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게임 - 취미생활

[독서]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by 만술[ME] 2014. 4. 2.

종편 채널의 인기 있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김희애)이 남주인공(유아인)에게 책을 선물했고, 그 책 덕분에 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이 있나 본데, 그 책이 놀랍게도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입니다. 알라딘에서는 무려 그 드라마를 책의 마케팅에도 이용하고, 검색해보니 이런 저런 언론에서도 화재로 삼았더군요. 전에 말한대로 하루키도 음반을 팔아먹는데, 종편 드라마가 책을 팔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올해초 오랫만에 다시 읽어 본 사람으로서 아무리 돈이 좋아도 드라마에 나왔다는 이유로 팔려야 할 책은 전혀 아니란 생각입니다.




1. 일단 책의 제목부터 ㅡ 영어식 표기로 Sviatoslav Teofilovich Richter, 러시아식 표기로는 Святослав Теофилович Рихтер 우크라이나식으로는 Святослав Теофілович Ріхтер인 피아니스트의 한국식 표기문제입니다. 책에서는 '리흐테르'라 표기했는데 대부분의 국내 음악지, 음반 등에는 '리히터'로 표기하는게 일반적입니다. Richter의 복잡한 가계를 ㅡ 보기에 따라 독일인도, 러시아인도, 우크라이나 사람도 아니며 또 모두이기도 했던 ㅡ 생각하면, 특히 아버지가 독일인임을 생각하고, 그가 카라얀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독일인'이라 했다가 "그럼 나는 중국인일세"라는 불쾌한 대답을 들었다는 일화 등을 생각할 때 그를 독일식 발음인 '리히터'로 발음하는게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며, 러시아식으로 발음해도 그걸 우리말로 적으면 '리흐터' 정도가 되기 때문에 (이때 흐는 Bach를 읽을 때의 흐) 구태여 출간당시에는 생소했던 (그러나 이 책덕분에 이제는 그리 생소하지 않은) '리흐테르'라는 표기를 사용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 책의 발단이 된 영화 <Richter - The Enigma>에 비하면 100만배 친절하지만 당초 그리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노년에 두서없이 이야기한 인터뷰의 내용에 의해 재구성된 회고록과 개인적 목적으로 적어놓은 음악수첩을 편집한 내용으로 구성된 책이 일반인이나 일상적 음악 애호가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사실 책의 제목을 <회고담과 음악수첩>이 아니라 <뒷담화와 음악수첩>이라 붙이고 싶을 정도로 본인의 삶과 더불어 자신이 겪었던 음악가들에 대한 이런저런 단편적인 이야기들 ㅡ 음악수첩의 내용들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ㅡ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물론 각각의 사례는 너무 재미 있습니다 ㅡ 한 페이지 건너마다 스크랩해두고 싶은 일화들이 넘쳐납니다만 그건 그 언급되는 사람들을 어느정도 알고 있을 때의 이야기고 그렇지 않다면 재미는 격감합니다. 더구나 Richter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기는 해도 이미 고인이 된지 20년이 다 되가는 현시점에서는 더욱 옛날 이야기일 뿐입니다.


3. 회고담 부분은 그나마 나은데 음악수첩 부분은 읽는 사람에 따라 책값이 아까울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Richter가 음반을 듣거나 음악회를 가거나 하면서 느낀 사항들을 짧게 적어놓은 메모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당연히 어떤 레퍼런스로 쓸 수는 없으며 단지 Richter라는 사람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을 주면서 곳곳에 숨은 깨알같은 재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4.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몽생종의 음악가에 대한 영화들 처럼 어떤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하거나 하기 보다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Richter라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고 알아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정보의 차원이 아니라 이런 사람과 사람의 관계의 차원에서 Richter를 느끼고 알게 해준다는 거죠. 마치 Richter와 한나절 같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난 느낌 ㅡ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알게 되는 느낌입니다.


5. 이 책이 사랑을 불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일반인들에게 적용될 사항은 아닌 듯합니다.^^


MF[M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