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디오의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해서는 몇번 올려서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이라면 제 입장을 대강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기존의 제 입장에 대한 글들 - 먼저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위 링크의 글을 쓰신 분은 오디오의 블라인드 테스트와 관련해서 아래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 매우 타당해 보입니다.
(1)참가자가 항상 음악을 듣던 장소에서 할 것 (오디오는 환경이 정말 중요합니다.)
(2)참가자가 평소에 사용하던 기기를 사용할 것 ((1)과 같이 친숙한 환경이 아니면 의미 없습니다)
(3)테스트 음반도 참가자가 늘 듣던 음반이어야 함 (당연합니다)
(4)불륨의 기준은 참가자가 사용하던 시스템에서 주로 청취하던 볼륨에 맞출것 (당연합니다)
길게 쓰셨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참가자에게 친숙한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A앰프와 B앰프(또는 CDP나 케이블)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실험을 하는 것인데, 친숙하지 않은 장소, 장비는 테스트에 참가하는 입장에서는 A와 B를 구분하는 테스트가 아니고 새로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적응능력 테스트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고, 오디오라는 게 그 적응 시간이란 것이 제법 걸리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적응능력 테스트 + A와 B의 변별 테스트>를 동시에 통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지끔까지 이루어진 블라인드 테스트란 것들이 얼마나 제대로 설계되지 않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런 종류의 테스트는 이상하게 다수의 참가자들이 참여하는데, 이런 테스트가 이루어지는 이유가 <일반인>의 변별능력에 대한 통계적 접근이 아니라, <한명이라도> 변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의적으로 검증된다면 결론이 나 버리는 게임이기 때문에 다수의 참가자 보다는 소위 말하는 황금귀를 가지신 분 몇분만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테스트 해보면 답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비실용론쪽에서 이렇게 환경의 친밀성을 강조하면서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건 좋은데, 본인들도 깊은 반성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오디오쇼를 보면 전혀 친숙하지 않은 장소에 전혀 친숙하지 않은 장비를 전혀 친숙하지 않은 (경우에 따라 원하는 것을 틀어주기도 합니다) 음악으로 시연합니다. 더구나 청음을 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다수의 사람이 들락날락 거리는 좀 어수선한 환경이구요. 이런 환경에서 들은 어떤 고급 케이블의 성능이 <고음을 피어나게 만들어 준다> 따위로 치장되는 건 친숙한 환경이 아니라서 블라인드 테스트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배치되는 주장이 아니던가요? 그렇게 많은 오디오 쟁이들이 그렇게나 낯선 환경에서 오디오를 듣고 어떤 소리가 죽여주었다느니, A 브랜드에 비해 B 브랜드가 돋보였다느니, C 브랜드는 지난번(무려 1년전!) 소리에 비해 나아지지가 않았다느니 하는 소리를 할 수 있다면, 그런 <능력>이 있다면 앰프하나 달랑 바꾸어 테스트하는 실용오디오형 테스트를 환경과 오디오가 낯설다고 통과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요?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오디오에 대한 테스트는 무척 어렵습니다. 각종 실험 방법, 용어, 개념의 정립도 잘 안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시스템에서 그날의 기분, 날씨, 같이 듣는 사람, 시간, 주위의 소음, 음악의 종류 등에 따라 정말 느껴지는 소리의 질이 많이 차이납니다. 오디오 파일들과 오디오 샵들이 장소, 장비 등의 친숙성 문제를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한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싶다면, 본인들도 초심자 곁에 붙어 앉아 처음 들어보는 시스템에서 CDP하나 비싼 걸로 바꿔놓고는 "야, 확실히 CDP가 바뀌니 저음이 묵직해지고 고음이 피어오르네~" 같은 소리 하지 말란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실용론이 득세하게 된건 상당수의 오디오 파일들이 오디오 초심자들에게 뭔뜻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해가며 이런 식으로 뽐뿌질 하고 장사 했기 때문 아닙니까?
결론 : (1)실용오디오에서 주장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위해서는 위와 같이 친밀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서로 싸우지 않고 진행했으면 양쪽이 만족하는 실험설계와 결과는 진작에 나왔을 겁니다. (2)실용오디오에서 주장하는 나이브한 블라인드 테스트 환경과 유사한 상황에서 많은 오디오파일들이 소리의 차이를 잘도 구별해내고 이걸 <실력>으로 포장하곤 하는데, 그냥 주관적인 <감상>으로 표현한다면 참아주겠습니다. (3)실용오디오의 이야기도 짜증나지만, 오디오 파일들 구라도 만만치 않거든요.
재미있는 건, 위와 같이 정밀한 조건에서의 테스트를 통해서만 변별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 할 수록, 오디오 애호가들의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들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는 겁니다.
추가적인 이야기 1
모니터의 화질 테스트는 친숙한 마누라 사진이 아니라 생뚱맞은 테스트 이미지를 가지고 합니다. 오디오쪽은 왜 안그러나 모르겠어요. 음악은 이성의 영역보다 정서적 반응을 먼저 불러일으키는데, 그 정서적 반응을 이겨내면서 <음질>이라는 이성적 영역을 테스트하기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이건 예쁜 아가씨가 누드로 있는데다 조명 쏴주면서 조명의 색온도 구별하는 테스트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거에요. 오디오 테스트용 음반은 흔히 나오는 것과 달리 음악이 아닌 각 항목을 테스트하기 적당한 <소리>를 담아서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추가적인 이야기 2
같은 블로그에서 이런 글도 봤는데 이건 그냥 저 잡지사에서 우리는 제품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제품들을 비교청취해서 나름 객관적인 리뷰를 한다는 썰을 푼거에 불과합니다. 오디오 잡지가 자기네 리뷰는 브랜드, 가격, 업체와의 친밀도, 그리고 연간 광고액을 고려해서 음질에 대한 리뷰를 쓴다고 하겠어요? 이런 걸 가지고 전문가들은 블라인드 테스트 따위 쉽게 통과한다고 주장한다면 오디오 파일들이 너무 없어 보입니다.
추가적인 이야기 3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제한조건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어떤 오디오 애호가가 뭔가 불만이 있을 때 그걸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의 조언의 타당성은 더 떨어진다는 얘기가 됩니다. 자기집, 자기 오디오 아니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생판 모르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말로만 듣고 (설사 친히 방문한다고 해도) 어떻게 해결해 줍니까? (놀랍게도 인터넷에는 나는 이런 저런 시스템을 쓰는데 고역이 좀 피곤하게 들린다는 글에 <주옥같은> 조언을 해주는 분들도 제법 있습니다.) 오디오에 대한 선택은 이렇게 환경에 좌우를 많이 받는 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록 그냥 제품들 스펙을 보고 본인의 사정에 맞춰 고르는게 편한 시장이 됩니다. 결국 스펙 지상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전문가가 애호가의 집을 방문해서 각종 테스트 후에 시스템을 구축해줘야 할겁니다.
MF[ME]
*사실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된 동기는 오늘 읽은 블로그의 글 때문이라기 보다는 <군단>에 다시 등장할 일리단을 환영하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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