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게임 - 취미생활

[독서]<워더링 하이츠> 또는 <폭풍의 언덕>

by 만술[ME] 2013. 12. 16.

<워더링 하이츠> 또는 국내에 잘 알려진 제목으로 <폭풍의 언덕>은 워낙 유명한 책이라 특별히 이런 저런 언급을 할 필요가 없는 책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로렌스 올리비에, 멜 오베른 주연의 영화로 처음 접했고, 이후 청소년용 축약본으로, 대학시절에 완역본(?)으로 그리고 사투리 때문에 고생하며 옥스포드 버전으로 읽고 정말 오랜만에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사랑과 인생에 대해 어느정도 알게 되고 난 후에는 처음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그냥 생각나는 몇가지만 언급할까 합니다.


1. 제목에 대하여


제가 읽은 유명숙 번역의 을유문화사 판본은 흔히 알려진 <폭풍의 언덕>이 아닌 <워더링 하이츠>를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제인 Wuthering Heights를 그대로 살린 번역인데 워더링 하이츠의 뜻이 “센바람이 부는 언덕”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뜻을 따라 지은 집의 이름이기 때문에 고유명사인 <워더링 하이츠>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옮긴이의 주장입니다. 


저는 제목과 관련해서 세가지 요소를 충족하는 번역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①자연스럽게 집 이름을 표현

②격변의 장소로서의 내포적 중의적 의미 표현

③wuthering이 지니는 지방색의 느낌을 표현


당연하지만 Wuthering Heights는 집이름입니다. 따라서 그 번역은 집의 느낌이 나야합니다. 하지만 제목이 단지 집 이름만을 뜻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브론테가 책 제목을 구태여 “그집 이름”을 따와 지은데는 그 제목이 단순한 집이름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Wuthering Heights는 책의 내용을 볼 때 그야말로 풍비박산 나는 모든 사건의 소용돌이의 근원이자 한편으로는 주요 인물 모두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그동안 우리말 번역으로 알려진 <폭풍의 언덕>이 가진 느낌을 담아 Wuthering Heights의 중의적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집이름이니 <워더링 하이츠>로 번역해서는 해결이 안된는 문제가 있다는 거죠. 때문에 <워더링 하이츠>라는 제목은 <폭풍의 언덕>이 주는 뉘앙스 - 우리말로 폭풍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매우 낭만적이라 할 수 있는 어떤 시련과 격정의 느낌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지니고 있기에 관점을 달리 본 것이지 둘 다를 포용한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아울러 wuthering은 특유의 방언입니다. 처음 출판 당시는 영국 사람들로 잘 못알아 듣는 단어였기에 책 초반에 작가는 그 뜻을 설명해주고 있죠. 책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매우 장소 한정적으로 살아온 (실제로 소설 자체가 두집말고는 읍내도 사실상 다루지 않죠) 사람들의 애환과 갈등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많은 부분이 지방이었기에 가능한 사건들이었기에 Wuthering Heights가 지닌 토속적 느낌을 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런던이었다면 이웃에 사는 두집안이 결혼하고 (더구나 겹사돈에 겹사돈) 갈등하고 다 해먹는 이런 종류의 스토리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번잡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죠.


①②③을 다 충족 시키려면 <된바람 언덕집>이나 <된바람 구릉장> 같은 류의 제목이 되어 버리는데 1920년대나 30년대 번역을 했다면 오페라 제목인 <마탄의 사수>나 <마적>처럼 적절한 한자어를 써서 <暴風丘莊> 정도로 지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요즘 그리지어서는 맛이 안나죠. 추가로 “폭풍”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딘지 모를 산바람 보다는 바닷바람의 느낌을 제거 할 수 있는 제목이면 좋겠습니다. 그점에서 “된바람”이 어느정도 지방색도 느껴지고 좋은데 언젠가 멋진 번역제목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결론은 아직 ①②③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목이 없다는 것. <워더링 하이츠>가 <폭풍의 언덕> 보다 아주 우월한 번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제목을 <워더링 하이츠>라 지어놓으면 책 내내 “워더링 하이츠”를 언급해도 생뚱 맞지 않고 좋기는 합니다.

 


2. 막장 드라마의 원조


엄청난 속도로 읽힙니다. 작품이 발간된 시대를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로 현대적입니다. 스토리, 주인공들의 행동들을 보면 그야말로 모든 막장 드라마의 원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나 청소년물에서 다루듯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불멸의 사랑”만으로 보기는 아쉽지만 또한 히스클리프의 엽기 복수극으로 볼 수도 없죠. 두 집안을 풍비박산 낸 히스클리프의 복수극이 결국은 두집안을 이어 하나의 재산으로 M&A 해주게 되는 결과에 불과하다는 히스클리프 지못미 스토리로 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캐서린의 육체와 성격을 사실상 고스란히 물려받은 캐서린의 딸과 히스클리프와 혈연은 없지만 그의 정신을 물려 받은 사실상의 히스클리프 아들 헤어턴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한 세대를 건너 결국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사랑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 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둘이 맺어지는 조짐이 보이는 순간 히스클리프는 현세의 모든 미련을 떨치고 비로서 유령의 세계를 직시 할 수 있었고 (이미 현세에서는 헤어턴과 캐시의 짝이 이루어졌으니) 죽은자의 세계에 있던 캐서린과 만날 수 있게 된 것 아니겠냐는 것이죠.


때문에 비록 과정은 힘들고 불행했지만 히스클리프도 “성공”했고, 캐서린도, 힌들리도, 에드거도 모두 “성공”했던 것 아니겠나 생각이 듭니다. 히스클리프 입장에서는 두집안을 원하는 대로 괴롭히고 결국 캐서린을 다시 만나 내세의 사랑을 이루면서 그의 정신적 아들인 헤어턴과 캐서린의 판박이인 딸 캐시와 맺어졌으니 현세와 내세의 사랑을 모두 이루었고, 힌들리 입장에서는 아버지 역할을 못했지만 결국 히스클리프로 하여금 (그의 뜻과는 다르게) 아버지 역할을 하게 하고 결국은 그가 멍청히 날려버린 재산을 그의 아들이 다시 소유하게 됨으로써, 그리고 히스클리프가 그의 아들의 영혼을 파괴하지 못함으로써 그 자신이 키워냈을 경우보다 어쩌면 더 성공했고, 캐서린은 사랑하는 두 남자 곁에 뭍히면서 두가지 사랑을 모두 이루었고, 에드가 입장에서는 여전히 캐서린의 남편으로서의 사랑을 간직하면서 딸에게 가문을 이어줄 수 있었죠.


결국 거센 폭풍이 불어와도 두 가문의 엮임과 운명은 바뀔 수 없었던 것이죠.


MF[ME]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