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104+α의 곡을 다 들어본 것은 물론 음반도 보유하고 있지만, 하이든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먼저 음반을 구입했던 곡은 (LP 한 장에 앞뒤로 담기던) 놀람과 시계였고, 다음이 런던과 군대였습니다. 제가 이 음반을 구입하던 시기에는 호그우드의 음반이 발매되어 당시는 원전연주라 불리고 요즘은 시대연주라 불리는 경향의 음반들이 퍼지던 시점이라 기왕이면 원전연주로 듣겠다는 생각에 이 음반을 구입했습니다. 구입할 당시는 아무 생각도 없이 호그우드와 짝 지워지던 고음악 아카데미(AAM)의 연주라 생각했는데, 막상 뜯어보니 하이든 하면 짝지워지는 잘로몬 편곡의 실내악 버전이었습니다.

표지그림 - 존 채프먼 (John Chapman), 호스 가즈 퍼레이드 (Horse Guards Parade) / 1760년 / 캔버스에 유채 / 영국 정부 예술 컬렉션 (다우닝가 전시)
음반의 표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 존 채프먼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런던 호스 가즈 퍼레이드를 그린 그림을 표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존 채프먼의 서명이 있는 다른 그림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존 채프먼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금은 영국 환경부가 구입해서 정부 예술 컬렉션의 일부로 되어 있으며, 이 컬렉션은 각지의 영국정부기관에 전시되거나 각종 미술관의 전시에 대여되곤 합니다.
하이든의 12개 교향곡의 의뢰인으로 잘 알려진 잘로몬은 자신이 의뢰한 곡들의 실내악 편곡버전도 재빠르게 준비했는데, 현대에 일반 애호가를 위한 히트곡의 피아노 버전 악보를 판매하는 것과 같이 당대에도 유명한 교향곡 등을 집에서 연주할 수 있는 실내악 악보에 대한 수요가 제법 많았습니다. 관현악곡을 실내악으로 편곡할 때 흔히 차용되던 피아노 3중주를 위해 편곡한 버전은 피아노가 주요 멜로디를 연주하며 활약하고 현은 곁다리인 스타일로 원곡의 진가를 느낄 수는 없는 반면, 음반에 담긴 현악 4중주와 플루트, 건반악기를 위한 버전은 원곡의 정수를 제대로 담아서 연주하고 녹음할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때 흥행했지만, 이런 가정 음악회는 점차 없어졌기에 악보가 현대에 와서 재출간되지는 않았고 이 음반은 당대에 출간되었던 악보를 이용해서 녹음했으며 연주는 잘로몬 현악 4중주단에 리자 베즈노지욱이 플루트로 참여하고, 호그우드가 건반(포르테피아노)을 맡았습니다.
대규모 편성의 곡을 소규모 편성으로 편곡한 경우, 편곡이 잘 이루어지고 연주도 그에 걸맞게 잘하면 원곡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거나, 친숙하기 어려운 곡을 쉽게 들을 수 있게 해 주거나 원곡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디테일이나 미묘한 뉘앙스가 쉽게 드러나게 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음반도 제가 말한 긍정적인 효과를 제게 안겨주었는데, 이 두곡은 제가 가장 즐겨 듣는 하이든 교향곡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 음원은 잘로몬 편곡의 94번을 AAM 실내악 앙상블이 연주한 음원을 추가하여 CD로 발매된 바 있지만, 호그우드와 AAM의 (미완성) 하이든 교향곡 박스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브뤼헨, 단토네의 녹음을 추가해서 시대악기 하이든 교향곡 녹음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세트에만 포함되었습니다. 음반사의 기획력이 참으로 아쉽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는 모두 절판되어 음원/스트리밍으로만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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