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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Wonderful Life

직장 생활을 하며 겪었던 사람들

by 만술[ME] 2025. 3. 13.
"이 포스팅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 사건, 조직 등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 사건, 조직과  유사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저는 어지간하면 이런저런 직원들, 상사들과 잘 지내는 편입니다. 성격이 괴팍하거나, 무능력하고 책임을 회피해도 그냥 제가 일하고 책임지고 결정하면서 지내왔습니다. 큰 틀의 보고를 원하면 그렇게 보고하고, 자잘한 내용까지 원한다면 또 그리했습니다. 올라온 기안의 내용이 부족해서 수차례 지침을 주어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으면 제가 직접 수정하고 편집해서 결재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다만, 꼴통, 무능력자, 무책임자, 정신병자와 일하는 건 문제없었지만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과는 일하지 못하고 부서를 떠나거나 회사를 떠나곤 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나쁜 사람은 성격이 못 된 것과는 다른, 어떤 일을 행하는 동기 자체가 <악(惡)>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로 제 경험상 그리 많지는 않더군요. 아무튼 이런저런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능력함이 요구되던 시대의 최대 수혜자 - A 이야기

 

제가 처음 함께 일할 때 제 팀장이었고, 나중에는 두 개 본부를 관할하는 본부장을 겸직하는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퇴임 후 모 지방공사의 사장까지 역임한 분입니다. 제 직장생활의 초창기는 많은 사무실이 파티션이 아닌 철제 책상을 직급순으로 배정하는 회사들이 아직 많던 시절입니다. 입구나 복도부터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팀장의 순서로 뒤통수를 보며 앉는 것이죠. 업종이나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팀장쯤 되면 아침에 출근해서 신문을 보는 것으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쯤에는 잠깐 사우나도 다녀오곤 하는 분위기였죠. <여사원> 또는 <사환>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순환보직이라는 제도도 있어서 선임 중에는 해당업무의 경력이 없이 부서장이나 팀장이 되는 경우도 제법 있었는데, 이 분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구매 쪽에서 잔뼈가 굵으셨다 사업 쪽 팀, 그것도 가장 험한 팀을 맡으셨는데, 아마도 주량과 인맥 덕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이분의 리더십은 그냥 <네가 알아서 해라>였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내용을 모르고 (당시 고위 직급자들 대부분처럼) 공부하려는 의지도 없어서 임원이나 사장에 직접 보고하기를 극도로 꺼렸기에 그 <알아서>의 범위에는 직접 보고해서 결재를 받아내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중요 결재가 있으면, 본인은 외부 협의를 핑계로 나가면서 사장께는 부득이하게 담당이 보고하는 형식을 취하게 하셨죠. 저는 업무 특성상 상급자가 없는 업무도 병행하고 있던 터라 사원이던 시절부터 각 팀장, 각 본부장, 사장까지 직접 대면보고를 하면서 얼굴을 알릴 수 있었고, 아마도 덕분에 특진, 조기 팀장 발령 등 혜택을 받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장점도 많았는데, 업무를 거의 챙기지 않았기에 팀원들을 나무라거나 화를 내는 일도 거의 없었고, 유일한 예외는 근태나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을 경우였습니다. 아울러 음주로 뭔가가 연결되는 시대 분위기에 걸맞게 음주를 좋아한 덕에 내외부 인맥도 좋았고, 윗분들에게도 깍듯했기에 업무 역량과 상관없이 거의 부침 없이 승승장구해서 부사장까지 진급했습니다. 10년 정도 차이나는 제가 사원일 때나 대리일 때나 과장일 때나 차장일 때나 팀장/부장일 때나 임원일 때나 본부장일 때나 늘 실무와 새로운 사실/트렌드에 대해 공부하고 <신데렐라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직원들 다 퇴근한 뒤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해야 했던/하는 상황과는 천지차이죠. 그리고 대기업 부사장 출신이라는 명함과 제가 꾸며드린 서류들 덕에 지방 공사의 사장까지 역임을 하셨죠. 

