의 입장에서 브람스의 교향곡을 들으면 늘 답답하게 덩어리로 뭉쳐져 있어 브람스가 작곡실력이 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아마 네제-세갱의 음반을 들으면 브람스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 지류들이 한대 뭉쳐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때로는 흙탕물이 되는 연주들이 그간 상당수의 브람스 교향곡 음반들의 특징이었다면, 네제-세갱의 음반은 이 거대한 흐름의 지류들에 하나하나의 색을 입혀 마치 잘 땋아 올린 머리처럼 각각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관악기와 달리 현악기들은 각각이 하나로 뭉쳐있기는 하지만, 결코 무겁거나 둔중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다른 음반들 대비 확연히 빠른 템포는 곡을 경박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가벼움 속에서도 요소요소에 무게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공연이 열린 메트 무대를 비롯해서 세계 곳곳에서 바그너를 비롯한 굵직한 소프라노 역할로 각광을 받아온 소프라노 리제 다비드센의 2023년 메트 리사이틀 실황 음반은 푸치니와 베르디의 오페라로 시작해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슈베르트를 거쳐 마이 페어레이디의 "I could have danced all night"까지 제임스 베일리유의 피아노 협연으로 그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곡부터 마지막까지 지루할 틈 없이 그녀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공연으로 늘 그렇듯 메트 관객의 반응은 뜨겁고, 음반에도 그 반응이 담겨 있는데, 그래서 한 곡 한 곡 골라 듣기보다는 처음부터 쭉 공연을 따라 감상할 때 더 감흥이 있는 음반입니다. 
 
 

 
미국 출신 여성 피아니스트 올가 사마로프와 프랭크 라 포지의 녹음을 두 장의 음반에 담은 APR의 음반은 오랜만에 어쿠스틱 시절 피아노 녹음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사마로프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의 지휘자로 알려진 스토콥스키와 결혼 뒤, 스토콥스키를 생상,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에 소개해주는 등 음악계의 인맥 형성에 기여했고 그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자리매김하게 해 주고 결국은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창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주역으로도 유명합니다. 사실 이 시절의 녹음은 담을 수 있는 시간의 제약이나 요즘 대비 고가였던 음반의 특성에 따른 상업성의 중요성 때문에 연주자의 의도가 극히 한정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만, 그 점과 상관없이 이 음반처럼 시간의 간극을 넘어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마로프의 음반은 1920년대 초의 녹음을 담고 있는데, 그녀의 음악은 (루바토를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19세기의 감성을 넘어 현대적인 해석의 초기 모델을 들려준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곡에서 연주의 중점이 연주자의 감성에서 작곡가의 의도로 넘어가는 시기라는 것이죠. 사마로프는 슈나벨 이전에 베토벤 소나타 (거의) 전곡 연주를 진행한 바도 있으며, 1926년 사고 이후에는 교육에 중점을 두어 윌리엄 카펠, 로잘린 투렉,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 같은 유명 피아니스트를 제자로 두었습니다. 한편 두 번째 CD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프랭크 라 포지는 독주자보다는 성악가의 협연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초견 실력이나 즉흥적인 조바꿈 실력이 뛰어났으며, 일반적인 협연자들과 달리 암보로 연주해서 4,000곡에 달하는 레퍼토리를 즉흥적으로 반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음반에서는 독주자로서의 라 포지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데, 빅터의 레드 레이블 대비 대중적인 레퍼토리에 치중한 블루 레이블로 발매된 음원답게 당대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들을 담고 있습니다. 
 
 

야니네 얀센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미셸 판 데르 아(Michel van der Aa)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암스테르담 신포니에타와 카리 크리쿠가 함께 한 히스테리시스(Hysteresis) I, II를 담은 음반은 네덜란드의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영화감독, 연출가인 판 데르 아의 레이블인 Disquiet Media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이 음반은 야니네 얀센의 음반을 뒤지다 발견하게 된 것인데, 현대/동시대 음악을 멀리하던 과거와 달리 오히려 무조건 들어보자는 입장으로 선회한 지 제법 오래된지라 얀센의 음반 중 제일 먼저 손이 간 음반입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경우, 음의 구성은 현대적이지만 솔로악기와 오케스트라의 밀고 당김, 리듬감은 전통적인 느낌이 강합니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바이올린과 대비되는 타악기의 울림은 이곡이 동시대곡임을 명확히 해줍니다. 파괴적인 면과 서정적인 면이 동시에 살아 있고, 외적인 파괴력과 내적인 성찰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음악으로 18-19세기의 음악과 같지는 않지만,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같이 수록된 히스테리시스(Hysteresis)는 그 뜻을 음악적 기억으로 전용해서, 연주된 음이 전자적으로 녹음/재생되는 과정을 통해 과거가 시종일관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주는지를 음악적으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메트의 여러 프로덕션의 디바로 친숙한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Sondra Radvanovsky)의 시카고 리릭 오페라 극장 실황 음반입니다. 얼마 전의 투란도트 초연 100주년(4/25)을 기념하듯 푸치니 음악만을 담은 이 음반은 단순히 푸치니의 음악만이 아니라 초기부터 말년까지의 오페라 11편(잔니 스키키수녀 안젤리카를 다른 오페라로 계산)의 아리아를 담은 일종의 헌정 음반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라드바노프스키는 데뷔 시절(라보엠 미미)부터 현재(투란도트 타이틀롤)까지 30여 년을 푸치니와 함께 했습니다. 그녀의 현재 목소리는 미미 같은 역보다는 좀 더 강인한 역할에 적합하고, 저도 그런 역할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데, 몇몇 서정적 아리아는 완벽하지 않고, 일종의 서비스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뮤제타의 아리아나 제목과 달리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면 죽어버린다는 협박인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같은 곡은 본 공연이 아닌 앙코르로 담겨 있기도 합니다. 한편, 투란도트나 토스카 같은 강한 역할에서 라드바노프스키의 노래는 빛을 발해서 곳곳에 경이로운 순간을 만들어 냅니다.
 
 

 
MTT(Michael Tilson Thomas)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위한 글을 따로 올리지는 못했지만, 그를 추모하며 들었던 음반은 올릴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그가 지휘한 말러 음반들을 좋아하는데, 그중에 그를 추모하며 들었던 것은 6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주이기도 합니다. 이 실황녹음 MTT와 SFS의 말러 사이클의 시작이자 911 직후의 연주회의 기록입니다. (물론 연주회 프로그램 자체는 사건 이전에 기획된 것으로 상황에 의거 급조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주는 상황의 특별함에도 감정의 과잉에 빠지지 않으며, 이것이 오히려 비극적 감정을 더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이 연주는 그의 죽음과 마주하는 제게 있어서도 또 하나의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글은 신보 소개라기보다는 지난번 같은 제목의 글을 올린 이후에 즐겨 들었거나 아직 즐겨 듣고 있는 음반에 대한 소개글입니다. 따라서 따끈한 신보 소개가 아닌 어느 정도 숙성된 음반에 대한 평가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온라인에서 신보소식을 열심히 뒤지거나 Gramophone 같은 정간물을 구독하지도 않는지라 어떤 음반을 접하는 시점도 발매된 지 제법 된 경우도 많아 몇 년 지난 음반을 소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열심히 듣고 있는 음반 중에서 제 음악 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집중 감상하는 음반은 소개 대상에서 빠져있습니다. (이런 음반은 종종 별도의 글로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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