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디지털 미디어 플레이어(과거명 MP3 플레이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아이팟 포토입니다. 다른 제품에는 관심이 없었던 제가 아이팟을 선택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우선 다른 제품 대비 용량이 커서 제가 가진 많은 음반들을 넣어 놓기 좋다는 점이 먼저였고, 다음은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필수라 할 수 있는 갭리스 플레이를 완벽하게 지원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울러 인터페이스가 사용하기 편한 점도 한몫을 했죠. 다만 검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클래식 음악의 특성상 어떤 제품이나 마찬가지지만 태그 작업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죠.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부터는 모바일 환경에서 음악을 듣기 위한 별도의 장비를 사용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제 스타일이 음질에 목을 매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특히나 모바일 환경에서 음질적으로 기대하는 부분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폰이면 충분했고, 나중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는 음악을 어디에 넣어 다닌 다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은 일이어서 그냥 아이폰을 이용한 스트리밍 서비스에만 전념했습니다. 더구나 아이폰은 집에서 사용하는 거치형 환경에서도 같은 앱을 리모컨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다른 장비의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헌데 이런저런 어른의 사정으로 FiiO의 DMP인 M23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주요 스펙]
자세한 스펙은 위 링크를 참고하시고, 제가 보기에 눈에 띄는 점만 몇가지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AKM의 AK4191EQ + AK4499EX 칩셋 사용 - AKM 공장 화재로 수년간 ESS의 칩셋이 보편적인 선택이었고, ESS 9038, 9039 칩셋이 주요 광고 포인트였으나 근자에는 차별점으로 AKM의 AK4191EQ + AK4499EX 칩셋을 셀링하는 경우가 잦아진 것 같습니다. 저는 ESS의 9018s를 탑재한 제품을 사용하기에 AKM의 최신 칩에 흥미를 가지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력한 헤드폰 앰프 - M23이 무거운 DMP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별도의 헤드폰 앰프를 들고 다닌다면 모바일의 장점은 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M23은 THX AAA 78+ 앰프를 장착하고 <슈퍼 하이게인 모드>를 지원해서 외부 전원으로 구동하는 경우에는 1000mW의 출력(32Ω 기준)을 지원하며, 배터리로 구동 시에는 475mW (32 Ω 기준)의 출력을 지원해서 어지간한 헤드폰이나 이어폰 사용 시 출력의 문제는 없습니다.
전원부 분리 등 - 요즘 필수 사양중 하나인 디지털과 아날로그 전원부를 별도로 운용해서 노이즈의 유입을 방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고 더 나아가 퓨어뮤직 모드를 지원합니다. 아울러 저랑은 상관없지만 aptX HD, LHDAC, LDAC 등의 다양한 블루투스 코덱을 지원하며, USB입력을 통한 DAC 용도로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계 - 스냅드래곤 660에 안드로이드 10이 탑재되어 쉽게 다양한 앱을 깔아 사용할 수 있고, 따라서 타이달 같은 서비스는 물론이고 애플뮤직의 경우에도 네이티브로 고음질 스트리밍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쪽 세계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스냅드래곤 660에 안드로이드 10이 언제 적 이야기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만, 이 바닥은 <음질>과 상관없는 곳에 이 정도 투자한 것이면 최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사용감]
디자인은 전형적인 DMP의 디자인으로 최신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많이 투박합니다. 결코 아름답다거나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습니다. 차라리 수십 년 전의 PDA 디자인이 더 멋스럽게 느껴집니다.
안드로이드 폰을 사용한 적은 없지만, 회사에서 준 갤럭시 탭을 사용했던 덕분에 설정이나 사용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스냅드래곤 660의 성능 때문인지, 최적화 문제인지는 몰라도 아이폰 13프로에서 각종 앱을 사용하는 느낌 대비 현저하게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버벅거려서 못쓰겠다는 정도는 아닙니다. 아울러 FiiO의 별도 스토어가 있습니다만, 타이달의 경우 최신버전이 아니고 설치 후 업그레이드하려면 오류가 발생하니, 그냥 마음 편하게 구글 플레이 스토어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한 <게인>을 <증익>으로 번역하는 등의 소소한 중국산 느낌이 운영체제에 남아 있습니다.