 

어떤 위치에 있던 업무 역량 강화는 전혀 안 하셔서 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갑자기 제게 전화 걸어 (가전 회사의 사장이라 가정했을 때) <QLED TV랑 OLED TV랑 다른 거냐?> 수준의 질문을 한다거나 갑자기 제가 다니던 회사 근처의 호텔 커피숍에서 회의를 개최하시고는 저를 잠깐 오라고 해서는 아끼는 후배인데 이 녀석이 약속시간 보다 좀 일찍 와서 갈 데도 없고 동종 업체에 근무하니 서로 알아둬도 좋지 않냐며 괜찮으면 옵서버로 합석시키겠다고 한 뒤, 회의 후 제게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냐는 등의 자문을 구하시곤 했죠. 같은 회사 출신인 Z는 그분을 <직장인이 꿈꾸는 최고의 모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무튼 그분의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저는 늘 공부하고 노력하고,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했고, 결국은 무한경쟁의 시대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직까지는 살아남았습니다.

 

태양이 되지 못해 혜성처럼 떠돌다 - B 이야기

 

본부장에 잘 보인 덕에 과장임에도 팀장 내정자로서 S프로젝트 TF팀을 맡아 팀원들을 선발하던 중이었습니다. 본부장, 사장은 물론 회장까지도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프로젝트지만 차장 대우도 못단 까마득한 후배가 맡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자신의 주요 인력을 빼줄 팀장이나 임원은 없었기에 인원 선발이 난항을 겪고 있던 차에 후배 하나가 B를 추천했습니다. B는 여전히 대단하지만 당시는 넘사벽이던 <빅 블루>에 다니다 이직한 친구지만 사수를 잘 못 만난 덕에 팀 내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혀 한직으로 발령 난다는 소문이 떠돌던 친구였습니다. 이런 사정은 본인도 직감하고 있어서 파티션 구석에서 하루종일 주식창만 보면서 지내는 것이 일과라고 할 수 있었죠. 면접적 관계는 없었지만 학벌/스펙 등 제가 지금이라면 관심 없을 분야로 판단컨대 사수만 잘 만났다면 성장할 수 있는 친구라는 생각과 지금 같은 조직 분위기라면 인력 충원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염려에 그 친구를 영입하기로 했고, 문제아로 낙인찍힌 친구를 차출하겠다는 것에 앓던 이 빠진 듯 그 팀장은 대환영의 분위기였죠. 물론 <B는 아주 똑똑하고 스펙도 좋아서 내가 아끼는 친구인데, 나랑 너와의 관계도 있고 네가 회사의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해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낸다>는 생색을 내고 보내줬죠. B의 후일담에 의하면 본인 입장에서는 당시 <너, 나랑 S프로젝트 한번 해보지 않을래?>하고 묻는 제 모습이 그야말로 헬름협곡에 3일 차에 나타난 백색의 간달프 같았다고 합니다.

 

그 뒤 B는 전혀 다른 회사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준비과정을 위해 일본, 미국, 싱가포르, 유럽 등을 저와 다녀야 했고 업무상 만나는 사람도 달라졌고 회사돈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부터 약간은 겉멋이 있는 친구였는데, 이런 경험과 상황은 B를 전혀 다른 캐릭터로 만들어 해당 직급에서는 볼 수 없는 자신감과 창의력이 넘치는 <리틀-만술>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3년 정도 뒤에는 부사장께서도 앞으로는 회장님 PT도 B를 시키라는 등 B에 대한 사랑이 넘치셨고, 일부에서는 차세대 대안이 아닌 저를 넘어 이미 현세대가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다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과거 B를 방출했던 선배 팀장은 본부 선임팀장을 맡아 본부장인 부사장님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일을 겸하고 있었는데, 부사장님을 제대로 보필하기 위해서는 B와 같이 능력 있는 친구가 자기 팀에는 꼭 필요하다고 설득해서 B를 다시 자신의 팀으로 데려가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아직 B에게는 때가 되지 않았고,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어 제가 몇 년 더 가르쳐야 한다고, 그래야 저를 넘어서는 진짜 좋은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부사장님을 설득해 봤지만, 다들 제가 후배를 질투해서 뭔가 앞길을 막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였고, 결국은 B를 방출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B를 보내며 더 가르치고 보여줄 것이 많은데 이렇게 떠나보내게 되어 아쉽다는 말과 함께 T답게 <B야, 사람들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지금 네가 빛나는 게 모두 너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너는 아직까지는 내가 비추는 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달과 같은 존재다.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아서는 안되고, 좀 더 너만의 노력이 필요한데, 네가 스스로 빛날 때까지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몇 배 더 노력해서 스스로 빛날 수 있도록해라>라는 <재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B는 다시 방출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팀이 아니라 회사에서. 그 친구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문제가 있었고, B의 처리 과정에도 문제가 많아 대내외 B의 평판은 바닥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 일의 뒷수습을 제게 맡기기로 했는데, 당시 다른 중요 프로젝트가 쌓여있던 제 입장에서는 회사에 반대급부를 요청해도 회사에서는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요구한 조건은 단 하나, B의 방출이었습니다. B가 프로젝트에 연계되어 있는 한 그 일이 제대로 마무리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만, 그 일을 맡기로 한 직원이 맡던 프로젝트를 인계받기로 한 직원이 퇴사하면서 도미노현상이 발생해 결국은 제 뜻대로 되지 못하고 저만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B의 업무를 극도로 제한하고 다른 직원들을 투입해서 회사입장에서는 최선의 결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B는 퇴사 후에 동료들과 업체를 설립해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업과정에서 평판만 추락하고 폐업과 창업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태양은 되지 못했지만 길게 돌아 잠깐잠깐 빛나는 혜성은 됐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악의는 없는 사람 - C와 D 이야기

