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보고 들었던 두 명의 예술가가 요 며칠 사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Sir Christopher Frank Carandini Lee (27 May 1922 – 11 June 2015)
크리스토퍼 리는 어릴 적 드라큘라 영화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옛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반지의 제왕>의 사루만으로 알려졌을 테지만 말이죠. 비록 따로 촬영해서 편집해야 했지만, <호빗>에도 나와서 정말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 속 깊은 저음은 90이 넘어도 여전하다는 것이 참 대단합니다. 원래는 간달프 역할을 원했다고 하는데 (워낙 리 옹은 <반지> 매니아이기도 해서 영화에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간달프가 매그니토도 될 수 있으니 드라큘라가 간달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리 옹에게는 사루만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원작을 잘 아는 저야 사루만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크리스토퍼 리가 사루만을 연기하는 순간 이미 사루만의 정체에 대한 스포일러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스타워즈>에서도 등장 자체가 스포일러였고요.^^
좀 창피한 일이지만, <슈퍼맨>이 처음 개봉하던 시절 슈퍼맨 역할이 크리스토퍼 리브라고 해서 그 드라큘라 하던 아저씨가 슈퍼맨 역을 맡은 줄 알고 경악했었습니다. 물론 진짜로 경악했던 일을 이분이 메탈 음악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 나서지만요. 그런데 메탈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이기는 합니다.
James Last (17 April 1929 – 9 June 2015)
요즘은 어느 정도 연세 있는 분들만 사용하는 용어겠지만, 예전에는 <경음악>이라는 장르가 있었습니다. 클래식은 아니면서 노래가 들어가지 않은 연주 음악을 부르던 이름이었죠. 가요 음반에도 <건전가요>나 <경음악>이 들어가곤 했습니다. 저야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 하던 시절 이전은 겪지 못해서 그 이전에도 음반에 <건전가요>를 넣곤 했는지는 모르지만 <건전가요> 없이는 음반을 낼 수 없게 강제한 것은 아버지 대통령 시절입니다. 그분은 무려 건전가요를 작곡도 하셨는데 흥얼거린 멜로디를 채보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서전 대필처럼 대필 작곡이라는 <창조적> 작곡법을 활용한 건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특별히 건전한 가요를 따로 분류한 것을 보면, 그분에게 하찮은 국민이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것은 사치이고 불건전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민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경제발전에 이바지해야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할 시간이 없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그분 따님이 결혼 안 하고 사는 것을 보면 아마 이런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당시 <경음악>은 제법 인기가 있는 장르여서 집마다 제임스 라스트 또는 폴 모리아 같은 이들의 음반이 한두 장은 있었습니다. 저는 제임스 라스트를 폴 모리아에 비해 좋아했는데, 집에 음반도 더 있었고, 경음악이지만 뭔가 덜 가벼운 느낌도 들었으며(독일 출신이라서?), 라스트라는 이름이 어딘지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국민학생에게 라스트라는 영어가 더 친숙하고 (<반지의 제왕>을 읽은 뒤라면 <모리아>에 더 끌렸을지도 모르죠) 뭔가 끝장을 낸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어릴 적부터 조숙하고 뭔가 <선민의식>에 절어 있던 저로서는 짧은 기간이지만 제임스 라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수준 있는 음악>을 듣는다는 자기만족을 하고 지냈었습니다. 이후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된 계기는 다른 글에 상세히 나와 있고요.
어제 오랜만에 그의 음악 몇 곡을 들으면서 엄청나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의 음악에는 좋아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뭔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MF[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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