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디오에 투자할 돈이면 음반 구입에 투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음악감상 생활이고, 설사 오디오에 투자하더라도 가장 가성비가 낮은 품목이 케이블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완전 케이블 무용론자는 아닌데, 아날로그 케이블에 대해서는 어떤 의미로든 그 효과가 있기는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효과를 체험하기도 했습니다만, 케이블에 투자할 돈이면 스피커나 앰프에 투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멀쩡한 기본 케이블(흔히 <기케>라고 불립니다)을 놔두고 별도의 커스텀 케이블(흔히 <커케>라 부릅니다)을 구하게 된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전에 포칼의 헤드폰인 래디언스 벤틀리 에디션을 리뷰하면서 프랑스 노동자의 만듦새라는 것이 중국 노동자의 것과 비교해서 우월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한 적이 있는데, 프랑스의 대표적인 오디오인 포칼의 경우 그 제조품질에 있어 많은 지적을 받고 있고, 제 경우도 이 품질 이슈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케이블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포칼의 헤드폰 케이블에 있어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는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케이블이 어느 순간 단선이 일어난다는 것, 뻣뻣하지도 않으면서 한번 구부러진 방향을 고수하는 성질이 강해 다루기 힘들다는 것인데, 제 경우는 오히려 단선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피복이 갈라지고 벗겨져 속선(모양으로는 그냥 꼬마전구용 전선정도로 보입니다)이 드러나 자칫하면 단선이 일어날 상황이어서 대충 테이핑으로 마감을 해서 사용 중이었는데, 이 피복 갈라짐이 퍼져나가더니 결국은 단자 부분까지 확장이 되어 더 이상 테이핑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게 신기하게도 오른쪽만 이런 상황이고 왼쪽은 말짱해서 그냥 수축튜브로 작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포칼에서 기본 케이블을 다시 구매해 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다지 성능이 뛰어나거나 튼튼해 보이지도 않고 단지 깔맞춤 용도로만 좋은 기본 케이블을 비싸게 주고 살 이유도 없어 보이고, 신품도 단선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어서 이 기회에 적당한 가격의 커스텀 케이블을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헤드폰 케이블로 시장에는 알리발 저렴한 케이블부터 헤드폰 가격을 훨씬 뛰어넘는 케이블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적당한 가성비에 만듦새도 좋아 보이는 케이블로 Geek의 16 awg dual 3.5 헤드폰 케이블을 구했습니다. 16 awg의 굵기는 일반적인 헤드폰 케이블로는 제법 굵기 때문에 두 개의 선을 이용해서 듀얼로 구성하여 사용 편의성을 높인 제품입니다. 원래는 밸런스용으로 나온 케이블인데, 저는 따로 헤드폰 앰프를 사용하지는 않고 앰프의 헤드폰 단자를 사용하는지라 그냥 언밸런스로 단자를 요청해서 제작했습니다. 색상은 그라파이트 검정과 샌드 베이지 두 종류인데, 일반적인 헤드폰이라면 그라파이트 검정이 어울리겠지만, 조금 상쾌한 기분을 느껴보자는 생각에 샌드 베이지를 골랐습니다. 래디언스 헤드폰에 포인트 색상으로 들어간 구릿빛과 조화를 노려보자는 생각도 약간은 있었는데, 색이 상당히 밝기 때문에 제짝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워낙 두꺼운 선재를 사용해 듀얼로 구성된 케이블이고 뻣뻣하다는 리뷰도 있어서 사용감이 어떨까 하는 것이었는데, 제조사에 의하면 조금 더 부드러운 소재의 슬리브를 사용했다고 하더니 생각보다 사용감이 나쁘지 않습니다. 기본 케이블과 비교해서 오히려 구부리거나 펴는 것이 수월해서 사용감은 더 나아졌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두 개의 케이블이 아래쪽에서 꼬여있기에 편리한 사용을 위해서는 중간에 홀더가 필요한데 제조사는 가죽 재질로 된 일반적인 홀더와 고급형 홀더를 추가 구성품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홀더의 재질은 미네르바 복스로 자연스러운 엠보싱이 되어 있는 고급가죽인데, 다소 비싸지만(8,000원) 고급형이 더 보기 좋습니다. 아울러 이 홀더도 검정과 베이지 색상 중에 선택이 가능하기에 케이블 색과 깔맞춤을 하거나 색상의 대비를 주어 포인트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제작의 품질은 깔끔하고 우수합니다. 제작 시에 단자에 대해서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데, 아쉬웠던 점은 언밸런스 단자는 제가 좋아하는 로듐단자를 선택할 수 없고 금도금 단자만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 입니다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습니다. 물리적 동작을 하지 않는 케이블에 대해서 에이징을 믿지 않기에 받자마자 사용해 본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기존 케이블에 비해서 래디언스의 소리성향에서 좀 더 투명함이 생긴 느낌입니다. 래디언스를 사용하면서 가장 불만이었던 점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개성이 좀 부족하다는 점과 해상력에서 약간 덜 깔끔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케이블을 바꾸니 핸드폰에서 보호필름을 제거한 듯한 느낌입니다. 따라서 혹시 래디언스를 쓰시는 분이라면 커스텀 케이블 치고 아주 비싼 제품은 아니니 한번 사용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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