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바일 환경에서 음악을 들을 일이 거의 없고, 이동도 자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집 밖에서는 차량용 오디오를 이용하기에 (집에서 혼자 음악을 듣는 용도로 적합한) 헤드폰과 달리 이어폰은 사용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워크맨이나 휴대용 CDP시절에 쓰던 소니 888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시절에 사용하던 슈어 E3C를 제외하면 애플제품 구입 시 번들로 나오던 유선 이어폰이 제 경험의 전부입니다만, 매년 회사 이름을 기념하는 6/4일 세일 덕에 64오디오의 U18t를 듣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래 소감은 이어폰에는 경험이 그리 없는 이제는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고음역이 12K까지가 한계인 586세대의 한계를 가집니다.
패키징과 디자인
가격을 생각하면 뭔가 더 그럴듯한 패키징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단촐합니다. 이어폰, 케이블, 두 가지 재질로 된 사이즈별 이어팁들, 청소도구, 케이스 정도가 전부입니다. 케이스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전혀 실용적이지 못합니다. 이어폰에 케이블과 이어팁을 장착한 상태에서는 내장된 보호용 스펀지를 제거해야 이어폰 수납이 가능합니다. 그냥 둥그런 통에서 꺼내는 느낌이라 딱히 메리트가 없습니다.
디자인은 한쪽에 페라리 마크라도 붙이면 좋을 듯한 빨강인데(실제로 B&O에서 이런 제품을 내놓긴 했죠), 겉 모양으로 가격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어폰에 400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이 붙을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겠죠. 페라리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금속, 붉은색으로 투명한 부분은 플라스틱입니다. 케이블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가격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3선을 꼬아놓았다는 점 말고는 딱히 비싼티는 나지 않습니다.
착용감
U18t는 Universal-Fit Earphones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것이 무색하게 착용감이 좋지 않습니다. 이어폰 자체의 디자인 문제라기 보다는 번들로 나온 이어팁의 문제인데, 귀에 쏙 하고 안착하는 느낌이 약합니다. 특히 실리콘팁은 일단 제 귀에는 전혀 안 맞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메모리폼팁이 낫더군요. 여기에 애매하게 말린 이어폰 케이블까지 합세하면 자꾸 이어폰을 귀밖으로 밀어내는 느낌입니다. 케이블이 귀에 착하고 감기기보다는 좀 붕 뜨는 느낌이 있어요. 그냥 자기 귀에 맞는 팁을 하나 장만해서 바꾸는 것을 추천합니다.
소리의 특징
모바일 환경에서는 아이폰에 애플의 라이트닝-3.5mm 어댑터를 사용했습니다. 만원 조금 넘어가는 (소위말하는) 꼬다리로 이 정도 성능의 이어폰을 연결하는 건 U18t 입장에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애플의 꼬다리가 생각보다 실망스럽지 않은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서 거치형 시스템에 연결해서 들었습니다.
①가장 먼저 느껴지는 특징은 공간감입니다. 이어폰이 맞나 싶은 넓은 공간감을 들려줍니다. 귀에 커널형 특유의 이물감이 없다면 헤드폰, 또는 스피커를 통해 듣는 음악이라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헤드폰도 어지간한 헤드폰보다는 공간감이 우월할 듯합니다.
②대역 재생능력 역시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역의 경우 이어폰이 맞나 싶은 저역을 보여주는데, 뻥튀기된 저역이 아니라 제대로된 단단하면서도 깊고 한방이 있는 저역입니다. 스피커에서 제대로 때려주는 저역과 같은 몸과 공간 전체를 울려주는 맛은 없지만, 듣다 보면 귓속이 아닌 몸으로 느껴지는 저역을 들려주는 것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다만 고음 쪽의 경우 좀 세다는 느낌이 있고, 이어팁의 장착상태에 따라 그 느낌이 변이가 심하다는 점에서 이어팁을 교체하고 체험해봐야 할 듯합니다만, 거북할 정도는 아니지만 하늘하늘, 찰랑찰랑 하는 고역은 아닙니다.
③해상력 역시 발군입니다. U18t라는 제품명 대로 한쪽당 18개의 BA유닛을 장착하고 있어, 엄청난 해상력을 보여줍니다. 어떤 편성을 듣던 뭉치거나 불명확한 부분이 없이 모든 음을 낱낱이 분리해서 들려줍니다. 또한 이 들려주는 방식이 전혀 조미료를 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재생하는데, 때로는 음악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과장 없이 말해서 가수의 목에 선 핏줄도 느끼게 해주는 정도의 전달력입니다. 반면 이로인해 연주자나 프로듀싱의 단점이 전혀 커버되지 않은 채 드러납니다. 어떤 어려운 패시지를 연주자가 부드럽고 유연하게 잘 넘어갔다고 느꼈던 부분을 U18t로 듣다 보면 생각보다 쉽지 않았구나 하는 지점이 보입니다. 흔히 말하는 펀 사운드는 아닌데, 이런 발견과 듣기가 재미를 줍니다.
결론
당연히 가격을 생각할 때, 가성비로 따질 수 없는 제품입니다. 이 가격을 지불했을 때 실망하지는 않을 제품인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객관적으로 400만 원 넘어가는 값어치를 한다는 의미이거나 100만 원짜리 제품보다 네 배 좋다는 것은 아니고 (세상에 오디오 말고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죠) 이 돈을 주고 샀는데 뭐 이따위야 하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오디오판에는 돈값을 못하는 제품들이 허다한데 64오디오의 U18t의 경우에는 그와 달리 확실히 그 존재감을 보여주는 제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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