 

모 회사로 이직을 했는데, 직원들이 담당 본부장을 경원시하고 있더군요. 그룹 내 계열사 간 인사이동으로 전임자와 교체된 케이스였는데, 전임 본부장은 조직원들의 존경을 받는 인격적/역량적으로 모범이 되는 분이었지만 현직인 C는 그 정반대로 업무역량이나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스타일이어서 팀장들이나 직원들은 방에 불려 들어가면 몇 시간 동안 고문을 당하다 진이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사실 이런저런 단점은 많지만 임원으로서 장점은 찾아보기 어려운 분이어서 입사 3년 차 즈음에 제가 그해 목표를 설정하면서 <C본부장의 장점을 찾는 것>이 개인적인 그해 목표라고 공표하였지만 상반기를 결산하면서 올해 목표는 포기하겠노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랬음에도 저는 그분과 제법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C본부장이 퇴임을 하고 새로운 본부장 D가 외부에서 온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C의 퇴임 소문에 다들 희망에 부풀었지만, 저는 <여러분이 진짜 문제 많은 윗사람을 모셔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라서 C를 못 견뎌하는 것이다. 난 C정도면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윗사람이라 생각한다. 내 경험에 밖에는 C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근본이 악(惡)한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후임으로 그런 사람이 올지도 모르니 C의 퇴임을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새로 부임한 D는 제 예언을 그래도 적중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저희 팀의 부장은 <말씀하신 대로 C는 악의는 없던 사람이지요... 그런데 D는 정말 모든 일에 악의가 넘쳐요>라고 하더군요. 태생적으로 그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저는 전에 언급한 대로 기회를 잡아 이직했습니다.       

 

물론 제가 말하는 <악(惡)>이 연쇄살인이나 부정부패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악이겠지만, 그것은 법적 테두리에서 해결될 수 있는 악이고 제가 싫어하는 악은 자신의 이익도 아닌 감정의 만족을 위해 회사일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E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E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음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드롭되게 한다던지 (사실 상위 직책자 정도 되면 끊임없이 보고서 수정을 시키는 일만으로도 어떤 사업을 중단시킬 수도 있죠) 반대로 회사에 큰 피해가 올 것을 알면서도 F가 마음에 든다고 F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지지한다던가 하는 것이죠. 물론  세상에는 자기감정에 휘둘려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사람도 많지만 제가 주목하는 사람들은 이 감정에 휘둘린 사람이 아니고, 감정에 휘둘린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마저 직시하지 못해 잘못된 판단을 하는데 반해, 이 악의에 찬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은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기 자신의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많은 사람들은 E가 싫기에 E가 하는 프로젝트도 좋지 않게 보고 그래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며, 저는 그런 리더가 옳거나 좋은 리더는 아니지만 악의에 찬 사람은 아니고 제가 상종 못할 인간도 아니라 생각하지만, 제가 싫어하는 진짜 악의를 가진 사람은, E가 싫지만 그가 하는 프로젝트는 좋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E가 싫다는 이유로 그 프로젝트를 드롭하는 판단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즈음의 상황을 들어 이야기하자면 관대한 사람인 저는, 잘못된 믿음으로 부정선거가 있다고 믿고, 그 상황에서는 계엄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과는 같은 세상을 공유하며 살 수는 있지만, 반대 정파를 숙청하기 위한 명분으로 현실적으로 부정선거도 불가능하며 그 이유로는 계엄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행하거나, 그것을 믿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이나 타인의 손해를 위해 동조하는 사람들과는 같은 세상을 공유하기는 힘듭니다.

 

아마 반응이 좋으면 시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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