가장 불편한 것은 측면의 볼륨 조절 터치패드인데, 매우 민감해서 의도치 않게 볼륨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터치방식이 아닌 누르는 방식으로 설정을 변경해 놓는 것이 마음 편할 듯싶습니다.
[음질 및 성능]
한번 듣고는 AKM과 ESS 칩의 차이를 느끼시는 대단한 분들도 널려 있지만, 저는 솔직히 제가 들은 느낌이 AKM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요소인지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부품을 그대로 둔 채 AKM을 ESS로 바꾼 제품이 있다면 비교 체험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DAC 부분만 생각해도 그렇게 설계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기에 결국은 상상력의 영역이 필요할진대, 저는 상상력이 부족한 듯합니다. (JAVS에서 나온 Arte나 Tamra 같은 DAC가 모듈형으로 DAC칩을 교체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이 또한 모듈 간의 차이가 단순히 칩셋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히 다른 변인을 통제한 비교라 할 수 없을 듯합니다) 따라서 AKM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그냥 FiiO M23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AKM에 대해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AK4191EQ + AK4499EX 칩셋은 6종류의 로우패스 필터를 제공합니다만 저는 기본으로 되어 있는 Short Delay Sharp Roll-Off를 제외하고 다른 필터를 시험해보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듣는 입장에서 이런 필터의 세부 조절이 필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M23이 모바일 장비이다 보니 기존에 글을 올렸던 64오디오 U18t와의 궁합이 기대되었습니다만,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U18t를 리뷰하면서 날것으로 나는 소리 특성을 이야기했었는데, 거실의 거치형 시스템이나 아이폰 + 꼬다리와의 상성은 그게 거슬리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반면, M23과의 상성은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타이달에서 최신이 아닌 음원을 듣는 경우 좀 거슬리는 부분이 많이 들어옵니다. 반면 다른 헤드폰이나 이어폰에서는 이 정도의 느낌은 없이 적당한 긴장감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M23의 헤드폰 앰프 부분은 훌륭합니다만,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잘 울리지는 못합니다. 베이어 다이내믹 DT 880 600Ω 버전의 경우에는 게인을 높여도 제대로 울려준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볼륨을 최대한 올리면 볼륨은 확보되는데, 헤드폰을 가지고 노는 느낌은 없습니다. 모바일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는 출력이지만 제대로 된 거치형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거치형이라고 해도 대충 모양을 갖추기 위해 달아 놓은 (앰프나 소스기기에 딸린) 헤드폰 앰프로는 M23보다도 DT 880을 제대로 울리지는 못하니 이게 단점이라 할 수는 없겠죠. 다만, M23을 거치형처럼 쓰는 슈퍼 하이 게인 모드를 이용하면 높은 볼륨에서 음량과 시원함을 모두 확보해 줍니다.
[맺음말]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별도의 DMP가 필요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필요 없을 겁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들으려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블루투스를 논외로 하면, 그나마 편하게 양질의 음질로 음악을 듣는 방법은 스마트폰에 꼬다리를 다는 방법일 것입니다. 헤드폰이나 이어폰이 별도의 앰프롤 필요치 않을 정도의 제품이라면 특히 그렇습니다. 아마 그냥 스마트폰+블루투스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음질을 들려줄 것이고 DMP와 비교해도 많이 뒤지지 않을 겁니다. 꼬다리 이상의 체감을 하려면 최소한 FiiO의 M23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최신 스마트폰 가격정도를 투자해야 하니 그리 경제적인 선택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쓰시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적당한 출력으로도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냥 (대부분의 DMP보다 빠릿빠릿하게 작동하는) 지금 쓰는 스마트폰에 적당한 가격의 꼬다리를 붙이고 사용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음질적으로 이런 저런 세팅을 하거나 EQ를 사용하는 등의 음질 놀이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어쩔 수 없이 DMP를 구입하셔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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